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recordchina.co.jp/b878476-s25-c100-d0191.html
2021年6月25日、韓国メディア・韓国日報は「朝鮮戦争時の韓国軍慰安婦、国家は70年間知らんぷりをしている」と題する記事を掲載した。
記事によると、朝鮮戦争時に韓国軍慰安婦が存在した事実は約19年前にキム・グィオク漢城大教授の論文を通じて初めて明らかになった。慰安婦が動員された時期ははっきりしておらず、キム教授は「1951年の秋ごろに戦争が小康状態になり、戦線が現在の休戦ライン付近に固着したとき、軍人の管理の名目で慰安婦が導入された可能性が高い」と説明している。ただ、慰安婦運営の事実は複数の資料で立証されているという。
そのうち1956年に陸軍本部が編纂した「後方戦史(人事編)」には、戦争中に後方支援業務の名目で「特殊慰安隊」を設置したと記録されている。同書には慰安婦を「小隊」に組織して運営した記録の一部が残されており、それから推算するとソウルの3つの小隊と江陵の3つの小隊だけで128人の慰安婦がいたとみられるという。キム教授は「最近新たに江原道の高城と襄陽で慰安婦が動員された証拠が発見された」とし、「公式的な運営だけでなく、各部隊が独自に慰安所を運営していた可能性もある」と話した。その他、当時の将校や捕虜が韓国軍慰安婦の実態を証言した記録も数多くあるという。
記事は「韓国軍慰安婦は女性を性奴隷として動員した反道徳的行為であるという点で日本軍慰安婦が連想されるが、この2つには決定的な違いがある」とし、「韓国軍慰安婦被害者の中には、被害事実を公の場で証言した人が1人もいないことだ」と指摘している。キム教授は「日本軍慰安婦被害者は、当時国権を侵奪した日本を加害者にできるが、韓国軍慰安婦被害者の場合は加害者と被害者が同じ民族であるため被害を証言しにくい」と説明した。
また、キム教授は「『民間で売春をする女性を募集して韓国軍慰安婦を運営した』との主張があることも被害者の口をふさぐ原因になっている」と指摘。その上で「この主張は事実でない。むしろ、被害女性たちは前方地域へ『強制出張』に行ったという証言が出るなど組織的に統制されていたことは明らかで、韓国軍慰安婦は当時、陸軍本部の計画により制度化され、国家体制下にあったとみるのが妥当だ」と主張したという。
さらに、キム教授は研究を進める中で「国レベルで韓国軍慰安婦の歴史を隠そうとしている」と感じることが何度もあったという。2002年の論文発表後には韓国国防部がキム教授の務める学校側に連絡し、研究の中止を求めた。「後方戦史」が軍事編纂研究所から紛失したこともあったという。
なお韓国政府がこれまでに韓国軍慰安婦問題に言及したことは一度もない。キム教授は「韓国軍慰安婦が国家的犯罪であり、国に責任があることは明らか」とし、「国レベルでの調査、謝罪が行われるべき」と訴えているという。
これを見た韓国のネットユーザーからは「本当なの?」「知らなかった。衝撃的だ」と驚く声が上がっている。
また、「日本の悪いところをしっかり学んだね」「こんな状況なのに日本を批判していたのか?」「これでは日本の前で堂々としていられない」など韓国政府に対する厳しい声も。
ただ、韓国政府の対応については「自国の歴史の恥ずかしい部分を隠すのではなく、ちゃんと公開しよう。そして歴史の犠牲者に補償し、傷を癒してあげよう」と求める声が上がる一方で、「日本軍慰安婦問題も解決できていないのだから、この問題はもっと難しいだろう」「残念だけど韓国軍慰安婦が大きく議論されることはない。韓国政府の反日レパートリーの1つが大きな打撃を受けることになるから」と諦めムードの声も多い。
その他「被害者が名乗り出ないのだから国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被害者には同情する。でもこの問題が広まることによって日本への批判が弱まることの方が心配」と指摘する声も上がっている。(翻訳・編集/堂本)
引用元: http://awabi.2ch.sc/test/read.cgi/news4plus/1624659853/
2021년 6월 25일, 한국 미디어·한국 일보는 「한국 전쟁시의 한국군 위안부, 국가는 70년간지를 하고 있다」라고 제목을 붙이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 의하면, 한국 전쟁시에 한국군 위안부가 존재한 사실은 약 19년전에 김·그오크 한성대 교수의 논문을 통하고 처음으로 밝혀졌다.위안부가 동원되었던 시기는 확실하지 않고, 김 교수는 「1951년의 가을경에 전쟁이 소강 상태가 되어, 전선이 현재의 휴전 라인 부근에 고착했을 때, 군인의 관리의 명목으로 위안부가 도입된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단지, 위안부 운영의 사실은 복수의 자료로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1956년에 육군 본부가 편찬 한 「후방 전사(인사편)」에는, 전쟁중에 후방 지원 업무의 명목으로 「특수 위안대」를 설치했다고 기록되고 있다.동서에는 위안부를 「소대」에 조직 해 운영한 기록의 일부가 남겨져 있어, 그리고 추산하면 서울의 3개의 소대와 강릉의 3개의 소대만으로 128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보여진다고 한다.김 교수는 「최근 새롭게 강원도의 타카기와 노보루 햇빛으로 위안부가 동원된 증거가 발견되었다」라고 해, 「공식적인 운영 뿐만이 아니라, 각부대가 독자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하고 있던 가능성도 있다」라고 이야기했다.그 외, 당시의 장교나 포로가 한국군 위안부의 실태를 증언한 기록도 많이 있다라고 한다.
기사는 「한국군 위안부는 여성을 성 노예로서 동원한 반도덕적 행위이다고 하는 점으로 일본군위안부가 연상되지만, 이 2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라고 해, 「한국군 위안부 피해자중에는, 피해 사실을 국가 기관에서 증언한 사람이 1명이나 없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김 교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당시 국권을 침탈 한 일본을 가해자로 할 수 있지만, 한국군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민족이기 위해 피해를 증언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 「민간으로 매춘을 하는 여성을 모집해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했다」라고의 주장이 있다 일도 피해자의 입을 막는 원인이 되어 있다」라고 지적.게다가로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오히려, 피해 여성들은 전방 지역에 「강제 출장」하러 갔다고 하는 증언이 나오는 등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있던 것은 분명하고, 한국군 위안부는 당시 , 육군 본부의 계획에 의해 제도화되어 국가 체제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게다가 김 교수는 연구를 진행시키는 가운데 「정부수준으로 한국군 위안부의 역사를 숨기려 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것이 몇번이나 있었다고 한다.2002년의 논문 발표 후에는 한국 국방부가 김 교수가 맡는 학교 측에 연락해, 연구의 중지를 요구했다.「후방 전사」가 군사 편찬 연구소로부터 분실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언급한 것은 한번도 없다.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가 국가적 범죄이며, 나라에 책임이 있다 (일)것은 아키라등인가」라고 해, 「정부수준으로의 조사, 사죄를 해야 한다」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본 한국의 넷 유저에게서는 「사실이야?」 「몰랐다.충격적이다」라고 놀라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일본이 나쁜 곳을 확실히 배웠군요」 「이런 상황인데 일본을 비판하고 있었는지?」 「이것으로는 일본의 앞에서 당당하고 있을 수 없다」 등 한국 정부에 대한 엄격한 소리도.
단지,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자국의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공개하자.그리고 역사의 희생자에게 보상해, 상처를 달래 주자」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는 한편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해결 되어 있지 않으니까, 이 문제는 더 어려울 것이다」 「유감이지만 한국군 위안부가 크게 논의될 것은 없다.한국 정부의 반일 레파토리의 하나가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체념 무드의 소리도 많다.
그 외 「피해자가 자칭해 나오지 않으니까 나라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피해자에게는 동정한다.그렇지만 이 문제가 퍼지는 것에 의해서 일본에의 비판이 약해지는 것이 걱정」이라고 지적하는 소리도 오르고 있다.(번역·편집/도오모토)
인용원: http://awabi.2ch.sc/test/read.cgi/news4plus/1624659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