テコンドーは日帝に教わった空手を
李承晩政府に逮捕されないために名前を変えただけ、
大嫌いな日帝残滓なのに
名前を変えただけで大丈夫?
新東亜の記事より抜粋
テコンドーは空手の偽物。
韓国イ・ジョンウ国技院副院長は、「テコンドーの起源を三国時代以前とすることが一般的だが、歴史的想像力を動員してもそれには無理がある。中国から日本へ入り、日本が改良して空手道を確立して、それが韓国へ入ってきた。テコンドーは空手の変形である。私も創始期にはテコンドーの起源をテッキョンと嘘を書いて本を執筆したことがあるが、海外に普及させる過程で昔からあった韓国の伝統武術だとすれば名分が立つからである。」と告白している。
空手道の名前を変えただけの「テコンドー」
http://www.geocities.jp/bxninjin2004/themeoftoday_e/themeoftoday_ec.htmソウル大学卒、キム・ワンソプ氏の告発著書
金完燮氏は多くの韓国人と同様、もともと強い反日感情の持ち主でしたが、作家として成功したことで、海外へたびたび 旅行へ出かけ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こで実際の日本人と交流を持つことで受けた教育に強い疑問を持つようになったと告白しています。
テコンドーは空手道
韓国の国技、テコンドー。韓国人はこれを長い歴史をもつ、民族固有の伝統武術だと考えている。 実はテコンドーは、空手道の名前を変えただけのものである。
終戦後、空手道や唐手道と呼ばれていた武術に、テコンドーという名前をつけてしまったのである。名前はどうであれ、テコンドーも元来、空手道を継承したものであり、正統空手道(そういうものがあるならば)とテコンドーの差はたぶん、正統空手道と極真空手道の差よりも小さいと思われる。テコンドーが空手道に似た武術であることは、武芸をかじった人なら簡単に納得がいくため、最近、韓国でもこの間題で論争がよく起こる。
民族自尊と反日に関する限り、妥協を知らない韓国人だが、良心が残っている人も時折いる。そのうえ、テコンドーに名前を奪われた真の伝統武術「テッキョン」が「国技」の地位を狙っているのだ。 テコンドーの正体をめぐるこのような論争は、主にインターネットを通じて活発に展開されている。
テコンドーの歴史捏造が露見するまで
http://www.geocities.jp/bxninjin2004/data_room/taekwondo/readphp.htm朝鮮総督府時代には韓国でも空手道が活発に普及して多くの道場ができ、実力のある弟子を輩出するようになった。しかし、1945年になって日本が敗戦し、すべての日本人が本国に追い帰されてしまうと、空手道場は自然に韓国人の弟子たちに継承された。この当時、韓国の空手道界には6つの大きな道場があった。ユンピョンインの演武館(ヨンムグァン)、ノビョンジクの松武館(ソンムグァン)、黄埼(ファンギ)の武徳館(ムドックァン)、李元国(イウォングク)の青涛館(ジョンドグァン)、李南石(イナムソク)の章武館(チャンムグァン)、李鍾佑(イジュンウ)の智道館(チドグァン)である。この六大道場の館長たちは、1950年の朝鮮戦争の渦中に、臨時首都である釜山で大韓空手道協会を発足させることになる。この大韓空手道協会がさまざまな紆余曲折を経た末、1965年になって大韓テコンド協会に変身する。 なぜ空手道がテコンドーに変わったのだろうか。
テコンドー命名の経緯
空手道または唐手道と呼ばれていたこの武芸にテコンドーという名前をつけた人は、当時、軍人であり空手道の達人であった将軍・チェホンヒである。
韓国の初代大統領だった李承晩は、長い間、独立運動をしていた非常に反日的な人であった。そのため、空手道という名前を非常に嫌った。
当時、唐手道・吾道館(オドグァン)という道場を運営していたチェホンヒは、一九五四年に自分の部下である将兵たちに空手道を訓練させ、李承晩に見せた。これを見た李承晩は「おお、これがテッキョンか」と満足そうだったという。李承晩が空手道をテッキョンであると誤解すると、チェホンヒはこれにヒントを得て、空手道にテコンドーという名前をつけてしまった。彼は李承晩の後援で一九五九年に大韓テコンドー協会を創設し、その会長に就任した。
李承晩を始めとする韓国の政治家たちの親日粛正を避けるために、日本の武術・空手道に韓国の伝統武術・テッキョンの名前をつけた、国籍不明の武術が誕生したのである。
—(中略)—
テコンドー協会の迷走
このあきれた名称に反発した唐手道武徳館の黄埼(ファンギ)は海外に進出し、世界唐手道協会を結成した。 韓国から追い出されたチェホンヒは1970年、自分のITFを率いてカナダに亡命し、国際テコンドー連盟の総裁としてテコンドーを普及することになる。
このように、1920年代に日本を通じて伝播された韓国唐手道は、現在、世界テコンドー協会WTF、国際テコンドー連盟ITF、世界唐手道協会などに分裂して、それぞれ違う名前で普及発展してきたのである。これらがすべて唐手道であることは疑う余地はない。
—(中略、テコンドーを空手へ統合する必要性を説く)—
テコンドーが空手に統合される必要性は、テコンドー内部でも発生している。現在、テコンドーは、その競技を観覧する人は誰でも感じるだろうが、手と足をバランスよく使う武芸というよりは、まるで足蹴り試合のように変質してしまった。達人の競技になればなるほど、足を使う頻度が90パーセントを超える。そのため武道家たちは、実戦では手と足をバランスよく使う極真空手道と戦ったら相手にならないだろうという。 つまり、今日のテコンドーはキックボクシングと似たものに変質し、どんどん人気が落ちてきているのである。テコンドーが再び空手に名前を変え、 その元来の正統性を回復できれば、足蹴り試合という汚名を返上できるかもしれない。
태권도는 일제에 배운 가라테를
이승만 정부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때문에) 이름을 바꾸었을 뿐,
정말 싫은 일제 잔재인데
이름을 바꾼 것만으로 괜찮아?
신동아의 기사보다 발췌
태권도는 가라테의 가짜.
한국이·젼우 국기원부원장은,「태권도의 기원을 삼국시대 이전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도 거기에는 무리가 있다.중국에서 일본에 들어가, 일본이 개량해 카라테를 확립하고, 그것이 한국에 들어 왔다.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이다.나도 창시기에는 태권도의 기원을 텍콜과 거짓말을 써 책을 집필했던 것이 있다가, 해외에 보급시키는 과정에서 옛부터 있던 한국의 전통 무술이라고 하면 묘분이 서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카라테의 이름을 바꾸었을 뿐의 「태권도」
http://www.geocities.jp/bxninjin2004/themeoftoday_e/themeoftoday_ec.htm서울 대졸, 김·원소프씨의 고발 저서
금완섭씨는 많은 한국인과 같이, 원래 강한 반일 감정의 소유자였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것으로, 해외에 가끔 여행에 나가게 되었습니다.거기서 실제의 일본인과 교류를 가지는 것으로 받은 교육에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카라테
한국의 국기, 태권도.한국인은 이것을 긴 역사를 가지는, 민족 고유의 전통 무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실은 태권도는, 카라테의 이름을 바꾸었을 뿐의 것이다.
종전 후, 카라테나 당수도로 불리고 있던 무술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던 것이다.이름은 어떻게든, 태권도도 원래, 카라테를 계승한 것이어, 정통 카라테(그러한 것이 있다라면)와 태권도의 차이는 아마, 정통 카라테와 쿄쿠신 카라테의 차이보다 작다고 생각된다.태권도가 카라테를 닮은 무술인 것은, 무예를 갉아 먹은 사람이라면 간단하게 납득이 가기 위해, 최근, 한국에서도 이전 제목으로 논쟁이 잘 일어난다.
민족 자존과 반일에 관한한, 타협을 모르는 한국인이지만,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도 때때로 있다.게다가, 태권도에 이름을 빼앗긴 진정한 전통 무술 「텍콜」이 「국기」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 태권도의 정체를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태권도의 역사 날조가 비밀이나 나쁜일이 드러남 할 때까지
http://www.geocities.jp/bxninjin2004/data_room/taekwondo/readphp.htm조선 총독부 시대에는 한국에서도 카라테가 활발하게 보급해 많은 도장이 생겨 실력이 있는 제자를 배출하게 되었다.그러나, 1945년이 되어 일본이 패전해, 모든 일본인이 본국에 쫓아 돌려 보내져 버리면, 카라테장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이 당시 , 한국의 카라테계에는 6개의 큰 도장이 있었다.윤폴인의 연무관(용그), 노볼지크의 마츠타케관(송그), 황기(판기)의 무덕타테(무족크), 이 모토쿠니(이워그크)의 청도관(젼드그), 이남석(이남소크)의 장무관(체무그), 리종우(이즐우)의 지도관(치드그)이다.이 육대 도장의 관장들은, 1950년의 한국 전쟁의 와중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대한 카라테 협회를 발족시키게 된다.이 대한 카라테 협회가 다양한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965년이 되어 대한 태권도 협회로 변신한다. 왜 카라테가 태권도로 바뀐 것일까.
태권도 명명의 경위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오랫동안, 독립 운동을 하고 있던 매우 반일적인 사람이었다.그 때문에, 카라테라는 이름을 매우 싫어 했다.
당시 , 당수도·오도관(오드그)이라고 하는 도장을 운영하고 있던 체혼히는, 1954년에 자신의 부하인 장병들에게 카라테를 훈련시켜, 이승만에 보였다.이것을 본 이승만은 「, 이것이 텍콜인가」라고 만족한 것 같았다라고 한다.이승만이 카라테를 텍콜이라고 오해하면, 체혼히는 이것에 힌트를 얻고, 카라테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다.그는 이승만의 후원으로 1959년에 대한 태권도 협회를 창설해, 그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승만을 시작으로 하는 한국의 정치가들의 친일 숙정을 피하기 위해서, 일본의 무술·카라테에 한국의 전통 무술·텍콜의 이름을 붙인, 국적 불명의 무술이 탄생했던 것이다.
--(중략)--
태권도 협회의 미주
이와 같이, 1920년대에 일본을 통해서 전파 된 한국 당수도는, 현재, 세계 태권도 협회 WTF, 국제 태권도 연맹 ITF, 세계 당수도 협회 등에 분열하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보급 발전했기 때문에 있다.이것들이 모두 당수도인 것은 의심하는 여지는 없다.
--(중략, 태권도를 가라테에 통합하는 필요성을 말한다)--
태권도가 가라테에 통합되는 필요성은, 태권도 내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현재, 태권도는, 그 경기를 봐 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느끼겠지만, 손과 다리를 균형있게 사용하는 무예라고 하는 것보다는, 마치 발길질 시합과 같이 변질해 버렸다.달인의 경기가 되면 그렇구나, 다리를 사용하는 빈도가 90퍼센트를 넘는다.그 때문에 무도가들은, 실전에서는 손과 다리를 균형있게 사용하는 쿄쿠신 카라테와 싸우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즉, 오늘의 태권도는 킥복싱과 닮은 것에 변질해, 자꾸자꾸 인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태권도가 다시 가라테에 이름을 바꾸어 그 원래의 정통성을 회복할 수 있으면, 발길질 시합이라고 하는 오명을 반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