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じく『出雲国風土記』においても、「紫菜(むらさきのり)は、楯縫(たてぬひ)の郡(こほり)、尤(もと)も優(まさ)れり」という記述がある。楯縫郡は現在の島根県出雲市の内で、平成17年(2005年)合併前の平田市にほぼ相当し、そこには海苔を特産品とする十六島海岸がある。また大宝2年(702年)の2月6日に執行された大宝律令においては、海苔が租税の対象として記載されており、ちなみにこれにより2月6日が「海苔の日」とされている。和銅3年(710年)に遷都した平城京には、海草類を売る「にぎめだな」(和布店)、海苔や昆布を佃煮のように加工したものを売る「もはだな」(藻葉店)という市場も存在した。
こうして海苔は日本の食文化に定着し、10世紀頃に源順の撰した『和名類聚抄』や『うつほ物語』には、甘海苔や紫海苔といった具体的な名称で海苔が登場している。
そもそもキンパは日本の海苔巻きの完全なPAKURI
いつもの歴史捏造常習者韓国人のスレ
1164年に纎津江河口でお婆さんが 貝類を採取していた中 金(海苔)がたくさん着生した棒切れが流されて来ることを見つけてそこに付いている ついで(海苔)を取り離して試食したが非常に味が良くてその後 竹木を手元に建てて 金(海苔)を着生させたことで始まった.
出典:慶尚道地理志
海衣とも言うのに 海衣は石の上の赤色苔を取って紙のように作ったのだ.
出典:星湖〓説(17世紀)
(海衣という単語は 最古で 万機要覧(14世紀)から登場する.)
韓国
金(海苔) 養殖 手始め, 1164年
紙金(海苔)の手始め 14世紀以前
日本
金(海苔) 養殖 手始め, 1688年
紙金(海苔)の手始め 1904年以前 or 江戸時代中
日本人はどうして他人の伝統食べ物を自分ののだと嘘つきますか?
같이 「이즈모쿠니 풍토기」에 대해도, 「자채(마을 앞김)는, 순봉(세우지 않는 히)의 군(), 우(아래)도 우(야)」(이)라고 하는 기술이 있다.순봉군은 현재의 시마네현이즈모시중에서, 헤세이17년(2005년) 합병전의히라타시에 거의 상당해, 거기에는 김을 특산품으로 하는웃푸루이 해안이 있다.또다이호 2년(702년)의2월 6일에 집행된다이호 율령에 대해서는, 김이조세의 대상으로 해서 기재되어 있어 덧붙여서 이것에 의해2월 6일이 「김의 날」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나라시대의 연호 3년(710년)에 천도 한헤이조쿄에는, 해초류를 파는 「째다」(화포점), 김이나다시마를 해산물 조림과 같이 가공한 것을 파는 「도 피부인」(조엽점)이라고 하는 시장도 존재했다.
이렇게 해 김은 일본의 식생활 문화에 정착해,10 세기무렵에미나모토노시타고가 저술한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 유취초」나 「이야기」에는, 감태나 보라색 김이라고 한 구체적인 명칭으로 김이 등장하고 있다.
원래 킨파는 일본의 김말이 스시나무의 완전한 PAKURI
평소의 역사 날조 상습자 한국인의 스레
1164년에 섬진강 하구에서 할머니가 조개류를 채취하고 있던 중 금(김)이 많이 착생 한 나무 토막이 흘러가 오는 것을 찾아내고 거기를 뒤따르고 있을 기회(김)를 떼어 시식했지만 매우 맛이 좋아서 그 후죽목을 수중에 세워 돈(김)을 착생 시킨 것으로 시작되었다.
출전:경상도 지리뜻
해 의라고도 말하는데 해 의는 돌 위의 적색이끼를 취하고 종이와 같이 만들었던 것이다.
출전:성호=설(17 세기)
(해 의라고 하는 단어는 최고에 만기 요람(14 세기)으로부터 등장한다.)
한국
금(김) 양식 시작, 1164년
지 금(김)의 시작 14 세기 이전
일본
금(김) 양식 시작, 1688년
지 금(김)의 시작 1904년 이전 or 에도시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