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ではKJでしか見られない単語「バタ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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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年代のバタヤ部落
植民地時代から解放直後の在日韓人の都市及びその近郊での代表的な職業のひとつは廃品回収業であった。いまふうに「リサイクル」と言えば聞こえがよいが、籠を背負うか、リアカーを引いて「くずーぃ、おはらい」と言いながらボロ切れ、紙くず、古新聞、鉄くずなどを集める仕事だった。
別名ボロ屋、ばた屋(バタヤ)と呼ばれ、「汚い」、「臭い」と不潔の代名詞であった。日本人が嫌った仕事だけに朝鮮 人が多かったのだ。
解放直後だけでなく 1950年代から60年代、70年代と在日同胞の多くはボロ屋、バタヤ、くず鉄屋などで生計を立てていた。
바타가게
지금은 KJ로 밖에 볼 수 없는 단어 「바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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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바타야 부락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 직후의 재일 한인의 도시 및 그 근교에서의 대표적인 직업의 하나는 폐품 회수업이었다.지금 식으로 「리사이클」이라고 하면 소문이 좋지만, 롱을 짊어지는지, 리어 커를 끌어들이어 「쓰레기-, 액막이 행사」라고 하면서 고물 끊어져 휴지, 헌 신문, 철쓰레기등을 모으는 일이었다.
별명 고물가게, 가게(바타야)로 불려 「더럽다」, 「냄새나다」라고 불결의 대명사였다.일본인이 싫어 한 일인 만큼 한국인이 많았던 것이다.
해방 직후 뿐만이 아니라 1950년대부터 60년대, 70년대와 재일 동포의 상당수는 고물가게, 바타야, 고철가게등에서 생계를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