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の代表なんだから…」と怒られた在日コリアン3世が思うこと だれかに変なものを背負わせられている
大坂なおみの試合を熱心に観る父
夜遅くまで自室で仕事をしていたある日、休憩しようとリビングへ降りると、大坂なおみ選手のプレーを「いろいろあったんだろうけれどよく頑張っているよね。とても偉いと思うよ」と言いながら、熱心に観ている父がいた。
「いつもは9時ごろになると上に行っちゃうのに、きょうは夜遅くまで大丈夫なの?」と声をかける。
【現場はパニック!】日本人は知らない、いま韓国でほんとうに起きていること…
「この試合が終わったら寝る」
夜更かしをしている子どものような父の答えだった。
コーヒーを淹れながら、熱心に観戦している父の背中を見て、試合が気になりはじめ、お気に入りのパンダのマグカップを片手にテレビの前に座った。
わたしが観はじめたとき、相手選手から反撃にあい、彼女のプレーは少し弱気になっていた。父は「ここで根性を出さなきゃ」とコーチのような口ぶりで画面に語りかける。
彼の叱咤激励が効いたのか、次第に調子を取り戻し、勝利を収めた。
大坂選手の晴れやかな表情を観た父の目には大粒の涙が光っていた。
プレーよりも、たどたどしい日本語?
その試合に勝ってから、朝、流れているニュース番組のスポーツコーナーでは彼女の動向を伝えるようになったが、コメンテーターたちはプレーよりも記者とのやりとりでたどたどしい日本語を話すことに興味を持っていたようだった。
「そんなことに注目してなくてもいいじゃんね」とテレビを観てつぶやくと、向かいの席でトーストをかじっていた父は「何も知らないであそこにいるんだよ。訳も分からないのに日韓関係をああだこうだ言ってるのと同じ」と言った。
「『大坂なおみは日本語も上手くないし、日本人っぽくないのに、どうして日本人として取り上げるのか分からない』って言っているひとたちもいるみたいよ」
ネットで見た書き込みを伝えると「だったら、ラモスとか、呂比須とか、全日本で活躍したやつらはいったいどうなるんだろうな」と父は吐き捨てた。
小さいころ、ピッチの上で見事なポール裁きを見せていた懐かしい選手たちの名前を聴き、国を代表して家族や仲間のために、日の丸を背負ったからこそ、頑張れたみたいなことをだれかが書いていたのを思い出し、「大坂なおみもそのうち『日の丸を背負って、頑張ります』みたいなことを言うのかな」とひとりでつぶやいた。
「きょうは夕飯いるのか?」という夕食を作る父の問いかけに、「いるよ。きょうはいつものカフェに行って、あたらしいバッグを買いに行くだけだから」と答えた。
「また壊れたのか?お前のバッグを持ったことあるけど、あんな重たかったら、肩壊すぞ」
普段、背負っているバッグの重さを知っているひとはおなじことを言う。本が手放せないうえに、いつでも書けるようにルーズリーフや原稿用紙などの仕事道具も持参している。自転車に乗るときは替えのTシャツや水筒もいれるので、3か月ぐらいで壊れてしまう。
「しょうがないじゃん。どんなに減らそうとしてもあの量になっちゃうんだから。つぎは丈夫なのを買ってくるよ」
そう言って家を出た。
韓国留学でなにか学んだことは?
身体を動かさないと精神的に参ってしまう。ここ最近は、仕事が立て込んでいたうえに、雨の日がつづいており、久しぶりの自転車で爽快な筋肉痛を感じながら店に向かって1時間ほどペダルをこいでいた。
「こんにちは」と言って、店に入ると、店主と、カウンターで昼からビールを飲んでいる男性客がいた。彼のとなりに座り、お冷とおしぼりを出した店主に「コーヒーひとつ」と注文した。店主は慣れた手つきでブレンドを淹れながら「最近、見なかったけど元気?」と話しかけてきた。
「ここ最近、仕事が忙しくて…。気分転換に旅とかしたいなぁ」
「こないだ、新潟に行ってきたばかりじゃん」
「いま、海外に行きたいんですよ。留学してた釜山とか」
「あっちの友だちとは連絡取ってるの?」
「取ってますよ。昨日も日本語学科の友だちからMessengerで分からない日本語を説明したり、お世話になった韓国語の先生ともカカオトークで話してますしね」
店主とわたしの世間話を聞いていたのか隣の客が「韓国の留学していらっしゃったんですか?」と尋ねてきた。
「はい。交換留学で釜山に1年行ってましたよ」と答える。
「そうなんですか、娘が韓国にばっかり行くんで、ちょっと気になっていたんですよね」と、娘が韓流アイドルにハマっていて、韓国へよく出かけるという話をしはじめた。
ときおり相槌を打ちながら彼の話を聴いていると、「留学してなにか学んだことはありましたか?」と唐突に訊いてきた。予想していなかった質問に驚きながら、酔っ払いだからしょうがないかと思って、わたしはこう答えた。
「歓迎会で飲みすぎたつぎの日に、おなじ日本から来た留学生から『日本人の代表としてきてるんだからしっかりしてよ』って言われたことがありましたね。
あのときは肩が重く感じて、その場ではなにも言いませんでしたけど、『いや、俺、帰化してるけど在日だし』って心のなかで笑ってましたね。
なんていうか、国とか民族とか厄介だし、そんなことを気にするなんてバカバカしいなぁっていうことを学びました」
「韓国の方なの?」
「はい。そうですよ」
「いま、いろんなひとがいるからね」
「じいさんばあさんの代からいるんですけどね」と笑いながら答えた。
これで隣の客との会話は終わったと思った。
「これは日本の問題じゃないですか」
「いまの日韓関係についてはどう思ってます? 徴用工の話とか、輸出規制の話とかいろいろとあるじゃないですか?」
その質問をされたとき、韓国政治を学ぶゼミにいたわたしはどこから説明したらいいのかと少し悩んでいた。
わたしの様子に「答えにくいよね」と客は笑いながら言っていた。
妙な視線で語る彼に反発する口調で、大法院の判決は国ではなく、企業への補償を求めたもので、1965年の条約に違反しないこと、司法の出した結果に行政は介入できないこと、日本側の反応は分からないままただ反発しているだけで、輸出規制の理由も二転三転してなにがしたいのか分からないことを話した。
彼はわたしの話をニヤニヤしながら聴いており、話が終わるとこう言った。
「まぁ、韓国のひとがそう考えるのかもしれないね。過去、いろいろあったのは分かるけど、戦後、お金は渡したわけだし、そもそも、古代はひとつの民族だったわけだから、過去のことをいつまでも言ってちゃ仲良くできないよね」
「一応、帰化してるし、韓国人全員を代表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し、これは日本の問題じゃないですか」と返したかったが、わたしの話を聴いていたときの表情を思い出して、言うのを止めた。
肩が重たい…その原因
ふと、肩が重たくなったように感じた。見覚えのあるどこか懐かしい重さになんだろうと考えていると、留学生だったとき「日本人の代表としてきているんだからしっかりしてよ」と怒られたときの重さだと気づいた。
変なものをだれかの好き勝手に背負わせられるんだな。
そう思いながら店の時計を見ると、いい時間になっていたので「すみません、このあと、用事があるので」ととなりの客に挨拶をしてから、あたらしいバッグを買いに店を出た。
それからしばらく経ってからのことだった。
となりの客との変なやりとりがあったあとに買った新品のバッグを背負って、自転車で夜道を走っていたとき、スキニーパンツのポケットからバイブレーションを感じた。急ぎのメールかなと思い、自転車を停め、スマホを見てみると、大坂なおみ選手が日本国籍を選択したと報じる新聞社の速報メールが入っていた。
背負っているバッグを買う前に感じたあの肩の重さを思い出したわたしは、だれかによって好き勝手に背負わされた得体の知れない重たいもので、彼女の肩が壊れてしまわないように祈っていた。
そんなに日本が嫌いなら 日本から出て行け。
「일본인의 대표니까 」라고 화가 난 재일 코리안 3세가 생각하는 것 누군가에게 이상한 것을 짊어지게 해서라고 있는
오오사카 더 봐의 시합을 열심히 보는 부
야 늦게까지 자기 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있다 일, 쉬려고 리빙에 내리면, 오오사카 더 봐 선수의 플레이를 「여러 가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노력하고 있지요.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라고 하면서, 열심히 보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언제나 9시경이 되면 위에 가버리는데, 오늘은 밤 늦게까지 괜찮아?」라고 얘기한다.
【현장은 패닉!】일본인은 모르는, 지금 한국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것
「이 시합이 끝나면 잔다」
밤샘을 하고 있는 아이와 같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커피를 엄면서, 열심히 관전하고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시합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 마음에 드는 팬더의 머그 컵을 한 손에 텔레비전의 앞에 앉았다.
내가관 시작했을 때, 상대 선수로부터 반격에 맞아, 그녀의 플레이는 조금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아버지는 「여기서 근성을 내야」라고 코치와 같은 말투로 화면에 말을 건다.
그의 질타 격려가 효과가 있었는지, 점차 상태를 되찾아, 승리를 거두었다.
오오사카 선수의 밝은 표정을 본 아버지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빛나고 있었다.
플레이보다, 더듬거린 일본어?
그 시합에 이기고 나서, 아침, 흐르고 있는 뉴스 프로그램의 스포츠 코너에서는 그녀의 동향을 전하게 되었지만, 해설자들은 플레이보다 기자와의 교환으로 더듬거린 일본어를 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 「오오사카 더 봐는 일본어도 능숙하지 않고, 일본인 같지 않은데, 어째서 일본인으로서 다루는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넷에서 본 기입을 전하면 「이라면, 라모스라든지, 로페스라든지, 전일본에서 활약한 녀석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고 아버지는 토해 버렸다.
작은 무렵, 피치 위에서 훌륭한 폴 중재를 보이고 있던 그리운 선수들의 이름을 들어, 나라를 대표해 가족이나 동료를 위해서, 일장기를 짊어졌기 때문에, 힘내라 같은 일을 누군가가 쓰고 있던 것을 생각해 내, 「오오사카 더 봐도 그 중 「일장기를 짊어지고, 노력하겠습니다」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또 망가졌는지?너의 가방을 가진 것 있다하지만, 저런 무거웠으면, 어깨 부술거야」
평상시, 떠맡고 있는 가방의 무게를 알고 있는 사람은 동일 것을 말한다.책을 손놓을 수 없는 데다가,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듯이) 루스리프나 원고용지등의 일도구도 지참하고 있다.자전거를 탈 때는 바꾸어의 T셔츠나 수통도 넣으므로, 3개월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
「어쩔 수 없잖아.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그 양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다음은 튼튼한 것을 사 와」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왔다.
한국 유학으로 무엇인가 배운 것은?
신체를 움직이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가 버린다.여기 최근에는, 일이 붐비고 있던 뒤에, 비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 오랜만의 자전거로 상쾌한 근육통을 느끼면서 가게로 향해 1시간 정도 페달을 젓고 있었다.
「여기 최근, 일이 바빠서 .기분 전환에 여행이라든지 하고 싶다」
「지난번, 니가타에 다녀 왔던 바로 직후야」
「지금, 해외에 가고 싶어요.유학하고 있었던 부산이라든지」
「저쪽의 친구와는 연락 취해?」
「취하고 있어요.어제도 일본어 학과의 친구로부터 Messenger로 모르는 일본어를 설명하거나 신세를 진 한국어의 선생님과도 카카오 토크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을 수 있다」
점주와 나의 잡담을 듣고 있었는지 근처의 손님이 「한국의 유학 하고 계셨습니까?」라고 물어 왔다.
「네.교환 유학으로 부산에 1년 갔었어요」라고 대답한다.
때때로 맞장구를 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유학해 무엇인가 배운 것은 있었습니까?」라고 당돌하게 신 있었다.예상하지 않았던 질문에 놀라면서, 술주정꾼이니까 어쩔 수 없을까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환영회에서 과음한 다음의 날에, 동일 일본에서 온 유학생으로부터 「일본인이 대표로 해 오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해」라고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는 책임이 무겁게 느끼고, 그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아니, 나, 귀화하고 있지만 재일이고」는 마음속에서 웃었었어요.
(이)라고 하는지, 나라라든지 민족이라든지 귀찮고, 그런 일을 신경쓰다는 바보 바보 해 좋은라고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 분이야?」
「네.그래요」
「지금,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것으로 근처의 손님과의 회화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일본의 문제가 아닙니까」
「지금의 일한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징용공의 이야기라든지, 수출규제의 이야기라든지 여러가지 있다가 아닙니까?」
그 질문을 하셨을 때, 한국 정치를 배우는 세미나에 있던 나는 어디에서 설명하면 좋은 것인지와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님 아이에게 「대답하기 어렵지요」라고 손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상한 시선으로 말하는 그에게 반발하는 어조로, 대법원의 판결은 나라가 아니고, 기업에의 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1965년의 조약에 위반하지 않는 것, 사법이 낸 결과에 행정은 개입할 수 없는 것, 일본측의 반응은 모르는 채 단지 반발하고 있는 것만으로, 수출규제의 이유도 2전재역전 해 아무개 싶은 것인지 모르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능글능글 하면서 듣고 있어 이야기가 종이럭저럭 말했다.
「일단, 귀화하고 있고, 한국인 전원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일본의 문제가 아닙니까」라고 돌려주고 싶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때의 표정을 생각해 내고,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어깨가 무거운 그 원인
문득, 어깨가 무거워진 것처럼 느꼈다.본 기억이 있는 어딘가 그리운 무게에 무엇일까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유학생이었다고 나무 「일본인이 대표로 해 오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해」라고 화가 났을 때의 무게라고 눈치챘다.
이상한 것을 누군가의 제멋대로에 세오이원 다투어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게의 시계를 보면, 좋은 시간이 되어 있었으므로 「미안합니다, 이후에, 용무가 있다의로」라고 옆의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새로운 가방을 사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당분간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떠맡고 있는 가방을 사기 전에 느낀 그 어깨의 무게를 생각해 낸 나는, 누군가에게 따라 제멋대로에 세오이원 된 정체의 모르는 무거운 것으로, 그녀의 어깨가 망가져 버리지 않게 빌고 있었다.
그렇게 일본이 싫으면 일본에서 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