禹範坤(ウ・ポムゴン)【ギネスに短時間大量殺人犯として認定された男】
禹 範坤(ウ・ポムゴン、우범곤, 1955年2月24日 - 1982年4月27日)は、1982年4月26日から翌日にかけて、韓国南部の慶尚南道宜寧郡宮柳面で57人(55人、56人、61人などの説もある)を殺害、35人に重軽傷を負わせた事件を起こした犯罪者である。
1982年4月26日、警察官である禹範坤は酒に酔って帰宅したところ、同棲していた女性が禹の胸に止まったハエを取るために叩いたことがきっかけとなって口論になり、宜寧警察署宮柳支署(現在の宮柳治安センター)へ戻るなり武器庫に入り込んでウイスキーを多量に飲み泥酔状態となった。そして午後9時30分頃、武器庫からM2カービン銃2丁と実弾180発、手榴弾7発を持ち出した。
禹範坤は、まず警察署の近くにある郵便局に押し入って電話交換手3人をカービン銃で射殺した。その後に路上に飛び出して近隣の5つの集落の家々を次々に回り、手当たり次第に家人に対してカービン銃を乱射し、また閉店前の市場など人の集まる場所に手榴弾を投げ込み、爆発で驚いて表へ飛び出してきた人達に対してカービン銃を乱射して次々と村人を射殺した。 結局、禹範坤は翌日の午前2時頃まで付近一帯をカービン銃を乱射して回り、虐殺の限りを尽くして5集落合計56名の人々を殺害した。
禹範坤がまず最初に郵便局に押し入って電話交換手をカービン銃で射殺したのは外部との連絡を絶つ為であり、これにより、この無差別大量殺人の一報が外部に伝わったのは、事件発生後1時間以上も経った午後10時40分だった。そして武装警官が被害の発生した現場へ到着したのは、さらに遅れて午後11時50分頃となったが、この時には既に禹範坤は付近の集落での殺人をほぼ終えた後であり、警察の対応は完全に後手に回ったかたちとなってしまった。
武装警察隊が到着したのち禹範坤は武装警官により山に追い込まれた。日付が変わって4月27日午前5時30分頃、禹範坤は残りの手榴弾2発の安全ピンを抜くと、最後の犠牲者となった人質3名を抱きかかえて自爆した。
現職警官が犯したワールド・レコードの大量殺人。ノーガードだった武器庫。おまけに事件当夜、当直警官が遊興で不在等、問題は山積みで、チョン・ドゥファン政権を揺るがす騒ぎにまで発展した。最終的に時の内務長官は辞任を余儀なくされ、その後釜に据わったのが次期大統領のノ・テウ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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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ギネス記録にはこういったものが沢山あるんだろうね(^^;
우범고(우·폼곤)【기네스에 단시간 대량 살인범으로서 인정된 남자】
우범고(우·폼곤,???, 1955년 2월 24일 - 1982년 4월 27일)은, 1982년 4월 26일부터 다음날에 걸치고, 한국 남부의 경상남도 의녕군궁유면에서 57명(55명, 56명, 61명등의 설도 있다)을 살해, 35명에게 중경상을 입게 한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이다.
1982년 4월 26일, 경찰관인 우범고는 술에 취해 귀가했는데, 동거하고 있던 여성이 우의 가슴에 그친 파리를 취하기 위해서 두드렸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말다툼이 되어, 의녕경찰서궁유지서(현재의 궁유치안 센터)에 돌아오자 마자 무기고에 비집고 들어가 위스키를 다량으로 마셔 만취 상태가 되었다.그리고 오후 9시 30분 무렵, 무기고로부터 M2카빈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꺼냈다.
우범고는, 우선 경찰서의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 침입해 전화 교환수 3명을 카빈총으로 사살했다.그 후에 노상에 뛰쳐나와 근린의 5개의 취락의 집들을 차례차례로 돌아, 닥치는 대로에 가인에 대해서 카빈총을 난사해, 또 폐점전의 시장 등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수류탄을 던져 , 폭발로 놀라고 표에 뛰쳐나온 사람들에 대해서 카빈총을 난사해 차례차례로 마을사람을 사살했다.결국, 우범고는 다음날의 오전 2 시경까지 부근 일대를 카빈총을 난사해 돌아, 학살의 한계를 다해 5 취락 합계 56명의 사람들을 살해했다.
우범고가 우선 최초로 우체국에 침입해 전화 교환수를 카빈총으로 사살한 것은 외부와의 연락을 끊기 때문에(위해)여, 이것에 의해, 이 무차별 대량 살인의 소식이 외부에 전해진 것은, 사건 발생 후 1시간 이상이나 지난 오후 10시 40분이었다.그리고 무장 경관이 피해의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것은, 한층 더 늦어 오후 11시 50분 무렵이 되었지만, 이 때에는 이미 우범고는 부근의 취락에서의 살인을 거의 끝낸 다음에 있어, 경찰의 대응은 완전하게 선수를 빼앗긴 형태가 되어 버렸다.
무장 경찰대가 도착한 후 우범고는 무장 경관에 의해 산에 몰렸다.일자가 바뀌어 4월 27일 오전 5시 30분 무렵, 우범고는 나머지의 수류탄 2발의 안전핀을 뽑으면, 마지막 희생자가 된 인질 3명을 껴안아 자폭했다.
현직 경관이 범한 월드·레코드의 대량 살인.노우 가이드였던 무기고.게다가 사건 이 밤, 당직 경관이 유흥으로 부재등 , 문제는 산적으로, 정·두판 정권을 흔드는 소란에까지 발전했다.최종적으로 때의 내무 장관은 사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그 후임에게 거깬 것이 차기대통령의 노·태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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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네스 기록에는 이러한 것이 많이 있다 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