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韓国でも話題に 政治に関心が薄い10代~20代が第3次韓流ブームを牽引

 
Yahoo!ニュース
 
<svg xmlns=“http://www.w3.org/2000/svg” width=“10” height=“10” viewBox=“0 0 10 10” class=“Header__informationCommentIcon”></svg>663

──日本と韓国の往来は1000万人を突破したが......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90530-00010006-newsweek-int.view-000;pos:1" p="6" xss=removed>
日本人で賑わうソウルの繁華街

韓国マスコミ各社が日本の第3次韓流ブームを取材している。第1次韓流ブームは日韓サッカーワールドカップの直後で、韓国ドラマ「冬のソナタ」の放映がきっかけだった。続いてK-POPが人気となり、韓流ドラマやK-POPで育った世代が、グルメ主体の第3次韓流ブームを牽引している。

■ 「嫌韓は、心配していたほどではなかった」

東京・四谷の韓国文化院で、2019年5月9日、同院開院40周年記念特別企画展「2019韓国工芸の法古創新~水墨の独白」の開幕式が行われた。黄星雲(ファン・ソンウン)院長は、聯合ニュースの取材に、着任前は日本国内の嫌韓に対する懸念があったが、心配していたほどではなかったと答えている。黄院長は前年10月の着任直後に新大久保を訪れ、K-POP関連商品の販売店や韓国料理店に大勢の人が訪れるのを見て驚いたという。

日本の本格的な韓流ブームを振り返ってみると、2003年頃がその始まりだろう。NHK BSでドラマ「冬のソナタ」が放映されると、30代以上の女性を中心にドラマで主人公を演じた俳優ペ・ヨンジュンの人気が高まり、「ヨン様」ブームが巻き起こった。当時の小泉純一郎首相が盧武鉉大統領(当時)との会談で「冬のソナタ」に触れる一幕もあったほどである。2005年に時代劇ドラマ「大長今」(日本名「宮廷女官チャングムの誓い」)が放映されると、韓流ブームは男性にも広がった。

韓国は、ひとたびブームが起きると官民あげて右へ倣えをすることが多いが、当時の韓国芸能界は第2、第3の「ヨン様」を目論み、ドラマや映画を日本に輸出した。しかし、その期待ほどには二番煎じ的ドラマが爆発的なヒットに繋がることはなかった。

■ 李明博大統領が竹島に上陸した影響も大きい

そして、ドラマ主体の第1次韓流ブームは収束したが、K-POPが第2次韓流ブームを引き起こすことになる。音楽業界がBoA(ボア)、東方神起、BIGBANG(ビッグバン)、少女時代、KARA(カラ)など韓国のアイドル歌手を日本に売り込み、ブームに繋がった。

韓国の音楽業界が、国内で投資金を回収することは難しい。文化体育観光部から音楽振興予算を得た芸能事務所は、さらに‘輸出’を強化する。「冬ソナ」ブーム時に8600万ドルだった韓国のコンテンツ輸出額は、3億1300万ドルまで成長し、その80%を日本に依存した。

芸能事務所は次々とアイドルグループを誕生させて、アジアやアメリカにも輸出したが、2012年頃には供給過多となり、陰りを見せはじめる。同じようなアイドルグープが数多く複製され新鮮さが失われたのだ。この年ヒットしたK-POPはPSY(サイ)の「江南スタイル」くらいしかない。

そして、日本の韓流ブームも「江南スタイル」を最後に勢いをなくす。李明博大統領が竹島に上陸して、天皇への謝罪要求を行った影響も大きい。日本で激しい嫌韓・反韓世論が巻き起こり、韓流関連の店舗は次々と閉店に追い込まれた。

■ 韓国食ブームを牽引する10代から20代

韓国ドラマやK-POPは下火になったが、近年、韓国グルメが浮上した。定番とされていた焼肉やキムチなどではなく、韓国で人気が出はじめた料理がリアルタイムで広がりはじめたのだ。

鶏肉と野菜を甘辛い味つけで炒めてチーズをトッピングしたチーズタッカルビなど新しいメニューが人気となり、韓国料理店が集まる新大久保など、多くの日本人で賑わうようになる。韓流ブームが終わって下落していた新大久保の家賃も上昇の兆しを見せている。

韓国食ブームを牽引しているのは、主に10代から20代の若い世代である。数年前まで中国人が占領していたソウルの繁華街・明洞は日本人で溢れかえり、日本のテレビや雑誌で紹介された飲食店など、韓国人客より日本人客の方が多い店すらある。

第1次韓流ブームは、30代以上の女性が牽引した。韓国は日本で流行した後、15年から20年遅れてブームになるコンテンツが少なくない。第1次韓流ブームの15年前の日本はバブルの真っ只中で、多くのアイドルがテレビに登場した時代でもある。スターがいない‘アイドル冬の時代’を経て、冬のソナタが放映されるとバブル期に学生時代を過ごした女性が飛びついた。K-POPが登場するとスター性のあるアイドルを求める世代が韓流ドラマからK-POPに移行する。

■ 日本と韓国の往来は1000万人を突破

第1次・第2次韓流ブームを牽引したのは30代以上で、政治に関心が高い世代でもあり、ブームは政治情勢に作用される。一方、新たな韓流ファンは、第1次韓流ブームを牽引した祖母・母親世代の影響を受けながら成長した世代で、政治への関心が薄い世代でもある。

強制徴用を巡る判決や日韓合意に基づく和解・癒やし財団の解散、レーダー照射問題など政治的な対立が続くなか、日本と韓国の往来は1000万人を突破した。政治的な葛藤と文化交流は別の問題と捉える日本人が増えていることが往来増加と第3次韓流ブームの背景にあるが、日本バッシング一辺倒だった韓国マスコミが、日本叩きを抑制するようになった論調の変化もプラスに作用しているかもしれない。


일본은 한류붐 재현

한국에서도 화제에 정치에 관심이 적은 10대~20대가 제3차한류붐을 견인

──일본과 한국의 왕래는 1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일본인으로 활기찬 서울의 번화가

한국 매스컴 각사가 일본의 제3차한류붐을 취재하고 있다.제1차한류붐은 일한 축구 월드컵의 직후로, 한국 드라마 「 겨울의 소나타」의 방영이 계기였다.계속 되어 K-POP가 인기가 되어, 한류드라마나 K-POP로 자란 세대가, 음식 주체의 제3차한류붐을 견인하고 있다.

■ 「혐한은, 걱정하고 있었을 정도는 아니었다」

도쿄·요츠야의 한국 문화원에서, 2019년 5월 9일, 동원개원 4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수묵의 독백」의 개막식이 거행되었다.노랑 성운(팬·손운) 원장은, 연합 뉴스의 취재에, 착임전은 일본내의 혐한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걱정하고 있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대답하고 있다.노랑 원장은 전년 10월의 착임 직후에 신오오쿠보를 방문해 K-POP 관련 상품의 판매점이나 한국요리점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일본의 본격적인 한류붐을 되돌아 보면, 2003년경이 그 시작일 것이다.NHKBS로 드라마 「 겨울의 소나타」가 방영되면, 30대 이상의 여성을 중심으로 드라마로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배용준의 인기가 높아져, 「욘 님」붐이 일어났다.당시의코이즈미 쥰이치로수상이 노무현 대통령(당시 )과의 회담에서 「 겨울의 소나타」에 접하는 일막도 있었을 정도이다.2005년에 시대극 드라마 「오쵸 지금」(일본명 「궁정 궁녀체금의 맹세」)이 방영되면, 한류붐은 남성에게도 퍼졌다.

한국은, 한번 붐이 일어나면 관민 주고 오른쪽에 모방할 수 있는을 하는 것이 많지만, 당시의 한국 연예계는 제2, 제3의 「욘 님」을 목론 봐, 드라마나 영화를 일본에 수출했다.그러나, 그 기대정도로는 재탕적 드라마가 폭발적인 히트에 연결될 것은 없었다.

■ 이명박 대통령이 타케시마에 상륙한 영향도 큰

그리고, 드라마 주체의 제1차한류붐은 수습했지만, K-POP가 제2차한류붐을 일으키게 된다.음악 업계가 BoA(보아),동방신기, BIGBANG(빅뱅),소녀 시대, KARA(컬러) 등 한국의 아이돌 가수를 일본에 팔아, 붐에 연결되었다.

한국의 음악 업계가, 국내에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어렵다.문화 체육 관광부로부터 음악 진흥 예산을 얻은 예능 사무소는, 한층 더‘수출’을 강화한다.「동 소나」붐시에 8600만 달러였던 한국의 컨텐츠 수출액은, 3억 1300만 달러까지 성장해, 그80%를 일본에 의존했다.

예능 사무소는 차례차례로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키고, 아시아나 미국에도 수출했지만, 2012년경에는 공급 과다가 되어, 그늘을 보이기 시작한다.같은 아이드르그프가 많이 복제되어 신선함이 없어졌던 것이다.이 해히트 한 K-POP는 PSY(사이)의 「강남 스타일」 정도 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의 한류붐도 「강남 스타일」을 마지막으로 기세를 없앤다.이명박 대통령이 타케시마에 상륙하고, 천황에의 사죄 요구를 실시한 영향도 크다.일본에서 격렬한 혐한·반한여론이 일어나, 한류관련의 점포는 차례차례로 폐점에 몰렸다.

■ 한국식 붐을 견인하는 10대에서 20대

한국 드라마나 K-POP는 기세가 죽었지만, 근년, 한국 음식이 부상했다.정평으로 되어 있던 불고기나 김치등에서는 없고, 한국에서 인기가 있기 시작한 요리가 리얼타임에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닭고기와 야채를 달짝지근한 맛청구서로 볶아 치즈를 토핑 한 치즈 닭갈비 등 새로운 메뉴가 인기가 되어, 한국요리점이 모이는 신오오쿠보 등, 많은 일본인으로 활기차게 된다.한류붐이 끝나 하락하고 있던 신오오쿠보의 집세도 상승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식 붐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주로 10대에서 20대의 젊은 세대이다.몇년전까지 중국인이 점령하고 있던 서울의 번화가·명동은 일본인으로 흘러넘쳐 돌아가, 일본의 텔레비전이나 잡지로 소개된 음식점 등, 한국인객보다 일본인객이 많은 가게조차 있다.

제1차한류붐은, 30대 이상의 여성이 견인했다.한국은 일본에서 유행한 후, 15년부터 20년 늦어 붐이 되는 컨텐츠가 적지 않다.제1차한류붐의 15년전의 일본은 버블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아이돌이 텔레비전에 등장했던 시대이기도 하다.스타가 없는‘아이돌동의 시대’를 거치고, 겨울의 소나타가 방영되면 버블기에 학생시절을 보낸 여성이 달려들었다.K-POP가 등장하면 스타성이 있는 아이돌을 요구하는 세대가 한류드라마로부터 K-POP로 이행한다.

■ 일본과 한국의 왕래는 1000만명을 돌파
제1차· 제2차한류붐을 견인한 것은 30대 이상으로, 정치에 관심이 높은 세대이기도 해, 붐은 정치정세에 작용된다.한편, 새로운 한류팬은, 제1차한류붐을 견인한 조모·모친 세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 세대로, 정치에의 관심이 적은 세대이기도 하다.

강제 징용을 둘러싼 판결이나 일한 합의에 근거하는 화해·유야자 재단의 해산, 레이더-조사 문제 등 정치적인 대립이 계속 되는 가운데, 일본과 한국의 왕래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정치적인 갈등과 문화 교류는 다른 문제라고 파악하는 일본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왕래 증가와 제3차한류붐의 배경에 있지만, 일본 배싱 일변도였던 한국 매스컴이, 일본 먼지떨이를 억제하게 된 논조의 변화도 플러스에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TOTAL: 1977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37 韓国の英雄 sonhee123 2019-06-25 168 0
36 学習能力ゼロ (5) sonhee123 2019-06-22 276 0
35 地震の災害状況が全く分からない (2) sonhee123 2019-06-18 483 0
34 日本人の不思議なところ2 (1) sonhee123 2019-06-13 336 0
33 日本の不思議なところ (3) sonhee123 2019-06-13 452 0
32 吉田は正しい sonhee123 2019-06-12 464 0
31 官僚は全てお役所仕事しか出来ない (5) sonhee123 2019-06-10 326 0
30 議長はとても無理 (10) sonhee123 2019-06-09 601 0
29 パチンコ屋 (5) sonhee123 2019-06-08 336 0
28 日本はアメリカの植民地 (13) sonhee123 2019-06-07 343 0
27 売春婦の天国 (3) sonhee123 2019-06-05 446 0
26 日本民族は本当にバカ (4) sonhee123 2019-06-04 335 0
25 理解に苦しむ (5) sonhee123 2019-06-04 465 0
24 日本は反日させる為に韓国を援助し....... (2) sonhee123 2019-06-02 396 1
23 情けない国日本 (3) sonhee123 2019-06-02 448 1
22 日本の韓国への報復 (6) sonhee123 2019-05-30 653 0
21 日本は韓流ブーム再現 (2) sonhee123 2019-05-30 390 0
20 韓国と日本 (2) sonhee123 2019-05-30 251 0
19 日本人はほんと凄い! (6) sonhee123 2019-05-13 558 0
18 韓国をギャフンと言わせる方法 (4) sonhee123 2019-05-07 45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