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登輝元総統が死去 97歳 台湾の「ミスター・デモクラシー」
(台北中央社)李登輝元総統が30日午後7時24分ごろ、台北市内の病院で死去した。97歳だった。入院先の台北栄民総医院が発表した。
今年2月に自宅で牛乳を誤嚥(ごえん)し、肺浸潤(はいしんじゅん)が見られるなどで入院を続けていた李氏。ここ数日は容体の悪化が伝えられ、蔡英文(さいえいぶん)総統が29日、急きょ頼清徳(らいせいとく)副総統、蘇貞昌(そていしょう)行政院長(首相)と共に見舞いに病院を訪問していた。
1923年、日本統治下の台湾で生まれた。太平洋戦争中に台北高等学校(現台湾師範大学)を卒業し、京都帝国大学(現京都大学)農学部に進学するも、学徒出陣で旧日本陸軍に入隊し、日本で終戦を迎えた。
戦後は台湾に戻り、後に2度にわたり米国に留学。1968年に米コーネル大学で農学博士号を取得後、農業問題の専門家として当時の国民党政権に重用され、行政院政務委員(無任所大臣)や台北市長、台湾省政府主席、副総統などを歴任した。
副総統を務めていた1988年、蒋経国総統の死去により台湾出身者として初めて総統に就任。憲法改正で実現させた史上初の総統直接選挙(1996年)で当選して続投を決め、2000年に退任するまで12年にわたり総統を務めた。台湾の民主化に大きく貢献し、米ニューズウィーク誌から「ミスター・デモクラシー」と称された。
総統退任後は独立志向を鮮明にし、「台湾ファースト」を掲げる政党・台湾団結連盟の精神的指導者と仰がれた。近年は国家アイデンティティーの確立や市民社会の強化などを柱とした「第2次民主改革」の必要性を訴えてきた。大の親日家としても知られ、総統を退いてからは日本を計9回訪れており、2018年6月の沖縄訪問が最後になった。 (編集:羅友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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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휘 전 총통이 사망 97세 대만의 「미스터·민주주의」
(타이뻬이 츄우오오 사)이등휘 전 총통이30일 오후 7시 24분쯤, 타이뻬이 시내의 병원에서 사망했다.97세였다.입원처의 타이뻬이영민총의원이 발표했다.
금년 2월에 자택에서 우유를 오연(넘어가는 길응) 해, 폐침윤(전달 순서)을 볼 수 있는 등으로 입원을 계속하고 있던이씨.여기 몇일은 용태의 악화가 전해져채히데후미(재상영 만큼) 총통이29일, 서둘러 뢰키요노리(들 줄여가며 꿰매어 실구) 부총통, 소정창(라고 있어 짊어진다) 행정 원장(수상)과 함께 문병에 병원을 방문하고 있었다.
1923년, 일본 통치하의 대만에서 태어났다.태평양전쟁중에 타이뻬이 고등학교(현대만 사범 대학)를 졸업해, 쿄토 제국대학(현쿄토 대학) 농학부에 진학하는 것도, 학도 출진으로 구일본 육군에게 입대해, 일본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는 대만으로 돌아와, 후에 2도에 걸쳐 미국에 유학.1968년에 미 코넬대학으로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 후, 농업 문제의 전문가로서 당시의 국민당 정권에 중용 되어 행정 원정츠토무 위원(무임소장관)이나 타이뻬이 시장, 대만성 정부 주석, 부총통등을 역임했다.
부총통을 맡고 있던 1988년,장경국 총통의 사망에 의해 대만 출신자로서 처음으로 총통으로 취임.헌법개정으로 실현시킨 사상최초의 총통 직접 선거(1996년)로 당선하고 연속 투구를 결정해 2000년에 퇴임할 때까지 12년에 걸쳐 총통을 맡았다.대만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해, 미 뉴스 위크지잡지로부터 「미스터·민주주의」라고 칭해졌다.
총통 퇴임 후는 독립 지향을 선명히 해, 「대만 퍼스트」를 내거는 정당·대만 단결 연맹의 정신적 지도자와 바라봐졌다.근년은 국가 아이덴티티의 확립이나 시민사회의 강화등을 기둥으로 한 「 제2차 민주 개혁」의 필요성을 호소해 왔다.대단한 친일파로서도 알려지고 총통을 물러나고 나서는 일본을 합계 9회 방문하고 있어 2018년 6월의 오키나와 방문이 마지막에 되었다. (편집:라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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