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ニューヨーク=ニューシス】ノ・チャンヒョン特派員=少女らの魂が帰ってくる。慰安婦被害女性らの
すさまじい生としを描いた映画”鬼郷”が韓国封切りを控えてロサンゼルス(LA)からニューヨークまで
アメリカ巡回試写会を持つ。
“鬼郷”はチョ・ジョンネ監督が2002年、慰安婦被害ハルモニ後援施設のナヌムの家でカン・イルチ
ュル(88)ハルモニの絵”乗せられる女の子たち”を見たことをきっかけに作られた作品だ。1943年、
十五才の時、中国吉林省の慰安所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カンハルモニは報国隊を選ぶという日本
巡査によって引きずられて行った。
中国瀋陽を経て長春、そして牡丹江慰安所で言葉では言いあらわせない苦痛にあって日本軍‘性
的奴隷’生活をした。戦争が終わらんとする頃、腸チフスをひどく病んで部隊の外に移送された彼
女は他の病気にかかった少女らと共に火の穴に投げこまれようとする時、朝鮮独立軍の助けで劇
的に脱出した。
中国で暮らし、2000年、永久帰国して現在のナヌムの家で起居するカンハルモニは日本軍人らが
病気にかかった少女らを生きたまま燃やした蛮行を証言して絵に残した。
鬼郷は単に故郷を訪れるという意味ではない。日帝に強制的に引きずられて行った少女たちが残
酷なしにいたった後、帰ってくる魂の故郷、”鬼郷”という意味だ。チョ・ジョンネ監督は「慰安婦に引
きずられて行った少女たちは見慣れぬ他国の戦場で20万人以上亡くなった。故郷に帰ってこられ
たごく少数の生存者の話だけ、私たちは聞いただけだ。他国でしんでいった悔しい英霊らを魂で
はあるが故郷に迎えて暖かいご飯、一匙分でもあげたくて”鬼郷”というタイトルにした」と紹介した。
映画は14才の年に日本軍に引きずられて行って牡丹江慰安所であくどい痛みを体験したチョン・
ミン(カン・ハナ)と家族を失って魂を見る能力を持った1991年のウン・ギョン(チェリ)がチョン・ミンの
魂と交感して他の土地でしんでいった慰安婦少女らの霊魂を故郷へ送りかえす内容だ。
およそ13年にわたる製作期間と7万人の市民がクラウド・ポンディングで力を合わせた鬼郷は演技
人生50年の俳優ソン・スクが劇中でカンハルモニをモデルにしたヨンオク役を担うなど、ソ・ミジ(ヨ
ンヒ役)、オ・ジヘ(チョン・ミン、某)等俳優らと製作スタッフ全部才能寄付で参加した。
鬼郷製作スタッフは昨年12月7日、ナヌムの家で意味深い初試写会を持った。ハルモニらは映画
が上映される間、ずっと涙を流しながらも画面から目を離さなかった。上映後、イ・オクソンハルモニ
はからだのあちこちに出た日本刀による傷跡を見せて日本の謝罪とともにどうして”補償”でなく、罪
に対する”賠償”で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鮮やかに説明して周囲をより一層粛然とさせた。
(後略:米上映会スケジュール等)
ソース:ニューシス(韓国語) “慰安婦少女”映画”鬼郷“LAニューヨークなどアメリカ試写会関心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24_0013855949
【뉴욕=뉴시스】노 ·장형 특파원=소녀등의 영혼이 돌아온다.위안부 피해 여성등의 굉장한 생으로 해를 그린 영화"무서운 시골"가 한국 개봉을 앞에 두고 로스앤젤레스(LA)로부터 뉴욕까지 미국 순회 시사회를 가진다. "무서운 시골"는 조·젼네 감독이 2002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 시설의 나눔의 집에서 캔·이르치 르(88) 할머니의 그림"실리는 여자 아이들"를 본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작품이다.1943년, 15세때, 중국 지린성의 위안소에 끌려가서 간 캔 할머니는 보국대를 선택한다고 하는 일본 순경에 의해서 끌려가서 갔다. 중국 심양을 거쳐 창춘, 그리고 모란강 위안소에서 말에서는 말해 나타낼 수 없는 고통에 있어 일본군성 목표 노예생활을 했다.전쟁이 끝나지 않아로 하는 무렵, 장티푸스를 몹시 병들어 부대의 밖에 이송된 그 여자는 다른 병에 걸린 소녀등과 함께 불의 구멍에 처넣어지려고 할 때, 조선 독립군 의 도움으로 극 적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 살아, 2000년, 영구 귀국해 현재의 나눔의 집에서 기거하는 캔 할머니는 일본 군인들이 병에 걸린 소녀등을 산 채로 태운 만행을 증언하고 그림에 남겼다. 무서운 시골은 단지 고향을 방문한다고 하는 의미는 아니다.일제에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간 소녀들이 잔 혹없음에 이른 후, 돌아오는 영혼의 고향,"무서운 시골"라고 하는 의미다.조·젼네 감독은 「위안부에게 인 상처라고 간 소녀들은 익숙하지 않는 타국의 전장에서 20만명 이상 죽었다.고향에 돌아와져서 극히 소수의 생존자의 이야기만, 우리는 (들)물었을 뿐이다.타국에서 죽고 간 분한 영령등을 영혼으로 (은)는 있다가 고향으로 맞이해 따뜻한 밥, 1스푼분이라도 주고 싶고"무서운 시골"라고 하는 타이틀로 했다」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14세의 해에 일본군에 끌려가서 가서 모란강 위안소에서 악랄한 아픔을 체험한 정· 민(캔·하나)과 가족을 잃고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1991년의 운·골(체리)이 정·민의 영혼과 교감 해 다른 토지에서 죽고 간 위안부 소녀등의 영혼을 고향에 송돌려주는 내용이다. 대략 13년에 걸치는 제작 기간과 7만명의 시민이 곳간 땅두릅·폰딘그로 힘을 합한 무서운 시골은 연기 인생 50년의 배우 손·스크가 극중에서 캔 할머니를 모델로 한 욘 오크역을 담당하는 등, 소·미지(요 히역 ), 오·지헤(정·민, 모) 등 배우외와 제작 스탭 전부 재능 기부로 참가했다. 무서운 시골 제작 스탭은 작년 12월 7일, 나눔의 집에서 의미 깊은 첫시사회를 가졌다.할머니등은 영화 하지만 상영되는 동안, 쭉 눈물을 흘리면서도 화면으로부터 한 눈을 팔지 않았다.상영 후, 이·오크손하르모니 (은)는 몸의 여기저기에 나온 일본도에 의한 상처 자국을 보여 일본의 사죄와 함께 어째서"보상"가 아니고, 죄 에 대한"배상"가 아니면 안되는 것인지, 선명하게 설명해 주위를 보다 한층숙연과 시켰다. (후략:미 상영회 스케줄등 ) 소스:뉴시스(한국어) "위안부 소녀"영화"무서운 시골"LA뉴욕 등 미국 시사회 관심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24_0013855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