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に愛され続けるふりかけ「ゆかり」生みの親が大切にした「縁」 三島哲男さんの人生哲学
スポーツ報知 5月22日(日)10時33分配信
業界2位、年間約40億円を売り上げるふりかけ「ゆかり」を製造販売する三島食品(広島市)創業者の三島哲男さんが3月8日、老衰のため98歳で亡く
なった。真っ白いごはんに映える赤紫色の粒。ほのかに漂う赤しその香り。茶わんの上で、おにぎりの具として46年間、多くの日本人に愛されてきた味を生み
出した人は、どんな生涯を送ったのか―。次男で現社長の豊さん(61)の回想とともに、縁(ゆかり)を大切にした人生を紹介する。(北野 新太)
【写真】「ゆかり」生みの親の三島哲男さん
亡くなる前日、3月7日の出来事を豊さんは笑顔で思い出す。哲男さんは広島市内の自宅で最期の時を迎えようとしていた。
「もう、お酒はダメなんて言ってもしょうがないと思って『老亀』(地元の名酒)をひとさじ飲ませたら『んん?』と反応があったんですよ。量が足らんぞ、ということだなと思って、もう少し飲ませてあげたら、うれしそうにニカ~ッと笑ったんです」
翌8日午後1時20分。家族だけでみとり、医者に「今、息を引き取りまして…」と電話をしている途中、なんと哲男さんは再び呼吸を始めた。
「ビックリしまして。お医者さまには、落ち着いてちゃんと様子を見てくださいと言われてしまいました(笑い)」
3分後、今度は深い眠りに就いた。98歳の大往生だった。4月25日に催されたお別れの会。ゆかりある人々が約900人も駆け付けた。
「涙よりも、笑顔で思い出を語っていただく方が多かったと思います。本当にありがたかったです」
大正6年生まれ。哲男さんの経営者人生は、戦後史とも重なる。
従軍先のラバウルで終戦を迎え、帰還後に乾物の行商を始める。1949年に前身の三島商店を創業。51年にかつおなどのふりかけの販売を開始した。
54年に次男として誕生したのが豊さんだった。「オヤジが家にいた記憶はあんまりないんです。お酒が好きだった記憶はあるんですけど…」
60年代後期のある日のことだった。「突然、赤しそを持って帰って来て『これがウチの商品になるんじゃ』って言うんです」。当時、漬物として売れ始めて
いた食材をふりかけにするアイデア。海産物以外の材料を用いること自体が前例のない挑戦だったが、開発は困難を極めた。水分を多く含んだ赤しそを、いかに
風味を失わないまま乾燥させるか。失敗を重ねた。「時々、試作品を持って来て『どれがいちばんうまいか決めないけんから、食え』なんて言われて、15種類
も食べ比べさせられたりしました」
実は当時、64年の東京五輪後の不況のあおりで社の業績は悪化。借金を抱えていた。「でも、当時のオヤジは自分に言い聞かせていたのか、いつも『わしは幸せじゃあ。幸せなんじゃ』と言っていました。会社が大変だなんて全く知りませんでした」
乾燥に適した温度を発見するまで数年の時を要し、ようやく発売にこぎ着けたのは70年。学校給食への採用を契機に、評判はすぐに広がった。
ゆかりブランドが確立され、商品が大量生産されるようになっても、素材の品質には一切妥協しなかった。「もともと乾物問屋をしていたせいか、オヤジには良いものか悪いものかを見分ける能力がありました」
良いものをつくるため、何よりも大切にしたのは「縁(ゆかり)」だった。社長自ら全国約300の生産者のもとを訪ね歩き、対話することを生涯欠かさな
かった。「私が継いだ時(92年)、お得意先でよく言われました。『毎年来てくれるのはあなたのオヤジさんくらいです。とってもありがたいし、ぜひ続けて
下さいね』って」
さらに重んじたのは、消費者との「縁」。2002年、商品に工業用潤滑油が混入したことがあった。極めて微量で、人体への影響は全くないものだったが、
すぐに自主回収を決めた。「分かった直後、オヤジは『健康に影響はないんか!? 大丈夫なんか!?』と。で、突然、社内の自分の机の片付けを始めたんで
す。『もしかして、会社つぶれると思ってる?』って聞くと『うん』って」
しかし、顧客との縁が切れることはなかった。現在では、欧米やアジアなど25か国で販売される世界ブランドに成長を遂げた。
生みの親が亡くなっても、日本中の食卓で、学校で、旅先で「ゆかり」は今日も存在し、消費者に清涼感のある風味を届けている。「『ゆかり』は現在進行形
なんです。常に、より良くなるための過程にある。問題解決と向上のためには、クレームを頂くことだってありがたいんです」
18日、現在進行形であることを象徴する出来事が起きたばかりだ。人気商品「ゆかりペンスタイル」(540円)をインターネット上で再発売したところ、たった2分で完売した。
ペン形容器のキャップを外して振ると、先端から「ゆかり」が出てくるアイデア商品。上着のポケットに忍ばせ、ランチの時にスッと出せば、場が華やぐネタ効果がある。14年の発売以降、爆発的な人気を呼び、再発売の度に即日完売が続いている。
ある夜の宴席で豊さんが小瓶に詰めた「ゆかり」をポケットから出して焼酎にサッと掛け、周りに大ウケしたことを契機に、社長自ら発案した。「生前、オヤ
ジにも見せたんです。そしたら『オマエは容器を売るんか。わしゃ好かん』と。でも、いくら外見が良くても中身が悪いものは2度は買ってくれないと分かって
います。品質の良いものにこだわり続けたオヤジの思いは継承し続けます」
亡くなる半年ほど前から哲男さんに「(社を)つぶすなよ」と再三言われた。お客様、そして社員と築いた縁を守ってくれよ―。息子に伝えた最後のメッセージ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http://headlines.yahoo.co.jp/hl?a=20160522-00000077-sph-soci
我が家の豚児共の御飯のお供だった・・・
合掌
일본인에 계속 사랑받는 뿌려「연고」친부모가 소중히 한「인연 」 미시마 테츠오씨의 인생철학
스포츠 알림 5월22일 (일) 10시 33 분배신
업계 2위, 연간 약 40억엔을 매상뿌려「연고」를 제조 판매하는 미시마 식품(히로시마시) 창업자 미시마 테츠오씨가 3월 8일, 노쇠를 위해 98세에망구
되었다.진흰 밥에 빛나는 빨강 보라색의 알갱이.희미하게 감도는 빨강 해 그 향기.밥공기 위에서, 주먹밥의 도구로서 46년간, 많은 일본인에 사랑받아 온 맛을 낳아
낸 사람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차남으로 현사장 유타카씨(61)의 회상과 함께, 인연(연고)을 소중히 한 인생을 소개한다.(키타노 아라타태)
【사진】「연고」친부모 미시마 테츠오씨
죽는 전날, 3월 7 일출 와 일을 유타카씨는 웃는 얼굴로 생각해 낸다.테츠오씨는 히로시마시내의 자택에서 최후때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 이제(벌써), 술은 안된다니 말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로귀』(현지의 명주)를 사람 숟가락 먹이면『응응?』와 반응이 있었습니다.양이 다리, 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좀 더 먹여 주면, 기쁜 듯이 니카~와 웃었습니다 」
다음 8일 오후 1시 20분.가족만으로 봐 취해, 의사에게「지금, 숨을 거두어서…」와 전화를 하고 있는 도중 , 무려 테츠오씨는 다시 호흡을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의사님에게는, 침착해 제대로 님 아이를 봐 주세요라고 말해져 버렸던(웃음) 」
3 분후, 이번은 깊은 잠에 올랐다.98세의 훌륭한 죽음이었다.4월 25일에 개최된 작별의 회.연고 있다 사람들이 약 900명이나 달려왔다.
「눈물보다, 웃는 얼굴로 추억을 말해 주는 것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정말로 고마웠습니다 」
타이쇼 6 년생.테츠오씨의 경영자 인생은, 전후사와도 겹친다.
종군처의 라바울로 종전을 맞이해 귀환 후에 건어물의 행상을 시작한다.1949년에 전신의 미시마 상점을 창업.51년에 한편 등의 뿌리는 판매를 개시했다.
54년에 차남으로서 탄생한 것이 유타카씨였다.「아버지가 집에 있던 기억은 너무 한 있지 않습니다.술을 좋아했던 기억은 있다 응이지만 …」
60년대 후기인 어느 날였다.「돌연, 빨강 자소를 가지고 돌아와『이것이 안의 상품이 되지』라고 말합니다 」.당시 , 채소 절임으로서 팔리기 시작해
있던 식재를 뿌려로 하는 아이디어.해산물 이외의 재료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전례의 없는 도전이었지만, 개발은 곤란을 다했다.수분을 많이 포함한 빨강 자소를, 얼마나
풍미를 잃지 않은 채 건조시킬까.실패를 거듭했다.「가끔, 시작품을 가져 와『 어떤 것이 가장 능숙한가 결정하지 않는 싸움등, 먹어라』라고 말해지고, 15 종류
도 먹어 비교하게 해서 충분했던 」
실은 당시 , 64년의 도쿄 올림픽 후의 불황의 선동으로 회사의 실적은 악화.빚을 안고 있었다.「에서도, 당시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었는지, 언제나『나는 행복하지 아.행복하면』라고 말했습니다.회사가 큰 일이다 라고 전혀 몰랐습니다 」
건조하게 적합한 온도를 발견할 때까지 수년때를 필요로 해, 간신히 발매에 도달한 것은 70년.학교급식에의 채용을 계기로, 평판은 곧바로 퍼졌다.
연고 브랜드가 확립되어 상품이 대량생산 되게 되어도, 소재의 품질에는 일절 타협하지 않았다.「원래 건어물 도매상을 하고 있던 탓인지, 아버지에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었던 」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소중히 한 것은「인연(연고)」였다.사장 스스로 전국 약 300의 생산자의 아래를 찾아 다녀, 대화하는 것을 생애 빠뜨리는거야
샀다.「내가 이었을 때(92년), 유익의처에서 잘 말해졌습니다.『매년 와 주는 것은 당신의 아버지 참고등 있어입니다.매우 고맙고, 꼭 계속해
주세요』는 」
한층 더 존중한 것은, 소비자와의「인연 」.2002년, 상품에 공업용 윤활유가 혼입했던 적이 있었다.지극히 미량으로, 인체에의 영향은 전혀 없는 것이었지만,
곧바로 자주 회수를 결정했다.「안 직후, 아버지는『건강에 영향은 없는 응인가! 괜찮은 응인가!』와.그리고, 돌연, 사내의 자신의 책상의 정리를 시작했기 때문에
.『혹시, 회사 부서진다고 생각하고 있어?』라고 (들)물으면『응』는 」
그러나, 고객과의 인연이 끊어질 것은 없었다.현재는, 구미나 아시아 등 25국으로 판매되는 세계 브랜드에 성장을 이루었다.
친부모가 죽어도, 일본안의 식탁으로, 학교에서, 여행지에서「연고」는 오늘도 존재해, 소비자에게 청량감이 있는 풍미를 보내고 있다.「『연고』는 현재 진행형
입니다.항상, 보다 좋아지기 위한 과정에 있다.문제 해결과 향상을 위해서는, 클레임을 받는 것도 고맙습니다 」
18일, 현재 진행형인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되었음이다.인기 상품「연고 펜스 타일」(540엔)를 인터넷상에서 재발매 했는데, 단 2분에 완매했다.
펜 형용기의 캡을 제외해 거절하면, 첨단으로부터「연고」가 나오는 아이디어 상품.윗도리의 포켓에 숨겨 런치때에 슥이라고 내면, 장소가 화려해지는 재료 효과가 있다.14년의 발매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재발매의 번에 당일 완매가 계속 되고 있다.
있다 밤의 연석으로 유타카씨가 소병에 채운「연고」를 포켓으로부터 내 소주에 얼른 걸어 주위에 대우케 한 것을 계기로, 사장 스스로 발안했다.「생전, 부모
지에도 보였습니다.그랬더니『너는 용기를 파는 인가.원사 좋아하지 않아』와.그렇지만, 아무리 외관이 좋아도 내용이 나쁜 것은 2도는 사 주지 않으면 알아
있습니다.품질의 좋은 것계속 을 고집한 아버지의 생각은 계속 계승하는 」
죽는 반년 정도 전부터 테츠오씨에게「(회사를) 부수지 마」와 재삼 말해졌다.고객, 그리고 사원과 쌓아 올린 인연을 지켜 주어서 ―.아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세지였는지도 모른다.
http://headlines.yahoo.co.jp/hl?a=20160522-00000077-sph-soci
연고・・・와 대등하다
우리 집의 못난 자식모두의 밥의 수행이었던 ・・・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