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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に韓国軍慰安所が設置されてた【米公文書で発見】TBSワシントン支局長が発見

http://shukan.bunshun.jp/articles/-/4952
週刊文春デジタル 2015.3.26


 ベトナム戦争当時、サイゴン(現ホーチミン市)に韓国軍の慰安所が存在したことが、アメリカの公文書によって初めて明らかになった。

 日韓間に横たわる慰安婦問題に新たな視点を供する歴史的資料を発見したのは、TBSワシントン支局長の山口敬之氏。山口支局長は2013年9月から、約1年をかけて米国立公文書記録管理局のベトナム戦争に関する膨大な資料を調査。その中から、サイゴンの米軍司令部が、同じくサイゴンの韓国軍最高司令官・蔡命新(チェ・ミュンシン)将軍に送った「書簡」を発見した。

 同書簡は1969年に書かれたもので、主題は韓国兵が関与した経済事件。その中で、同事件の舞台となったサイゴン市中心部の「The Turkish Bath」(トルコ風呂)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記されていた。

「この施設は、韓国軍による、韓国兵専用の慰安所(Welfare Center)である」

(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TBS山口支局長が語る。

「韓国側はこれまで、日本軍の慰安所について国際社会で厳しく糾弾し続けてきました。ベトナム戦争当時、韓国軍の慰安所がサイゴンに存在した事がアメリカの公文書によって明らかになった今、韓国側がこの問題にどう対処していくのかが注目されます」

 50年代前半の朝鮮戦争で国土が荒れ果て、世界の最貧国レベルにまで落ち込んでいた韓国。63年に第5代大統領となった朴正熙は、ベトナム戦争を復興に向けた千載一遇のチャンスと位置づけた。粘り強い交渉の結果、アメリカ政府から派兵規模に応じた補助金支給と、対米移民枠の設定を勝ち取り、六五年から本格的に韓国軍を投入。南側では米軍に次ぐ勢力となる延べ31万人の韓国兵がベトナムに渡った。

 アメリカには、国立公文書記録管理局、通称「NARA」と呼ばれる組織がある。政府の公文書や歴史的価値が高いと判断された各種資料を保管する米政府の公式機関で、全米33カ所に公文書管理施設を持ち、40億枚の紙、30万本の映像、500万枚の地図や統計資料などを保管・公開する世界最大の公文書管理組織だ。

 ベトナム戦争についても、南北の内戦突入(1960年)から米軍全面撤退(73年)に至る、膨大な公文書や映像資料が保管されている。

 60年代に本格化したベトナム戦争は、ソ連や中国など共産主義陣営が支援する北ベトナム側と、アメリカや台湾など自由主義陣営が支援する南ベトナム側が戦った事から「冷戦米ソの代理戦争」と呼ばれた。

 ベトナム戦争時の韓国軍に関する公文書は全米各地に点在している。私は、ワシントン支局長としての日々の業務の合間を縫って、ワシントン市内や郊外メリーランド州の公文書館、さらに各地の米軍基地付属の図書館や資料館を訪れたり、リサーチャーを派遣したりして、関連の文書を大量にコピーし、支局に持ち帰っては読み込む作業を続けた。

 ジョン・F・ケネディ大統領(1961~63年)やリンドン・B・ジョンソン大統領(1963~69年)、ロバート・マクナマラ国防長官(1961~68年)など当時のキーマンの書簡から、各国の外交官や軍関係者のメモまで、ありとあらゆる階層の様々なやり取りを記録した公文書からは、教科書や歴史書からは伝わらない、当時の生々しい息遣いが感じられた。

 最初に集中的に読み込んだのは、ホワイトハウスや国務省等の外交文書だ。そこから判明したのは、当時のアメリカ政府がベトナムにおける韓国兵の行状に、相当手を焼いていたという事だった。韓国兵の蛮行の記録は、本格派兵直後の65年から始まっていた。戦地での市民の虐殺、強姦から、サイゴンなどの都市部での為替偽造、物資の横流し、麻薬密売に至るまで、ありとあらゆる犯罪記録が大量に残されていた。米軍司令部は韓国軍司令部に対して繰り返し書簡を送り、違反者の訴追と再発防止を求めたが事態は悪化の一途をたどった。70年には、アメリカ連邦議会下院の外交委員会で、韓国軍による残虐行為を追及する特別調査チームが作られる事態にまで発展した。

 次に、韓国兵の悪行が問題になっていたなら、犯罪や裁判の記録の中に何らかの手がかり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14年の春から、ベトナム駐留米軍の軍政部と軍警察の犯罪記録に手を伸ばし、年代順にコピーして片っ端から読み始めた。そこには、外交文書よりもさらに生々しい強姦、暴行、窃盗、傷害、軍需物資の不正取得など、夥しい数の韓国兵の犯罪が様々な形で記録されていた。

 韓国兵の悪行が問題になっていたなら、犯罪や裁判の記録の中に何らかの手がかり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14年の春から、ベトナム駐留米軍の軍政部と軍警察の犯罪記録に手を伸ばし、年代順にコピーして片っ端から読み始めた。そこには、外交文書よりもさらに生々しい強姦、暴行、窃盗、傷害、軍需物資の不正取得など、夥しい数の韓国兵の犯罪が様々な形で記録されていた。

サイゴンの「韓国軍慰安所」

 犯罪記録の公文書を一枚一枚剥ぐように読み込んでいると、一通の書簡に行き当たった。その書簡は、サイゴン(現ホーチミン市)のアメリカ軍司令部から、同じくサイゴンの韓国軍司令部に送られたものだった。宛先は、ベトナム駐留韓国軍最高司令官・蔡命新(チェ・ミュンシン)将軍だ。この書簡は69年1月から4月の間に書かれたものと推定された。

 書簡の主題は、韓国兵が関与した経済事件に関するもので、不正な通貨を用いて米軍の軍需物資が大量に横流しされていると指摘されていた。その一連の犯罪行為の舞台のうちの一つが、サイゴン市中心部にあったという「The Turkish Bath」(トルコ風呂)だ。

 この「トルコ風呂」について書簡は、「売春行為が行われていて、ベトナム人女性が働かされている」と説明している。

 そして、主題である通貨不正事件の捜査のために、米軍とベトナム通関当局が共同で家宅捜索を行って、その結果を、次のように記していた。

「この施設は、韓国軍による、韓国兵専用の慰安所(Welfare Center)である」(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驚いて何度も読み返したが、米軍司令部がこの施設を「韓国軍の韓国兵のための慰安所」であると捜査に基づいて断定している。

 そして、米軍司令部は韓国軍の慰安所と指摘するにあたって、二つの根拠を示していた。

 まず、押収資料の中から、韓国兵の福利厚生を担当する特務部次長の任にあった韓国軍大佐の署名入りの書類が見つかり、その書類に韓国軍による韓国兵専用の慰安所であると示されている事。

 さらに、家宅捜索でこの施設から押収された物資について、韓国軍幹部がベトナム税関当局に対し返還を求める書類を提出した事実を、軍幹部の実名を示して韓国側に突きつけていた。

 その上で米軍司令部は、韓国軍の最高司令官・蔡命新に対して、経済犯罪に関わった疑いのある大佐や中佐など、韓国兵6名の実名を通報した。友軍の司令官に部下の犯罪行為を指摘する書簡だけに、その文章は捜査と証拠に基づいていて隙がない。

 今回、米国の公文書によって初めてその存在が明らかになった、サイゴンの「韓国軍慰安所」とは、一体どのように運営されていたのだろうか。

 ハンス・イケス氏(70)。60年代後半にアメリカの通信インフラ会社からサイゴンに派遣され、その後数年間にわたってベトナムとアメリカを往復したというイケス氏は、「『トルコ風呂』は、当時サイゴンにいた人の間では、『射精パーラー』(Steam and Cream Parlor)と呼ばれていました。若いベトナム人女性から性的サービスを受けることが出来たからです」と証言してくれた。

 別のサイゴン駐在経験のある米軍OBは、匿名を条件に次のように証言した。

 「トルコ風呂で働いているのはほとんどが二十歳未満の農村部出身の少女だった。十六歳だと語る人もいたし、もっと若く見える女の子もいた。素朴で華奢な少女達に夢中になる兵士も多く、彼らは周りからYellow Fever(黄熱病)と揶揄されていた」

 そして、作業を続けて半年程経った頃、ベトナム戦争を戦った経験のある米軍OBからEメールが送られてきた。

 アンドリュー・フィンライソン氏(71)。米海兵隊の歩兵部隊長として六七年から二年八カ月に渡ってベトナム戦争を戦い、サイゴンをはじめ南ベトナム各地を転戦。退役後は紛争地域の軍事顧問団として活躍し、ベトナム戦争に関する著作も発表している研究者だ。早速インタビューを申し込むと、快く応じてくれた。

「休息と回復期間」の兵士

「韓国軍の慰安所は、確かにサイゴンにありました。よく知っています」

 「米軍司令官が指摘している韓国の慰安所とは、韓国軍の兵士に奉仕するための大きな性的施設です。韓国兵士にセックスを提供するための施設です。それ以外の何ものでもありません」

 フィンライソン氏によれば、問題の施設は、トルコ風呂としてはかなり大規模なものだったという。その後の取材で、施設が入っていた建物が今なお現地に存在する事が確認され、問題の施設が隣接する二つのビルを合わせて一つの施設として一体的に運営されていた事や、通りの向かい側にも別棟があるなど相当な規模で運営されていた事がわかった。しかし、フィンライソン氏によれば、サイゴン市内の別の場所には、これよりもさらに大きい慰安所があったという。これらの施設は、内部が多くのブロックに分かれていて、一区画に20人前後のベトナム人女性が働かされていたという。

 「当時南ベトナムでは性病が深刻な問題になっていて、特に梅毒が蔓延していました。また、韓国兵がベトナム人女性をレイプしたり、個別に性的関係を持ったりするのを防ぎたかったからです。」

 先の書簡には、この施設は韓国兵専用の慰安所として設立されたが、米軍など友軍の兵士も特別に利用する事ができ、その場合は1回につき38ドルが請求されたと書かれている。

 韓国軍の慰安所が友軍の兵士を受け入れるようになった経緯については、フィンライソン氏はこう説明した。

 「『休息期間』でサイゴンに滞在する韓国兵の数は時期や季節によってばらつきがありました。このため、そもそもは韓国兵専用として設立された施設ですが、韓国兵の数が少ない時期に、友軍の兵士も受け入れ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のです」

 私が投げかけるあらゆる質問に対して、フィンライソン氏の答えは簡潔かつ明快だった。そしてその解説は、それまでに読み込んだ公文書の内容や関係者からの聞き取りと、ぴったりと一致していた。

 韓国軍の慰安所運営について、ベトナムの人々はどう受け止めるのだろうか。南ベトナム政府の元官僚で現在はワシントン郊外に住むグエン・ゴック・ビック博士は慰安所設置に踏み切った、韓国の国家としての意思を一番問題視した。「一部の不良がやっていた違法行為でなく、韓国政府が政策としてやっていたのなら、決して正当化する事はできない。ベトナム人はうやむやにすることは絶対にできません」と話した。

 朴正熙の娘である朴槿恵大統領は、私の渡米後も、日本軍の慰安所について国際社会で厳しく糾弾し続けた。昨秋の国連総会では、世界に向けてこう演説した。

 「戦時の女性に対する性暴力は、時代、地域を問わず、明らかに人権と人道主義に反する行為だ」と。

 ベトナムに韓国軍の慰安所が存在したことがアメリカの公文書によって明らかになった今、朴槿恵大統領は自ら発した言葉に自ら応える義務を負った。

 そして、韓国軍慰安所と日本軍慰安所は、どこが同じでどこが異なっていたのか調査し、それぞれの慰安所の何が問題で何が問題でないのか検証するだろう。こうした公正な姿勢によってのみ、日韓両国の慰安婦問題が整理され、両国が真の和解に向かう礎が生まれると私は信じる。

 しかし、もし韓国政府がこの問題を黙殺したり、調査もせず否定したりするなら、彼らこそ都合の悪い事実に背を向け、歴史を直視しない国家である事を、国際社会に対して自ら証明する事になる。


http://ch.nicovideo.jp/shukanbunshun/blomaga/ar757648


미 공문서 「한국군의 베트남 위안소의 기록」

베트남에 한국군 위안소가 설치되고 있었던【미 공문서로 발견】TBS 워싱턴 지국장이 발견

http://shukan.bunshun.jp/articles/-/4952
주간 후미하루 디지털 2015.3.26


 베트남 전쟁 당시 , 사이공(현호치민시)에 한국군의 위안소가 존재한 것이, 미국의 공문서에 의하고 처음으로 밝혀졌다.

일한 사이에 가로 놓이는 위안부 문제에 새로운 시점을 제공하는 역사적 자료를 발견한 것은,TBS 워싱턴 지국장의 야마구치 타카유키씨.야마구치 지국장은 2013년 9월부터, 약 1년을 걸쳐 미국립 공문서 기록 관리국의 베트남 전쟁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그 중에서, 사이공의 미군 사령부가, 같은 사이공의 한국군 최고 사령관·채명 신(최·물신) 장군에 보낸 「서간」을 발견했다.

동서간은 1969년에 쓰여진 것으로, 주제는 한국병이 관여한 경제 사건.그 중으로, 동사건의 무대가 된 사이공 시중심부의 「The Turkish Bath」(터키탕)에 대해서, 이하와 같이 기록되고 있었다.

「이 시설은, 한국군에 의한,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Welfare Center)이다」

(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TBS 야마구치 지국장이 말한다.

「한국측은 지금까지, 일본군의 위안소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계속 어렵게 규탄해 왔습니다.베트남 전쟁 당시 , 한국군의 위안소가 사이공에 존재한 일이 미국의 공문서에 의해서 밝혀진 지금, 한국측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가 주목받습니다」

 50년대 전반의 한국 전쟁으로 국토가 몹시 황폐해져 세계의 최빈국 레벨에까지 침체되어 있던 한국.63년에 제5대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베트남 전쟁을 부흥을 향한 천재일우의 찬스라고 평가했다.끈질긴 교섭의 결과, 미국 정부로부터 파병 규모에 응한 보조금 지급과 대미 이민범위의 설정을 차지해, 6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군을 투입.남쪽에서는 미군에 뒤잇는 세력이 되는 총계 31만명의 한국병이 베트남에 건넜다.

 미국에는, 국립 공문서 기록 관리국, 통칭 「NARA」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다.정부의 공문서나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각종 자료를 보관하는 미 정부의 공식 기관으로, 전미 33개소에 공문서 관리 시설을 가져, 40억매의 종이, 30만개의 영상, 500만매의 지도나 통계 자료등을 보관·공개하는 세계 최대의 공문서 관리 조직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남북의 내전 돌입(1960년)이나?`준트군전면 철퇴(73년)에 이르는, 방대한 공문서나 영상 자료가 보관되고 있다.

 60년대에 본격화한 베트남 전쟁은,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주의 진영이 지원하는 북 베트남측과 미국이나 대만 등 자유주의 진영이 지원하는 남 베트남측이 싸운 일로부터 「냉전 미소의 대리 전쟁」이라고 불렸다.

 베트남 전쟁시의 한국군에 관한 공문서는 전미 각지에 점재하고 있다.나는, 워싱턴 지국장으로서의 나날의 업무의 사이를 꿰매고, 워싱턴 시내나 교외 메릴랜드주의 공문서관, 한층 더 각지의 미군 기지 부속의 도서관이나 자료관을 방문하거나 조사원을 파견하거나 하고, 관련의 문서를 대량으로 카피해, 지국에 가지고 돌아가고는 읽어들이는 작업을 계속했다.

 존·F·케네디 대통령(1961~63해)이나 린돈·B·존슨 대통령(1963~69해), 로버트·마크나마라 국방장관(1961~68해) 등 당시의 키맨의 서간으로부터, 각국의 외교관이나 군관계자의 메모까지, 온갖 계층의 님 들인 교환을 기록한 공문서에서는, 교과서나 역사서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당시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졌다.

 최초로 집중적으로 읽어들인 것은, 백악관이나 국무성등의 외교 문서다.거기나 들 판명된 것은,당시의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있어서의 한국병의 행장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고 하는 일이었다.한국병의 만행의 기록은, 본격파병 직후의 65년부터 시작되어 있었다.전지에서의 시민의 학살, 강간으로부터, 사이공등의 도시지역에서의 환율 위조, 물자의 부정유출, 마약 밀매에 이르기까지, 온갖 범죄 기록이 대량으로 남아 있었다.미군 사령부는 한국군 사령부에 대해서 반복해 서간을 보내, 위반자의 소추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지만 사태는 악화의 일로를 더듬었다.70년에는, 미국 연방 의회 하원의 외교 위원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잔학행위를 추급 하는 특별 조사 팀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발전했다.

 다음에, 한국병의 악행이 문제가 되어 아픈들 , 범죄나 재판의 기록안에 어떠한 단서가 있다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14년의 봄부터, 베트남 주둔 미군의 군정부와 군경찰의 범죄 기록에 손을 뻗어, 연대순에 카피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거기에는,외교 문서보다 한층 더 생생한 강간, 폭행, 절도, 상해, 군수 물자의 부정 취득 등, 과주위수의 한국병의 범죄가 님 들인 형태로 기록되고 있었다.

 한국병의 악행이 문제가 되어 아픈들 , 범죄나 재판의 기록안에 어떠한 손이?`가 있다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14년의 봄부터, 베트남 주둔 미군의 군정부와 군경찰의 범죄 기록에 손을 뻗어, 연대순에 카피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거기에는,외교 문서보다 한층 더 생생한 강간, 폭행, 절도, 상해, 군수 물자의 부정 취득 등, 과주위수의 한국병의 범죄가 님 들인 형태로 기록되고 있었다.

사이공의 「한국군 위안소」

 범죄 기록의 공문서를 한 장 한 장 벗기도록(듯이) 읽어들이고 있으면, 한 통의 서간에 맞닥뜨렸다.그 서간은, 사이공(현호치민시)의 미군 사령부로부터, 같은 사이공의 한국군 사령부에 보내진 것이었다.행선지는, 베트남 주둔 한국군 최고 사령관·채명 신(최·물신) 장군이다.이 서간은 69년 1월부터 4월의 사이에 쓰여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서간의 주제는, 한국병이 관여한 경제 사건에 관한 것으로, 부정한 통화를 이용해 미군의 군수 물자가 대량으로 부정유출 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었다.그 일련의 범죄 행위의 무대 중 하나가, 사이공 시중심부에 있었다고 하는 「The TurkishBath」(터키탕)이다.

 이 「터키탕」에 도착해 서간은, 「매춘 행위를 하고 있고, 베트남인 여성이 일하게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주제인 통화 부정 사건의 수사를 위해서, 미군과 베트남 통관 당국이 공동으로 가택 수색을 실시해서,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었다.

「이 시설은, 한국군에 의한,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Welfare Center)이다」(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놀라 몇번이나 다시 읽었지만,미군 사령부가 이 시설을 「한국군의 한국병을 위한 위안소」이라고 수사에 근거해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의 위안소라고 지적하기에 즈음하고, 두 개의 근거를 나타내고 있었다.

 우선, 압수 자료중에서, 한국병의 복리후생을 담당하는 특무부 차장의 임에 있던 한국군 대령의 서명들이의 서류가 발견되어, 그 서류에 한국군에 의한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이라고 나타나고 있는 일.

 게다가 가택 수색으로 이 시설로부터 압수된 물자에 대해서, 한국군 간부가 베트남 세관 당국에 대해 반환을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한 사실을, 군간부의 실명을 나타내고 한국측에 들이대고 있었다.

 게다가로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의 최고 사령관·채명신에 대해서, 경제 범죄에 관련된 혐의가 있는 대령이나 중령 등, 한국병 6명의 실명을 통보했다.우군의 사령관에 부하의 범죄 행위를 지적하는 서간인 만큼, 그 문장은 수사와 증거에 근거하고 있어 틈이 없다.

 이번, 미국의 공문서에 의하고 처음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사이공의 「한국군 위안소」란, 도대체 어떻게 운영되고 있 것일까.

 한스·이케스씨(70).60년대 후 반에 미국의 통신 인프라 회사로부터 사이공에 파견되어 그 후 몇 년간에 걸쳐서 베트남과 미국을 왕복했다고 하는 이케스씨는, 「 「터키탕」은, 당시 사이공에 있던 사람의 사이에서는, 「사정 팔러」(Steam and Cream Parlor)로 불리고 있었습니다.젊은 베트남인 여성으로부터 성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입니다」라고 증언해 주었다.

 다른 사이공 주재 경험이 있는 미군 OB는, 익명을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터키탕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스무살 미만의 농촌부 출신의 소녀였다.16세라고 말하는 사람도 해, 더 젊게 보이는 여자 아이도 있었다.소박하고 가녀린 소녀들에 열중하는 병사도 많아, 그들은 주위로부터 YellowFever(황열병)와 야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작업을 계속해 반년정도 지났을 무렵, 베트남 전쟁을 싸운 경험이 있는 미군 OB로부터 E메일이 보내져 왔다.

 앤드류·핀라이손씨(71).미 해병대의 보병 부대장으로서 67년부터 2년8개월에 걸쳐 베트남 전쟁을 싸워, 사이공을 시작해 남 베트남 각지를 전전.퇴역 후는 분쟁 지역의 군사 고문단으로서 활약해, 베트남 전쟁에 관한 저작도 발표하고 있는 연구자다.조속히 인터뷰를 신청하면, 기분 좋게 응해 주었다.

「휴식과 회복기간」의 병사

「한국군의 위안소는, 확실히 사이공에 있었습니다.잘 알고 있습니다」

 「미군 사령관이 지적하고 있는 한국의 위안소와는, 한국군의 병사에 봉사하기 위한 큰 성적 시설입니다.한국 병사에 섹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설입니다.그 이외의 아무것도의이기도 하지 않습니다」

 핀라이손씨에 의하면, 문제의 시설은, 터키탕(로서)는 상당히 대규모 것이었다고 한다.그 후의 취재로, 시설이 들어가 있던 건물이 지금 더 현지에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어 문제의 시설이 인접하는 두 개의 빌딩을 맞추어 하나의 시설로서 일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일이나, 대로의 정면초`, 에도 별동이 있다 등 상당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던 일이 알았다.그러나, 핀라이손씨에 의하면, 사이공 시내의 다른 장소에는, 이것보다 한층 더 큰 위안소가 있었다고 한다.이러한 시설은, 내부가 많은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고, 1구화에 20명 전후의 베트남인 여성이 일하게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남 베트남에서는 성병이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고, 특히 매독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또, 한국병이 베트남인 여성을 강간하거나 개별적으로 성적 관계를 가지거나 하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앞의 서간에는, 이 시설은 한국병 전용의 위안소로서 설립되었지만, 미군 등 우군의 병사도 특별히 이용할 수가 있어 그 경우는 1회에 대해 38 달러가 청구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한국군의 위안소가 우군의 병사를 받아 들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핀라이손씨는 항설명 했다.

 「 「휴식 기간」에 사이공에 체재하는 한국병의 수는 시기나 계절에 의해서 격차가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원래는 한국병 전용으로서 설립된 시설입니다만, 한국병의 수가 적은 시기에, 우군의 병사도 받아 들이게 되어 갔습니다」

 내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핀라이손씨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쾌했다.그리고 그 해설은, 그때까지 읽어들인 공문서의 내용이나 관계자로부터의 청취와 딱 일치하고 있었다.

 한국군의 위안소 운영에 대해서, 베트남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는 것일까.남 베트남 정부의 전 관료로 현재는 워싱턴 교외에 사는 구엔·곡크·빅 박사는 위안소 설치를 단행한, 한국의 국가로서의 의사를 제일 문제시했다.「일부의 불량이 하고 있던 위법행위가 아니고, 한국 정부가 정책으로서 하고 있던 것이라면, 결코 정당화 하는 일은 할 수 없다.베트남인은 애매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정희의 딸(아가씨)인 박근 메구미 대통령은, 나의 도미 후도, 일본군의 위안소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계속 어렵게 규탄했다.작년 가을의 국제연합총회에서는, 세계를 향해 이렇게 연설했다.

 「전시의 여성에 대한 성 폭력은, 시대, 지역을 불문하고, 분명하게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다」와.

 베트남에 한국군의 위안소가 존재했던 것이 미국의 공문서에 의해서 밝혀진 지금, 박근 메구미 대통령은 스스로 발한 말에 스스로 응할 의무를 졌다.

 그리고, 한국군 위안소와 일모`{군위안소는, 어디가 같고 어디가 차이가 났는지 조사해, 각각의 위안소의 무엇이 문제로 무엇이 문제가 아닌 것인지 검증할 것이다.이러한 공정한 자세에 의해서, 일한 양국의 위안부 문제가 정리되어 양국이 진정한 화해로 향하는 주춧돌이 태어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만약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곡살하거나 조사도 하지 않고 부정하거나 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사정이 좋지 않은 사실에 등을 돌려 역사를 직시 하지 않는 국가인 일을, 국제사회에 대해서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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