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治下の近代的教育課程でハングル教育が反映されたことはまことにさいわいな事だ.
しかし, ハングルを韓国の国文でまたいかしたのが純然と日製の業績だという主張は無理がある.
そして現在のハングル国語国文学は周時経(周時経) 先生と朝鮮語学会の成果を正統学脈と研究の基礎にしている.
*もちろん一体治下で日本人言語学者たちによってもすごく多い研究が進行されたことも事実だ.
* 90年代までも韓国の国語国文学分野の研究者に日本留学を通じる言語学研究が必須だった.
/ 当時該当の分野のどの学者に “私たちの文字と私たちの言語を研究するにも日本に留学しなければならない... 恥ずかしい事だ. しかし, 彼らの言語学がずっと発達していて関連資料も豊かなので仕方ない.” という歎息を聞いた経験がある.
==========================================
1896年ハングル表記の独立新聞創刊(ソ・ジェピル/徐載弼, 周時経/周時経)
< 1905>
1906年大韓国語文法著述及び発刊 (周時経/周時経, 学生用教育教材)
1907年国文研究会設立(池錫永/池錫永 など)
1909年小学校国語教科で “国文初学” 著述及び発刊(周時経/周時経)
<中間省略>
1921年朝鮮語研究会設立(チャン・ジヨン(張志暎)・キム・ユンギョン(金允経) など周時経先生の弟子たち)
1929年朝鮮語辞書編纂作業着手
1931年朝鮮語学会改称
1933年ハングル綴字法統一案発表(朝鮮語学会)
そうだったら...? 韓国側の日帝が韓国語とハングルを抹殺しようと思ったという主張の根拠は?
1937年から 日帝は 内鮮一体 政策施行 /
- 朝鮮語出刊物, 新聞など段階的廃止
- 1942年朝鮮語学会事件: 朝鮮語学会を独立運動反国家団体で規定して学会会員たちを逮捕, 拘禁した事件
学会会員 33人を逮捕 12人は裁判回附
予審判決文一部 ” 固有言語は民族意識を養成することなので朝鮮語学会の辞書編纂は朝鮮民族精神を維持する民族運動の形態だ…… .”という咸興地方裁判所の予審終決決定文によって 「治安維持法」の謨反適用”
当時発刊直前だった “朝鮮語辞書” の作業は腰砕けになって, 1957年に至ってからこそ 6冊の “クンサゾン” 発刊
===============================================
ハングル使用とハングルに対する近代的研究は 旧韓末に朝鮮人学者たちから手始め
日帝治下でもハングル教育は相当期間Yuji / 朝鮮人学者及び学術団体と別に日本人学者たちによるハングル研究も相当部分進行されたことも事実
しかし, 30年代中盤から 日帝の 朝鮮政策変化に従ってハングル使用の抑制が始まる.
終り.
일제치하의 근대적 교육과정에서 한글 교육이 반영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한글을 한국의 국문으로 다시 되살린 것이 순전히 일제의 업적이다 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현재의 한글 국어국문학은 주시경(周時經) 선생과 조선어 학회의 성과를 정통 학맥과 연구의 기초로 삼고 있다.
*물론 일체치하에서 일본인 언어학자들에 의해서도 대단히 많은 연구가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 90년대까지도 한국의 국어국문학 분야의 연구자에게 일본 유학을 통한 언어학 연구가 필수였다.
/ 당시 해당 분야의 어느 학자에게 "우리 문자와 우리 언어를 연구하는데도 일본에 유학해야 한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학이 훨씬 발달해 있고 관련자료도 풍부하므로 어쩔 수 없다." 라는 탄식을 들은 경험이 있다.
==========================================
1896년 한글표기의 독립신문 창간(서재필/徐載弼, 주시경/周時經)
< 1905>
1906년 대한 국어 문법 저술 및 발간 (주시경/周時經, 학생용 교육교재)
1907년 국문 연구회 설립(지석영/池錫永 등)
1909년 소학교 국어교과서 "國文初學" 저술 및 발간(주시경/周時經)
<중간 생략>
1921년 조선어 연구회 설립(장지영(張志暎)·김윤경(金允經) 등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
1929년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 착수
1931년 조선어 학회 개칭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발표(조선어학회)
그렇다면...? 한국측의 일제가 한국어와 한글을 말살하려 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1937년 부터 日帝는 內鮮一體 정책 시행 /
- 조선어 출간물, 신문 등 단계적 폐지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학회 회원들을 체포, 구금했던 사건
학회 회원 33명을 체포 12명은 재판 회부
예심 판결문 일부 "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 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라는 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종결 결정문에 따라 「치안유지법」의 내란죄 적용"
당시 발간 직전이었던 "조선어 사전" 의 작업은 중단되고, 1957년에 이르러서야 6권의 "큰사전" 발간
===============================================
한글사용과 한글에 대한 근대적 연구는 舊韓末에 한국인 학자들로 부터 시작
일제치하에서도 한글 교육은 상당기간 유지 / 한국인 학자 및 학술단체와 별도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한글 연구도 상당부분 진행된 것도 사실
하지만, 30년대 중반부터 日帝의 朝鮮정책 변화에 따라 한글 사용의 억제가 시작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