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寺百合文書「謹請申 南大門前 一服一銭茶賣人条々」
日付が応永十年とありますから1403年の史料です。
この頃の一服一銭の茶賣人の多くは、文字の読み書きができなかったようです。
左隅の名前の下に略押が印されているところからそれが類推できるのです。
略押とは主に文字の読み書きができない人々が、
誰かに代筆してもらった自分の名前の下に、
○や△などの印を書き込んだ、いわばサインのようなものです。
このように日本でも古くまで辿れば識字率は下がっていきます。
しかし、日本ではこの時代にあっても
識字率が7%というようなことはなかったと思われます♪(嗤)
あひゃひゃひゃ!
【중세】일본【문맹퇴치율】
토우지 백합 문서 「근청신남대문앞휴식 일전다매인조들」
일자가 오에이10년과 있어요로부터 1403년의 사료입니다.
요즘의 휴식 일전의 다매인의 상당수는, 문자의 읽고 쓰기를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좌우의 이름아래에 략압이 표시해지고 있는 곳(중)으로부터 그것을 유추 할 수 있습니다.
략압과는 주로 문자의 읽고 쓰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대필받은 자신의 이름아래에,
○이나△등의 표를 쓴, 말하자면 싸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 시대에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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