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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クト資料を通じて推測する日帝時代

バンダービルド

月刊朝鮮8月号には、「ムンカプシクが足を使って書く韓国人年代記WHO IS WHO」という記事で、韓国の世界的な化粧品会社「アモーレパシフィック」を創業した「ソソンファン」さんの話が出てくる。

そのうち日帝時代の部分だけを抜粋すると以下である。

<故ソソンファン(徐成煥・1924〜2003)アモーレパシフィック創業者は、1924年に黄海道表山で生まれた。

家族はソソンファンが小学校時代の1930年に開城に移動していった。
家族の生計を担当したのは母のユンドクチョンさんだった。

ユンさんは雑貨を扱い、化粧品を作り始めた。
開城は高麗人参の産地だった。

当然住民の所得が高かったので、女性が身づくろいに特別に気を使っていた。

格別なビジネスセンスを備えていたユンさんは、直接ツバキ油を絞って作った頭の油を売って利益を得て、1932年から美顔水を手作りした。

これにとどまらず、クリーム、おしろいなど、化粧品の製造の種類や項目を広げ、これに少年のソソンファンは「お使い」をして手伝った。

ユンさんは最初から昌盛商店という会社を作った。

事業が本格化すると、ソソンファンも忙しくなった。
彼は午前中にお弁当三つを自転車に乗せて仕事を始めた。

日の出前に開城を出発し、化粧品の製造に必要なものを買いに行ったのである。

重慶普通学校を卒業した1939年から、礼成江20里の商路に沿って、自転車で化粧品を販売した。

販売をしながら、彼は流通に目覚めた。

10代の少年ソソンファンは開城から自転車でソウル南大門市場まで行き、グリセリンと香料と空のボトルを買い、開城に戻ってきた。

昌盛商店の製品は、1941年に開城初のデパートである3階の洋館の「キムジェヒョンデパート」に入店した。

デパートにコーナーを開設し、自分たちの化粧品だけでなく、違う会社の製品まで委託販売した。

お使いから始めて販売や流通まで身につけたソソンファンは、最終的に化粧品の製法まで母親から学んだ。

水と油の混合割合、加熱の程度、苛性ソーダの割合に応じた微妙な違いまで身につけたものである。

そんな彼に危機が迫った。

21歳の1944年に強制徴用されたものである。
天運があったのか、日帝が滅びたので、ソソンファンは1年半で奇跡的に生還した…(後略)…>


日帝時代を直接生きたことのない今日の多くの韓国人たちは、日帝時代を「暗黒時代」や「塗炭の時期」などと思っていて、日本が地球上で最も残酷でよこしまに韓国を統治したと思っている。

今日の韓国人は、日本が当時韓国人を弾圧し、抹殺し、拷問し、連行して奴隷にして殺したと思っている。

さて、記事の内容を見てみよう。


<開城は高麗人参の産地だった。当然住民の所得が高かったので、女性が身づくろいに特別に気を使っていた。>

→残虐な日本は、韓国人たちが高麗人参で高い所得を得ているというのに、どうして収奪せずに黙認していたのか?残虐な日帝時代に、韓国の女性たちがのんきに身づくろいに気を使っていたというのはどういうことだ?


<格別なビジネスセンスを備えていたユンさんは、直接ツバキ油を絞って作った頭の油を売って利益を得て…最初から昌盛商店という会社を作った。事業が本格化すると、ソソンファンも忙しくなった。>

→残虐な日本が、韓国人、しかも女性が事業で常勝疾走しているというのに、どうして収奪せずに放置していたのか?これを信じろというのか?


<昌盛商店の製品は、1941年に開城初のデパートである3階の洋館の「キムジェヒョンデパート」に入店した。>

→残虐な日帝時代に、韓国人が作った「キムジェヒョンデパート」というものがあったって?今日の私たち韓国人の常識から見ると、明らかに嘘である。


<そんな彼に危機が迫った。21歳の1944年に強制徴用されたものである。天運があったのか、日帝が滅びたので、ソソンファンは1年半で奇跡的に生還した。>

→今日の韓国人(マスコミ記者など)が大袈裟だということは知っておくべきである。戦場に連れて行かれたわけじゃなく、安全な後方で(合法的に)徴用されて動員されたものなのに、まるで徴用に行けばほぼ死ぬかのように、「1年半ぶりに奇跡的に生還した。」というふうに、ファクトとはあまりにもかけ離れた表現を使っている。


日帝のために怒っている韓国人たちは、逆説的に本当に日帝時代を生きていた韓国人たちではなく、「作られた日本の姿」を一方的に洗脳された今日の韓国人だ。

同じように日帝時代を経験した台湾の人々は、むしろ日本に好感を持っている。
台湾の人々が間違っているのか、韓国人が間違っているのか、明らかにどちらかは正常ではない。


バンダービルド

引用ソース
https://www.chogabje.com/toron/toron22/view.asp?idx=&id=152554&table=TNTRCGJ⊂_table=TNTR01CGJ&cPage=1



현재의 한국인이 일본에서 조소되고 있는 이유

팩트 자료를 통해서 추측하는 일제 시대

반들 빌드

월간 조선 8월호에는, 「문카프시크가 다리를 사용하고 쓰는 한국인 연대기 WHO IS WHO」라고 하는 기사로, 한국의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아모레파시픽크」를 창업한 「소손판」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 일제 시대의 부분만큼을 발췌하면 이하이다.

< 고 소손판(서성환·1924~2003) 아모레파시픽크 창업자는, 1924년에 황해도 오모테야마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소손판이 초등학교 시절의 1930년에 개성으로 이동하고 갔다.
가족의 생계를 담당한 것은 어머니의 윤드크톨씨였다.

윤씨는 잡화를 취급해,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개성은 고려 인삼의 산지였다.

당연히 주민의 소득이 비쌌기 때문에, 여성이 몸검은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각별한 비즈니스 센스를 갖추고 있던 윤씨는, 직접 동백유를 짜 만든 머리가 수다로 헛시간을 보내고 이익을 얻고, 1932년부터 미안수를 직접 만들었다.

이것에 머무르지 않고, 크림, 분 등, 화장품의 제조의 종류나 항목을 펼쳐 이것에 소년의 소손판은 「사용」을 해 도왔다.

윤씨는 최초부터 창성 상점이라고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사업이 본격화하면, 소손판도 바빠졌다.
그는 오전중에 도시락 셋을 자전거에 실어 일을 시작했다.

일출전에 개성을 출발해, 화장품의 제조에 필요한 것을 사러 갔던 것이다.

쥬우케이 보통 학교를 졸업한 1939년부터, 예나리에20리의 상로에 따라서, 자전거로 화장품을 판매했다.

판매를 하면서, 그는 유통에 눈을 떴다.

10대의 소년 소손판은 개성으로부터 자전거로 서울 남대문 시장까지 가, 글리세린과 향료와 하늘의 보틀을 사, 개성으로 돌아왔다.

창성 상점의 제품은, 1941년에 개성 첫 백화점인 3층의 양옥의 「김 재현 백화점」에 입점했다.

백화점에 코너를 개설해, 스스로의 화장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의 제품까지 위탁판매 했다.

사용으로부터 시작해 판매나 유통까지 몸에 익힌 소손판은, 최종적으로 화장품의 제법까지 모친으로부터 배웠다.

물과 기름의 혼합 비율, 가열의 정도, 가성 소다의 비율에 응한 미묘한 차이까지 몸에 익힌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다가왔다.

21세의 1944년에 강제 징용 된 것이다.
천운이 있었는지, 일제가 멸망했으므로, 소손판은 1년반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후략)…>


일제 시대를 직접 산 적이 없는 오늘이 많은 한국인들은, 일제 시대를 「암흑 시대」나 「도탄의 시기」등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이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간악하게 한국을 통치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인은, 일본이 당시 한국인을 탄압해, 말살해, 고문해, 연행하고 노예로 해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사의 내용을 보자.


<개성은 고려 인삼의 산지였다.당연히 주민의 소득이 비쌌기 때문에, 여성이 몸검은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잔학한 일본은, 한국인들이 고려 인삼으로 비싼 소득을 얻고 있다는데, 어째서 수탈 하지 않고 묵인하고 있었는지?잔학한 일제 시대에, 한국의 여성들이 태평하게 몸검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것은 무슨 일이야?


<각별한 비즈니스 센스를 갖추고 있던 윤씨는, 직접 동백유를 짜 만든 머리가 수다로 헛시간을 보내고 이익을 얻어…최초부터 창성 상점이라고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사업이 본격화하면, 소손판도 바빠졌다.>

→잔학한 일본이, 한국인, 게다가 여성이 사업으로 연승 질주 하고 있다는데, 어째서 수탈 하지 않고 방치해 있었는지?이것을 믿으라고 말하는지?


<창성 상점의 제품은, 1941년에 개성 첫 백화점인 3층의 양옥의 「김 재현 백화점」에 입점했다.>

→잔학한 일제 시대에, 한국인이 만든 「김 재현 백화점」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도?오늘의 우리 한국인의 상식에서 보면, 분명하게 거짓말이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다가왔다.21세의 1944년에 강제 징용 된 것이다.천운이 있었는지, 일제가 멸망했으므로, 소손판은 1년반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오늘의 한국인(매스컴 기자등)이 과장이라고 하는 것은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전장에 데리고 가진 것이 아니고, 안전한 후방에서(합법적으로) 징용 되어 동원된 것인데, 마치 징용에 가면 거의 죽는 것 같이, 「1년반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라고 하는 식으로, 팩트와는 너무 동떨어진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일제를 위해서 화나 있는 한국인들은, 역설적으로 정말로 일제 시대를 살아 있던 한국인들이 아니고, 「만들어진 일본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세뇌된 오늘의 한국인이다.

똑같이 일제 시대를 경험한 대만의 사람들은, 오히려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대만의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는지, 한국인이 잘못되어 있는지, 분명하게 어느 쪽인지는 정상적이지 않다.


반들 빌드

인용 소스
https://www.chogabje.com/toron/toron22/view.asp?idx=&id=152554&table=TNTRCGJ⊂_table=TNTR01CGJ&c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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