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おじゅんの悪い癖。

自身の思い込みで嘘をつく。

おじゅん

翻訳表示
8/5 18:53:04
皇族の望まれておられる女系天皇も「承詔必謹」でお願いしますw



dengorou
翻訳表示
8/5 19:04:32
皇族の望まれておられる女系天皇>これってソースあんの?



おじゅん

翻訳表示
8/5 19:14:40
女系を望まれたから小泉時代の皇室典範有識者会議が発足し結果、女性天皇容認で決着しかけたが「日本会議」なる組織が法案化潰しをしたw



dengorou
翻訳表示
8/5 19:16:53
おじゅん>君の妄想は要らないから、皇族のどなたがいつ「女系を望まれた」のか、具体的なソースを出せないのかね?



おじゅん

翻訳表示
8/5 19:17:59
dengorou> 検索すれば幾らでもアルマジロw



dengorou
翻訳表示
8/5 19:24:55

おじゅん8/5 19:17:59>いや全然ないから訊いているんだけど。

天皇皇后両陛下並びに皇太子殿下も、女系天皇については一切ご発言されてらっしゃらないよ。




おじゅん

翻訳表示
8/5 19:27:08
dengorou > 間接的に述べられてます、宮家復活も否定してますー



dengorou
翻訳表示
8/5 19:29:31

おじゅん 8/5 19:27:08 間接的に述べられてます>だったらそのソースを提示すればいいだけじゃん。

なんで出来ないの?



2005年(平成17年)12月19日、今上天皇は自身の誕生日に際して記者会見を行なった。そこでは記者から「これまで皇室の中で女性が果たしてきた役割を含め、皇室の伝統とその将来」について事前質問があり、天皇は「皇室の中で女性が果たしてきた役割については私は有形無形に大きなものが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と述べたが、「皇室典範との関係で皇室の伝統とその将来」については回答を控えた[7]


2006年(平成18年)10月20日皇后
72回目の誕生日を迎えた。これに先立って、宮内記者会は「次々代を担う女性皇族にどのような役割や位置付けを期待するか」という質問を寄せたが、皇后は
文書による回答で「皇室典範をめぐり、様々に論議が行われている時であり、この問に答えることは、むずかしいことです」と述べ、回答を控えた[8]


2006年(平成18年)2月21日皇太子徳仁親王
46歳の誕生日に際しての記者会見にて、記者からの「皇室典範に関する有識者会議が最終報告書を提出し、女性・女系天皇を容認する方針が示されました。今
後の皇室のあるべき姿に関する考えや敬宮愛子様の将来について、父親としてのお気持ちをお聞かせください」という質問に対して、「皇室典範に関する有識者
会議が最終報告書を提出したこと、そしてその内容については、私も承知しています。親としていろいろと考えることもありますが、それ以上の発言は控えたい
と思います」と述べた。



寛仁親王は、自身が会長を務める福祉団体「柏朋会」の会報で、「プライヴェート」な形式と断った上で「歴史と伝統を平成の御世でいとも簡単に変更して良いのか」と女系天皇への反対姿勢を表明した[9]


寬仁親王は「万世一系、125代の天子様の皇統が貴重な理由は、神話の時代の初代・神武天皇か ら連綿として一度の例外も無く、『男系』で続いて来ているという厳然たる事実」と主張し、「陛下や皇太子様は、御自分達の家系の事ですから御自身で、発言 される事はお出来になりません」「国民一人一人が、我が国を形成する『民草』の一員として、2665年の歴史と伝統に対しきちんと意見を持ち発言をして戴 かなければ、いつの日か、『天皇』はいらないという議論にまで発展するでしょう」と結んで、女系天皇容認の動きにこれまでの歴史と伝統を尊重しないとする 強い懸念を表明した。 また、男系継承を維持するための方法として、歴史上実際に取られたことのある以下の4つを挙げている[10]

  1. 皇籍離脱した旧皇族を皇籍に復帰させる。
  2. 皇族女子(内親王および女王)に旧皇族の男系男子から養子を取れるようにし、その方に皇位継承資格を与える。
  3. 廃絶になった秩父宮高松宮の祭祀を、伏見宮家の子孫である旧皇族の男系男子が継承し、宮家を再興する。これは、明治時代に現皇室の祖先である光格天皇の実家である閑院宮家が絶えた際、伏見宮家から養子を迎え継承した先例があり、何も問題がなく、最も順当な方法である。
  4. 昔のように「側室」を置く。自分(寬仁親王)としては大賛成だが、国内外共に今の世相からは少々難しいかと思う。

また、寬仁親王は皇位継承問題について「三笠宮一族は、同じ考え方であるといえる」と、父・三笠宮崇仁親王と母の百合子妃も歴史と伝統に反する皇室典範改正に反対していることを初めて明らかにした[11]。また、寬仁親王は、崇仁親王が2005年10月、宮内庁風岡典之次長を呼んで、皇室典範改正に向けた拙速な動きに強く抗議したことを紹介した[11]。また、皇室典範改正は「郵政民営化や財政改革などといった政治問題をはるかに超えた重要な問題だ」と指摘するとともに、自身の発言に対して宮内庁の羽毛田信吾長 官らが「正直、困ったな」「皇族の立場を改めて説明する」などと重ねて憂慮を表明していることに関しては、「私がこういう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り、かなり 積極的に発言しているのは国家の未曾有の大事件と思うので、あえて火中の栗を拾いに行っているような嫌いがあります」と述べ、女系天皇容認の動きに対抗す る意思を明確にした。






2001年(平成13年)12月1日
東宮家に敬宮愛子内親王誕生。
2003年(平成15年)12月3日
皇太子妃雅子帯状疱疹で宮内庁病院に入院。その後の診察で適応障害と診断され、以後宮中祭祀らを長期欠席。
2004年(平成16年)5月10日
皇太子徳仁親王による「人格否定発言」(浩宮の乱)。
2004年(平成16年)12月27日
小泉純一郎首相の諮問機関である「皇室典範に関する有識者会議(座長:吉川弘之産業技術総合研究所理事長)」が発足した。これにより皇位継承問題に対する関心が高まることとなったが、会議メンバーには皇室問題の専門家はほとんどおらず、恣意的な人選が批判を浴びた。
2005年(平成17年)7月26日
有識者会議、中間報告書を提出。
2005年(平成17年)11月3日
読売新聞の報道によって、寛仁親王が女系天皇に反対の立場を表明する寄稿をしていたことが判明。
2005年(平成17年)11月24日
有識者会議が、皇位継承の安定を図るため女性・女系天皇を容認し、皇位継承順位は男女に拘らず長子を優先させるという内容の最終報告書を小泉首相に提出した。このためメディアで様々な議論が起こる。
2006年(平成18年)1月10日
寬仁親王、月刊誌『文藝春秋』2月号で櫻井よしこと対談し、改めて女系天皇に反対の立場を表明。
2006年(平成18年)1月12日
宮内庁の羽毛田信吾長官、定例記者会見で寬仁親王の発言に対し、「正直困ったな」と懸念を表明。
2006年(平成18年)1月20日
小泉首相、第164回通常国会施政表明演説で、今国会での皇室典範改正に強い意欲を表明。以後、政界で様々な議論が起こる。
2006年(平成18年)1月28日
小泉首相は「女系を認めないということは愛子内親王の子供が男でも駄目なのか。それをわかっているのか」と女系反対派を批判する発言。
2006年(平成18年)2月7日
NHKの報道によって、秋篠宮妃紀子が第3子の懐妊1カ月余、9月末の出産予定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典範改正賛成・反対両派の国会議員から、出産まで改正を見送るべきとの意見が続出する。
2006年(平成18年)2月11日
小泉総理、第164回通常国会での皇室典範改正案の提出を断念。これによって当面の政治日程から外れる。
2006年(平成18年)2月17日
産経新聞の報道によって、2004年5月、政府の非公式検討会が女性・女系天皇容認を決定していたことが判明。
2006年(平成18年)2月23日
皇太子徳仁親王、誕生日記者会見で秋篠宮妃紀子の懐妊を「大変喜ばしい」と話し、さらに皇室典範改正問題に対し「親としていろいろと考えることもありますが、それ以上の発言は控えたいと思います」と発言。
2006年(平成18年)3月10日
有識者会議のメンバーである岩男壽美子武蔵工業大学(現・東京都市大学)教授が日本国外向け雑誌『ジャパンエコー』に発表した論文で、寬仁親王の発言を「時代錯誤」と批判。さらに有識者会議の結論が、すでに政府内で非公式に設置されていた研究会での方針に沿ったものであったことを認める。
2006年(平成18年)6月13日
自民党内閣部会(木村勉部会長)が皇室典範改正問題についてまとめた中間報告を発表。男系維持と女性・女系天皇容認の両論を併記したものの、「男系維持が望ましい」との文言を盛り込み、男系維持派に配慮した内容となる。
2006年(平成18年)7月2日
政府が同月の各省庁人事に合わせ、内閣官房の「皇室典範改正準備室」を縮小する方針を固める。
2006年(平成18年)9月6日
秋篠宮妃紀子が悠仁親王を出産。皇位継承順位は第3位となる。
これに伴って小泉首相が記者会見で「次期(第165回)通常国会で議論される問題ではない」と発言し、皇室典範改正の議論を急ぐ必要はなくなったとの認識を示す。
2006年(平成18年)9月12日
羽毛田信吾宮内庁長官が定例記者会見で、悠仁親王誕生に関連し、「今回親王さまがお生まれになったので皇位の安定的な継承に課題がなくなったかといえば、そうではない。皇位の継承という意味では、まだまだ課題は残っている」とコメント。
2006年(平成18年)9月30日
下村博文官房副長官が皇室典範改正問題について、「法律改正せずにこれからも男系男子の伝統が大丈夫だ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改正の必要性を強調しつつも、「内閣が代わったのだから、有識者会議の結論に拘束される必要はない」と、実質上、改正議論を繰り延べする考えを示す。
2006年(平成18年)10月17日
男系による伝統的かつ安定的な皇位継承を目指す超党派の議員連盟「皇室の伝統を守る国会議員の会」(会長・自民党島村宜伸元農水相)が発足。
2008年(平成20年)12月26日
麻生太郎首相の決裁により「皇室典範に関する有識者会議」が廃止となる。

 

                                   Wiki日本版より


https://ja.wikipedia.org/wiki/%E7%9A%87%E4%BD%8D%E7%B6%99%E6%89%BF%E5%95%8F%E9%A1%8C_%28%E5%B9%B3%E6%88%90%29#.E5.AF.AC.E4.BB.81.E8.A6.AA.E7.8E.8B




女系天皇に反対される皇族はおられるようだが

望んでおられる皇族なんてどこにもおわしはしない



おじゅん 君は妙に朝鮮臭いぞ!(嗤)


       

             あひゃひゃひゃ!





인상 조작은 한국인이 잘 하는 손이지요

순서가 나쁜 버릇.

자신의 믿음으로 거짓말한다.

순서

번역 표시
8/5 18:53:04
황족이 바람직하고 계시는 모계 천황도「승조필근」로 부탁하는 w



dengorou
번역 표시
8/5 19:04:32
황족이 바람직하고 계시는 모계 천황>이것은 소스 팥고물의?



순서

번역 표시
8/5 19:14:40
모계를 바람직했기 때문에 코이즈미 시대의 황실 전범 유식자 회의가 발족해 결과, 여성 천황 용인으로 결착 밖에 자리수가「일본 회의」되는 조직이 법안화 짓이김을 한 w



dengorou
번역 표시
8/5 19:16:53
쥰>군의 망상은 필요 없기 때문에, 황족인 어떤 분이 언제「모계를 바람직한」의 것인지, 구체적인 소스를 낼 수 없는 것인지?



순서

번역 표시
8/5 19:17:59
dengorou> 검색하면 얼마에서도 armadillo w



dengorou
번역 표시
8/5 19:24:55
순서8/5 19:17:59>아니 전혀 없기 때문에 신 있는데.
천황 황후 양폐하 및 황태자 전하도, 모계 천황에 대해서는 일절 발언하셔들 사등 없어.



순서

번역 표시
8/5 19:27:08
dengorou > 간접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황족의 집안 부활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dengorou
번역 표시
8/5 19:29:31
순서 8/5 19:27:08 간접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라면 그 소스를 제시하면 좋은 것만으로 응.
어째서 할 수 없어?


2005년(헤세이17년) 12월 19일,금상 천황은 자신의 생일에 즈음하여 기자 회견을 행했다.그곳에서는 기자로부터「지금까지황실안에서 여성이 과연 온 역할을 포함해 황실의 전통과 그 장래」에 임해서 사전 질문이 있어, 천황은「황실안에서 여성이 과연 온 역할에 대해서는 나는 유형 무형에 큰 것이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지만, 「황실 전범과의 관계로 황실의 전통과 그 장래」에 대해서는 회답을 가까이 둔[7].


2006년(헤세이18년)10월 20일,황후는 72번째의 생일을 맞이했다.이에 앞서, 미야우치 기자회는「차례차례 대를 담당하는 여성 황족에게 어떠한 역할이나 자리 매김을 기대할까」라고 하는 질문을 대었지만, 황후는 문서에 의한 회답으로「황실 전범을 둘러싸고, 님 들에 논의를 하고 있을 때이며, 이 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말하고 회답을 가까이 둔[8].


2006년(헤세이18년)2월 21일,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은 46세의 생일에 즈음한 기자 회견에서, 기자로부터의「황실 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가 최종보고서를 제출해, 여성・모계 천황을 용인할 방침이 나타났습니다.지금 후의 황실이 있어야 할 모습에 관한 생각이나 경궁아이코 님의 장래에 대해서, 부친으로서의 기분을 들려주세요」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황실 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가 최종보고서를 제출한 것,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부모로 하고 있어라 있으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어요가, 그 이상의 발언은 삼가하고 싶다 (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간닌 황태자는, 자신이 회장을 맡는 복지 단체「백붕회」의 회보로, 「프라이베트」형식이라고 끊은 다음「역사와 전통을 헤세이의 세로 아주 간단하게 변경해 좋은 것인지」와모계 천황에의 반대 자세를 표명했다[9].


寬히토시 황태자는 「만세일계,125대의 천자 님의 황통이 귀중한 이유는, 신화의 시대의 초대 ・진무 덴노인가 들 연면으로서 한 번의 예외도 없고, 『남자계』로 계속 되어 와있다고 하는 엄연한 사실」라고 주장해, 「폐하나 황태자 님은, 자신들의 가계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으로, 발언 되는 일은 종기에 걸리지 않습니다」「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나라를 형성하는『민초』의 일원으로서 2665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가져 발언을 해 대 일까 차면, 언제의 날인가, 『천황』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논의에까지 발전하겠지요」와 연결하고, 모계 천황 용인의 움직임에 지금까지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한 염려를 표명했다. 또, 남자계 계승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역사상 실제로 놓친 것이 있는 이하의 4개를 들고 있는[10].

  1. 황적이탈한구황족을 황적에 복귀시킨다.
  2. 황족 여자(내친왕 여왕)에게 구황족의 남자계 남자로부터 양자를 잡히도록(듯이) 해, 그 쪽에 황위계승 자격을 준다.
  3. 폐절이 된치치부노 미야타카마츠노미야의 제사를,후시미 황족의 집안의 자손인 구황족의 남자계 남자가 계승해, 황족의 집안을 재흥 한다.이것은, 메이지 시대에 현황실의 조상인고우카쿠 덴노의 친가인사친왕가의 하나가가 끊어졌을 때, 후시미 황족의 집안으로부터 양자를 마중 계승한 선례가 있어, 아무것도 문제가 없고, 가장 당연한 방법이다.
  4. 옛 같게 「측실」를 둔다.자신(寬히토시 황태자)으로서는 대찬성이지만, 국내외 모두 지금의 세태에서는 조금 어려울까 생각한다.

또, 寬히토시 황태자는 황위계승 문제에 대해 「미카사노미야 일족은, 같은 생각말하는」와 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황태자와 어머니유리코 왕비도 역사와 전통에 반하는황실 전범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한[11].또, 寬히토시 황태자는, 타카히토 황태자가 2005년 10월,궁내청카자오카전 유키 차장을 부르고, 황실 전범 개정을 향한 졸속인 움직임에 강하게 항의한 것을 소개한[11].또, 황실 전범 개정은 「우정 민영화나 재정 개혁등이라고 하는 정치 문제를 아득하게 넘은 중요한 문제다」라고 지적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 궁내청의깃털덴 신고장 관등이「정직, 곤란하군」「황족의 입장을 재차 설명하는」 등과 거듭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에 관계해서는, 「내가 이런 인터뷰에 응하거나 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전대미문의 대사건으로 생각하므로, 굳이 불 속의 률을 주우러 가고 있는 싫지만 있어요」라고 말해 모계 천황 용인의 움직임에 대항 의사를 명확하게 했다.






2001년(헤세이 13년) 12월 1일
동궁가에경궁아이코 내친왕 탄생.
2003년(헤세이 15년) 12월 3일
황태자왕비 마사코대상 포진으로 궁내청 병원에 입원.그 후의 진찰로적응 장해라고 진단되어 이후 궁중 제사등을 장기 결석.
2004년(헤세이 16년) 5월 10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에 의한「인격 부정 발언」(호궁의 란).
2004년(헤세이 16년) 12월 27일
코이즈미 쥰이치로 수상의 자문기관인「황실 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단장:요시카와 히로유키 산업기술 종합 연구소 이사장)」가 발족했다.이것에 의해 황위계승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지만, 회의 멤버에게는 황실 문제의 전문가는 거의 있지 않고, 자의적인 인선이 비판을 받았다.
2005년(헤세이 17년) 7월 26일
유식자 회의, 중간 보고서를 제출.
2005년(헤세이 17년) 11월 3일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에 의해서,간닌 황태자가 모계 천황에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기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
2005년(헤세이 17년) 11월 24일
유식자 회의가, 황위계승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여성・모계 천황을 용인해, 황위계승 순위는 남녀에게 구애받지 않고 장자를 우선시킨다고 하는 내용의 최종보고서를 코이즈미 수상에 제출했다.이 때문에 미디어로 님 들인 논의가 일어난다.
2006년(헤세이 18년) 1월 10일
寬히토시 황태자, 월간지 『문예춘추』2월호로사쿠라이좋아 일대담 해, 재차 모계 천황에 반대의 입장을 표명.
2006년(헤세이 18년) 1월 12일
궁내청의깃털덴 신고 장관, 정례 기자 회견에서寬히토시 황태자의 발언에 대해, 「정직 곤란하군」와 염려를 표명.
2006년(헤세이 18년) 1월 20일
코이즈미 수상,제164회 통상 국회 시정 표명 연설로, 이번 국회에서의 황실 전범 개정에 강한 의욕을 표명.이후, 정계에서 님 들인 논의가 일어난다.
2006년(헤세이 18년) 1월 28일
코이즈미 수상은「모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이코 내친왕의 아이가 남자라도 안된가.그것을 알고 있는지」와 모계 반대파를 비판하는 발언.
2006년(헤세이 18년) 2월 7일
NHK의 보도에 의해서,아키시노노미야왕비 노리코가 제3자의 회임 1개월남짓, 9월말의 출산 예정인 것이 분명하게.전범개정 찬성・반대 양파의 국회 의원으로부터, 출산까지 개정을 보류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속출한다.
2006년(헤세이 18년) 2월 11일
코이즈미 총리, 제164회 통상 국회로의 황실 전범 개정안의 제출을 단념.이것에 의해서 당면의 정치 일정부터 빗나간다.
2006년(헤세이 18년) 2월 17일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의해서,2004년 5월, 정부의 비공식 검토회가 여성・모계 천황 용인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
2006년(헤세이 18년) 2월 23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 생일 기자 회견에서 아키시노노미야왕비 노리코의 회임을「몹시 기쁜」라고 이야기해, 한층 더 황실 전범 개정 문제에 대해「부모로 하고 있어라 있으라고 생각하는 일도 있어요가, 그 이상의 발언은 삼가하고 싶습니다 」와 발언.
2006년(헤세이 18년) 3월 10일
유식자 회의의 멤버이다암남수요시코무사시 공업대학(현・도쿄도 시립대학마나부) 교수가 일본 외국용 잡지『재팬 에코』에 발표한 논문으로, 寬히토시 황태자의 발언을「시대 착오」와 비판.한층 더 유식자 회의의 결론이, 벌써 정부내에서 비공식에 설치되어 있던 연구회에서의 방침에 따른 것인 것을 인정한다.
2006년(헤세이 18년) 6월 13일
자민당 내각 부회(키무라 츠토무 부회장)가 황실 전범 개정 문제에 대해 정리한 중간 보고를 발표.남자계 유지와 여성・모계 천황 용인의 양론을 병기 했지만, 「남자계 유지가 바람직한」와의 문언을 포함시켜, 남자계 유지파에 배려한 내용이 된다.
2006년(헤세이 18년) 7월 2일
정부가 같은 달의 각 부처 인사에 맞추어 내각 관방의「황실 전범 개정 준비실」를 축소할 방침을 굳힌다.
2006년(헤세이 18년) 9월 6일
아키시노노미야왕비 노리코가유 히토시 황태자를 출산.황위계승 순위는 제3위가 된다.
이것에 수반해 코이즈미 수상이 기자 회견에서「차기( 제165회) 통상 국회에서 논의되는 문제는 아닌」라고 발언해, 황실 전범 개정의 논의를 서두를 필요는 없어졌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2006년(헤세이 18년) 9월 12일
깃털덴 신고 궁내청 장관이 정례 기자 회견에서, 유 히토시 황태자 탄생에 관련해, 「이번 황태자님이 태어나셨으므로 황위의 안정적인 계승에 과제가 없어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황위의 계승이라고 하는 의미에서는, 아직도 과제는 남아 있는」와 코멘트.
2006년(헤세이 18년) 9월 30일
시모무라 하쿠분 관방 부장관이 황실 전범 개정 문제에 대해서,「법률 개정하지 않고 앞으로도 남자계 남자의 전통이 괜찮다고 하는 것은 아닌」와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내각이 대신했으니까, 유식자 회의의 결론에 구속될 필요는 없는」와 실질상, 개정 논의를 미루어 할 생각을 나타낸다.
2006년(헤세이 18년) 10월 17일
남계에 의한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황위계승을 목표로 하는 초당파의 의원 연맹「황실의 전통을 지키는 국회 의원의 회」(회장・자민당시마무라의신 전 농림수산부 장관)가 발족.
2008년(헤세이 20년) 12월 26일
아소우 타로 수상의 결재에 의해「황실 전범에 관한 유식자 회의」가 폐지가 된다.

 

                                   Wiki 일본판보다


https://ja.wikipedia.org/wiki/%E7%9A%87%E4%BD%8D%E7%B6%99%E6%89%BF%E5%95%8F%E9%A1%8C_%28%E5%B9%B3%E6%88%90%29#.E5.AF.AC.E4.BB.81.E8.A6.AA.E7.8E.8B




모계 천황이 반대하는 황족은 계시는 것 같지만

바라고 계시는 황족은 어디에도 나는 하지 않는다



쥰군은 묘하게 조선 냄새나!(치)


       

            !






TOTAL: 4049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1469 【閣僚】最後に一番無能な男が残っ....... dengorou 2016-08-16 376 0
1468 【中央】いい加減気づけよ【日報】 dengorou 2016-08-15 770 0
1467 プールがないので水泳が出来ない南....... dengorou 2016-08-13 98 0
1466 【貧乏飯】生シラス丼も美味いが dengorou 2016-08-13 248 0
1465 南朝鮮人「リオ五輪に出場した整形....... dengorou 2016-08-13 411 0
1464 支那外務省のここがヘンだよ dengorou 2016-08-13 465 0
1463 本日の戻り鰹とその他の刺し身 dengorou 2016-08-12 304 0
1462 本日の秋刀魚 dengorou 2016-08-12 389 0
1461 南朝鮮の信任状の中身を教えてやる....... dengorou 2016-08-11 188 0
1460 度し難い南朝鮮人の政治感覚 dengorou 2016-08-11 269 0
1459 外交にモラルを求める間抜け dengorou 2016-08-11 617 0
1458 南朝鮮サッカーには無縁の賞賛 dengorou 2016-08-11 309 0
1457 【歴史】朝鮮人には扱えなかった刀....... dengorou 2016-08-07 360 0
1456 【蓮舫】云ってることが意味不明 dengorou 2016-08-07 562 0
1455 【日本人】こんなので褒められてい....... dengorou 2016-08-07 467 0
1454 旭日旗見て火病るんじゃねえぞ! dengorou 2016-08-07 515 0
1453 萩野と瀬戸残りの種目 dengorou 2016-08-07 251 0
1452 真夏に季節外れなスレッドすまん dengorou 2016-08-06 208 0
1451 印象操作って朝鮮人がよくやる手だ....... dengorou 2016-08-05 624 0
1450 【朝鮮】修理 盗難 どっち?【エ....... dengorou 2016-08-05 38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