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は 90年代中盤キム・デジュン政府時代
当時韓国政府は第3の波, 付議未来などの著書で未来学のお父さんと呼ばれる 故 Alvin Toffler 博士に韓国経済と産業の国家次元の戦略樹立を依頼したと言う.
(当時世界的な碩学が韓国をよく訪問しながら特講をよく開いたが, 出ても参加したことがイッジミンその背景が何だか怪しげだった.)
IMF 経済危機などを経験して日本式経済及び産業戦略を bench markingすることでは韓国をもっては発展の限界が明らかだと悟って, 新しい突破口を用意しようと苦心した結果だったと言う.
当時博士は依頼規模と比べてすごい分量の報告書を提出したと言う.
報告書に提示された核心キーワードが今韓国経済の特徴でそっくりそのまま反映された.
“知識経済”
“IT 及び先端高附加価値技術”
“人才主の開かれた社会”
“文化産業暢逹”
当時政府は “これを私たちができるか?” 現実性がない? という批判もあったが...
たった一つで実現可能性を期待して韓国産業の体質改善に取り掛かったと言う.
その一つは 80年代中盤から韓国社会で自発的に発生した PC教育及び製作熱風!!! (私も中学生時代何も分からなくてお母さんが送ってくれたコンピューター学院を通って Apple II にプログラムも組んで見てした記憶がある. 当時に子供達 10人の中 3‾4 人は PCにすっかりはまっていた.)
今の韓国を見れば Alvin Toffler 博士もすごいが, 当時政府の果敢な判断と推進力, 私たち国民もすごいようだ.
大韓民国マンスェイ!!!!
때는 90년대 중반 김대중 정부 시절
당시 한국정부는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등의 저서로 미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故 Alvin Toffler 박사에게 한국 경제와 산업의 국가차원의 전략 수립을 의뢰했다고 한다.
(당시 세계적인 석학이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특강을 자주 열었는데, 나도 참석한 적이 있지민 그 배경이 무엇일까 의아했었다.)
IMF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일본식 경제 및 산업 전략을 bench marking하는 것으로는 한국으로써는 발전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깨닫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고심한 결과였다고 한다.
당시 박사는 의뢰 규모와 비교해 대단한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보고서에 제시된 핵심 키워드가 지금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지식 경제"
"IT 및 첨단 고부가 가치 기술"
"인재 위주의 열린 사회"
"문화산업 창달"
당시 정부는 "이것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현실성이 없다? 라는 비판도 있았는데...
딱 한가지에서 실현 가능성을 기대하고 한국 산업의 체질 개선에 착수 했다고 한다.
그 한가지는 8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PC교육 및 제작 열풍!!! (나도 중학생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가 보내준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Apple II 로 프로그램도 짜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아이들 10명 중 3~4 명은 PC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 Alvin Toffler 박사도 대단하지만, 당시 정부의 과감한 판단과 추진력, 우리 국민들도 대단한 거 같다.
대한민국 만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