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以下は昨年私が上げたスレなのですが、これは1985年1月1日に中央日報に掲載された司馬遼太郎のエッセイからの抜粋したものです。


 つまりちょうど33年前に贈られた日本からのメッセージだと云ってもいいものです。その内容は今読み直してけっして古びていない、というよりもさらに一層重要な意味を持つものとなっていることがわかるでしょう。


 尤も日本人にはその意味が理解できても、朝鮮人にとっては何のことやらちんぷんかんぷんであるかもしれませんが。


そんなことはさておき、今年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司馬 太郎(しば りょうたろう、1923年大正12年)8月7日 - 1996年平成8年)2月12日)は、日本の小説家、ノンフィクション作家、評論家。本名、福田 定一(ふくだ ていいち)。大阪府大阪市生まれ。筆名の由来は「司馬遷(はるか)に及ばざる日本の者(故に太郎)」から来ている。

産経新聞社記者として在職中に、『梟の城』で直木賞を受賞。歴史小説に新風を送る。代表作に『竜馬がゆく』『燃えよ剣』『国盗り物語』『坂の上の雲』など多くがあり、戦国・幕末・明治を扱った作品が多い。『街道をゆく』をはじめとする多数のエッセイなどでも活発な文明批評を行った。




『海遊録』という本があります。18世紀初頭、徳川日本が招待した形式の外交官(通信使)として来日した申維翰の日本紀行文である。
ここでは「群衆」ということばさえ「群倭」と書かれている。衆とは多数の人間という意味だが、日本人はpeopleですらない。これが儒教の華夷における文明意識である。

申維翰は卓越した儒学者であったが、価値観は華夷意識しかなく、それがかれの聡明な目を曇らせ、18世紀の日本社会の本質を見落とした。私がもし維翰先生の従者であったなら、こう助言するだろう。

「倭奴の社会体制は儒教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国民の識字率は70%を越えています。国民の10%は士族で、これは識字階級です。問題は、農、商、工の人たちが文字を知っていることです。維翰先生がごらんになった商工都市の大阪がその好例です。この都市の私塾が使っている初等教科書だけで、1万種類程も刊行されているのです。かれらはあるいは聖賢の道を知ることは少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文字とソロバンを知らなくては、商店に勤めても番頭(幹部)になれず、商船に乗っても船頭(船長)に出世することが出来ないのです。だから文字を学びます」

またこうも助言しなくてはならない。

「日本は、武士が支配する封建社会である反面、同時代のヨーロッパよりも精密で旺盛な商品経済が発達しています。それは、前期資本主義とでもいうべきものです。資本主義が人類に教えたものは個人の確立と自由ですが、無論ヨーロッパほどではないにせよ、この18世紀初頭の日本にもかすかにその萌芽が見られます。」

さらに私は大観察者である維翰先生にこうも助言したいのである。

「日本には270ほどの藩があって、たがいに産業と学問を競い合っています。藩には、儒官がいます。かれらは朝鮮の朱子学者のようにイデオロギッシュではありません。かれらのあいだに、徂徠学という一種の人文科学的思考法がはびこっています。物を見るのに、宋学的な観念論で見ず、もっと裸眼で見ようという考え方です。これは商品経済の照り映えというべきものかもしれません。なぜなら、商業は人間に意外な智慧をつけました。物を見るについて質と量と流通で見ようという習性です。この習性がまわりまわって学者や思想家を刺激したのでしょう」

またこうも言いたい。

「倭奴どもは儒教の家族絶対主義を薄くしか持って織りませんので、町人倍、番頭になれば店のために自分の家族をも犠牲にして忠義を励みます。それは、各藩の藩士が、自分の家族を顧みずに藩のために働いているのと同じです。倭は”華”ではありませんが、それなりの価値体系をもつ社会ということが出来ます。幸いにも倭は鎖国をしております。将来、万一、かれらが鎖国をすてたとき、鎖国下で蓄積され続けていた石のようなエネルギー(energy)がおそらく大きく爆発するでしょう。その時我が国に害をもたらすかもしれません。我が国としては倭の社会の本質をよく見、よく対応せねば、大変な事になります。我が国が”華”であることに安住していていいのでしょうか。儒教もまた時代とともに変わるべきものです。儒教の短所は人間の知的好奇心を抑圧するところであります。朱子学的瑣末主義におちいっている朝鮮教養人たちに、少し野蛮ながら、風穴を開ける必要があ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ここで気分転換のために近景を述べる。

私の友人に在日朝鮮人がいて、時々散歩を共にする。疲れると、そのあたりの喫茶店に入ってコーヒーをのむ。この友人は光復(1945年)のとき28,9歳で大いに政治に熱中し、中年になって熱が冷めた。ある時話題がかれの母国の国語のこととなった。

「キタ(平壌)は、日本語を一掃しましたよ。いっさい使っていない」

「日本語って、どんな日本語です」

「日本製の漢語」

というので私は首をかしげた。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いう国号そのものが「朝鮮」を除いて全部日本人が明治維新後につくった西洋語の対訳語なのである。民主主義も人民も共和国ももそうである。

韓国にもそういう傾向があるらしい。repubulic の対訳を辛亥革命のとき中国は「民国」と訳したが、韓国は日本役の共和国よりもその方を採った。私がもし日本人でなく宇宙人なら、

「どちらでもいいことじゃないか」

といったろう。が、侵略の前科をもつ日本人だから、いくら友人でもそうは言えなかった。が、別のことをいった。

「中国は清末以来、日本が明治維新後、訳した西洋語を無制限に導入したよ。特に新中国樹立後はその傾向は圧倒的になった。 -中略-科学用語は全部そうだといっていい」

漢字は文明なのだ、と私はいった。

-中略-

「文明はその運動律として交流がある。交流無くして文明など成立しないし、その国の進歩もない。日本が憎いという感情はわかるが、本来共用されるべき文明まで拒否することはない」

そこまでいって、

「そんな弱いことを言っていては、国の体質はつよくならない」

とまで言おうと思ったが、遠慮をした。




        司馬遼太郎 著 『司馬遼太郎が考えたこと』13 新潮社文庫73頁~78頁「日韓断想」より抜粋




これは南朝鮮人の求めに応じて書かれたもので、1985年1月1日、元旦に中央日報に掲載されたエッセイである。

泉下の司馬遼太郎はどのような想いで、現在大いに迷走中の南朝鮮を眺めていることだろうか?





             


          あひゃひゃひゃ!


재게시바 료타로가 한국인에 준 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이하는 작년내가 올린 스레입니다만, 이것은 1985년 1월 1일에 중앙 일보에 게재된 시바 료타로의 에세이로부터의 발췌한 것입니다.


 즉 정확히 33년전에 주어진 일본으로부터의 메세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입니다.그 내용은 지금 다시 읽어 결코 오래되지 않은, 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한층 더 한층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우도 일본인에게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도, 한국인에 있어서는 무슨 일이든지 횡설수설일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일은 접어두어, 금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바 타로(잔디 료 타로,1923년(타이쇼 12년)8월 7일- 1996년(헤세이 8년)2월 12일)은, 일본의 소설가, 논픽션 작가, 평론가.혼나,후쿠다정1(닦는이다라고 좋은).오사카부오사카시 태생.필명의 유래는 「사마천(하루카)에 이르러 바구니 일본의 사람(고로타로)」로부터 와있다.

산케이신문사 기자로서 재직중에, 「효의 성」에서나오키상을 수상.역사 소설에 신풍을 보낸다.대표작에 「용마가 간다」 「불타서 검」 「국 훔쳐 이야기」 「사카노우에노쿠모」 등 대부분이 있어, 전국·에도막부 말기·메이지를 취급한 작품이 많다.「가도를 간다」를 시작으로 하는 다수의 에세이등에서도 활발한 문명 비평을 실시했다.




「해 유록」이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18 세기 초두, 토쿠가와 일본이 초대한 형식의 외교관(통신사)으로서 일본 방문한 신유한의 일본서기 작문이다.
여기에서는 「군중」이라고 하는 말마저 「군 야마토」라고 쓰여져 있다.사람들과는 다수의 인간이라고 하는 의미이지만, 일본인은 people 조차 아니다.이것이 유교의 화이에 있어서의 문명 의식이다.

신유한은 탁월한 유학자였지만, 가치관은 화이의식 밖에 없고, 그것이 그의 총명한 눈을 흐리게 해 18 세기의 일본 사회의 본질을 간과했다.내가 만약 유한선생님의 종자였다면, 이렇게 조언 할 것이다.

「야마토놈의 사회체제는 유교가 아닙니다.그러나 국민의 문맹퇴치율은 70%를 넘고 있습니다.국민의 10%는 사족으로, 이것은 문맹퇴치 계급입니다.문제는, 농, 상, 공의 사람들이 문자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유한선생님이 보신 상공 도시의 오사카가 그 좋은 예입니다.이 도시의 사숙이 사용하고 있는 초등 교과서만으로, 1만 종류정도도 간행되고 있습니다.그들은 있다 있어는 성현의 길을 아는 것은 적을지도 모릅니다만, 문자와 주판을 모르면, 상점에 근무해도 점장(간부)이 되지 못하고, 상선을 타도 사공(선장)에 출세할 수 할 수 없습니다.그러니까 문자를 배웁니다」

또 이렇게도 조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무사가 지배하는 봉건사회인 반면, 동시대의 유럽보다 정밀하고 왕성한 상품 경제가 발달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전기 자본주의라고도 말해야 할 것입니다.자본주의가 인류에게 가르친 것은 개인의 확립과 자유롭습니다만, 물론 유럽만큼은 아니든, 이 18 세기 초두의 일본에도 희미하게 그 맹아를 볼 수 있습니다.」
한층 더 나는 대관찰자인 유한선생님에게 이렇게도 조언 하고 싶기 때문에 있다.

「일본에는 270 정도의 번이 있고, 서로 산업과 학문을 서로 경쟁하고 있습니다.번에는, 유관이 있습니다.그들은 조선의 주자학자와 같이 이데오로깃슈가 아닙니다.그들의 사이에, 왕래학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문과학적 사고법이 횡행하고 있습니다.물건을 보는데, 송학적인 관념론으로 보지 않고, 더 맨눈의 시력으로 보려는 생각입니다.이것은 상품 경제가 빛나라고 해야 할 물건일지도 모릅니다.왜냐하면, 상업은 인간에게 뜻밖의 지혜를 붙였습니다.물건을 보는에 임해서 질과 양으로 유통으로 보려는 습성입니다.이 습성이 돌고 돌아 학자나 사상가를 자극했겠지요 」

또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야마토놈들은 유교의 가족 절대 주의를 얇고 밖에 가지고 짜지 않으므로, 읍인배, 점장이 되면 가게를 위해서 자신의 가족도 희생하고 충의를 힘씁니다.그것은, 각 번의 번사가,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지 않고 번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야마토는”화”가 아닙니다만, 그만한 가치 체계를 가지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다행히도 야마토는 쇄국을 하고 있습니다.장래, 만일, 그들이 쇄국을 내버렸을 때, 쇄국하에서 축적계속 되고 있던 돌과 같은 에너지(energy)가 아마 크게 폭발하겠지요.그 때 우리 나라에 해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우리 나라로서는 야마토의 사회의 본질을 잘 봐, 자주(잘) 대응하지 않으면, 대단한 일이 됩니다.우리 나라가”화”인 것에 안주 하고 있어 좋은 것일까요.유교도 또 시대와 함께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유교의 단점은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억압하는 (곳)중에 있어요.주자학적쇄말 주의에 빠지고 있는 조선 교양인들에게, 조금 야만스러우면서, 바람 구멍을 열 필요가 있다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기분 전환을 위해서 근경을 말한다.

나의 친구에게 재일 한국인이 있고, 가끔 산책을 같이 한다.지치면, 그 근처의 찻집에 들어가고 커피를 마신다.이 친구는 광복(1945년) 때 28,9세에 많이 정치에 열중해, 중년이 되고 열이 식었다.있다 때 화제가 그의 모국의 국어로 되었다.

「키타(평양)는, 일본어를 일소 했어요.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어는, 어떤 일본어입니다」

「일본제의 한문어」

라고 하므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국호 그 자체가 「조선」을 제외해 전부 일본인이 메이지 유신 후에 만든 서양어의 대역어인 것이다.민주주의도 인민도 공화국도도 그렇다.

한국에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답다.repubulic 의 대역을 신가이혁명 때 중국은 「민국」이라고 번역했지만, 한국은 일본역의 공화국보다 그 분을 뽑았다.내가 만약 일본인이 아니고 우주인이라면,
「어디라도 좋은 일이 아닌가」

라고 했지.하지만, 침략의 전과를 가지는 일본인이니까,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른 일을 말했다.

「중국은 키요스에 이래, 일본이 메이지 유신 후, 번역한 서양어를 무제한하게 도입했어.특히 신중국 수립 후는 그 경향은 압도적으로 되었다. -중략-과학 용어는 전부 그렇다고 하고 좋다」

한자는 문명이다, 라고 나는 말했다.

-중략-

「문명은 그 운동률로서 교류가 있다.교류 없게 해 문명 등 성립하지 않고, 그 나라의 진보도 없다.일본이 밉다고 하는 감정은 알지만, 본래 공용되어야 할 문명까지 거부할 것은 없다」
거기까지 말하고,

「그렇게 약한 말을 해서는 , 나라의 체질은 강하게 안 된다」

와까지 말하려고 했지만, 사양을 했다.




        시바 료타로저 「시바 료타로가 생각한 것」13 신쵸오샤 문고 73 페이지~78페이지 「일한 단상」보다 발췌




이것은 남한국인의 요구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 1985년 1월 1일, 설날에 중앙 일보에 게재된 에세이이다.

황천의 시바 료타로는 어떠한 구상으로, 현재 많이 미주중의 남조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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