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は我が国の長年の友邦だった. 過去植民地の歴史があることはあっても, 現代史で日本と私たちは切るレは切ることができない関係だった. 日本は嫌やがる方はかえって抜いた. ‘反日感情’, ‘チォックバリ’ などの言葉が存在して来たからだ. ところでいつからか日本が韓国が嫌やがり始めた. ‘嫌韓’が一番代表的だ. 過去には全然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現象が今日本社会を支配している. 特に韓国を嫌やがる人の年齢帯が多様化されているという点が問題だ. 年齢帯別では 40代が一番多くて, 女性も 30%イサンイルのに予測されている. もうこれ以上少数の若者, あるいは植民地時代を経験した老年層が嫌韓の主体ではないという点だ. 嫌韓の本質的な理由を返り見て日本人たちの心理状態を調べる.
日本はひととき世界 2位の経済対局だった. SONY, PANASONIC, TOYOTA などは全世界人がほしがるブランドだった. それでひととき日本人たちは ‘日本人なので誇らかだ’と言う言葉を借しまず言って通った. しかし 1990年代末日本経済のバブルが裂けながら ‘忘れてしまった 20年’を経験した. これは日本国民としてはあまりにも狼狽する事だった.
そのようにうまく行く日本に対する自負心があったが, 実はそれはバブルに過ぎなかったという見窄らしい自分たちの現実を直視するしかなかった. すると過去の高かった自負心は一瞬に劣等感に変わってしまった. この劣等感という心理が社会全般で広がって行きながらこれは日本人たちの文化になってしまった. 立てることが消えた日本国民の心には過去に対する郷愁が育ち始めたし, 抑圧された心が怒りに表出され始めた.
日本人たちに一番頭に来ることはひととき植民地支配下の住む事ができない国韓国がこれから自分たちを追い抜いているという事実だ. 日本の既成世代は寒流文化に沸き返えるお子さん世代の姿を見ながら普通不便ではない. それだけではなかった. SAMSUNG, LG などのブランドは全世界を荒しながら自分たちのブランドをつまんでのんでしまった.
そこに韓国の驚くべきなデモクラシー意識, 市民たちのデモなどに対してで ‘われらは何なの?’という考えをするようになった. 政治にあまり関心がないといえども, 大統領まで変えてしまう韓国の姿で日本の劣等感はもっと深くなって強まったと見られる. そこに中国まで世界的な位相を高めて見るともう過去の日本の姿を捜すことは大変になった.
だけでなく日本はその自ら国際的な孤立を選択したという剃りある. 過去日本は ‘私たちどうし’という情緒が強かった. 質のよい海産物, 畜産物などは海外で輸出しないでむしろ自国国民が食べるのに忙しかった. ここに ‘ギガ強い中国や韓国の振るに挟まらない’という考えまでしながら自らの孤立を自ら招いたのだ. それで甚だしくは日本人たちは ‘グローバル化しないで’という認識まで生じてしまった.
ところでこのような安楽な生活の追求が結局には ‘存在感ない日本’を作ってしまった. もう国際社会で日本は大国としての位置よりは歴史紛争, 福島汚染数を放出する ‘問題児’になってしまった. 過去のように日本ブランドは好む人もあまりいなくて日本人をあまり好まない. このような押えつけられた感情は自分の怒りを外部でこぼし出す嫌韓の重要な心理的な土台になっている.
押えつけられたことはいつでも裂けるものと決まっている. 人の心理度同じだが, 一国民の集団的な情緒も同じだ. うまく行きたいのに, 格好よい国家になりたいのにそれにならない状況だ. この時できることがまさに ‘誰かを憎む感情’を作り出してそれを向けて怒りを爆発させることで自分の慰労をするのだ. そしてすぐこれが今日嫌韓の文化的で心理的な背景になると言える.
일본은 우리나라의 오랜 우방이었다. 과거 식민지의 역사가 있기는 했어도, 현대사에서 일본과 우리는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였다. 일본은 싫어하는 쪽은 차라리 우리였다. ‘반일감정’, ‘’ 등의 말들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이 한국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혐한’이 가장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 지금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의 연령대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가장 많고, 여성도 30%이상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젊은이, 혹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노년층이 혐한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혐한의 본질적인 이유를 되돌아보고 일본인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본다.
일본은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SONY, PANASONIC, TOYOTA 등은 전 세계인이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였다. 그래서 한때 일본인들은 ‘일본인이라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고 다녔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일본 경제의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이는 일본 국민들로서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토록 잘 나가는 일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버블에 불과했다는 초라한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과거의 높았던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열등감으로 변해버렸다. 이 열등감이라는 심리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이는 일본인들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내세울 것이 없어진 일본 국민들의 마음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자라기 시작했고, 억압된 마음이 분노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화가나는 것은 한때 식민지 지배 하의 못사는 나라 한국이 이제 자신들을 제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기성세대는 한류 문화에 열광하는 자녀 세대의 모습을 보면서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었다. SAMSUNG, LG 등의 브랜드는 전 세계를 휩쓸면서 자신들의 브랜드를 집어 삼켜버렸다.
거기다가 한국의 놀라운 민주주의 의식, 시민들의 시위 등에 대해서 ‘우린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지만, 대통령까지 바꿔버리는 한국의 모습에서 일본의 열등감은 더욱 깊어지고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중국까지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다보니 이제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그 스스로 국제적인 고립을 선택했다는 면도 있다. 과거 일본은 ‘우리끼리’라는 정서가 강했다. 질 좋은 해산물, 축산물 등은 해외로 수출하지 않고 오히려 자국 국민들이 먹기에 바빴다. 여기에다 ‘기가 센 중국이나 한국의 틈에 끼이지 말자’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일본인들은 ‘글로벌화 하지 말자’라는 인식까지 생겨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안락한 생활의 추구가 결국에는 ‘존재감 없는 일본’을 만들어버렸다. 이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은 대국으로서의 위치보다는 역사 분쟁,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출하는 ‘문제아’가 되어버렸다. 과거처럼 일본 브랜드는 선호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일본인을 그리 선호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억눌린 감정은 자신의 분노를 외부로 쏟아내는 혐한의 중요한 심리적인 바탕이 되고 있다.
억눌린 것은 언제든 터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심리도 마찬가지지만, 한 국민들의 집단적인 정서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고 싶은데, 멋있는 국가가 되고 싶은데 그것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서 자기 위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혐한의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배경이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