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のポータルサイトネイバーから「6.25の時の韓国軍慰安婦…国は70年間無視している」という記事を翻訳してご紹介。
6.25の韓国軍慰安婦…国は70年間無視している
●韓国軍慰安婦、初の研究、キム・グィオク教授
●2002年に論文を発表して韓国軍慰安婦動員を明らかに
●軍資料にも記載…ソウル・江陵戦線のみ128人
●売春誤解、歪曲された性意識で被害証言皆無
●「国連安保理も認めた犯罪…国が責任を負わなければ」
1950年9月15日、仁川月尾島付近で軍人が燃える施設を横切り巡回している。
6・25戦争時も「慰安婦」が存在したという事実が、19年前に初めて世に明らかになった。漢城大のキム・グィオク教授(59)の2002年の論文を通じてだ。しかし、6・25戦争71周年を迎えた今年も、韓国軍慰安婦は正しくスポットを当てられていない。
日本軍慰安婦とは別の次元の抑圧と偏見に押され、被害証言もまったく出ていないのが実情である。キム教授は24日、韓国日報とのインタビューで、「韓国が未来を眺めるためには、必ず過去を確か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し「国家レベルで韓国軍慰安婦被害者のための明確な調査と謝罪が行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強調した。
韓国軍資料にも記録された「慰安婦」
1951年4月に釜山の国連軍捕虜収容所に北韓・中国の捕虜たちが集まっている。
6・25戦争で韓国軍慰安婦がいつ動員されたのかは正確に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キム教授は「1951年の秋頃、戦争が小康状態を迎え、戦線が現在の休戦ライン付近に固着した時、兵士の管理を名目に慰安婦が導入された可能性が高い」という立場だ。
慰安婦運営の事実はいくつかの資料で証明されているとキム教授は説明した。例えば、1952年12月30日、東亜日報は「韓国軍のための慰安所が必要である」という内容の読者投稿が掲載され、翌年、停戦協定締結後の11月16日付の京郷新聞は「陸軍会館4箇所に韓国軍慰安所を増設する」という記事が掲載された。
韓国軍慰安婦の存在は、軍の公式資料でも確認できる。キム教授は、1956年に陸軍本部が編纂した「後方戦士(人事編)」で、戦争中、後方支援業務の名目で「特殊慰安隊」を設置したという記録を確認した。この資料には、慰安婦を「小隊」に編制して運営した記録の一部が残っているが、これを総合すると、ソウルの3個小隊と江陵の3個小隊だけで128人の慰安婦がいたと試算ができる。キム教授は「最近、江原の高城や襄陽などに慰安婦を動員した痕跡が追加で発見された」とし「公式運営だけでなく、各部隊が自主的に慰安所を運営した可能性も考慮する必要があるだろう」と述べた。
参戦将校や捕虜が韓国軍慰安婦の実態を証言した記録も少なくない。キム教授が1996年11月に江原道束草でインタビューをした越南民は、韓国軍に民間人捕虜として捕まった時、慰安婦を見たと回顧した。彼は「軍慰安隊女性がいた。以北の言葉を使わず、軍人を慰問する仕事をしていた」と述べた。チェ・ミョンシン、チャ・ギュホン、キム・ヒオ将軍の回顧録にも国軍のために慰安婦が割り当てられたという部分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
売春誤解・民族主義…被害証言難しく
1951年4月に釜山の国連軍捕虜収容所に北韓と中国の捕虜たちが集まっている。
女性を戦争に性奴隷として動員した反人倫行為という点では、韓国軍慰安婦は自ずと日本軍慰安婦を連想させる。しかし、両者の間には決定的な違いがある。韓国軍慰安婦被害者の中には被害事実を公に明らかにした人がまだ一人もいないということだ。キム教授も長い間、噂をたよりに2人の被害者と会ったが、彼女たちは存在を存在を明らかにすることはもちろん、具体的な被害事実の供述も拒否したという。
キム教授は、「日本軍慰安婦被害者は当時、国権を侵奪した日本を加害者に指名することができるが、韓国軍慰安婦の場合、加害者と被害者が韓民族に縛られており、被害を証明するのは難しい」と指摘した。キム教授が会った女性は、韓国軍慰安婦として連行され、被害直前に軍人の好意で釈放された後、彼と結婚したと述べた。実際、慰安婦に動員された女性の多くはこのような「強制結婚」を通じて被害事実がなかったことの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
民間で売春女性を募集して韓国軍慰安婦を運営したという主張も被害者を隠すものだ。キム教授は「このような主張は事実ではない」と断言する。慰安婦が公開募集の形で運営されたという証拠がまったくなく、むしろ被害女性たちが前方地域で「強制出張」を行ったという証言が出てくるなど、組織的統制状況がはっきりしているとした。キム教授は「韓国軍慰安婦は当時、陸軍本部企画に基づいて制度化され、国家体制の下にあったと見るのが妥当」と指摘した。
根本的には、男性中心的性認識が慰安婦問題のスポットを妨げているとキム教授は指摘する。戦時状況だった当時の兵士の性欲が抑圧された状態であるため、民間人への性暴行を防ぐためにも慰安所が必要であるという世論が支配的だったという。戦後も被害当事者たちが出てこれない環境であり、慰安婦の存在を証言した一部の男性たちも、被害者たちを残念に思うという感情を表すだけで、これを深刻な人権蹂躙とみなさなかった。
政府は70年間沈黙…「国が責任を負わなければ」
漢城大のキム・グィオク教授。
キム教授は、研究を進めている間、国家レベルで韓国軍慰安婦の歴史を隠そうと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何度か体験したという。2002年の論文が発表された後、国防部は当時、キム教授が所属する学校側に連絡し、研究自制を要求するなど外圧を加えた。慰安婦の存在を証明する決定的資料である「後方戦士」は、軍事編纂研究所から消えたりした。
政府は、これまで韓国軍慰安婦問題に言及すらしたことがない。2005~2010年に活動した第1期の真実和解のための過去史整理委員会は、民間人虐殺を含めて6・25戦争当時に行われた国家的暴力事件を多数調査したが、肝心の韓国軍慰安婦については説明しなかった。キム教授は「昨年、青瓦台で韓国軍慰安婦の真相究明に関心を示し連絡をしてきた、それだけで実際の努力はなかった」と話した。
キム教授は、韓国軍慰安婦が厳然たる国家犯罪であり、国際的責任も明確だと強調した。キム教授は、「国連安全保障理事会が2000年に全会一致で採択した”女性・平和・安全保障に関する決議案”によると、国際戦であれ内戦であれ被害者に対して国が真相究明・謝罪・解決することを勧告している」とし「韓国もこの決議案に署名した国であり、加害の主体として韓国軍慰安婦の事態に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述べた。
この記事を見たネイバー読者の反応
この記事にコメントを書き込んだ読者の性別と年代
ソース:http://naver.me/G4r95X63
1. 韓国人
徹底的に暴け!
それを隠しながら日本に謝罪しろと言い張るのは話にならない
日本と同じレベルの国家、国民にならないようにしよう
共感:155|非共感:7
2. 韓国人
これは誰が見ても日本から金を受け取って水を濁す戦法だな
共感:6|非共感:9
3. 韓国人
水を濁らせていても、事実であるのなら補償すべきだ
共感:10|非共感:0
4. 韓国人
真実は明らかにしよう!
5. 韓国人
それでは、韓国軍が運用した慰安婦も日本軍性奴隷のように強制連行、拉致、就業詐欺にあって性的暴行を受けた人たちということになるが?
言葉には責任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
6. 韓国人
尹美香の裁判はいつするのか?
担当判事が食事中に死亡して以降、ニュースがないね
共感:281|非共感:9
カイカイ補足:元慰安婦団体代表の不正裁判を担当していた判事、食事中に倒れた後死亡
現職の部長判事が知人たちとの会食の途中に突然意識を失って倒れ、病院に運ばれたが死亡した。市民団体「日本軍性奴隷制問題解決のための正義記憶連帯(正議連)」の尹美香(ユン・ミヒャン)事件の初公判を控えてだ。
7. 韓国人
隠したところで真実が消えるのか?
古今東西を問わず、戦争になれば若い女性が性的被害を受けてきた
共感:59|非共感:12
8. 韓国人
戦争に参戦した軍人も被害者ではないのか?
国がどれだけ補償してくれたのか?
共感:4|非共感:4
9. 韓国人
男は死んでいる
共感:16|非共感:1
10. 韓国人
戦争になれば男たちは戦場に連れて行かれて弾除けにされ、女たちは性奴隷にされる
戦争が起きて喜ぶやつがいるのか?
共感:5|非共感:0
11. 韓国人
むしろ敵と戦って銃撃されて死ぬ方が良い
敵に強姦されたいのか?
死んだ方がマシである
共感:5|非共感:9
12. 韓国人
それではあなたは銃剣を持って戦ってください
誰も止めません
共感:4|非共感:0
13. 韓国人
我が民族と言えども特別善良であったり優れているものではない
みんな似たり寄ったりの悪者だ
共感:57|非共感:7
14. 韓国人
我が民族X
韓国人O
共感:3|非共感:17
15. 韓国人
韓国男が犯した犯行なのに我が民族ってwwwwww
犯罪者どもと一緒にするな
我が民族ではなく韓国男である
共感:3|非共感:11
16. 韓国人
それでは日本の男だけを非難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なぜ、日本全体を非難するのか?
17. 韓国人
お前の論理通りなら、世界中の男は性犯罪者である
戦争の時、慰安婦がなかった国はないのに
18. 韓国人
MBCのドキュメンタリー番組で知りましたが、被害者だという慰安所の女性たちは現れず、探しても、彼女たちが世間に知られることを望んでいないのに、なぜあえて探し出そうとするのか理解できない
忘れる権利もあるでしょ
厳しい世の中を生き延びて静かに暮らしている人々なら触れないでください
ただ、本人の意志で状況を知らせ、不当さを明らかにするなら、助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ね
共感:29|非共感:3
19. 韓国人
この問題を利用しようとする人たちが誰なのかを見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20. 韓国人
正義連のような市民団体が乗り出さない理由は、韓国がやったとすれば非難だけされてお金にならない
金儲けにならず扇動が難しいから扱わないのだ
共感:14|非共感:0
21. 韓国人
なぜ、多くの韓国人を虐殺して強姦した北韓軍と中国軍に対しては沈黙して、韓国軍だけ責めるのか?
共感:10|非共感:1
22. 韓国人
戦争が起きれば、殺人や強姦などの問題が常に生じるので戦争が起きてはならない
このような事態をもたらした金日成とその息子のことはなぜ非難しないのか!
情けない
共感:7|非共感:0
23. 韓国人
今や従軍慰安婦から反米運動を展開する予定
共感:6|非共感:0
24. 韓国人
大韓民国に残って寄生する左翼たちを倒すのが優先だ!
共感:4|非共感:0
25. 韓国人
中国と日本は大韓民国の統一を最も恐れるが、大韓民国の人々は統一の必要性を知らない
戦争が起きて家族がみんな中国人と日本人に強姦されてこそ統一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悟るだろう
共感:4|非共感:1
26. 韓国人
被害者が出てこないのに国家がどうやって責任を負うのか?
共感:3|非共感:0
27. 韓国人
あれは慰安婦ではなく国が運営した公娼だね
強制的に連行したという証拠があるのか?
共感:3|非共感:1
28. 韓国人
問題があるのならすべて明らかにするのは正しいことだ
北傀や中共の蛮行も一緒に調査し、韓国も問題があるのなら聖域なしに調査することは正義の観点で同意
共感:2|非共感:0
29. 韓国人
そのまま生きていくのが大変だから体を売った女性が多かった
韓国が貧しかった時代は米軍相手に体を売る女性はドルを稼ぐ愛国者と言われ、豊かな今でも自発的に体を売る女性が多い
しかもk海外に出てまで
共感:2|非共感:1
한국의 포타르사이트네이바로부터 「6.25때의 한국군 위안부 국은 70년간 무시하고 있다」라고 하는 기사를 번역해 소개.
6.25의 한국군 위안부 국은 70년간 무시하고 있다
●한국군 위안부, 첫 연구, 김·그오크 교수
●2002년에 논문을 발표해 한국군 위안부 동원을 분명하게
●군자료에도 기재 서울·강릉 전선만 128명
●매춘 오해, 왜곡된 성 의식으로 피해 증언 전무
●「유엔 안보리도 인정한 범죄 국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1950년 9월 15일, 인천 월미도 부근에서 군인이 불타는 시설을 횡단해 순회하고 있다.
6·25 전쟁시도 「위안부」가 존재했다고 하는 사실이, 19년전에 처음으로 세상에 밝혀졌다.한성대의 김·그오크 교수(59)의 2002년의 논문을 통해서다.그러나, 6·25 전쟁 71주년을 맞이한 금년도, 한국군 위안부는 올바르게 스포트를 맞힐 수 있지 않았다.
일본군위안부와는 다른 차원의 억압과 편견에 밀려 피해 증언도 전혀 나와 있지 않은 것이 실정이다.김 교수는 24일, 한국 일보와의 인터뷰로, 「한국이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해 「국가 레벨로 한국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명확한 조사와 사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군 자료에도 기록된 「위안부」
1951년 4월에 부산의 국제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 북한·중국의 포로들이 모여 있다.
6·25 전쟁으로 한국군 위안부가 언제 동원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김 교수는 「1951년의 추경, 전쟁이 소강 상태를 맞이해 전선이 현재의 휴전 라인 부근에 고착했을 때, 병사의 관리를 명목에 위안부가 도입된 가능성이 높다」라고 하는 입장이다.
위안부 운영의 사실은 몇개의 자료로 증명되고 있으면 김 교수는 설명했다.예를 들면, 1952년 12월 30일, 동아일보는 「한국군을 위한 위안소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내용의 독자 투고가 게재되어 다음 해, 정전협정 체결 후의 11월 16 일자의 옛 쿄토의벼슬아치 신문은 「육군 회관 4개소에 한국군 위안소를 증설한다」라고 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는, 군의 공식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김 교수는, 1956년에 육군 본부가 편찬 한 「후방 전사(인사편)」로, 전쟁중, 후방 지원 업무의 명목으로 「특수 위안대」를 설치했다고 하는 기록을 확인했다.이 자료에는, 위안부를 「소대」에 편제 해 운영한 기록의 일부가 남아 있지만, 이것을 종합 하면, 서울의 3개 소대와 강릉의 3개 소대만으로 128명의 위안부가 있었다고 시산을 할 수 있다.김 교수는 「최근, 강원의 타카기나 노보루 햇빛 등에 위안부를 동원한 흔적이 추가로 발견되었다」라고 해 「공식 운영 뿐만이 아니라, 각부대가 자주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한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전 장교나 포로가 한국군 위안부의 실태를 증언한 기록도 적지 않다.김 교수가 1996년 11월에 강원도 속초에서 인터뷰를 한 월남민은, 한국군에게 민간인 포로로서 잡혔을 때, 위안부를 보았다고 회고 했다.그는 「군위안대 여성이 있었다.이북의 말을 사용하지 않고, 군인을 위문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최·몰신, 차·규혼, 김·히오 장군의 회고록에도 국군을 위해서 위안부가 할당할 수 있었다고 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매춘 오해·민족주의 피해 증언 어렵고
1951년 4월에 부산의 국제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 북한과 중국의 포로들이 모여 있다.
여성을 전쟁에 성 노예로서 동원한 반인륜 행위라고 하는 점에서는, 한국군 위안부는 스스로 일본군위안부를 연상시킨다.그러나, 양자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한국군 위안부 피해자중에는 피해 사실을 공에 분명히 한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김 교수도 오랫동안, 소문을 의지하여 2명의 피해자와 만났지만, 그녀들은 존재를 존재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피해 사실의 진술도 거부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당시 , 국권을 침탈 한 일본을 가해자로 지명할 수 있지만, 한국군 위안부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민족에 묶여 있어 피해를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지적했다.김 교수가 만난 여성은, 한국군 위안부로서 연행되어 피해 직전에 군인의 호의로 석방된 후, 그와 결혼했다고 말했다.실제, 위안부에게 동원된 여성의 상당수는 이러한 「강제 결혼」을 통해서 피해 사실이 없었던 것과 같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민간으로 매춘 여성을 모집해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했다고 하는 주장도 피해자를 숨기는 것이다.김 교수는 「이러한 주장은 사실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위안부가 공개 모집의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하는 증거가 전혀 없고, 오히려 피해 여성들이 전방 지역에서 「강제 출장」을 실시했다고 하는 증언이 나오는 등, 조직적 통제 상황이 뚜렷하다고 했다.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는 당시 , 육군 본부 기획에 근거해 제도화되어 국가 체제아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이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는, 남성 중심적성 인식이 위안부 문제의 스포트를 방해하고 있으면 김 교수는 지적한다.전시 상황이었던 당시의 병사의 성욕이 억압된 상태이기 위해, 민간인에게의 성 폭행을 막기 위해서도 위안소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전후도 피해 당사자들이 나와 이것 없는 환경이며, 위안부의 존재를 증언한 일부의 남성들도, 피해자들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는 감정을 나타내는 것만으로, 이것을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정부는 70년간 침묵 「나라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한성대의 김·그오크 교수.
김 교수는,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는 동안, 국가 레벨로 한국군 위안부의 역사를 숨기려 하고 있는 것을 몇 번인가 체험했다고 한다.2002년의 논문이 발표된 후, 국방부는 당시 , 김 교수가 소속하는 학교 측에 연락해, 연구 자제를 요구하는 등 외압을 더했다.위안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인 「후방 전사」는, 군사 편찬 연구소로부터 사라지거나 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언급조차 했던 적이 없다.2005~2010해에 활동한 제1기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민간인 학살을 포함해 6·25 전쟁 당시에 행해진 국가적 폭력 사건을 다수 조사했지만, 중요한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김 교수는 「작년, 청와대로 한국군 위안부의 진상 구명에 관심을 나타내 연락을 해 온, 그 만큼으로 실제의 노력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가 엄연한 국가 범죄이며, 국제적 책임도 명확하다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2000년에 전회 일치로 채택한”여성·평화·안전 보장에 관한 결의안”에 의하면,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피해자에 대해서 나라가 진상 구명·사죄·해결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라고 해 「한국도 이 결의안에 서명한 나라이며, 가해의 주체로서 한국군 위안부의 사태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를 본 네이바 독자의 반응
이 기사에 코멘트를 쓴 독자의 성별과 연대
소스:http://naver.me/G4r95X63
1. 한국인
철저하게 폭로해라!
그것을 숨기면서 일본에 사죄하라고 우기는 것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일본과 같은 레벨의 국가, 국민이 되지 않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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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인
이것은 누가 봐도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물을 흐리는 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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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인
물을 탁해지게 하고 있어도, 사실이다면 보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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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인
진실은 분명히 하자!
5. 한국인
그러면, 한국군이 운용한 위안부도 일본군성 노예와 같이 강제 연행, 납치, 취업 사기를 당해 성적 폭행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되지만?
말에는 책임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6. 한국인
윤미카의 재판은 언제 하는지?
담당 판사가 식사중에 사망한 이후, 뉴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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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조개 보충:원위안부 단체 대표의 부정 재판을 담당하고 있던 판사, 식사중에 넘어진 후 사망
현직의 부장 판사가 지인들과의 회식의 도중에 돌연 의식을 잃어 넘어지고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망했다.시민 단체 「일본군성 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기억 연대(정의련)」의 윤미카(윤·미할) 사건의 첫공판을 앞에 두고다.
7. 한국인
숨겼더니 진실이 사라지는지?
동서 고금을 불문하고, 전쟁이 되면 젊은 여성이 성적 피해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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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인
전쟁에 참전한 군인도 피해자는 아닌 것인지?
나라가 얼마나 보상해 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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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국인
남자는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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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인
전쟁이 되면 남자들은 전장에 데리고 가지고 방탄으로 되어 여자들은 성 노예로 된다
전쟁이 일어나고 기뻐하는 녀석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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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인
오히려 적과 싸워 총격 되어 죽는 편이 좋다
적에게 강간되고 싶은 것인지?
죽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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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인
그러면 당신은 총검을 가지고 싸워 주세요
아무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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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인
우리 민족이라고 해도 특별 선량하거나 우수한 것은 아니다
모두 비슷비슷함의 나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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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국인
우리 민족 X
한국인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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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국인
한국남이 범한 범행인데 우리 민족은 wwwwww
범죄자들과 함께 하지 말아라
우리 민족은 아니고 한국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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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인
그러면 일본의 남자만을 비난 해야 한다
왜, 일본 전체를 비난 하는지?
17. 한국인
너의 논리 대로라면, 온 세상의 남자는 성범죄자이다
전쟁때, 위안부가 없었던 나라는 없는데
18. 한국인
M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알았습니다만, 피해자라고 하는 위안소의 여성들은 나타나지 않고, 찾아도, 그녀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왜 굳이 찾아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잊을 권리도 있겠죠
어려운 세상을 살아남아 조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접하지 말아 주세요
단지, 본인의 의지로 상황을 알려 부당함을 분명히 한다면, 돕지 않으면 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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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국인
이 문제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지켜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20. 한국인
정의련과 같은 시민 단체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한국이 했다고 하면 비난만 되어 돈이 되지 않는다
돈벌이가 되지 않고 선동이 어렵기 때문에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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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국인
왜, 많은 한국인을 학살해 강간한 북한군과 중국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한국군만 탓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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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국인
전쟁이 일어나면, 살인이나 강간등의 문제가 항상 생기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태를 가져온 김일성과 그 아들의 일은 왜 비난 하지 않는 것인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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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한국인
지금 종군위안부로부터 반미 운동을 전개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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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한국인
대한민국에 남아 기생하는 좌익들을 넘어뜨리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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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한국인
중국과 일본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가장 무서워하지만,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통일의 필요성을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 가족이 모두 중국인과 일본인에 강간되어야만 통일해야 하면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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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국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데 국가가 어떻게 책임을 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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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국인
저것은 위안부는 아니고 나라가 운영한 공창이구나
강제적으로 연행했다고 하는 증거가 있다 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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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한국인
문제가 있다의라면 모두 분명히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북괴나 중공의 만행도 함께 조사해, 한국도 문제가 있다의라면 성역없이 조사하는 것은 정의의 관점에서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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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한국인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대단하기 때문에 몸을 판 여성이 많았다
한국이 궁핍했던 시대는 미군 상대에게 몸을 파는 여성은 달러를 버는 애국자라고 말해져 풍부한 지금도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여성이 많다
게다가 k해외에 나와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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