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用薬須知続編』の著者である松岡恕庵の略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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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岡恕庵 (1668年-1746年)
松岡恕庵は稲生若水門の逸材として、その学風を継承発展させ、その門から小野蘭山を輩出して、わが国本草学の形成に功績のあった人として知られる。
恕庵は名を玄達、字は成章、通称は恕庵、恰顔斉・苟完居と号し、填鈴翁の別号もある。
寛文八年(一六六八)京都に生まれた。経学を山崎闇斎に、のち伊藤仁斎に学び、詩経に出てくる動植物の名の釈明に苦しみ、稲生若水の門に入って本草を修
めた。儒医として身を立てたというが、
。恕庵は享保六年(一七二一)幕府の召に応じて、江戸に下った。これは幕府が国産薬種
(和薬)の調査、増産政策の一環として和薬の実状調査を急いでおり、実地採薬と表裏一体をなすものとして、恕庵の学識が求められたものとみられる。
恕庵は延享元年(一七四四)から『本草綱目』の講義を開始し、水部よりはじめて二年後の延享三年(一七四六)に至って禽部の半ばまで達したとき病に倒れ、病没した。享年七十九歳であった。洛西の妙心寺塔頭実相院に葬られたが、大正元年妙心寺塔頭光圀院に移された。
恕庵の著作は数多く、儒学、神道関係のものを除いても五十編以上にのぼる。しかし、刊行されたものはその半ばにも達せず、生前上梓の『用薬須知』のほかは、遺稿を門人らが上梓したものである。もっとも生前、中国書を校刻したものに『救荒本草』がある。
食療関係の著作では『食療正要』があり、遺稿を嗣子の松岡典が校正し、刊行している。また、甘藷に関する和漢の諸説を引き、その効用を述べた『蕃藷録』
がある。恕庵の代表著書である『用薬須知』は正徳二年(一七一二)の自叙があり、この年が一応の成稿年とみられる。享保十一年(一七二六)に刊行された。
この書は、日用薬物三二○種について薬物ごとに臨床医に役立つ撰品の知識が簡潔に述べられている。恕庵の没後、遺稿を整理編集して『用薬須知後編』『用薬
須知続編』が刊行された。
(参考・宗田一『松岡恕庵』)
http://aeam.umin.ac.jp/siryouko/ikadata/matuoka.html
せいぜい本草に通じていたという程度。
まっ 江戸初期の儒学者ということは・・・
おそらく朝鮮の影響を受けてるね、たぶん(大爆笑)
あひゃひゃひゃ!
『용약스치 속편』의 저자인마쓰오카 조안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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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오카 조안 (1668년-1746년)
마쓰오카 조안은 이노우 자쿠스이문의 일재로서 그 학풍을 계승 발전시켜, 그 문으로부터 오노 란잔을 배출하고, 우리 나라 본초학의 형성에 공적이 있던 사람으로서 알려진다.
동정심암은 이름을 현들, 글자는 나리아키, 통칭은 동정심암, 흡안제・구완거라고 칭해, 전령옹의 별호도 있다.
간분8년(주사위의 1과668) 쿄토에서 태어났다.경학을 야마자키 안사이에게, 후이토진사이에게 배워, 시경에 나오는 동식물의 이름의 해명에 괴로워해, 이노우 자쿠스이가 입문해 초목을 수
.유의로서 몸을 세웠다고 하지만,의학의 학 통은 알려지지 않았다.동정심암은 향보6년(172한) 막부의 소에 따르고, 에도에 내렸다.이것은 막부가 국산 약종
(화약)의 조사, 증산 정책의 일환으로서 화약의 실상 조사를 서둘러 있어 현장 채약과 표리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동정심암의 학식이 요구된 것으로 보여진다.
동정심암은 연향원년(1744)부터『본초강목』의 강의를 개시해, 수부에서(보다) 처음2년 후의 연향 3년(17사6)에 이르러 금부의 반까지 달했을 때 병에 쓰러져 병 잠겼다.향년 79세에 있었다.도읍의 서쪽의 묘신사 탑두 실상원에 매장해졌지만, 타이쇼 원년 묘신사 탑두광국원에 옮겨졌다.
동정심암의 저작은 많이, 유학, 신도 관계의 것을 제외해도 50편 이상에 달한다.그러나, 간행된 것은 그 반에도 달하지 않고, 생전 출판의『용약스치』외는, 유고를 문인등이 출판 한 것이다.무엇보다 생전, 중국서를 교각 한 것에『구황 초목』가 있다.
식료관계의 저작에서는『식료정요』가 있어, 유고를 사자의 마츠오카전이 교정해, 간행하고 있다.또, 사탕수수에 관한 일한의 제설을 당겨, 그 효용을 말한『번저록』
하지만 있다.동정심암의 대표 저서인『용약스치』는 쇼토쿠2년(1712)의 자서가 있어, 이 해가 일응의 성고년으로 보여진다.향보 11년(1726)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일용 약물32○종에 대해 약물 마다 임상의에 도움이 되는 찬품의 지식이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동정심암의 사후, 유고를 정리 편집해『용약스치 후편』『용약
스치 속편』가 간행되었다.
(참고・무네타 하지메『마쓰오카 조안』)
http://aeam.umin.ac.jp/siryouko/ikadata/matuoka.html
의사에서도 자연과학자도 아니어(치)
겨우 초목에 통하고 있었다고 하는 정도.
에도 초기의 유학자라고 하는 것은 ・・・
아마 조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아마(대폭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