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称慰安婦の黄錦周の証言♪
どの証言が事実ですか?
(1)従軍慰安婦と戦後補償 / 著者:高木健一
「生活は貧しく、12歳の時100円で売られた。ソ¥ウルの金持ちの家で小間使い。
1938年に威鏡南道ハムン郡で女中をしていた時に、その家の娘の身代わりとなって満州に連行され慰安婦となった」
(2)国連・経済社会理事会クマラスワミ報告 / 1996年1月4日
http://www.jca.ax.apc.org/JWRC/center/library/cwara.HTM#testify
「17歳のとき、日本人の村の指導メの妻が、未婚の朝鮮人少女全員に、日本軍の工場に働きに行くように命じました。
そのとき私は労働者として徴用されたのだと思いました。」
(3)日本TV企業¥“TBS¥”「ここが変だよ日本人」というTV-Programより
「私は19歳で学校を卒業する25日前に、日本軍に引っ張り出され、仕方なく慰安所に行ったんだ!」
(4)日韓社会科教育交流団韓国を訪問 / 1997夏期
http://www2.nkansai.ne.jp/users/peace/heiwanews%EF%BC%95.htm#1
「満18歳になった時のある日、男がやって来て、村から娘を提供するように言いました。」
(5)元日本軍「慰安婦」の証言を聞く集会 / 1997年12月5日
http://www1.jca.apc.org/aml/9711/6904.html
村の班長(日本人)に「一家に一人は行かなくては」と脅かされ、1941年、韓国を離れましたが、到着した場所は、慰安所でした。
(6)黄錦周さんの証言を聞く会 / 2001.07.17 / 東京大学にて
http://www1.jca.apc.org/aml/200108/23174.html
「14歳のとき、いわゆる「少女供出」で満州に連行され、皇軍兵士のセックスの道具にされた。つらい体験だった。」
(7)平成7年朝日新聞インタビュー
「私は19歳で学校を卒業する25日前に日本軍に引っ張りだされ仕方なく慰安所に 行ったんだ!日本人に便所と言われもうこれ以上我慢できない!やっぱりあの時死 んどきゃよかったんだ!これ以上生きててもしょうがない!もう死んでやる殺してく れ!」
(8)産経新聞97/3/11
「満18歳になった時のある日、男がやって来て村から娘を出すように伝達をしまし た。 何をするのかよく分からなかったのですが、ソ¥ウルの工場か何かで働くのだろう と思っていました。姉は家から離れて生活していていなかったので、私が代わって 出ることになりました。」
(9)国連・経済社会理事会 クマラスワミ報告 1996年1月4日
17歳のとき、日本人の村の指導者の妻が、未婚の朝鮮人少女全員に日本軍の工 場に働きに行くように命じました。そのとき私は労働者として徴用されたのだと思い ました。3年も働いたころ、ある日一人の日本兵が自分のテントについてこいと要求 しました。かれは着物を脱げと私にいいました。たいへん怖かったので抵抗しまし た。私はまだ処女でした。しかし彼は銃剣の付いている銃で私のスカートを引き裂 き、下着を体から切り離しました。そのときに私は気を失いました。そしてふたたび 気が付いたときには毛布を掛けられていましたが、あたり一面に血が付いていました。
ねぇねぇ? どの証言が事実なのかな?
(嘲笑
자칭 위안부의 황금주의 증언♪
어느 증언이 사실입니까?
(1) 종군위안부와 전후 보상 / 저자:타카기 켄이치
「생활은 궁핍하고, 12세 때 100엔으로 팔렸다.소울의 부자의 집에서 몸종.
1938년에 위경남도 함군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었을 때에, 그 집의 딸(아가씨)의 대역이 되어 만주에 연행되어 위안부가 되었다」
(2) 유엔·경제사회 이사회 쿠마라스와미 보고 / 1996년 1월 4일
http://www.jca.ax.apc.org/JWRC/center/library/cwara.HTM#testify
「17세 때, 일본인의 마을의 지도 메의 아내가, 미혼의 한국인 소녀 전원에게, 일본군의 공장에 일하러 가도록(듯이) 명했습니다.
그 때 나는 노동자로서 징용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 일본 TV기업"TBS"「여기가 이상해 일본인」이라고 하는 TV-Program보다
「 나는 19세에 학교를 졸업하는 25일전에, 일본군에 끌기 시작해져 어쩔 수 없이 위안소에 갔다!」
(4) 일한 사회과 교육 교류단 한국을 방문 / 1997 하기
http://www2.nkansai.ne.jp/users/peace/heiwanews%EF%BC%95.htm#1
「만 18세가 되었을 때인 어느 날, 남자가 오고, 마을로부터 딸(아가씨)를 제공하도록(듯이) 말했습니다.」
(5) 전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을 (듣)묻는 집회 / 1997년 12월 5일
http://www1.jca.apc.org/aml/9711/6904.html
마을의 반장(일본인)에게 「일가에 한 명은 가지 않으면」이라고 위협해져 1941년, 한국을 떠났습니다만, 도착한 장소는, 위안소였습니다.
(6) 황금슈씨의 증언을 (듣)묻는 회 / 2001.07.17 / 도쿄대학에서
http://www1.jca.apc.org/aml/200108/23174.html
「14세 때, 이른바 「소녀 공출」로 만주에 연행되어 황군 병사의 섹스의 도구로 되었다.괴로운 체험이었다.」
(7) 헤세이 7년 아사히 신문 인터뷰
「 나는 19세에 학교를 졸업하는 25일전에 일본군에 끌기 시작해져서 어쩔 수 없이 위안소에 갔다!일본인에 변소라고 말해져서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다!역시 그 때 사꺄야 샀다!더 이상 살아도 어쩔 수 없다!이제(벌써) 죽어 주는 죽여 줘!」
(8) 산케이신문97/3/11
「만 18세가 되었을 때인 어느 날, 남자가 와 마을로부터 딸(아가씨)를 꺼내도록(듯이) 전달을 했습니다. 무엇을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만, 소울의 공장이나 무엇인가로 일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언니(누나)는 집으로부터 멀어져 생활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대신해 나오게 되었습니다.」
(9) 유엔·경제사회 이사회 쿠마라스와미 보고 1996년 1월 4일
17세 때, 일본인의 마을의 지도자의 아내가, 미혼의 한국인 소녀 전원에게 일본군의 공장에 일하러 가도록(듯이) 명했습니다.그 때 나는 노동자로서 징용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3년이나 일했을 무렵, 어느 날 한 명의 일본병이 자신의 텐트에 따라 오라고 요구 했습니다.그는 옷(기모노)를 벗겨져와 나에게 말했습니다.매우 무서웠기 때문에 저항했습니다.나는 아직 처녀였습니다.그러나 그는 총검이 붙어 있는 총으로 나의 스커트를 찢어, 속옷을 몸으로부터 떼어냈습니다.그 때에 나는 정신을 잃었습니다.그리고 다시 깨달았을 때에는 모포를 걸칠 수 있고 있었습니다만, 근처 일면에 피가 붙어 있었습니다.
응? 어느 증언이 사실인가?
(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