KimCity2000氏のコメントを借用させてもらう。
「魏志に辰韓は「名国為邦」と書かれているのだから、3世紀ごろには秦代の言葉が半島南部で使われていた。漢人は劉邦を敬い、漢代以降の中国では「邦」の代わりに「国」が使われるのが常識だった。高麗が「北燕の方言を話していた」と書かれているのも頷けるだろう。」
このことは、重大な意味を含んでいる。
KimCity2000氏はあまりにも当たり前すぎて見逃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し、booqは知らないのかもしれない。
それは、日本では日本人のことを「国人」(kokujinn)と言わずに「邦人」(houjin) と言うからである。
このことは、日本には紀元前3世紀秦の漢字が伝わったことを意味する。
これは、漢字が百済から伝わったというよりも秦の移民が日本に来たとするほうが妥当である。
辰韓は、秦韓とも呼ばれていたように秦(あるいは秦以前)の移民が来ていたことはわかっている。
では、日本にきた事実はあるのか。
ある。
隋書に以下の記述がある。
「又至竹斯國 又東至秦王國 其人同於華夏 以為夷洲疑不能明也」
(またチクシ国へ至る。また東の秦王国に至る。その人は中国人と同じで、夷洲と考えるが、はっきりしたことはわからない。)
隋書を素直に読めば秦の移民が日本にきたことは明らかである。
ではいつ来たのか。
もっとも可能性が高いのは、応神天皇の時代に弓月の君が百済120県の民を引き連れて渡来したときだろう。
百済120県の民が秦の移民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である。
ここで百済120県とあるが、新羅が渡来を妨害したとあるから新羅に近い場所とも考えられる。
その後、遣唐使とかで漢字が上書きされても、邦人という字は変わらなかった。
秦からの渡来にアイデンティティがあったからだろう。
KimCity2000씨의 코멘트를 차용시켜 준다.
「위지에 진한은 「명국 때문방」이라고 쓰여져 있으니까, 3 세기경에는 진대의 말이 반도 남부에서 사용되고 있었다.한인은 유방을 존경해, 한대 이후의 중국에서는 「방」대신에 「나라」가 사용되는 것이 상식이었다.고려가 「북연의 방언을 하고 있었다」라고 쓰여져 있는 것도 납득이 갈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KimCity2000씨는 너무 너무 당연해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고, booq는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본에서는 일본인을 「국민」(kokujinn)이라고 말하지 않고 「해외주재 일본인」(houjin)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에는 기원 전 3 세기진의 한자가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자가 (쿠다라)백제에서 전해졌다고 하는 것보다도 진의 이민이 일본에 왔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다.
진한은, 진 한국이라고도 불리고 있던 것처럼 진(있다 있어는 진이전)의 이민이 와있던 것은 알고 있다.
그럼, 일본에 온 사실은 있다 의 것인지.
있다.
수서에 이하의 기술이 있다.
「또 지죽사국 또 동지진왕국기인 동어화하이 때문이주의불능 아키야」
(또 치크시국에 도달한다.또 동쪽의 진왕국에 이른다.그 사람은 중국인과 같고, 이주라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일은 모른다.)
수서를 솔직하게 읽으면 진의 이민이 일본에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럼 언제 왔는가.
무엇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응신천황의 시대에 궁월의 너가 (쿠다라)백제 120현의 백성을 거느려 도래했을 때일 것이다.
(쿠다라)백제 120현의 백성이 진의 이민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쿠다라)백제 120현과 있다가, 신라가 도래를 방해했다고 있다로부터 신라에 가까운 장소라고도 생각된다.
그 후, 견당사등으로 한자가 덧쓰기되어도, 해외주재 일본인이라고 하는 글자는 변하지 않았다.
진(으)로부터의 도래에 아이덴티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