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人青年「ヘル朝鮮を脱出したい‥」韓国から脱出する為に難民申請をする韓国人青年達
旅行・ワーキングホリデーなど、多様な方式で「ヘル朝鮮」を脱出しようとしている青年たちがいる。 まれなことだが、国際法上難民と認められたという韓国人青年たちの消息も僅かながらに存在する。ソミンヨン(仮名)は昨年末、フランス政府から難民であることを認められた。2009年・2013年に続いて再び韓国で生まれ育った青年が国外で難民と認められた。
1986年生の同性愛者であり、兵役拒否者ソミンヨン(仮名)の話だ。国際法上の難民と人種、宗教、国籍、特定の社会集団に所属、政治的意見などを理由に迫害を受けることを避けて自分の国を離れたり、国籍を放棄した人たちだ。
4年前の時事週刊誌<ハンギョレ21>を通じてオーストラリアとフランスの韓国人難民、キム・インス(仮名・38)・イイェダ(27)の事情を報じたことがある。 2013年4月オーストラリア難民再審裁判所(RRT)は金インスを難民と認定した。
韓国社会で同性愛者らが、差別や迫害されており、良心と信念によって兵役拒否をする過程で苦労を経験したという彼の主張を受け入れた。2013年6月、フランス難民・無国籍者保護事務局(OFPRA)は何の理由もなく、小さな虫も殺せない自分の信念によって兵役を拒否したイ・イエの難民申請を受け入れた。
先立って、2009年当時、28歳だった兵役拒否、性的少数者のキムはカナダ移民・難民審査委員会(IRB)から難民の地位を認められた。
2013年12月23日、27歳ミンヨンウン、フランス・パリに向かった。 入営対象者が兵務庁から国外旅行を許可を受けられる年は27歳までだ。翌年フランス当局に難民申請をした。 シリア内戦などによって、故郷を離れざるを得なかった6万人ほどがフランスに入り、難民申請をした年だった。 <ハンギョレ>が確認したフランス難民・無国籍者保護事務局書類を見ると、ミンヨンウン2014年3月に難民申請をしており、2年8ヵ月が経った2016年11月末、難民と認められた。
韓国は私を抑圧するところ
新しい政府が発足し、代替服務制導入の議論に弾みがつくものとみられる。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は候補時代、代替服務制の導入に賛成するという立場だった 与党議員たちの代替服務制の導入に向けた兵役法・予備軍法改正案発議も相次いでいる。しかし、韓国人青年が難民になったというニュースはまた聞こえてくるかもしれない。
2015年初め、結成された反乱軍オーナーのネットワークである「徴兵制の廃止に向けた市民の会」ソウル支部長は、一週間に一度の割合で難民申請に悩む彼らの連絡を受ける。20代前半に国外に出て難民申請をしたが、受け入れられず、韓国に帰って刑務所に行く場合もある。
-韓国社会がどのように変わったらいいか?
「事実フランス語が難しい。 母国語を使って生きたい、生きたいのに…。昨年、市民たちがろうそくを持って成果を得たように、社会が少しずつ変わるようだ。 以前はフェミニズム自体を抑えたが、近年は女性たちの声が出ているのではないか。 同性愛者と社会的弱者、少数者たちが声を出せる環境になれたらいいな。」
-代替服務制が導入されて同性愛の差別が緩和されれば韓国に戻りたいかな?
「両親はフランスで幸せではないだろうし、将来が見えないなら、韓国に帰って罰を受けて一緒に生きようと言った。 韓国は私に、ストレスだった。 違うことを容認せず、抑圧するところだった。 フランス社会が本来の私をもう少し自由に表現することができる場所だ。 帰りたいということを考えているのかは分からない。 難民として生きていくことにしたのは後悔していない。」
한국인 청년 「헬 조선을 탈출하고 싶다‥」한국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난민 신청을 하는 한국인 청년들
여행·워킹 홀리데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헬 조선」을 탈출하려고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보기 드문 일이지만, 국제법상 난민이라고 인정되었다고 하는 한국인 청년들의 소식도 얼마 안되는 무늬에 존재한다.소민욘(가명)은 작년말, 프랑스 정부로부터 난민인 것을 인정받았다.2009년·2013년에 이어 다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 국외에서 난민이라고 인정되었다.
1986년생의 동성애자이며, 병역 거부자 소민욘(가명)의 이야기다.국제법상의 난민과 인종, 종교, 국적, 특정의 사회집단에 소속, 정치적 의견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는 것을 피해 자신의 나라를 떠나거나 국적을 방폐한 사람들이다.
4년전의 시사 주간지<한겨레 21>을 통해서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의 한국인 난민, 김·인스(가명·38)·이이다(27)의 사정을 알렸던 것이 있다. 2013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난민 재심 재판소(RRT)는 금 인스를 난민이라고 인정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등이, 차별이나 박해되고 있어 양심과 신념에 의해서 병역 거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경험했다고 하는 그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2013년 6월, 프랑스 난민·무국적자 보호 사무국(OFPRA)은 아무 이유도 없고, 작은 벌레도 죽일 수 없는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 병역을 거부한 이·이에의 난민 신청을 받아 들였다.
앞서, 2009년 당시 , 28세였던 병역 거부, 성적 소수자 김은 캐나다 이민·난민 심사 위원회(IRB)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2013년 12월 23일, 27세 민욘운, 프랑스·파리로 향했다. 입영 대상자가 병무청에서 국외 여행을 허가를 받게 되는 해는 27세까지다.다음 해 프랑스 당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시리아 내전등에 의해서,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6만명 정도가 프랑스에 들어가, 난민 신청을 한 해였다. <한겨레>가 확인한 프랑스 난민·무국적자 보호 사무국 서류를 보면, 민욘운 2014년 3월에 난민 신청을 하고 있어, 2년 8개월이 지난 2016년 11월말, 난민이라고 인정되었다.
한국은 나를 억압하는 곳(중)
새로운 정부가 발족해, 대체 복무제 도입의 논의에 기세가 가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문 재토라(문·제인) 대통령은 후보 시대, 대체 복무제의 도입에 찬성한다고 하는 입장이었던 여당 의원들의 대체 복무제의 도입을 향한 병역법·예비 군법 개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그러나, 한국인 청년이 난민이 되었다고 하는 뉴스는 또 들려 올지도 모른다.
2015년초, 결성된 반란군오너의 네트워크인 「징병제의 폐지를 향한 시민의 회」서울 지부장은, 일주일간에 한 번의 비율로 난민 신청에 고민하는 그들의 연락을 받는다.20대 전반에 국외에 나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고 형무소에 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면 좋은가?
「사실 프랑스어가 어렵다. 모국어를 사용해 살고 싶은, 살고 싶은데
.작년, 시민들화랑 켤레를 가져 성과를 얻을 것 같게,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이전에는 페미니즘 자체를 억제했지만, 근년은 여성들의 소리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닌가. 동성애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대체 복무제가 도입되어 동성애의 차별이 완화되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까?
「 부모님은 프랑스에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장래가 안보이면, 한국에 돌아가고 벌을 받아 함께 살자고 했다. 한국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다른 것을 용인하지 않고, 억압하려고 했다. 프랑스 사회가 본래의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소다.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난민으로서 살아가기로 한 것은 후회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