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句麗と日本が初めて直接的に対面したことは,
広開土大王の軍隊が新羅の援軍形態で南側に登場した時事のだ.
この時日本軍は高句麗軍に撃破あう.
なので広開土大王が百済を征伐しながら,
百済の援軍形態で登場した日本軍は高句麗軍とまた遭遇する.
しかし日本軍はまた 完敗するようになる.
高句麗軍の威力が分かるようになった日本は,
中国に使臣を送って高句麗を攻撃してくれと頼む.
高句麗を恐がったようだ.
その後では相互友好があったことと見える.
日本は百済より先進国だった高句麗から先進文物を受けたりする.
百済が唐の攻撃を受けると,
高句麗と日本は百済に援軍を派兵するが,
日本軍と高句麗軍が同盟軍として会うことはできない.
高句麗は唐主力の攻撃で消極的に支援したから,
高句麗援軍は新羅軍によって支える.
そして日本の援軍は上陸の前に唐軍に撃破される.
고구려와 일본이 처음 직접적으로 대면한 것은,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신라의 원군 형태로 남쪽에 등장했을 때 일 것이다.
이때 일본군은 고구려군에 격파 당한다.
이어서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정벌하면서,
백제의 원군 형태로 등장한 일본군은 고구려군과 다시 조우한다.
하지만 일본군은 다시 完敗하게 된다.
고구려군의 위력을 알게된 일본은,
중국에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를 공격 해달라고 부탁한다.
고구려를 무서워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상호 우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백제보다 선진국이었던 고구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기도 한다.
백제가 당나라의 공격을 받자,
고구려와 일본은 백제에 원군을 파병하지만,
일본군과 고구려군이 동맹군으로써 만나지는 못한다.
고구려는 당나라 주력의 공격으로 소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고구려 원군은 신라軍에 의해 막힌다.
그리고 일본의 원군은 상륙 전에 당나라軍에 격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