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在寅は、2018年の3.1節で次のように演説しました。
内容は大したことないですので、読み飛ばしても問題ありません。
とにかく日本は歴史を直視せよということで、未来志向など微塵も感じさせない演説ですw
尊敬する国民の皆さん、海外同胞の皆さん、
3.1運動の99周年です。
3.1運動は、今この瞬間も私たちの生活に
生々しく生きています。
西大門刑務所のレンガ一つ一つには
苦難と死に立ち向かった崇高な話が刻まれています。
大韓独立万歳の叫び声が聞こえてくるようです。
今日、私たちは剥製化された記念式ではなく
独立運動の現場で
歴史と共に息づく記念式を開こうと
この場に集まりました。
日帝による強制占領期のあいだ、毎年2600余名が
西大門刑務所に投獄されました。
1945年8月15日の解放のその日まで
10万余名近くがここに収監されました。
10人のうち9人が思想犯と呼ばれた独立運動家でした。
10代の青少年からお年寄りまで、
南の済州島(チェジュド)から北の咸鏡道(ハムギョンド)まで、
年齢と地域に関わらず祖国の独立のために
実践した方たちでした。
母と息子、父と娘、兄弟姉妹が
共に投獄されもしました。
多くの母と妻がこの刑務所前の路地で
針仕事や肉体労働をしながら、息子と夫の収監生活を支えました。
収監者だけでなく
その家族たちも皆、独立運動家でした。
国民の皆さん
99年前の今日、村と市場に檄文が貼られました。
独立宣言書が手から手に伝達されました。
ソウルとピョンヤン・鎮南浦(チンナムポ、現南浦)・安州(アンジュ)、
義州(ウィジュ)・定州(チょンジュ)・信川(シンチょン)、元山(ウォンサン)など全国各地で
同時に独立宣言書が朗読され、万歳運動が始まりました。
万歳運動は瞬く間に地方都市と村々にまで拡大していきました。
遠く中国の間島とロシアの沿海州、
米国フィラデルフィアとハワイのホノルルの空にも
独立万歳のかけ声が鳴り響きました。
その年の3月1日から5月末まで
国内だけで1542回もの万歳運動が起き、
当時の人口の10分の1を超える202万余名が
これに参加しました。
3.1運動の経験と記憶は、日帝の強制占領期の間じゅう
熾烈だった抗日独立運動の精神的な土台となりました。
3.1運動以降、数百、数千名の独立軍が毎日のように
鴨緑江と豆満江を越えました。
大韓民国会、北路軍政署、大韓独立軍、軍務都督府、
西路軍政署、大韓独立団、光復軍総営を構成し、
日帝の軍警と血みどろの戦闘を行いました。
一人が倒れたら十人が立ち上がりました。
安重根(アン・ジュングン)義士の後を受け継ぎ
姜宇奎(カン・ウギュ)、朴載赫(パク・ジェヒョク)、崔寿鳳(チェ・スボン)、金益相(キム・イクサン)、金相玉(キム・サンオク)、羅錫疇(ナ・ソクチュ)、李奉昌(イ・ボンチャン)
すべて挙げきれないほどの義士たちが義烈闘争を続けていきました。
1932年4月29日の尹奉吉(ユン・ボンギル)義士の上海義挙がその頂点でした。
1937年一年のあいだ国内では、
3600件もの大小の武装独立闘争が行われました。
1940年には大韓民国臨時政府が
大韓民国はじめての正規軍である光復軍を創設しました。
すべて大韓民国建国の父たちです。
天安の市場で万歳運動を主導した
18歳の柳寛順(ユ・グァンスン)烈士は
地下の独房で拷問と栄養失調により殉国しました。
17歳という花ざかりの年歳の董豊信(トン・プンシン)烈士は
咸鏡北道明川(ミョンチょン)での万歳運動に参加し
ここ西大門刑務所で殉国しました。
夜を徹して太極旗を描いた釜山の日新(イルシン)女学校の学生たち、
初の女性義兵長の尹熙順(ユン・ヒスン)義士、
百凡・金九先生の剛直な母、郭楽園(クァク・ナグォン)女史、
3.1運動直後の3月9日に46歳で鴨緑江を越え
西路軍政署に加入した独立軍の母、南慈賢(ナム・ジャヒョン)女史、
槿友(クヌ)会事件を主導した後、中国に亡命し
義烈団の活動を行った朴次貞(パク・チャジョン)烈士、
大韓民国臨時政府の独立資金を作るために
国境を6度も越えた鄭靖和(チょン・ジョンファ)義士、
私たちには3.1運動の精神で大韓民国を打ち立てた
建国の母たちもいました。
私たちの先祖たちの独立闘争は、世界のどの国よりも熾烈でした。
光復は決して外からもたらさ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
先祖たちのが「最後の瞬間」まで死を賭けて共に戦い
成し遂げた結果です。
国民の皆さん、
3.1運動の最も大きな成果は独立宣言書に従った
大韓民国臨時政府の樹立でした。
3.1運動により樹立した大韓民国臨時政府の憲法は
大韓民国が民主共和制であり
国の主権が国民にあると
明確に刻んでおきました。
それが今の大韓民国の憲法第1条になりました。
王政と植民地を越え
私たちの先祖たちが民主共和国として進むことができた力が
まさに3.1運動でした。
3.1運動の力が弱まる時、
主権者である国民が再び立ち上がりました。
独立運動は愛国志士たち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
商人たちは撤市(チョルシ)運動を行いました。
木こり、妓生、盲人、鉱夫たち、
名も無く生きた私たちの父と母、
姉たちまで先に立ちました。
国民主権と自由と平等、平和に向けた熱望が
一人ひとりの生活の中に入ってきました。
階層、地域、性別、宗教の壁を越え、一人ひとりが堂々とした国民になりました。
このように大韓民国を国民が主人である民主共和国にしたのが
まさに3.1運動です。
大韓民国臨時政府は
私たちに憲法第1条だけでなく
大韓民国という国号と
太極旗と愛国歌という国家の象徴を残してくれました。
大韓民国が臨時政府の法統を継承したと
私たちの憲法が明かしている理由です。
去る冬、私たちは100年の時間を飛び越えました。
3.1運動で始まった国民主権の歴史を生き返らせました。
1700万個のろうそくが
もっとも平和で美しい方式でこの歴史を広げて見せました。
暗闇を灯した一つ一つの光は
国民一人一人が大韓民国の主権者であることを
もう一度宣言しました。
新しい国民主権の歴史が大韓民国建国100周年に向け
再び書かれ始めました。
私とわが政府は、ろうそくが再び灯してくれた国民主権の国を
確固として守っていきます。
3.1運動の精神と独立運動家たちの人生を
大韓民国の歴史の主流として打ち立てます。
2020年に開館する大韓民国臨時政府記念館には
大韓民国を立てた数多くの先祖たちの話が込められるでしょう。
3.1運動に参加した木こりも、鉱夫も、妓生たちも
誇らしい独立運動家の名前として刻まれることでしょう。
国内外でまだ探せていない独立運動の遺跡たちと
独立運動家の痕跡も続けて発掘していきます。
重慶の光復軍総司令部も
臨時政府樹立100周年に合わせ復元されるでしょう。
国民の皆さん、
私たちには3.1運動という巨大な根があります。
解放と国民主権をもたらした民族の根です。
私たちには独立運動と共に民主共和国を打ち立てた
偉大な先祖がおり、
絶対貧困を抜け出し経済発展と民主化を成し遂げた
建国2世代と3世代がいます。
またこの時代に
共に歩いていく道を灯してくれたろうそくがいます。
私たちはこれ以上、私たちを低く見る必要はありません。
私たちの力で光復をもたらした、自尊心あふれる歴史があります。
私たちは私たちの力で平和を作り出す力があります。
私はこうした国民たちの力と自信をもって
3.1運動と大韓民国建国100周年を
恒久的な平和態勢の構築と平和に基づく繁栄の
新しい出発線として作り上げていきます。
そのために私たちは
間違った歴史を私たちの力で再び立て直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独島は日本の韓半島侵奪の過程で
最も先に強制占領された私たちの土地です。
私たち固有の領土です。
今、日本がその事実を否定することは
帝国主義の侵略に対する反省を拒否するのと
同じことです。
慰安婦問題の解決においても
加害者である日本政府が「終わった」と言ってはいけません。
戦争の時期にあった反人倫的な人権犯罪行為は
終わったという言葉で蓋を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不幸な歴史であるほど
その歴史を記憶し、その歴史から学ぶことだけが
真の解決です。
日本は人類普遍の良心で
歴史の真実と正義を直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は日本が
苦痛を加えた隣国たちと真に和解し
平和共存と繁栄の道を共に歩いていくことを願います。
私は日本に特別な待遇を要求しません。
ただ最も近い隣国らしく
真実の反省と和解の上で、共に未来に進むことを願うだけです。
尊敬する国民の皆さん、海外同胞の皆さん、
私たちは今日、3.1運動を生々しい記憶として蘇らせることにより
朝鮮半島の平和が国民の力で成し遂げられるということを
確認しています。
私たちは今後、光復100年に向かうあいだ
朝鮮半島の平和共同体、経済共同体を完成さ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
分断がこれ以上
私たちの平和と繁栄に障害となら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は今日、国民の皆さんにこの目標を共に実現させていくことを提案します。
貧富、性別、学閥、地域の格差と差別から
完全に解放された国を作りましょう。
金九先生が夢見た、世界平和を主導する
文化強国に向けて進んでいきましょう。
3.1運動というこの巨大な根は決して枯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公正で正義がかなう国はすでに
国民の心の隅々で99年前から育っていたのです。
この巨大な根が朝鮮半島で平和と繁栄の木を
丈夫に育てていくはずです。
大韓民国は世界で最も偉大で美しい国となるでしょう。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3月1日
文在寅
문 재인은, 2018년의 3.1절로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내용은 별일 아니어요로, 읽어 날려도 문제 없습니다.
어쨌든 일본은 역사를 직시해라고 하는 것으로, 미래 지향 등 미진도 느끼게 하지 않는 연설입니다 w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교포 여러분,
3.1 운동의 99주년입니다.
3.1운동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생활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의 벽돌 하나하나에는
고난과 죽어 직면한 숭고한 이야기가 새겨지고 있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의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박제화 된 기념식은 아니고
독립 운동의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숨쉬는 기념식을 열려고
이 장소에 모였습니다.
일제에 의한 강제 점령기의 사이, 매년 2600여명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의 그 날까지
10 일만여명 가까이가 여기에 수감되었습니다.
10명중 9명이 사상범으로 불린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10대의 청소년으로부터 노인까지,
연령과 지역에 관련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실천한 (분)편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아가씨), 형제 자매가
모두 투옥되어도 했습니다.
많은 어머니와 아내가 이 형무소앞의 골목에서
재봉이나 육체 노동을 하면서, 아들과 남편의 수감 생활을 지지했습니다.
수감자 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모두,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99년전의 오늘, 마을과 시장에 격문이 붙여졌습니다.
독립선언서가 손으로부터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서울과 평양·진남포(틴남포, 현남포)·안슈(안쥬),
도리주(위쥬)·정주(치쥬)·노부카와(신치), 원산(워산) 등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은 순식간에 지방도시와 마을들에까지 확대해서 갔습니다.
멀게 중국의 마지마와 러시아의 연해주,
미국 필라델피아와 하와이의 호놀루루의 하늘에도
독립 만세의 내기소리가 울렸습니다.
그 해의 3월 1일부터 5월말까지
국내에서만 1542회의 만세운동이 일어나
당시의 인구의 10분의 1을 넘는 202 일만여명이
이것에 참가했습니다.
3.1 운동의 경험과 기억은, 일제의 강제 점령기의 사이 총
치열했던 항일 독립 운동의 정신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3.1운동 이후, 수백, 수천명의 독립군이 매일 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대한민국회,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군무 도독부,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복군총영을 구성해,
일제의 군경과 피투성이의 전투를 실시했습니다.
한 명이 넘어지면 열 명이 일어섰습니다.
안중근(안·쥬군) 의사의 뒤를 계승해
강우규(캔·우규), 박재혁(박·제효크), 최수봉(최·스본), 금익상(김·이크산), 김상옥(김·산오크), 라 주석주(나·소크츄), 리봉창(이·본 장)
모두 들지 못할 정도의 의사들이 의열 투쟁을 계속해 갔습니다.
1932년 4월 29일의 윤봉길(윤·본길) 의사의 샹하이 거사가 그 정점이었습니다.
1937년 일년의 사이 국내에서는,
3600건의 대소의 무장 독립 투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첫 정규군인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모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입니다.
천안의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8세의 류관순(유·그슨) 열사는
지하의 독방에서 고문과 영양 실조에 의해 순국 했습니다.
17세라고 하는 꽃 자리 빌려의 연세의 동풍신(톤·푼신) 열사는
함경북도 아스가와(몰치)에서의 만세운동에 참가해
여기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했습니다.
밤을 지새워 태극기를 그린 부산의 닛신(이르신) 여학교의 학생들,
첫 여성 의병장의 윤희순(윤·히슨) 의사,
백범·김구 선생님의 강직한 어머니, 유곽 낙원(쿠크·나그) 여사,
3.1운동 직후의 3월 9일에 46세에 압록강을 넘어
서로군정서에 가입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남·쟈홀) 여사,
근우(쿠누) 회 사건을 주도한 후, 중국에 망명해
의열단의 활동을 실시한 박차정(박·차 존) 열사,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독립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국경을 6도나 넘긴 정정화(치·젼파) 의사,
우리에게는 3.1 운동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건국의 어미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의 독립 투쟁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으로부터도 늘어뜨려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의 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걸어 모두 싸움
완수한 결과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랐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수립이었습니다.
3.1 운동에 의해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면
명확하게 새겨 두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가 되었습니다.
왕정과 식민지를 넘어
우리의 선조들이 민주공화국으로서 진행될 수 있던 힘이
확실히 3.1 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의 힘이 약해질 때,
주권자인 국민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독립 운동은 애국 지사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인들은 철시(쵸르시) 운동을 실시했습니다.
나뭇꾼, 기생, 맹인, 광부 서,
이름도 없게 산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누나)들까지 먼저 섰습니다.
국민 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롭게 향한 열망이
한사람 한사람의 생활속에 들어 왔습니다.
계층, 지역, 성별, 종교의 벽을 넘고 한사람 한사람이 당당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을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으로 한 것이
확실히 3.1운동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우리에게 헌법 제 1조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라고 하는 국가의 상징을 남겨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우리의 헌법이 밝히고 있는 이유입니다.
떠나는 겨울,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었습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국민 주권의 역사를 소생하게 했습니다.
1700만개의 양초가
무엇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 보였습니다.
어두운 곳을 켠 하나 하나의 빛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것을
한번 더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국민 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우리 정부는, 양초가 다시 켜 준 국민 주권의 나라를
확고히 해 지켜서 갑니다.
3.1 운동의 정신과 독립 운동가들의 인생을
대한민국의 역사의 주류로서 수립합니다.
2020년에 개관하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념관에는
대한민국을 세운 수많은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지겠지요.
3.1운동에 참가한 나뭇꾼도, 광부도, 기생들도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의 이름으로서 새겨지겠지요.
국내외에서 아직 찾을 수 있지 않은 독립 운동의 유적들과
독립 운동가의 흔적도 계속해 발굴해 갈 것입니다.
쥬우케이의 광복군 총사령부도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추어 복원되겠지요.
국민 여러분,
우리에게는 3.1운동이라고 하는 거대한 뿌리가 있어요.
해방과 국민 주권을 가져온 민족의 뿌리입니다.
우리에게는 독립 운동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위대한 선조가 있어
절대빈곤을 빠져 나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완수했다
건국 2세대와 3세대가 있습니다.
또 이 시대에
모두 걸어가는 길을 켜 준 양초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가져온, 자존심 넘치는 역사가 있어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평화를 만들어 내는 힘이 있어요.
나는 이러한 국민들 힘과 자신을 가지고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인 평화 태세의 구축과 평화롭게 기초를 두는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서 만들어내서 갑니다.
그 때문에(위해)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우리 힘으로 다시 고쳐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제 점령된 우리의 토지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대해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전쟁의 시기에 있던 반인륜적인 인권 범죄 행위는
끝났다고 하는 말로 뚜껑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사를 기억해,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직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일본이
고통을 더한 이웃나라들과 실로 화해해
평화 공존과 번영의 길을 모두 걸어갈 것을 바랍니다.
나는 일본에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것 같고
진실의 반성과 화해 후로, 모두 미래에 진행될 것을 바랄 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교포 여러분,
우리는 오늘, 3.1운동을 생생한 기억으로서 소생하게 하는 것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국민 힘으로 완수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향후, 광복 100년이 다가오는 동안
한반도의 평화 공동체, 경제 공동체를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분단이 더 이상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장해가 되지 않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오늘, 국민 여러분에게 이 목표를 모두 실현시켜 가는 것을 제안합니다.
빈부, 성별, 학벌, 지역의 격차와 차별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된 나라를 만듭시다.
김구 선생님이 꿈꾼, 세계평화를 주도한다
문화 강국으로 향해서 나갑시다.
3.1운동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뿌리는 결코 시들 것은 없습니다.
공정하고 정의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벌써
국민의 마음의 구석구석에서 99년 전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뿌리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길러 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3월 1일
문 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