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外「これが武士道の精神か」 米軍大佐の名誉回復のため尽力した日本軍艦長に感動の声
1945年7月26日にアリアナ諸島のテニアン島へ原子爆弾を運んだ後、
橋本以行(はしもと もちつら)少佐が指揮する、
日本海軍の「伊号第五十八潜水艦」の雷撃により沈没した、
アメリカ海軍の重巡洋艦、「インディアナポリス」。
大戦中に敵の攻撃により沈没した最後の米海軍水上艦艇で、
日本海軍にとっては、最後の大戦果とも言われています。
「インディアナポリス」の乗員1199名のうち、
生存者は艦長のマクベイ3世大佐を含むわずか316名。
マクベイ大佐は1945年11月、軍法会議にかけられ、
ジグザグ運動を怠り艦艇を危険にさらしたとして有罪となります。
その事でマクベイ大佐の海軍軍人としてのキャリアは終わり、
批判を浴びた事などもあり、1968年に自ら命を絶ちました。
戦後米軍は「インディアナポリス」が撃沈された背景を調べるため、
橋本少佐をアメリカに呼び、数日間にわたって尋問。
米軍は責任をマクベイ大佐に負わせたい意図があったのですが、
橋本少佐は「あの位置関係なら、ジグザグ運動でも発射方法は変わらず、
いずれにせよ無防備な艦艇を沈める事になっただろう」と、
アメリカ側に忖度する事なく、自身の見解通りに証言しています。
橋本少佐はその後、神職の資格を取り、京都・梅宮大社の神職に。
原爆投下や部下が戦死してしまった事への自責の念から、
御霊の鎮魂を祈る日々を送ったと伝えられています。
また、マクベイ大佐の名誉を回復するためにも熱心に動き、
米国でもそういった動きが始まった事を知った1999年11月には、
上院軍事委員会の委員長にメールを送り、
マクベイ大佐の名誉回復を訴えています。
その後、2000年10月12日にマクベイ大佐の名誉は回復。
橋本少佐が天国へと旅立った13日後の事でした。
「敵兵」の名誉回復のために尽力した橋本少佐を6日、
米紙「ワシントン・ポスト」が特集したところ、
橋本少佐の誠実さや気高さを称賛する声が、米国から殺到しています。
その一部をご紹介しますのでごらんください。
■ 驚異的な事実だね。
原爆投下に必要な資材を積んでいたインディアナポリスを沈めた直後、
彼はその原爆によって家族を失ってしまった。
それでもなおマクベイ大佐に有利になる証言をしたんだ。 +115
■ 素晴らしい……。これこそ名誉心というものですね❤️
■ エクセレントな物語になったね。最終的には、だが。
名誉回復に至るまでの政治的判断には嫌悪感を覚える。 +2
■ この物語は、素晴らしい映画になりそうだ。 +14
■ インディアナポリスを撃沈したモチツラ・ハシモトは、
米国の軍法会議で証言をした唯一の「敵」の士官。
立派な事に、マクベイ大佐にとって不利になる証言をする事を、
ハシモトはきっぱりと断ったんだ。 +16
■ むしろマクベイに有利な証言をしてるくらいだから。 +5
■ 今でも米海軍は艦艇を危険にさらした上層部ではなく、
艦長をスケープゴートにするからね。 +4
■ アメージングな物語を紹介してくれてありがとう。
戦争の終わりなき愚かさと無駄を示す証言でもあるな。 +15
■ 最悪なのは、ハシモト艦長が天国に旅立ってから、
マクベイ大佐の名誉が回復された事だよなぁ。 +8
■ それは「最悪」なんだろうか?
ハシモト氏はマクベイ大佐の名誉回復のために、
ずっと動き続けてきたわけだろ? +6
■ 彼は名誉の回復を直接見る事は出来なかった。 +5
■ それはかなり悲しい事ではある。
しかし、彼の努力は無駄にならなかった。 +5
■ 現代の政府と全く同じだ。
自分の不名誉な過失を他人のせいにしようとするんだ。 +2
■ 何でこの国は正しい事を行う時には長い時間がかかるんだ? +13
■ ウィンストン・チャーチルは米国人をこう評してる。
「アメリカ人は、常に正しい事を行う国民だと信頼出来る。
ただし、他のすべての可能性が尽きた後に限るが」
■ ハシモトは原爆で家族を失った。
その後彼は、神道の神官となって、
マクベイ大佐の名誉を回復するために、
インディアナポリスの元船員たちと共に動いた。
人は、ここまで気高くなれるものなのか。 +5
■ こういった物語は、人の本質的な善良さを示す小さな窓のようだ。
■ ハシモト艦長のように義務を理解してる人と、
権力を維持しようとする人間との明確な違いだよ。 +2
■ 悲しいけど、美しい話だなぁ。
マクベイ大佐をスケープゴートにしたアメリカ人とは違って、
ハシモト中佐は、非常に誠実な軍人だった。 +26
■ 「米海軍は責任を逃れるために(マクベイ)艦長を犠牲にした」
というタイトルでもこの記事は書けそうだ。 +3
■ 下の写真は、生存者のお孫さんたちと、
ハシモト艦長のひ孫さんが再会した時のもの。
私のお気に入りの1枚なの😍 +5
■ 米軍は日常的に個人を犠牲にしてきた。
この話だって特段珍しい事ではないさ。
■ 沈没時、僕の叔父はインディアナポリスに乗っていた。
彼はインディアナポリスの沈没に関して、
とにかく恐ろしかったという事、
マクベイ大佐は不当に責められたという事、
その2点以外は口にする事がなかったよ。 +60
■ こういう物語は歴史に埋もれさせてはいけない。 +11
■ これは米軍の「上層部」の驚くべき組織的堕落の物語。
そして同時に、米軍人、日本人艦長とその家族の、
名誉と勇気の物語でもある。 +3
■ これがブシドウの精神というものなのか。 +2
■ なんて偉大な物語なんだろうか。
しかし、トップが責任を誰かに押し付けるのは今も変わってないな。
■ インディアナポリスの話は知ってたけど、
ハシモト艦長の話は今回初めて知った。
俺は今でも、海軍が謝罪する日を待ってるよ。 +91
■ あまりにも酷いし悲しい話だけど、
ハシモト艦長のおかげで温かい物語にもなった。
海軍はこの件を恥じ入るべきだ。 +11
■ ハシモト中佐は勇敢で立派な男だなぁ……。
多くのアメリカの現代人からは、
そういった要素は失われてしまった。 +21
■ マクベイ大佐とハシモト中佐の静かなヒロイズムは、
すべての現代人が見習うべきものだと感じたよ。 +6
■ ハシモト艦長の誠実さと立派な行動に感謝いたします。
そしてあの戦争で愛する人を失った、全ての人の為に祈ります。 +8
■ 戦時下にあっても、「名誉」は失われていなかった……。
素晴らしい物語を取り上げてくれて、ありがとう。 +7
橋本少佐を称賛する声とともに、昔も今も変わらないとされる、
アメリカ海軍の体質を非難する声も非常に目立ちました。
なお1990年に橋本氏はインディアナポリスの元乗組員と交流し和解。
橋本氏が天国へと旅立った後となる2015年にも、
橋本氏の娘さんとお孫さんが元乗組員の会合に招かれ、
生存者の方々と交流されています。
해외 「이것이 무사도의 정신인가」미군 대령의 명예 회복을 위해 진력한 일본 군함장에 감동의 소리
1945년 7월 26일에 아리아나 제도의 테니안섬에 원자 폭탄을 옮긴 후,하시모토이행(젓가락도와 떡개등) 소좌가 지휘하는,
일본해군의 「이호 제5십8 잠수함」의 뇌격에 의해 침몰한,
미국 해군의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대전중에 적의 공격에 의해 침몰한 마지막 미 해군 수상 함정으로,
일본해군에 있어서는, 마지막 대전과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승무원 1199명 가운데,
생존자는 함장의 마크베이 3세대령을 포함해요 두나 316명.
마크베이 대령은 1945년 11월, 군법회의에 걸칠 수 있어
지그재그 운동을 게을리해 함정을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유죄가 됩니다.
그 일로 마크베이 대령의 해군군인으로서의 캐리어는 끝나,
비판을 받은 일등도 있어, 1968년에 스스로 생명을 끊었습니다.
전후 미군은 「인디애나폴리스」가 격침된 배경을 조사하기 위해,
하시모토 소좌를 미국에 불러, 몇일간에 걸쳐서 심문.
미군은 책임을 마크베이 대령에 지게 한 싶은 의도가 있었습니다만,
하시모토 소좌는「그 위치 관계라면, 지그재그 운동에서도 발사 방법은 변함없이,
어쨌든 무방비인 함정을 가라앉히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와
미국 측에 촌탁하는 무사히, 자신의 견해 대로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시모토 소좌는 그 형태 `연A신관의 자격을 취득해, 쿄토·우메미야 타이샤의 신관에게.
원폭 투하나 부하가 전사해 버린 일에의 자책하는 마음으로부터,
영령의 진혼을 기도하는 날들을 보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움직여,
미국에서도 그렇게 말한 움직임이 시작된 일을 안 1999년 11월에는,
상원 군사 위원회의 위원장에 메일을 보내,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 회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후, 2000년 10월 12일에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는 회복.
하시모토 소좌가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 13일 후의 일이었습니다.
「적병」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진력한 하시모토 소좌를 6일,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가 특집했는데,
하시모토 소좌의 성실함이나 고상함을 칭찬하는 소리가, 미국으로부터 쇄도하고 있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하기 때문에 봐주세요.
■ 경이적인 사실이구나.
원폭 투하에 필요한 자재를 쌓고 있던 인디애나폴리스를 가라앉힌 직후,
그는 그 원폭에 의해서 가족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도 더 마크베이 대령에 유리하게 되는 증언을 했다. +115
■ 훌륭하다
.이것이야말로 명예심이라는 것이군요?
■ 엑설런트인 이야기가 되었군요.최종적으로는, 하지만.
명예 회복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판단에는 혐오감을 기억한다. +2
■ 이 이야기는, 훌륭한 영화가 될 것 같다.
■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한 모치트라·하시모트는,
미국의 군법회의에서 증언을 한 유일한 「적」의 사관.
훌륭한 일에, 마크베이 대령에 있어서 불리하게 되는 증언을 하는 일을,
하시모트는 단호히라고 끊었다. +16
■ 오히려 마크베이에 유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 정도이니까. +5
■ 지금도 미 해군은 함정을 위험에 처한 상층부가 아니고,
함장을 희생양으로 하니까요. +4
■ 아메이징인 이야기를 소개해 주어 고마워요.
전쟁의 끝나 울어 어리석음과 헛됨을 나타내는 증언이기도 하지 말아라. +15
■ 최악의의는, 하시모트 함장이 천국에 여행을 떠나고 나서,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가 회복된 일이야.
■ 그것은 「최악」이겠지인가?
하시모트씨는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계속 쭉 움직여 온 것이겠지? +6
■ 그는 명예의 회복을 직접 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5
■ 그것은 꽤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소용 없게 되지 않았다. +5
■ 현대의 정부와 완전히 같다.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과실을 타인의 탓으로 하려고 한다. +2
■ 무엇으로 이 나라는 올바른 일을 실시할 때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 윈스턴·처칠은 미국인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인은, 항상 올바른 일을 실시하는 국민이라면 신뢰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모든 가능성이 다한 후에 한정하지만」
■ 하시모트는 원폭으로 가족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신도의 신관이 되고,
마크베이 대령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인디애나폴리스의 모선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사람은, 여기까지 고상하게 될 수 있는 것인가. +5
■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의 본질적인 선량함을 나타내는 작은 창같다.
■ 하시모트 함장과 같이 의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인간과의 명확한 차이야. +2
■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마크베이 대령을 희생양으로 한 미국인과는 다르고,
하시모트 중령은, 매우 성실한 군인이었다.
■ 「미 해군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마크베이) 함장을 희생했다」
그렇다고 하는 타이틀에서도 이 기사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3
■ 아래의 사진은, 생존자의 손자들과
하시모트 함장의 히 손자씨가 재회했을 때의 것.
나의 마음에 드는 1매야? +5
■ 미군은 일상적으로 개인을 희생해 왔다.
이 이야기도 특별 드문 일은 아니어.
■ 침몰시, 나의 숙부는 인디애나폴리스를 타고 있었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침몰에 관해서,
어쨌든 무서웠다고 하는 일,
마크베이 대령은 부당하게 꾸짖을 수 있었다고 하는 일,
그 2점 이외는 입에 대는 것이 없었어요. +60
■ 이런 이야기는 역사에 파묻히게 해 안 된다. +11
■ 이것은 미군의 「상층부」의 놀랄 만한 조직적 타락의 이야기.
그리고 동시에, 미군인, 일본인 함장과 그 가족의,
명예와 용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3
■ 이것이 브시드우의 정신이라는 것인가.
■ 정말 위대한 이야기겠지인가.
그러나, 톱이 책임을 누군가에게 꽉 누르는 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어.
■ 인디애나폴리스의 이야기는 알았지만,
하시모트 함장의 이야기는 이번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지금도, 해군이 사죄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 +91
■ 너무 심하고 슬픈 이야기이지만,
하시모트 함장 덕분에 따뜻한 이야기로도 되었다.
해군은 이 건을 송구스러워야 한다. +11
■ 하시모트 중령은 용감하고 훌륭한 남자구나
.
많은 미국의 현대인에게서는,
그렇게 말한 요소는 잃게 되어 버렸다. +21
■ 마크베이 대령과 하시모트 중령의 조용한 히로이즘은,
모든 현대인이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느꼈어. +6
■ 하시모트 함장의 성실함과 훌륭한 행동에 감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을 위해 빕니다.
■ 전시하에 있어도, 「명예」는 없어지지 않았었다
.
훌륭한 이야기를 채택해 주고, 고마워요. +7
하시모토 소좌를 칭찬하는 소리와 함께, 옛날도 지금도 변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미국 해군의 체질을 비난 하는 소리도 매우 눈에 띄었습니다.
아직 1990년에 하시모토씨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전 승무원과 교류해 화해.
하시모토씨가 천국으로 여행을 떠난 후가 되는 2015년에도,
하시모토씨의 따님과 손자가 전 승무원의 회합에 초대되어
생존자의 분들과 교류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