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満州軍中尉朴正煕」を問う11年前の朴槿恵大統領のインタビューが話題
ハンギョレ新聞 11月8日(日)15時52分配信
朴槿恵(パク・クネ)大統領が11年前、父親の朴正煕(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の日帝強制占領期間の親日附逆(反民族的親日行為)に関して「国を奪わ
れた状態で、様々な職業を持つ人は皆親日行為をしたではないか。そんな風にひっかき回せば国はどうなるか」と発言していた事実が今になってSNSで話題を
呼んでいる。
朴大統領はハンナラ党の代表だった2004年7月、週刊ハンギョレ21との単独インタビューで「朴正煕元大統領が日帝時代に満州軍の中尉だったことについてどう思うか」という質問にこう答えた。
朴大統領は「その時、国はあったのか。国を奪われたことが原罪だ。皆、植民地国家でその民として生きたではないか。
その時、学校で教えていたとしても日本の植民地国家で教師をしたわけだ。 また(我が国には)軍隊もなかったではないか。
その精神が問題だ」として「そのようにして近代教育を受けた人々が、後になって我が国が解放されると初めて陸軍士官学校を作ったではないか」と語ってい
た。
さらに「それなら国を奪われた状態で様々な職業を持つ人がみな親日行為をしたと言うのか。
そんな風にすべてひっかき回せば国はどうなるのか」と話した。
そして「その時に国を愛して独立のために働いた人々の子孫には生活が苦しい人々が多いが、そういうことには関心がない」と付け加えた。
当時は与党のヨルリンウリ党と進歩政党の民主労働党、一部のハンナラ党議員が「親日反民族行為真相究明法」の改正を推進し、現行法の調査対象を「日本軍中佐以上」から「日本軍少尉以上」に拡大して論争が起こった。
最近、朴槿恵政権が歴史教科書の国定化を推進し、一部のネチズンたちが11年前の発言が載っている記事を共有している。 朴大統領の当時の発言は「日帝植民地時代が経済成長と近代化の礎石になった」というニューライト系列の主張と一脈相通じる。
一方、朴正煕元大統領が日帝末期に“秘密光復軍”であったという大韓民国陸軍本部の公式記録は間違いだったという2008年の世界日報の記事も、歴史教科書国定化の波紋と同時にネチズンたちの間で広く共有されている。
世界日報2008年1月18日付「満州軍中尉
朴正煕、“秘密光復軍”に変身」というタイトルの記事によれば、陸軍本部が発刊した『創軍前史』265ページに「満州にいた将校たちには彼らなりの地下組
織があった。朴正煕、申鉉俊(シン・ヒョンジュン)、李周一(イ・ジュイル)など光復軍第3支隊の秘密光復軍として義挙直前に解放を迎えた」と記録されて
いる。 この“秘密光復軍”説の“原典”は1967年光復軍出身の朴英晩(パク・ヨンマン)氏(死亡)が書いた小説『光復軍』だ。
だが、報道をよく読めば、金勝坤(キム・スンコン)元光復会長(92)が「朴英晩は大統領府から金を受け取れると考え『光復軍』を書いたが、内容に目を
通した朴正煕当時大統領は「私のどこが光復軍か。誰がこんな本を書けと言った」と怒り、結局朴英晩は一銭ももらえず大規模に準備していた出版記念会も開け
なかった」と証言した記録が出てくる。 報道は続けて「朴正煕が一時光復軍に加担したのは明らかな事実だ。だが、これは解放以後のことだ。
1945年8月以前に彼が独立運動に参加していたという証拠はどこにもない」と明らかにした。
イ・ジェフン記者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1108-00022297-hankyoreh-kr
じゃあ基地村慰安婦のこともそういうことなのか(嗤)
あひゃひゃひゃ!
「만주군중위 박정희」를 묻는 11년전의 박근 메구미 대통령의 인터뷰가 화제
한겨레 11월8일 (일) 15시 52 분배신
박근 메구미(박・쿠네) 대통령이 11년전, 부친의 박정희(박・톨히) 전 대통령의 일제 강제 점령 기간의 친일부역(반민족적 친일 행위)에 관해서「나라를 탈원
상태로,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는 사람은 모두 친일 행위를 한이 아닌가.그런 식으로 히나 나무 돌리면 나라는 어떻게 될까」라고 발언하고 있던 사실이 지금에 와서 SNS로 화제를
부르고 있다.
박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대표였던 2004년 7월, 주간 한겨레 21과의 단독 인터뷰로「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시대에 만주군의 중위였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대통령은「그 때, 나라는 있었는가.나라를 빼앗겼던 것이 원죄다.모두, 식민지 국가에서 그 백성으로서 산이 아닌가.
그 때,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식민지 국가에서 교사를 한 것이다. 또(우리 나라에는) 군대도 없었다가 아닌가.
그 정신이 문제다」로서「그처럼 해 근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이 되어 우리 나라가 해방되면 처음으로 육군 사관 학교를 만든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어
.
한층 더「그렇다면 나라를 빼앗긴 상태로 여러가지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모두 친일 행위를 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런 식으로 모두 히나 나무 돌리면 나라는 어떻게 되는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그 때에 나라를 사랑하고 독립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의 자손에게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와 덧붙였다.
당시는 여당의 요르린우리당과 진보 정당의 민주 노동당, 일부의 한나라당 의원이「친일반민족 행위 진상 구명법」의 개정을 추진해, 현행법의 조사 대상을「일본군중령 이상」로부터「일본군소위 이상」로 확대하고 논쟁이 일어났다.
최근, 박근혜정권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해, 일부의 네티즌들이 11년전의 발언이 실려 있는 기사를 공유하고 있다. 박대통령의 당시의 발언은「일제 식민지 시대가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초석이 된」라고 하는 신보수주의 계열의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말기에“비밀 광복군”에서 만났다고 하는 대한민국 육군 본부의 공식 기록은 실수였다고 하는 2008년의 세계 일보의 기사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파문과 동시에 네티즌들의 사이에 넓게 공유되고 있다.
세계 일보 2008년 1월 18 일자「만주군중위
박정희, “비밀 광복군”에 변신」라고 하는 타이틀의 기사에 의하면, 육군 본부가 발간한『창군전사』265 페이지에「만주에 있던 장교들에게는 그들나름의 지하조
직이 있었다.박정희, 신현(신・형 쥰), 이주일(이・쥬일) 등 광복군 제 3 지대의 비밀 광복군으로서 거사 직전에 해방을 맞이한」와 기록되어
있다. 이“비밀 광복군”설의“원전”는 1967년 광복군 출신의 박영만(박・욘 맨) 씨(사망)가 쓴 소설『광복군』다.
하지만, 보도를 잘 읽으면, 금승고(김・슨콘) 원광복회장(92)이「박영만은 대통령부로부터 돈을 받아 들일 생각『광복군』를 썼지만, 내용에 눈을
통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나의 어디가 광복군인가.누가 이런 책을 쓰라고 한」라고 화내, 결국박영만은 일전도 받을 수 있지 못하고 대규모로 준비해 있던 출판 기념회도 열어
없었다」라고 증언한 기록이 나온다. 보도는 계속해「박정희가 일시 광복군에 가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하지만, 이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1945년 8월 이전에 그가 독립 운동에 참가하고 있었다고 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와 분명히 했다.
이・제훈 기자 (문의 japan@hani.co.kr )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1108-00022297-hankyoreh-kr
그런 식으로 히나 나무 돌리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자기지마을 위안부도 그런 것인가(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