シャングリラホテルチェーンを所有したマレーシア最高大金持ちロバートクオック(95・郭鶴年)今2次世界大戦当時 日帝の蛮行に対して異例的に口を割った.
クオックは自分の戦争経験を若い人々に知らせたいと去る 2017年自敍伝を出刊したがインタビューを通じて証言する場合はほとんどなかった. しかし 彼は 16日(現地時間) 朝日新聞とインタビューで “若い世代たちが歴史が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て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と自分の戦争経験をどんな若い日本女性に聞かせた事例を言及した.
当時その女性は “信じられない”と “あなたが言ったことは日本歴史教科書には全然出ていない内容”と言ったと言う. クオックは “私も衝撃受けた. 私が虐殺現場で直接保持アンアッドでも多くの悲劇消息を聞いたし, 私が分かる人々もたくさん殺害された”と言った.
クオックは自分が住んだ村で約 50km 程度離れたウールでティラム村で起きた虐殺に対して詳らかに描いた. マレーシアを侵攻した一部日本軍人が村に入って来てユーラシアン係(ヨーロッパ-アジア人混血) 少女に手を出すと村男たちがリボルバーを取り出してもやめなさいで警告したと言う.
日本軍は帰ってから何日後夕方トラック 3台に 60‾80人位になる人員でまた村へ来た. クオックは “日本軍人たちは村を取り囲んですべての人々を虐殺した”と “犠牲者の中には学校先生を含んで私が知り合いが 15‾20人位いた”と証言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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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オックは “事件 10日後うちの家族がウールでティラム村に立ち寄った時私は何も, 誰も調べることができないほっそり痩せる男 2人に会った”と “彼らは虐殺を見た衝撃のため理性を失ったように見えた”と説明だった.
一部日本人たちは日製がマレーシアを占領することでイギリスの殖民統治で解放させてくれたとマレーシア人が日本に感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する.
クオックはこれに対して “私の言えることは他の立場(入場)になって考えて見なさいということ”と言いながら “あなたのお母さん, 女兄弟, 妻, ガールフレンドがけだもの扱いにしたらどうかな?”と問い返した. 引き継いで “私は日本会社のように働いているし日本人とも友達で彼らを理解しているが, 同時に私は彼らが過去あほうな行動を繰り返さないのを望む”と付け加えた.
クオックは “日帝は大東亜共同繁栄のために (マレーシア侵攻に) 出たと言ったが “共同繁栄”という意味は日本が 90%を持って行って 10%のみをくれるという意味”と言いながら殖民統治を批判した.
彼は “日本軍が中国人にすること位マレーシア人に日をかけないことは事実だ”と言いながらも “しかしマレーシア係中国人が殺害されたら彼らはマレーシア人ではないか?”と聞き返した.
クオックはマレーシアとシンガポールを侵攻した日本のYamashitaTomoyuki将軍を言及して彼が戦犯罪で 1946年死刑される直前貴重な生命の死と戦争の恐怖の前でつらがったと明らかにした. 彼は “Yamashita将軍と私は皆, そんな無惨な悪事が決してまた起きないように願う”と強調した.
샹그릴라 호텔 체인을 소유한 말레이시아 최고 갑부 로버트 쿠옥(95·郭鶴年)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日帝의 만행에 대해 이례적으로 입을 열었다.
쿠옥은 자신의 전쟁 경험을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지난 2017년 자서전을 출간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증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16일(현지시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했다"며 자신의 전쟁 경험을 어떤 젊은 일본 여성에게 들려줬던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그 여성은 "믿을 수 없다"며 "당신이 말한 것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쿠옥은 "나도 충격받았다. 내가 학살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많은 비극 소식을 들었고, 내가 아는 사람들도 많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쿠옥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진 울루 티람 마을에서 일어났던 학살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말레이시아를 침공한 일부 일본 군인이 마을에 들어와 유라시안계(유럽-아시아인 혼혈) 소녀에게 손을 대자 마을 남자들이 리볼버를 꺼내 들고 그만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일본군은 돌아갔다가 며칠 후 저녁 트럭 3대에 60~80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다시 마을에 왔다. 쿠옥은 "일본 군인들은 마을을 둘러싸고 모든 사람들을 학살했다"며 "희생자 중에는 학교 선생님을 포함해 내가 아는 사람이 15~20명 정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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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옥은 "사건 10일 뒤 우리 가족이 울루 티람 마을에 들렀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깡마른 남자 2명을 만났다"며 "그들은 학살을 본 충격 때문에 이성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였다.
일부 일본인들은 일제가 말레이시아를 점령함으로써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시켜줬다며 말레이시아인이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쿠옥은 이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입장이 돼 생각해보라는 것"이라며 "당신의 어머니, 여자형제, 아내, 여자친구가 짐승 취급당했다면 어떨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나는 일본 회사와 같이 일하고 있고 일본인과도 친구이며 그들을 이해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는 그들이 과거 멍청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쿠옥은 "日帝는 대동아 공동번영을 위해 (말레이시아 침공에) 나섰다고 말했지만 "공동번영"이라는 의미는 일본이 90%를 가져가고 10%만을 주겠다는 뜻"이라며 식민통치를 비판했다.
그는 "일본군이 중국인에 하는 것만큼 말레이시아인에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말레이시아계 중국인이 살해당했다면 그들은 말레이시아인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쿠옥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을 침공했던 일본의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을 언급하며 그가 전범죄로 1946년 사형당하기 직전 귀중한 생명의 죽음과 전쟁의 공포 앞에서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그는 "야마시타 장군과 나는 모두, 그런 끔찍한 악행이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