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鎌倉幕府は1239年になって人身売買の禁止を命じるとともに、例外として飢饉の際の人身売買とそれに伴う奴婢の発生は黙認する態度を示した(『吾妻鏡』延応元年4月13日・5月1日条)。
朝鮮:
1894年の甲午改革で法的には撤廃されたが、1905年の段階でも多数の女が奴婢の身分に囚われていた[39]。彼女らはほとんどの場合、罪を犯した親戚の男の身代わりとして自主的に奴婢となったか、あるいはその身分を相続した者たちであった。
朝鮮には「白丁」と呼ばれるもうひとつの賤民階級があり、奴婢とは区別されていた。彼らは倫理的保護の対象外として社会から厳しく差別・侮蔑される対象であり、化外の民であった。
朝鮮で実質的に制度が廃止されたのは日韓併合後であり、1910年に朝鮮総督府が奴隷の身分を明記していた旧戸籍を廃止し、全ての国民に姓を定めた新戸籍制度を導入した。
일본:
가마쿠라막부는1239년이 되어 인신매매의 금지를 명하는 것과 동시에, 예외로서 기근때의 인신매매와 거기에 따르는 노비의 발생은 묵인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아즈마카가미」연응원년4월 13일·5월 1일조).
조선:
1894년의갑오개혁으로 법적으로는 철폐되었지만,1905년의 단계에서도 다수의 여자가 노비의 신분에 붙잡히고 있던[39].그녀들은 대부분의 경우, 죄를 범한 친척의 남자의 대역으로서 자주적으로 노비가 되었는지, 있다 있어는 그 신분을 상속한 사람들이었다.
조선에는 「백정」이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천민 계급이 있어, 노비란 구별되고 있었다.그들은 윤리적 보호의 대상외로서 사회로부터 어렵게 차별·모멸되는 대상이며, 화외의 백성이었다.
조선에서 실질적으로 제도가 폐지된 것은한일합방 다음에 있어,1910년에조선 총독부가 노예의 신분을 명기해 있던 구호적을 폐지해, 모든 국민에게 성을 정한 신도적제도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