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 NHK ドキュメンタリー <つけた音 - 25年の真実 “避難誌の性暴行”> の中一場面. “女をつかまえて暗い所でひいて入って行って服を脱がせた”という字幕が書いている.
NHK 画面キャプチャ
衝撃的なドキュメンタリー
私たちを衝撃に抜けるようにしたドキュメンタリーは <つけた音 - 25年の真実 “避難誌の性暴行”>だ. ランニングタイムは 48分. 主要内容は大規模自然災害によって家を失って共同避難所で待避した人々の中で女性たちがあ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性暴行に対する話だ. NPO(ノンプロフィット組職)と研究者たちが 2019年一年の間被害者たちをインタビューした内容が加減なしに紹介された. 次は放送で扱われた被害女性たちのインタビューだ.
”避難所のリーダーがある日 “本当に気の毒だった. タオルと食べ物を与えるから夜にどこそこに来てください”としてありがたい心に行ったら性行為を強要しました.”(災害によってご主人が犠牲された女性)
”隣り仮説住宅に暮していた男がますますおかしくなったら女の子を強制で取って仮説住宅の間空所に連れて行って服を脱がせました. 周り仮説住宅隣りたちが “若いやつだから仕方ないでしょう”と言いながら知らん顔をして結局手伝ってくれないですね.” (20代女性)
”復讐の男たちに暴行されました. 告発したかったが後で復讐あって私が殺害されたら海に投げられてスナミのため死んだように構え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恐怖感のため… 誰にも言えなかったです.” (避難所で性暴行にあった女性)
▲ 被害女性の証言. “仕事を大きくして殺害されてもそのまま海に投げておいてスナミのため死んだと言うかも知れないという恐怖があった.”
NHK 画面キャプチャ
放送は何の映像もなしにこのような女性たちの声に私をのそのまま伝えた. 東日本大震災以後作られた 24時間緊急構造電話 “のようにあってくれるホットライン DV/性暴行相談”にこれに似ている相談内容が一日中かかって来たというカウンセラーのインタビューも盛られた.
”電話相談窓口が生ずるやいなや 24時間ずっと電話のベルが鳴りました. 反以上が性暴行関連だったが件数で計算すれば 5万件以上になるはずです.”
そのカウンセラーは当時の相談メモを取材陣に見せてくれたりした. その中にはレープ(強姦), 極限の状態, つらい, 恐ろしい, 悲しい, 誰にでも言いたくて等々の苦しい単語たちが羅列されていた.
がドキュメンタリーは元々東日本大震災のみを対象にしたのではない. 副題の “25年”が現わすように 95年 1月に発生した韓信・Awaji大震災(以下, 神戸大震災) 以後発生した多様な自然災害で生の基盤を失って避難所で待避して他の人々と共同で生活するしかない境遇に置かれた, それで性暴行など被害を被っても多くの制約たちのためどうしても大きい声を出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女性たちを集中的に扱った.
或者はどうして被害を被ったがすぐ言わなかったかと疑問を抱くことができる. しかし災難所の状況は彼らの口を阻んだ. 何より共同避難所を去れば行く所がない. 家がもうトネリョがか崩れたからだ. 実際性暴行被害を被った 30代女性の証言だ.
”家が消えたからしばらくそこで住ま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加害者を告発する場合捜査機関が避難所を尋ねて来ないですか? 中それでも人々心が乱れて慌しいのにそこ警察も来てそれでは避難所雰囲気がいっそうもっと悪くならないですか. 零れ落ちるヌンチォングを手におえることができないと思いました.”
▲ 日本東北地方に進度 9の強震の発生してから三日が経った 2011年 3月 14日午後日本岩手県リクゼンタカタ時の一学校に用意された避難所が避難民たちにいっぱいになる. 2011.3.14
もう一つは 2次加害だ. NHK 該当記事と係わる文書たちを捜してみれば当事者(被害者) 過ちも大きい, 性被害が多かったという報道は誤報, てんから取り上げないことだと言葉で被害者を助けてあげることなどの内容を今も易しく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神戸大震災が起きた 25年前にはもっとひどかったと言う. インターネットの場合 2次加害があると言ってもクロスチェックを通じて誰が嘘をつくのか見分けることができるが 95年当時はファクトチェックさえ不可能だった. むしろ週刊誌など黄色言論が刺激的な記事を先を争って出したと言う.
このような女性差別及び性暴行傍助雰囲気は神戸大震災から 26年, 東日本大震災から 10年が去る今も相変らずだ. 去る何年間日本でも全世界的なミトウンドングのブームに負って女性たちの告発がつながった.
東日本大震災 10年... 隠された事実たち
去る 3月 11日は東日本大震災 10週期だった. 日本マスコミは保守, 進歩選り分けないで特集放送を編成して犠牲者たちを追慕した. スが総理も当日午後 2時に開かれた追悼式で談話を発表したし, 談話文の初部分は犠牲者たちに対する追慕の開くことで満たされた. 彼は福島など災難地域の復興はすらすらと順調に進行されていると言った.
一方 <朝日新聞>は “人(人)”という心もち短いボックス記事を通じて岩手現で災害地域の子供達の面倒を見る韓国人スクールソーシャルワーカーを紹介して人目を引いたりした. 政治的に張り切ている緊張感にいっぱいになった韓日関係だが人間の交流と痛みを分かち合うことには国境が別にないことを強調する内容を記した.
しかし避難所の女性たちが直面している性暴行危険などに対して扱ったニュースは捜してみにくい. もうこのシリーズを通じて鼻でも事態に迎え去年一年の間自殺した人々の中で女性の数及びその割合が増えたと言った事がある. 参照で女性自殺者獣医増加理由に対してジャーナリスト時ブイデスはさんは記者との電話通話で次のように言った.
“女性たちの職場はサービス職が多い. 主に旅行会社, 飲食店などなのにこんな会社らが鼻でもだから大量解雇をして当然女性から首をする. 女性は失業者になって家にある時間が増える. 当然家族たち, 特にご主人とパパ顔をずっと見なければならないし家庭内暴力も増加する. 実は女性たちがバイトやパートタイマーに働くのは自分の経済力のためなこともあるが家から脱出したい欲求も存在する. こういうこともできなくてあんななのもできないから鬱病も殖えて行って結局命を失う人も出る. 日本は相変らず男性主に帰る社会だから.”
毎年 3月 11日はただ追慕のみのための日だった. しかし 10年と言う(のは)歳月の間まともに扱われない, 隠されて来たファクトたちも存在する. 東日本大震災もいつかは日本の歴史の中に記録されるでしょう. 何十年の後歴史教科書に “東日本大震災は不屈の意志と共同体の協力と譲歩で乗り越え出した災難”という肯定的キーワードにだけ包装されたら, それこそ歴史歪曲ではないかと思う.
https://news.v.daum.net/v/202103160712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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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ッポンで女と言う(のは) (幼い頃から) こんなに消費しているから. 歴史性が濃い悠久な伝統です.
▲ 일본 NHK 다큐멘터리 <묻힌 소리 - 25년의 진실 "피난지의 성폭력"> 중 한 장면. "여자를 붙잡아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가 옷을 벗겼다"라는 자막이 쓰여있다.
NHK 화면캡처
충격적인 다큐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만든 다큐멘터리는 <묻힌 소리 - 25년의 진실 "피난지의 성폭력">이다. 러닝타임은 48분. 주요 내용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해 집을 잃고 공동 피난소로 대피한 사람들 중 여성들이 당해야 했던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NPO(비영리조직)와 연구자들이 2019년 한 해 동안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가감 없이 소개됐다. 다음은 방송에서 다뤄진 피해여성들의 인터뷰다.
"피난소의 리더가 어느 날 "참 안됐다. 타월과 먹을 것을 줄 테니까 밤에 어디어디로 오세요"라고 해서 고마운 마음에 갔더니 성행위를 강요했습니다."(재해로 인해 남편이 희생된 여성)
"이웃 가설주택에 살고 있던 남자가 점점 이상해지더니 여자아이를 강제로 잡아 가설주택 사이 공터로 끌고 가 옷을 벗겼습니다. 주위 가설주택 이웃들이 "젊은 녀석이라 어쩔 수 없지"라며 본체만체 하며 결국 도와주지 않더군요." (20대 여성)
"복수의 남자들에게 폭행당했습니다. 고발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복수 당해서 제가 살해당한다면 바다에 던져져서 쓰나미 때문에 죽은 것처럼 꾸밀 수 있겠다라는 공포감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피난소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
▲ 피해 여성의 증언. "일을 크게 만들어 살해당하더라도 그냥 바다에 던져놓고 쓰나미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NHK 화면캡처
방송은 별다른 영상도 없이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날 것 그대로 전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만들어진 24시간 긴급구조전화 "같이 있어줄게 핫라인 DV/성폭력 상담"에 이와 비슷한 상담내용이 하루 종일 걸려 왔었다는 상담원의 인터뷰도 담겼다.
"전화 상담 창구가 생기자마자 24시간 계속 전화벨이 울렸어요. 반 이상이 성폭력 관련이었는데 건수로 따지면 5만 건 이상 될 겁니다."
그 상담원은 당시의 상담 메모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 안에는 레이프(强姦), 극한의 상태, 괴롭다, 무섭다, 슬프다,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어 등등의 고통스러운 단어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원래 동일본 대지진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부제의 "25년"이 나타내듯 95년 1월에 발생했던 한신·아와지 대지진(이하, 고베 대지진)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소로 대피해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그래서 성폭력 등 피해를 입어도 여러 제약들 때문에 차마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혹자는 왜 피해를 입었는데 바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재난소의 상황은 그들의 입을 막았다. 무엇보다 공동피난소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 집이 이미 떠내려가거나 무너졌기 때문이다. 실제 성폭행 피해를 입은 30대 여성의 증언이다.
"집이 없어졌으니 당분간 거기에서 살아야 하는데 가해자를 고발할 경우 수사기관이 피난소를 찾아오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사람들 마음이 흉흉한데 거기 경찰도 오고 그러면 피난소 분위기가 한층 더 악화되지 않겠습니까. 쏟아지는 눈총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일본 동북지방에 진도 9의 강진이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2011년 3월 14일 오후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 시의 한 학교에 마련된 피난소가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다. 2011.3.14
또 하나는 2차 가해이다. NHK 해당기사와 관련된 문서들을 찾아보면 당사자(피해자) 잘못도 크다, 성 피해가 많았다는 보도는 오보, 아예 거론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 등의 내용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던 25년 전엔 더 심했다고 한다. 인터넷의 경우 2차 가해가 있다 하더라도 크로스체크를 통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있지만 95년 당시는 팩트체크조차 불가능했다. 오히려 주간지 등 황색언론이 자극적인 기사를 앞 다투어 내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차별 및 성폭력 방조 분위기는 고베대지진으로부터 26년,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 몇년간 일본에서도 전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붐에 힘입어 여성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동일본 대지진 10년... 감춰진 사실들
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 대지진 10주기였다. 일본 매스컴은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특집방송을 편성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스가 총리도 당일 오후 2시에 열린 추도식에서 담화를 발표했고, 담화문의 첫 부분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염으로 채워졌다. 그는 후쿠시마 등 재난지역의 부흥은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사람(人)"이라는 짤막한 박스기사를 통해 이와테 현에서 재해지역의 아이들을 돌보는 한국인 스쿨 소셜 워커를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에 가득 찬 한일관계지만 인간의 교류와 아픔을 나누는 것에는 국경이 따로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피난소의 여성들이 직면해 있는 성폭행 위험 등에 대해 다룬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이 시리즈를 통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작년 한 해 동안 자살한 사람들 중 여성의 수 및 그 비율이 늘어났다고 말한 바 있다. 참고로 여성 자살자 수의 증가 이유에 대해 저널리스트 시부이 데쓰야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들의 직장은 서비스직이 많다. 주로 여행회사, 음식점 등인데 이런 회사들이 코로나 때문에 대량해고를 하고 당연히 여성부터 자른다. 여성은 실업자가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당연히 가족들, 특히 남편과 아빠 얼굴을 계속 봐야 하고 가정 내 폭력도 증가한다. 사실 여성들이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건 자신의 경제력을 위한 것도 있지만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도 존재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우울증도 늘어가고 결국 목숨을 잃는 사람도 나온다. 일본은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니까."
매년 3월 11일은 오직 추모만을 위한 날이었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감추어져 왔던 팩트들도 존재한다. 동일본 대지진도 언젠가는 일본의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다. 몇십년후 역사 교과서에 "동일본 대지진은 불굴의 의지와 공동체의 협력과 양보로 극복해 낸 재난"이라는 긍정적 키워드로만 포장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왜곡이 아닐까 싶다.
https://news.v.daum.net/v/202103160712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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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에서 여자란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소비되고 있으니까요. 역사성이 짙은 유구한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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