彼女は富士山を見ながら育った。家からも見えるし、街からも見えるし、学校からも見えるのがその山だったから当然のことともいえる。
富士山の雄大な姿は、感嘆と尊敬の対象だったし、「あまりにも堂々としているので、かえって憎しみの象徴」でもあった。その山に向かって愚痴をこぼしながら、そのゆったりとした懐の中で育ち、成長して熟したということだ。
ところがある日から、その山は違う形に見え始めた。韓国人であることを自覚してからだった。その時から、その山は「恐ろしい日本帝国主義と祖国を侵略した軍国主義の象徴」だった。
寛大で壮大な姿の富士山が、今は「否定して拒否しなければならない対象」だった。富士山に関する感情の分裂と傷はそう始まった。
彼女は「由煕」という小説で1988年、第100回芥川賞を受賞した在日韓国人作家の??枝(イ・ヤンジ)だった。彼女は富士山を後にして韓国に来て、韓国語と韓国文化を熱心に身につけ、カヤグムと土俗舞踊に傾倒した。
何とか富士山で象徴される日本を突き放したいと思った。ところが、彼女は富士山を否定すればするほど、「まるで恵み深い人に対して陰で悪口を言っているのと同じ不思議な呵責」を感じた。
逆説的にも、彼女は富士山が自分の心の中の深いところを占めていることを、韓国に来てから気づいた。混乱した。「由煕」をはじめとする小説は、その混乱の感情の告白だった。苦心に苦心を重ねた末、彼女が到達した結論は、「自分の中に染みている日本」を否定せず、そのまま認めようというものだった。
富士山が見える町を去ってから17年が過ぎたある日、??枝は自分が住んでいた町を訪れた。富士山は相変わらず同じ姿で同じ場所にいた。今、彼女は穏やかな心で富士山の美しさを味わうことができた。そうなるまでに17年がかかった。
長い間自分を苦しませた分裂的で両家的な感情と和解したから可能なことだった。傷の癒し方はそのままを受け入れる肯定の精神にあった。
September. 12, 2018 08:31 東亞日報
http://japanese.donga.com/List/3/0502/27/1461061/1
劣等感が凄いw
그녀는후지산을 보면서 자랐다.집으로부터도 보이고, 거리로부터도 보이고, 학교로부터도 보이는 것이 그 산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후지산의 웅대한 모습은, 감탄과 존경의 대상이었고, 「너무 당당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미움의 상징」이기도 했다.그 산으로 향하고 푸념을 불평하면서, 그 느긋한 품 중(안)에서 자라, 성장해 익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있다 일부터, 그 산은 다른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다.한국인인 것을 자각하고 나서였다.그 때부터, 그 산은「무서운 일본 제국주의와 조국을 침략한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관대하고 장대한 모습의 후지산이, 지금은 「부정해 거부해야 하는 대상」이었다.후지산에 관한 감정의 분열과 상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후지산으로 상징되는 일본을 떨쳐 내고 싶었다.그런데 , 그녀는 후지산을 부정하면 할수록, 「마치 인정많은 사람에 대해서 그늘에서 욕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을 신기한 가책」을 느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후지산이 자신의 마음 속이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한국에 오고 나서 눈치챘다.혼란했다.「유희」를 시작으로 하는 소설은, 그 혼란의 감정의 고백이었다.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자신중에 스며들고 있는 일본」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후지산이 보이는 마을을 떠나고 나서 17년이 지난 있다 일,??가지는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을 방문했다.후지산은 변함 없이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장소에 있었다.지금, 그녀는 온화한 마음으로 후지산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다.그렇게 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자신을 괴로워하게 한 만큼 직물적이고 양가적인 감정과 화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상처의 달래는 방법은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긍정의 정신에 있었다.
September. 12, 2018 08:31 동아일보
http://japanese.donga.com/List/3/0502/27/1461061/1
열등감이 굉장한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