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日寺
韓国女の旅行者が住職を篭絡し結婚、住職の死後、寺を乗っ取ったことで有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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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日寺:四国八十八箇所霊場 第十三番札所
鮎喰川を渡った平地にある四国八十八箇所霊場の第十三番札所「大栗山 花蔵院 大日寺」(おおぐりざん けぞういん だいにちじ)です。
本尊は十一面観音。
本尊真言「おん まか きゃろにきゃ そわか」
ご詠歌「阿波の国 一の宮とや ゆうだすき かけてたのめや この世後の世」
寺伝によれば、弘仁6年(815年)に空海がこの付近にある「大師が森」で護摩修行をしていると大日如来が現れてこの地が霊地であるから一寺を建立せよと告げたとあります。
そこでその大日如来の姿を刻み、堂宇を建立して本尊として安置し「大日寺」と称したというのですが、なぜかもともとこの寺にあった大日如来像は脇仏となり、十一面観音像が本尊として祀られています。
当地はかつて、阿波の総鎮守であった一の宮神社だったそうで、その別当寺として大日寺は同じ境内にありました。
この一の宮の本地仏は行基菩薩作の十一面観音像とされており、明治の神仏分離令により大日寺は独立し、その行基作の十一面観音像を本尊としていると云うことのようです。
ネットの情報によると、大日寺の現住職の金昴先(キムミョウソン)さんは韓国の伝統舞踊家なのだそうです。
前住職亡き後、金昴先さんは韓国国籍、韓国名を名乗りつつ当寺の新住職を特例で認められています。
駐車場には奇怪なプレハブが建っていますが、現住職は関西韓国芸術文化団体総連合会の支会長を勤めているということらしく、四国の伝統文化である「阿波踊り」にも韓国から大量にダンサーを呼び寄せ、韓国の衣装であるチマチョゴリを着せて参加させたことで物議を醸し出しました。
大日寺を道挟んで渡ったところに、先述の一の宮神社が鎮座しています。
やや寂れた感はありますが、往時の神威が多少なりと残されていて、とても良い聖蹟です。
大日寺で朱印をいただいた限りでは、おそらく件の女住職さんが対応されたのですが、流暢な筆さばきで墨書きいただきました。
住職の様子も境内の様子も、噂で聞いていたよりもおとなしめで、普通の札所と同じように思えました。
それはともかく、ネットで噂されることが事実であろうとも、太古から降り積もった聖域そのものに、1mmも価値が揺らぐことはありません。
僕はただ、そこに坐す大いなるものに頭を垂れ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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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니치지
한국녀의 여행자가 주직을 농락 해 결혼, 주직의 사후, 절을 빼앗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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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니치지:시코쿠 88개소 영지 제 13번찰소
아쿠이천을 건넌 평지에 있는 시코쿠 88개소 영지의 제13번찰소 「오쿠리야마화장원다이니치지」(증원이다 있어 글자)입니다.
본존은 십일면관음.
본존 진언 「나 꺄에 꺄절벽인가」
시를 지음 「아와의 쿠니이치의 궁과나 하는 내는 나무 걸쳤어 째나 이 세상 후세」
사전에 의하면, 홍인 6년(815년)에 공해가 이 부근에 있는 「대사가 숲」에서 호마 수행을 하고 있으면 대일 여래가 나타나 이 땅이 영지이기 때문에 일사를 건립하라와 고했다고 있어요.
거기서 그 대일 여래의 모습을 새겨, 당의 처마를 건립해 본존으로서 안치해 「다이니치지」라고 칭했다는 것입니다만, 왠지 원래 이 절에 있던 대일 여래상은 협불이 되어, 십일면관음상이 본존으로서 모셔지고 있습니다.
당지는 일찌기, 아와의 총고장을 지키는 신인 황태자 신사였다고 하고, 그 별당절로서 다이니치지는 같은 경내에 있었습니다.
이 황태자의 본지불은 행기보살작의 십일면관음상으로 여겨지고 있어 메이지의 신불분리령에 의해 다이니치지는 독립해, 그 행기작의 십일면관음상을 본존으로 하고 있으면 말하는 것의 같습니다.
넷의 정보에 의하면, 다이니치지의 현주직의 금묘처(킴묘우손)씨는 한국의 전통 무용가라고 합니다.
전 주직 사후, 금묘처씨는 한국 국적, 한국명을 자칭하면서 당사의 신주직을 특례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주차장에는 기괴한 프리패브가 세우고 있습니다만, 현주직은 칸사이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의 지회장을 근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시코쿠의 전통 문화인 「아와오도리」에도 한국으로부터 대량으로 댄서를 불러와 한국의 의상인 치마 저고리를 입혀 참가시킨 것으로 물의를 자아냈습니다.
다이니치지를 길 사이에 두어 건넌 것에, 전제의 황태자 신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간 쇠퇴해진 감은 있어요가, 지난 날의 카무이가 다소든지와 남아 있고, 매우 좋은 성적입니다.
다이니치지에서 주인을 받은 바로는, 아마 건의 여자 주직씨가 대응되었습니다만, 유창한 붓다루기로 묵화 받았습니다.
주직의 님 아이도 경내의 님 아이도, 소문으로 (듣)묻고 있었던 것보다도 점잖은으로, 보통 찰소와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차치하고, 넷에서 소문되는 것이 사실이든지, 태고부터 내려 쌓인 성역 그 자체에, 1 mm나 가치가 요동할 것은 없습니다.
나는 단지, 거기에 좌커다란 것에 머리를 늘어 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