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次 隋-高句麗戦争
隋の 戦力
113万 3800
後続普及部隊約 200万
高句麗の 戦力
約 10万
1. 遼河 戦闘
隋の 本隊 100万が高句麗の領土に到逹した時 高句麗軍 2万が正面から阻んだ戦闘
2万の高句麗軍は 50倍に達する軍勢を引き延ばさせてから後退する.
隋の多くの武将と, 3万の兵力が戦死した.
2. 遼東城功城戦
隋書の記録で遼東城の城壁はとても高くて
15丈(45m)の 雲梯を特別に製作したと記録している.
戦争が終わるまでこの 城は陷落させることができない.
隋は包囲を維持したまま 30万の精鋭兵力を別に遠回りさせて平壌城で 直攻するようにする.
3. 平壌城戦闘
隋は水陸ロ進攻撃で 12万の兵力を高句麗で上陸させた.
そのうち 4万の精鋭兵力をすぐ平壌城で 直攻するようにした.
平壌城を守っていた太子と 500人の決死隊が出撃して 4万の 隋 兵力を撃破したし, 隋の水軍は皆退却する.
4. 薩水 戦闘
陸上から平壌城に進撃した 30万の 隋 精鋭兵力は 薩水で高句麗の 本隊に会う.
会戦で 隋の 30万精鋭兵力は全滅する.
遼東城を攻撃していた 皇帝は 30万の精鋭兵力が全滅したという消息を聞いて遼東城包囲を解いて逃げだす.
草原を支配した突厥も服属した 隋の 煬帝はこんなに高句麗に敗れる.
2차 隋-고구려 전쟁
隋의 戰力
113만 3800
후속 보급 부대 약 200만
고구려의 戰力
약 10만
1. 遼河 전투
隋의 本隊 100만이 고구려의 영토에 도달 했을때 고구려군 2만이 정면으로 막은 전투
2만의 고구려군은 50배에 달하는 군세를 지연시키다가 후퇴한다.
隋의 여러 무장과, 3만의 병력이 전사했다.
2. 요동성 공성전
隋書의 기록으로 요동성의 성벽은 너무 높아서
15丈(45m)의 雲梯를 특별히 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이 끝날때까지 이 城은 함락시키지 못한다.
隋는 포위를 유지한 채로 30만의 정예 병력을 따로 우회시켜서 평양성으로 直攻하게 한다.
3. 평양성 전투
隋는 수륙병진 공격으로 12만의 병력을 고구려로 상륙시켰다.
그 중 4만의 정예 병력을 바로 평양성으로 直攻하게 했다.
평양성을 지키고 있던 태자와 500명의 결사대가 출격해서 4만의 隋 병력을 격파했고, 隋의 수군은 모두 퇴각한다.
4. 薩水 전투
육상에서 평양성으로 진격한 30만의 隋 정예 병력은 薩水에서 고구려의 本隊를 만난다.
會戰에서 隋의 30만 정예 병력은 전멸한다.
요동성을 공격하고 있던 황제는 30만의 정예 병력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요동성 포위를 풀고 도망간다.
초원을 지배했던 돌궐도 복속한 隋의 煬帝는 이렇게 고구려에 패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