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でそんな記事を書いたら笑われる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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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出身のノーベル科学賞受賞者をご存知ですか
2016年10月07日07時52分
[ⓒ 中央日報/中央日報日本語版]
チャールズ・ペダーセン氏。(写真=デイトン大学) |
今年のノーベル医学生理学賞(3日)、物理学賞(4日)、化学賞(5日)の受賞者が発表されたが、今年も韓国人の名前はない。
韓国は国内総生産(GDP)に対して研究開発(R&D)投資が占める比率が4.29%で世界1位の数値だ。しかし科学分野のノーベル賞受賞者は今まで一人もいない。日本の受賞者が21世紀に入って17人であるのとは対照的だ。
残念な気持ちからか、最近インターネット上では「韓国出身のノーベル科学賞受賞者」が注目を集めている。1987年のノーベル化学賞受賞者チャールズ・ペダーセン氏(1904-1989)のことだ。ノーベル賞委員会のホームページで彼の略歴を見ると、「1904年10月3日釜山(プサン)生まれ」となっている。当時は大韓帝国の時代で日本に国権が侵奪される前だった。もちろん受賞当時の彼の国籍は米国だ。
海洋エンジニアだった父ブレーデ・ペーデシェン氏は当時英国が掌握した大韓帝国の釜山税関に就職した。その後、平安道雲山(ウンサン)鉱山が開発されると、そこに移った。ペダーセン氏の母の安井タキノ氏は大豆と蚕紗貿易に従事していた家族のため朝鮮に移住し、ペーデシェン氏に会って結婚した。
ペダーセン氏の親は彼が8歳になった年に長崎の修道院学校に行き、韓国を離れた。その後、父の勧めでペダーセン氏は米国の大学に進学した。
彼は化学工学を専攻し、マサチューセッツ工科大(MIT)で有機化学の修士を取得した。指導教授は博士課程を修めるよう勧めたが「修士まで父から学資を受けてきた。もう自立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し、1927年に総合化学会社デュポンに就職した。そして69年に定年退職するまでの42年間を研究員として過ごした。
ペダーセン氏は「クラウンエーテル(crown ether)」という新しい有機化合物を合成する方法を発見し、87年にノーベル化学賞を受賞した。博士号を持たない最初のノーベル科学賞受賞者だ。
일본에서 그런 기사를 쓰면 웃어지는 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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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신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알고 계십니까
2016년 10월 07일 07시 52분[ⓒ 중앙 일보/중앙 일보 일본어판]
찰즈・페다센씨.(사진=데이 톤 대학) |
금년의 노벨 의학 생리학상(3일), 물리학상(4일), 화학상(5일)의 수상자가 발표되었지만, 금년도 한국인의 이름은 없다.
한국은 국내 총생산(GDP)에 대해서 연구 개발(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4.29%로 세계 1위의 수치다.그러나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일본의 수상자가 21 세기에 들어가 17명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감인 기분때문인지, 최근 인터넷상에서는「한국 출신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주목을 끌고 있다.1987년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 찰즈・페다센씨(1904-1989)다.노벨상 위원회의 홈 페이지에서 그의 약력을 보면, 「1904년 10월 3일 부산(부산) 태생」되고 있다.당시는 대한제국의 시대에 일본에 국권이 침탈 되기 전이었다.물론 수상 당시의 그의 국적은 미국이다.
페다센씨는 노르웨이인의 아버지와 일본인의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났다.해양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브레이데・페이데시씨는 당시 영국이 장악 한 대한제국의 부산 세관에 취직했다.그 후, 평안도 쿠모야마(운산) 광산이 개발되면, 거기로 옮겼다.페다센씨의 어머니 야스이 타키노씨는 대두와 잠사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가족을 위해 조선에 이주해, 페이데시씨를 만나 결혼했다.
페다센씨의 부모는 그가 8세가 된 해에 나가사키의 수도원 학교에 가, 한국을 떠났다.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페다센씨는 미국의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화학 공학을 전공해, 매사추세츠 공과대(MIT)로 유기 화학의 석사를 취득했다.지도 교수는 박사 과정을 거두도록(듯이) 권했지만「석사까지 아버지로부터 학자금을 받아 왔다.더이상 자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 해, 1927년에 종합 화학 회사 듀퐁에 취직했다.그리고 69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의 42년간을 연구원으로서 보냈다.
페다센씨는「크라운 에테르(crown ether)」라고 하는 새로운 유기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해, 87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박사 학위를 가지지 않는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