髙田 明(たかた あきら、1948年11月3日 - )は、日本の実業家で、株式会社A and Live(エーアンドライブ)代表取締役社長および株式会社V・ファーレン長崎代表取締役社長。
ジャパネットたかたの創業者や、同社が制作するテレビ・ラジオショッピング番組のMCとしても知られる。2015年1月16日までは、ジャパネットたかたの初代代表取締役社長を務めていた
長崎県平戸市でカメラ店経営者の父の下、4人兄弟の次男として生まれる(他の兄弟は兄、弟、妹)。
平戸市立平戸中学校、長崎県立猶興館高等学校卒業後、大阪経済大学経済学部に進学する。
大学時代は英語の勉強に明け暮れる(このことが電子辞書を売るきっかけになったと本人は語っている)。
卒業後、京都府内の機械製作会社の阪村機械製作所に入社し、同社貿易部社員として1972年から約2年間、西ドイツ・デュッセルドルフで海外赴任を経験する。翻訳会社を設立しようと退社したが挫折。
平戸へ帰郷し、1974年から兄弟で実家のカメラ店を手伝っていた。
30歳で佐世保市に「カメラのたかた」支店を出店し移住、1986年1月、「カメラのたかた」から独立し、同市三川内本町で「株式会社たかた」(ジャパネットたかたの前身)を設立。
1999年までは、実父・政雄が同社の会長を務めていた。
「株式会社たかた」では、カメラフィルムの「即日現像・手渡し」を旗印に、カメラ販売で業績を拡大。
また、一般家庭へのビデオカメラの普及を機に、ソニーの特約店になる。
さらに、カラオケブームの到来に合わせて、パイオニアのカラオケセットを販売。明は知人を通じて、地元局の長崎放送ラジオの番組内で放送する通信販売コーナーへの出演を依頼された。
実際に放送でカラオケセットを売り込んだところ、数か月分の売り上げを1日で達成したことから、通信販売の分野への進出を決意。1990年3月に同局で本格的にラジオショッピング番組を始め、1996年にはテレビショッピングに進出し、
1999年5月に社名の「たかた」を現在の「ジャパネットたかた」に改めた。
また猿先生が嘘言ったw
?전명(분아키라, 1948년 11월 3일 - )은, 일본의 실업가로, 주식회사 A and Live(에이 안도라 이브) 대표이사 사장 및 주식회사 V·퍼 렌 나가사키 대표이사 사장.
쟈파넷트가타노 창업자나, 동사가 제작하는 텔레비전·라디오 쇼핑 프로그램의 MC로서도 알려진다.2015년 1월 16일까지는, 쟈파넷트가타노 초대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나가사키현 히라도시에서 카메라점 경영자의 아버지아래, 4 형제의 차남으로서 태어난다(다른 형제는 형, 남동생, 여동생).
히라도시립 히라도 중학교, 나가사키현립유흥관고등학교 졸업 후, 오사카 경제 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한다.
대학시절은 영어 공부에 항상 (이것이 전자 사전을 파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다).
졸업 후, 쿄토부내의 기계 제작 회사의 사카무라기계제작소에 입사해, 동사 무역부 사원으로서 1972년부터 약 2년간, 서독·듀셀돌프에서 해외 부임을 경험한다.번역 회사를 설립하려고 퇴사했지만 좌절.
히라도에 귀향해, 1974년부터 형제로 친가의 카메라점을 돕고 있었다.
30세에 사세보시에 「카메라분」지점을 출점해 이주, 1986년 1월, 「카메라분」으로부터 독립해, 동시 미카와치홈마치에서 「주식회사분」(쟈파넷트가타노 전신)을 설립.
1999년까지는, 친아버지·마사오가 동사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주식회사분」에서는, 카메라 필름의 「당일 현상·손수 전함」을 기치에, 카메라 판매로 실적을 확대.
또, 일반 가정에의 비디오 카메라의 보급을 기회로, 소니의 특약점이 된다.
게다가 가라오케 붐의 도래에 맞추고, 파이오니아의 가라오케 세트를 판매.명은 지인을 통해서, 현지국의 나가사키 방송 라디오의 프로그램내에서 방송하는 통신 판매 코너에의 출연을 의뢰받았다.
실제로 방송으로 가라오케 세트를 팔았는데, 수개월 분의 매상을 1일에 달성한 것으로부터, 통신 판매의 분야에의 진출을 결의.1990년 3월에 같은 국으로 본격적으로 라디오 쇼핑 프로그램을 시작해 1996년에는 TV 쇼핑에 진출해,
1999년 5월에 회사명의 「분」을 현재의 「쟈파넷트분」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