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かる先輩の父親だ. もう 15余年前に 卒した.
その有名なサハリン鉱夫の労役をした方
鉱夫の仕事は非常に疲れてだるい. 強制で始まったのか, 本人の意志だったかは話聞けなかった.
たちは話は独立の時期
朝鮮に帰る 船に乗るために港に出て故郷の友達に会う.
友達の急な頼みで自分に割当された 船を譲歩して, 自分はもっと待つ.
悲劇的な消息. 故郷の友達に譲歩した自分の 船, その船長の日本海軍将校が敗戦の鬱憤のためだったのか...
船を自爆, 罪のない幾多の乗船者たちも彼の彼の世同行になった.
混乱の状況に 船の出港はしきりに遅くなって, 数ヶ月後故郷に到着する.
自分の葬式が開かれていた.
故郷の家族たちは 船の自爆消息を聞いて, 彼の非命横死を確信したのだ.
朝鮮にはこんな諺がある.
”暮して祭祀を受ければ, 長寿する.”
追加手当てのお金は受けなかったが, 基本給料は皆受けたとなさる.
”戦争の混乱の中にそのお金でももらったから満足する.”
その方は元気に来ると言う暮したし,
日韓基本條約の補償金内容もご存じだったが, 国家の発展のために使われたし, 子孫たちが飢えないで暮すようになったから..
私の努力が役に立ったことではないか? と むしろ誇らしいと言った.
終り.
아는 선배님의 부친이시다. 이미 15여년전에 卒하셨다.
그 유명한 사할린 광부의 노역을 하셨던 분
광부의 일은 매우 고달프다. 강제로 시작되었는지, 본인의 의지였는지는 이야기 못들었다.
들은 이야기는 독립의 시기
조선으로 돌아가는 船를 타기 위해 항구에 나와 고향의 친구를 만난다.
친구의 급한 부탁으로 자신에게 배정된 船을 양보하고, 자신은 더 기다린다.
비극적인 소식. 고향친구에게 양보한 자신의 船, 그 선장의 일본해군 장교가 패전의 울분때문이었는지...
船를 자폭, 무고한 수많은 승선자들도 그의 저승 동행이 되었다.
혼란의 상황에 船의 출항은 자꾸만 늦어지고, 수개월 후 고향에 도착한다.
자신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고향의 가족들은 船의 자폭 소식을 듣고, 그의 비명횡사를 확신했던 것이다.
조선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살아서 제사를 받으면, 長壽한다."
추가 수당의 돈은 못 받았지만, 기본 급료는 모두 받았다고 하신다.
"전쟁의 혼란 속에 그 돈이라도 받았으니 만족한다."
그 분은 건강하게 오래 사셨고,
한일기본조약의 보상금 내용도 알고 계셨지만,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었고, 후손들이 굶지않고 살게 되었으니..
나의 노력이 도움이 된 것 아닐까? 라고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