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故日本人は過去の過ちを認めないのか!?」だって?
証言 時期 | 証言媒体 | 年 齢 | 証言内容 |
1993年 7月 | 写真記録 破れた沈黙 | 表 記 無 し | 1944年夏、酒屋をやっていた友達の母に裕福に暮らせる仕事があると誘われた。 最初は断って逃げたが友達に連れ戻され、軍人に引き渡された。 服と靴を貰い、うれしくて付いていこうと思った。 |
1993年 10月 | 証言・強制連行された朝鮮人軍慰安婦たち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 明石書店 | 16 歳 | 1944年秋、貧乏な様子におばさんから働けと勧められた。 「軍服みたいな服を着た男」(国民服に戦闘帽の男の日本人)に服と靴で釣られて働けるものとついて行った。 |
2002年 6月26日 | しんぶん赤旗 | 14 歳 | 銃剣をつき付けられて連れてこられた。 拒むと殴られ、電気による拷問を受けて死にかけた。 |
2004年 12月4日 | 12・4全国同開催 「消せない記憶」 | 16 歳 | 「軍服みたいな服を着た男」に連行され台湾の慰安所へ。 抵抗すると電線のようなもので電流を流されたり、丸太で叩かれたりの暴行を受けた。 |
2006年 10月13日 | 上田知事 「従軍慰安婦」否定発言を問う県民連絡会』 集会後の記者会見 | 15 歳 | 韓国・大邱の家から軍人に拉致され、台湾まで連れ去られた。 |
2007年 2月23日 | 日朝協会主催 「イ・ヨンスさんのお話を聞く会」 | 15 歳 | 小銃で脅され、大連から、台湾に連行され新竹海軍慰安所で特攻隊員の慰安婦とされた。 |
2007年 3月1日 | 上田清司埼玉県知事 面談後の記者会見 | 16 歳 | 台湾で特高隊員に口を塞がれて連れて行かれた。 |
2007年 4月27日 | asahi.com | 15 歳 | 私は15歳の時に拉致された。 まわりの女性は誰も売春婦のようにはお金をもらっていなかった。 |
2007年 4月28日 | ハーバード大学で行った講演 | 16 歳 | 16歳の時に強制連行され、2年間日本兵の慰安婦をさせられた。 日本兵に足をメッタ切りにされ、電気による拷問を受けた。 |
2007年 6月14日 | 旧日本軍の性暴力被害者に謝罪と賠償を求める国会前スタンディング | 15 歳 | 15歳の時、両親のもとから連れ去られ、台湾の特攻隊の慰安所に送られた。 |
2007年 | 韓国ESBテレビ 「時代の肖像」 | 表 記 無 し | 1944年10月、夕方に家の外に出てからわけも分からないまま台湾にある日本軍慰安所までつれて行かれた。 |
2011年 12月13日 | ニューヨーク韓人有権者センターとホロコーストセンターが設けた記念講演 | 15 歳 | 台湾の神風部隊に連れて行かれあらゆる拷問に遭いほとんど死ぬところだった。 一緒に連れて行かれた他の女性2人は死んだ。 |
>>注意<<
自称「従軍慰安婦」李容洙(1928年12月生まれ)お婆さん1人の証言です。
↑これ↑を信じろと強要される
日本人の気持ち、分かる?
日本人の気持ち、分かる?
【위안부】왜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왜 일본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이)래?
>>주의<<
자칭 「종군위안부」리용수(1928년 12 월생)할머니1명의 증언입니다.
「왜 일본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이)래?
증언 시기 | 증언 매체 | 년 령 | 증언 내용 |
1993년 7월 | 사진 기록 깨진 침묵 | 표 기 무 해 | 1944년 여름, 술집을 하고 있던 친구의 어머니에게 유복하게 살 수 있는 일이 있다와 권해졌다. 처음은 끊어 도망쳤지만 친구에게 데리고 돌아와지고 군인에 인도해졌다. 옷과 구두를 받아, 기뻐서 붙어 가려고 했다. |
1993년 10월 | 증언·강제 연행된 한국인군위안부들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아카시 서점 | 16 나이 | 1944년 가을, 가난한 님 아이에게 아줌마로부터 일하라고 권유받았다. 「군복같은 옷을 입은 남자」(국민옷에 전투모의 남자의 일본인)에 옷과 구두로 이끌려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따라서 갔다. |
2002년 6월 26일 | 신문 적기 | 14 나이 | 총검을 다해 붙일 수 있어 데려 올 수 있었다. 거절하면 맞아 전기에 의한 고문을 받아 다 죽어갔다. |
2004년 12월 4일 | 12·4 전국 동개최 「지울 수 없는 기억」 | 16 나이 | 「군복같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연행되어 대만의 위안소에. 저항하면 전선과 같은 것으로 전류를 흘러가거나 통나무로 얻어맞거나의 폭행을 받았다. |
2006년 10월 13일 | 우에다 지사 「종군위안부」부정 발언을 묻는 현민 연락회」 집회 후의 기자 회견 | 15 나이 | 한국·대구의 집으로부터 군인에 납치되고 대만까지 데리고 사라졌다. |
2007년 2월 23일 | 일·북 협회 주최 「이·욘스씨의 이야기를 듣는 회」 | 15 나이 | 소총으로 협박 당해 대련으로부터, 대만에 연행되어 신죽 해군 위안소에서 특공대원의 위안부로 여겨졌다. |
2007년 3월 1일 | 우에다 키요시 사이타마현 지사 면담 후의 기자 회견 | 16 나이 | 대만에서 특별 고등경찰 대원에게 구를 찰 수 있어 데리고 가졌다. |
2007년 4월 27일 | asahi.com | 15 세 | 사는 15세 때에 납치되었다. 주위의 여성은 아무도 매춘부와 같이는 돈을 받지 않았었다. |
2007년 4월 28일 | 하버드 대학에서 실시한 강연 | 16 나이 | 16세 때에 강제 연행되어 2년간 일본병의 위안부를 하게 했다. 일본병에게 다리를 멧타 잘라로 되어 전기에 의한 고문을 받았다. |
2007년 6월 14일 | 구일본군의 성 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회전 스탠딩 | 15 나이 | 15세 때, 부모님의 아래로부터 데리고 사라져 대만의 특공대의 위안소에 보내졌다. |
2007년 | 한국 ESB TV 「시대의 초상」 | 표 기 무 해 | 1944년 10월, 저녁에 집의 밖에 나오고 나서 영문도 모른채 대만에 있는 일본군위안소까지 데리고 가졌다. |
2011년 12월 13일 | 뉴욕 한인 유권자 센터와 대량학살 센터가 마련한 기념 강연 | 15 나이 | 대만의 카미카제 부대에 데리고 가져서 모든 고문을 당해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함께 데리고 가진 다른 여성 2명은 죽었다. |
>>주의<<
자칭 「종군위안부」리용수(1928년 12 월생)할머니1명의 증언입니다.
↑이것↑을 믿으라고 강요 당한다
일본인의 기분, 알아?
일본인의 기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