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の乾いた感性が故郷の暖かい人の心に昇華される中秋が3日先に迫った。都心各地ではきのうから始まった長い連休で早目に故郷に向かう人たちの足も忙しい。高速道路は自動車で混雑し、バスターミナルと空港は贈り物の包みを抱えた帰省客であふれた。以前と違い故郷に向かう人の手にはスマートフォンが握られ、祭祀を行う所が観光地のコンドミニアムに変わっても、家族と一緒に過ごすという秋夕本来の意味は変わっていない。
もともと秋夕は1年間の豊かな収穫をもたらしてくれた土地と先祖に感謝の気持ちを示す農耕社会の文化だった。しかし現代社会で秋夕はその意味が変わった。都市生活に疲れた市民は自身のルーツを探し、乾いた暮らしの戦線をかき分けて行く勇気を充電して帰ってくる。人生の根源を再び確認することにより自分を存在させてくれた親に感謝し、子どもに温故知新の知恵を教えることが秋夕の真の意味といえる。
私たちの胸の片隅にはいつも故郷に置いてきた切ない心が置かれている。まさに親に対する感謝と愛だ。喜寿をはるかに越えた老母は依然として40代の子どもが食べることだけ見ても胸がいっぱいだ。離れて住んでいていつも暖かいごはん1食も準備してあげられないことに心を痛める。自分のすべてを差し出してもなにもしてあげられないとうなだれる。額には過ぎ去った歳月に波風を耐え抜いたしわが子どもに対する愛ほどに深くえぐられている。
いくら人工知能(AI)が人の仕事に代わり、自動運転車が道路を走り回る社会がくるにしても子どもに対する親の愛は変わらない。親は自分のルーツであり、本質であり、子どもにとって自分はその根をつないでくれる幹となる。そのために伝統的に「孝」は韓国社会が追求する最優先の価値徳性だった。だれしもルーツがあり、またそのだれもがだれかの根源になるためだった。
しかし産業社会の発達とともに孝は後回しにされた。知識の発達が遅かった時代には大人になるということ自体がそれだけで大きな権威を持った。年輪を通じて積んだ経験と知恵がそのまま知識だったためだ。だが社会が複雑に発展し知識の半減期は速くなり、過去に大人が持っていた経験は過去ほどには及ばない。
そうして自然に孝の価値も薄まり始めた。一方では孝を旧態依然な考え、かたくなな価値で片付けたりもした。最近国会で発議された人格教育振興法改正案でも人格徳性のひとつである孝を削除する内容が含まれ議論が起きた。民主市民社会を指向する現代の教育理念と方向が合わないという理由だった。ところで本当に孝は現代社会に大きな意味のない化石化された価値だけなのか。
人間が生まれて初めて迎える社会は家族だ。共同体の最初の構成員はまさに親である。その中で私たちは正しい市民として生きていくのに必要なさまざまな徳性と価値を学ぶ。すなわち親を敬うことで相手に対する礼儀と尊重の心を学び、兄弟姉妹と仲良くする過程で共同体に必要な協業の価値を悟る。これらすべての始まりが孝だ。すなわち孝は市民教育の出発であるわけだ。
特に昨今のような高齢化社会で孝は単純に子どもが親を手厚く世話することだけを意味しない。一緒に高齢になった子どもを親が正当な礼節を守って接し共生の関係を模索するのも現代的な孝の概念とみることができる。したがって人格教育振興法で孝を過去の化石と感じて除いてしまうのではなく、現代社会に合うよう新しい方向と解釈してこれを広めようとする努力が必要だ。
現在私たちが追求する人格教育もやはり過ぎた時代の旧態依然な注入式倫理教育のように見えてはならない。内面の正しい品性を育てる道徳性教育、共同体に寄与できる市民に育てる社会性教育、他人と共感して自身の情緒を健康に作り上げられる感性教育などが複合的にな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うした前提が土台になってこそ市民教育も人格教育という大きな範疇の中で行うことができる。
私たちはみんなだれかの子どもだが、まただれかの親だ。自身の親すら心を込めて敬えない人が社会に出て他人に配慮し尊重することはできないものだ。孝は人格教育だけでなく市民教育の最も核心的な価値だ。(中央SUNDAY第551号)
身体髪膚これを父母に受くあえて毀傷せざるは孝の始めなり
秋夕の連休で整形外科医院が
大忙しの南朝鮮人のくせに
偉そうな与太記事を飛ばさないでね(嗤)
あひゃひゃひゃ!
일상이 마른 감성이 고향의 따뜻한 사람의 마음에 승화되는 중추가 3일 먼저 다가왔다.도심 각지에서는 어제부터 시작된 긴 연휴로 빨리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다리도 바쁘다.고속도로는 자동차로 혼잡해, 버스 터미널과 공항은 선물의 소포를 안은 귀성객으로 넘쳤다.이전과 달라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의 손에는 스마트 폰이 잡아지고 제사를 실시하는 곳이 관광지의 콘도미니엄으로 바뀌어도, 가족과 함께 보낸다고 하는 추석 본래의 의미는 변함없다.
원래 추석은 1년간의 풍부한 수확을 가져와 준 토지와 선조에게 감사의 기분을 나타내는 농경 사회의 문화였다.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추석은 그 의미가 바뀌었다.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은 자신의 루트를 찾아, 마른 생활의 전선을 밀어 헤쳐서 가는 용기를 충전해 돌아온다.인생의 근원을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존재시켜 준 부모에게 감사해, 아이에게 온고지신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추석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슴의 한쪽 구석에는 언제나 고향에 두고 온 안타까운 마음이 놓여져 있다.확실히 부모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다.희수를 아득하게 넘은 노모는 여전히 40대의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가슴이 가득하다.떨어져 살고 있어 언제나 따뜻한 밥 1식이나 준비 해 줄 수 없는 것에 마음 아파한다.자신의 모든 것을 내밀어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면 떨군다.액에는 지나가 버린 세월에 풍파를 참아냈고 우리 아이에 대한 사랑정도로 깊게 도려내지고 있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에 대신해, 자동 운전차가 도로를 돌아다니는 사회가 온다고 해도 아이에 대한 부모 사랑은 변하지 않다.부모는 자신의 루트이며, 본질이며, 아이에게 있어서 자신은 그 뿌리를 이어 주는 간이 된다.그 때문에(위해) 전통적으로 「효」는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 덕성이었다.누구든지 루트가 있어, 또 그 누구나가 누군가의 근원이 되기 위해였다.
그러나 산업 사회의 발달과 함께 효는 뒷전으로 되었다.지식의 발달이 늦었던 시대에는 어른이 되는 것 자체가 그 만큼으로 큰 권위를 가졌다.연륜을 통해서 쌓은 경험과 지혜가 그대로 지식이었기 때문에다.하지만 사회가 복잡하게 발전해 지식의 반감기는 빨라져, 과거에 어른이 가지고 있던 경험은 과거정도로는 미치지 않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효의 가치도 엷어지기 시작했다.한편에서는 효를 구태 의연인 생각해 완고한 가치로 정리하기도 했다.최근 국회에서 발의 된 인격 교육 진흥 법개정안에서도 인격 덕성의 하나인 효를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논의가 일어났다.민주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의 교육 이념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였다.그런데 정말로 효는 현대 사회에 큰 의미가 없는 화석화 된 가치만인가.
인간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사회는 가족이다.공동체의 최초의 구성원은 확실히 부모이다.그 중에 우리는 올바른 시민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덕성과 가치를 배운다.즉 부모를 존경하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마음을 배워, 형제 자매와 사이좋게 지내는 과정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협업의 가치를 깨닫는다.이것들 모든 시작이 효다.즉 효는 시민 교육의 출발인 것이다.
특히 요즈음과 같은 고령화 사회에서 효는 단순하게 아이가 부모를 극진하게 돌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함께 고령이 된 아이를 부모가 정당한 예절을 지켜 접해 공생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도 현대적인 효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인격 교육 진흥법으로 효를 과거의 화석이라고 느껴 제외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맞도록(듯이) 새로울 방향이라고 해석해 이것을 넓은나름으로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인격 교육도 역시 지났던 시대의 구태 의연인 주입식 윤리 교육과 같이 보여서는 안 된다.내면의 올바른 품성을 기르는 도덕성 교육,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에게 기르는 사회성 교육, 타인이라고 공감해 자신의 정서를 건강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감성 교육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이러한 전제가 토대가 되어야만 시민 교육도 인격 교육이라고 하는 큰 범주 중(안)에서 실시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이이지만, 또 누군가의 부모다.자신의 부모조차 마음을 담아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 사회에 나와 타인에게 배려해 존중할 수 없는 것이다.효는 인격 교육 뿐만이 아니라 시민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다.(중앙 SUNDAY 제 5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