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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タビュー]日帝が植え付けた殖民史学は根元から掘り出さなければならない


ハンギョレ新聞 10月17日(土)16時34分配信


ハンガラム歴史文化研究所研究委員イ・ジュハン氏

 「檀君神話は事実でなく単なる神話に過ぎない。中国から渡ってきた遊民である衛滿が建てた衛満朝鮮は朝鮮半島で建てられた最初の国家だ。 朝鮮半島の鉄器文化は中国から流入した」。 彼は既存の国定・検定教科書に記述された朝鮮半島の古代史は、日帝強制占領期間に朝鮮総督府によって根本から歪曲されたものとし「歴史教科書を新たに書き 直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主張する。日帝が朝鮮半島占領を正当化するために、我が民族の歴史を勝手に歪曲し、そのような歪曲された歴史を主流韓国史学者ら が無批判に後輩の学者たちに教えてきたというのだ。

 最近、政府の歴史教科書国定化決定で韓国史歪曲論議が熱を帯びる中、在野史学者イ・ジュハン氏(52)が『危険な歴史の時間』(人文書院)を通じて韓国史学界の覚醒を促した。

史学科に入学したが“死んだ歴史”に失望
自ら落第した後、民主化運動で“獄中生活”
申采浩記念事業会に参加し
“在野史学”を開拓

『危険な歴史の時間』を出し国史学界を叱責
「朝鮮史編修會」イ・ビョンドの“親日史観”を批判
「失われた古朝鮮2000年の歴史から探さなければ」

 彼は古朝鮮を建国した檀君神話は決して神話ではないと主張する。“古朝鮮”の存在を初めて書いた人は一然大師(1206~89)であった。彼は生涯を通 じて資料を収集し、70代で三国遺事を書き、そこに壇君王儉が紀元前24世紀に古朝鮮を建国したと記述した。 朝鮮半島と満州地域で紀元前24~30世紀以前の青銅器遺物や遺跡が発見されてから数十年が過ぎた。だが、既存の学界では朝鮮半島における青銅器使用は紀 元前10世紀前後なので紀元前24世紀頃の古朝鮮建国は不可能だと言う。 彼は「青銅器時代に入ってこそ国家という枠組みを作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既存の理論は誤りだ」として「優れた文明を構築したインカやマヤ文明も石器時代で あった」とその根拠を提示する。

 イエスが神話的人物だとしても彼の実在を否定できないように、檀君が実在したので彼の話が伝わっているということだ。「熊と人が結婚した」という神話も やはり、そちらの原住民である“熊トーテム族”が先祖を敬う民族と結婚したことを象徴的に表現したものだということだ。 「今日、延世大生を『新村鷲』、高麗大生を『安岩谷の虎』と言うようなものです」

 彼は「古代韓国文化が中国の黄河流域やシベリア地域から流入したという先入観は捨てるべきだ」と強調する。 古朝鮮の鉄器生産は紀元前13世紀で、中国の紀元前8世紀よりはるかに先んじていたということだ。 古朝鮮時代に辰韓と弁韓地域では鉄が生産されており、穢(わい・正字はのぎへんでなくさんずい)・馬韓・倭人が来て持っていき、すべての貨幣は鉄で造った という記録が三国志、後漢書、東夷列伝等にも記録されている。

 「当時、冶金術の中心地が古朝鮮の領土である満州と朝鮮半島地域でした。 漢字の鐵の字を分解すれば、金属を意味する左側の金と右側には夷族の名称を意味する字が組み合わさっています。それというのも鉄器は中国から輸入されたも のではなく、逆に東夷族の発達した鉄器文明を中国が輸入したからです」。

 「古朝鮮の周辺国に過ぎなかった衛滿が戦国時代に1000人余りの軍勢を率いて古朝鮮に入ってきてはじめて強力な国家を作った」ということも、古代朝鮮 史の主体を中国人とするためにねつ造したことで、朝鮮総督府の“皇国史観”から始まったと見る。彼は「衛滿朝鮮が鉄器を本格的に受け入れ、中央政治組織を 備えた国に成長したという歴史的記録はどこにもない」と指摘した。

 西暦4~6世紀に日本の大和倭が韓半島南部を支配したという「任那日本府説」もやはり日本近代史学界が最初に掲げた学説であり、日帝の韓半島侵略を正当化するために“創造”された話に過ぎないと彼は強調する。

 イ氏は「日帝は1910年から韓国古代史を抹殺するために、数十万冊の史料を回収し廃棄してしまい、1938年に朝鮮史編修会を通じて35冊2万4千 ページに及ぶ『朝鮮史』を新たに発刊した。『朝鮮史』の発刊目的は先ず古朝鮮を歴史の本から消すことだった。 日本より先んじる韓国史をなくしたのだ」と話した。

 「韓国歴史学界の泰斗」と呼ばれるイ・ビョンド(1896~1989)が、解放以後にもこのような殖民史学を主導した事実はすでに良く知られている。 ソウル大国史学科教授、ソウル大大学院長、文教部長官、学術院院長を経て全斗煥(チョン・ドファン)独裁政権で国政諮問委員まで務めた彼は、朝鮮史の編纂 を主導した日本人学者である今西龍から日帝の思い通りに新羅建国から始まる朝鮮史を受け継ぎ、それをそのまま後輩の学者たちに注入したということだ。

 既存学界から「在野学者」「国粋主義者」と呼ばれ徹底的に“無視”されているイ氏は、崇実大で史学を専攻した。 彼は西江大で史学を専攻した兄(イ・ジュヨン氏)の影響を受け遅れて大学に入ったが除籍された。 「意図的に学事警告を受けました。大学で教える歴史が全て死んだ歴史だと感じたからです」。その後、彼は民主化デモに積極的に加担し逮捕され拘束された。 87年6月抗争以後に解放された彼は、富川(プチョン)工業団地地域で偽装就業し労働運動をして再び検挙された。実刑に服して解放された彼は、出版社、肉 体労働など10余種の職業を転々として丹齋 申采浩先生記念事業会の幹事を務めた。「死んだ歴史」と自ら規定した韓国史を蘇らせたかった。 ハンガラム歴史文化研究所研究委員になった彼は、『韓国史が死んでこそ国が生きる』(2013年)という挑発的なタイトルの本を出した。 親日歴史学者の史観を批判したのだ。しかし、既存史学界は徹底的に無視した。 「彼らの恥部を指摘したのです。だから懸命に知らぬふりをするんです」。

 殖民史学解体国民運動本部スポークスマンと女性独立運動記念事業会理事も務めている彼は、「育ちゆく生徒たちが習う韓国史は、一日も早く正さなければならない」、「失われた古朝鮮2000年の歴史を取り戻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語った。

イ・キルウ先任記者 (お問い合わせ japan@hani.co.kr )


     

 

最終更新:10月17日(土)16時34分

ハンギョレ新聞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1017-00022233-hankyoreh-kr





史料や証拠はないが

証言だけは売るほどあるのだろう(嗤)

或いは俺の本が証拠とか?(爆笑)




            

              あひゃひゃひゃ!


 


단군이 실재했다! 어쩐지 오모로이놈이 나왔군(치)

[인터뷰]일제가 심은 식민 사학은 근원으로부터 파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겨레 10월17일 (토) 16시 34 분배신


한가람 역사 문화 연구소 연구 위원이・쥬한씨

 「단군 신화는 사실이 아니고 단순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중국에서 건너 온 유민인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은 한반도에서 지어진 최초의 국가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중국으로부터 유입한 」. 그는 기존의 국정・검정 교과서에 기술된 한반도의 고대사는, 일제 강제 점령 기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서 근본으로부터 왜곡된 것으로 해「역사 교과서를 새롭게 써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라고 주장한다.일제가 한반도 점령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마음대로 왜곡해, 그러한 왜곡된 역사를 주류 한국사 학자들 하지만 무비판에 후배의 학자들에게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으로 한국사 왜곡 논의가 열을 띠는 중, 재야 사학자이・쥬한씨(52)가『위험한 역사의 시간 』(인문 서원)를 통해서 한국사 학계의 각성을 재촉했다.

사학과에 입학했지만“죽은 역사”에 실망
스스로 낙제한 후, 민주화 운동으로“옥중 생활 ”
신채호기념 사업회에 참가해
“재야 사학”를 개척

『위험한 역사의 시간』를 내밀기 국사 학계를 질책
「조선사 편수회」이・볼드의“친일 사관”를 비판
「없어진 고조선 2000년의 역사로부터 찾지 않으면 」

 그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 신화는 결코 신화는 아니라고 주장한다.“고조선”의 존재를 처음으로 쓴 사람은 일연 대사(1206~89)였다.그는 생애를 통 글자라고 자료를 수집해, 70대로 삼국유사를 써, 거기에 단상 군왕검이 기원 전 24 세기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기술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기원 전 24~30 세기 이전의 청동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고 나서 수십년이 지났다.하지만, 기존의 학계에서는 한반도에 있어서의 청동기 사용은 기 원전 10 세기 전후이므로 기원 전 24 세기무렵의 고조선 건국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청동기 시대에 들어가야만 국가라고 하는 골조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기존의 이론은 잘못이다」로서「뛰어난 문명을 구축한 잉카나 마야 문명도 석기시대로 있던」와 그 근거를 제시한다.

 예스가 신화적 인물이라고 해도 그의 실재를 부정할 수 없게, 단군이 실재했으므로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곰과 사람이 결혼한」라고 하는 신화도 역시, 그쪽의 원주민인“곰토템족”가 선조를 존경하는 민족과 결혼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연세대생을『신촌독수리』, 고려대생을『안암골짜기의 범』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

 그는「고대 한국 문화가 중국의 황하 유역이나 시베리아 지역으로부터 유입했다고 하는 선입관은 버려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고조선의 철기 생산은 기원 전 13 세기로, 중국의 기원 전 8 세기보다 아득하게 앞서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고조선 시대에 진한과 변한 지역에서는 철이 생산되고 있어 예(원 있어・정자이상하고 없애지 않는 수행)・마한・왜인이 와 가지고 가, 모든 화폐는 테츠로 양성했다 그렇다고 하는 기록이 삼국지, 후한서, 동부지역 무사 열전등에도 기록되고 있다.

 「당시 , 야금방법의 중심지가 고조선의 영토인 만주와 한반도 지역이었습니다. 한자의 철의 글자를 분해하면, 금속을 의미하는 좌측의 돈과 우측에는 이족의 명칭을 의미하는 글자가 짜 합쳐져 있습니다.그것이라고 하는 것도 철기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었다도 것은 아니고, 반대로 동부지역 무사족의 발달한 철기 문명을 중국이 수입했기 때문에입니다 」.

 「고조선의 주변국에 지나지 않았던 위만이 전국시대에 1000명 남짓의 군세를 인솔하고 고조선에 들어 와 처음 강력한 국가를 만든」라고 하는 일도, 고대 조선 사의 주체를 중국인과 하기 위해서 조작한 것으로, 조선 총독부의“황국 사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그는「위만조선이 철기를 본격적으로 받아 들여 중앙 정치 조직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고 하는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라고 지적했다.

 서기 4~6 세기에 일본의 다이와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하는「임라 일본부설」안개 바늘 일본 근대사 학계가 최초로 내건 학설이며,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창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으면 그는 강조한다.

 이씨는「일제는 1910년부터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수십만권의 사료를 회수해 폐기해 버려, 1938년에 조선사 편수회를 통해서 35권 2만 4천 페이지에 이르는『조선사』를 새롭게 발간했다.『조선사』의 발간 목적은 먼저 고조선을 역사의 책으로부터 지우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보다) 앞서는 한국사를 없앴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불리는 이・볼드(1896~1989)가, 해방 이후 에도 이와 같은 식민 사학을 주도한 사실은 벌써 잘 알려져 있다. 서울 대국 사학과교수, 서울대대학원장, 문교 부장관, 학술원원장을 거쳐 전두환(정・드판) 독재 정권으로 국정 자문 위원까지 맡은 그는, 조선사의 편찬 (을)를 주도한 일본인 학자인 이마니시 료로부터 일제의 생각 했던 대로에 신라 건국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사를 계승해, 그것을 그대로 후배의 학자 서에 주입했다고 하는 것이다.

 기존 학계로부터「재야 학자」「국수주의자」로 불려 철저하게“무시”되고 있는 이씨는, 숭실대로 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서강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형(오빠)(이・쥬욘씨)의 영향을 받아 늦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제적되었다. 「의도적으로 학사 경고를 받았습니다.대학에서 가르치는 역사가 모두 죽은 역사라고 느꼈기 때문에입니다 」.그 후, 그는 민주화 데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에 해방된 그는, 토미카와(프톨) 공업단지 지역에서 위장 취업해 노동 운동을 해 다시 검거되었다.실형에 복종해 해방된 그는, 출판사, 고기 몸노동 등 10여종의 직업을 전전해 단재신채 히로시 선생님 기념 사업회의 간사를 맡았다.「죽은 역사」로 스스로 규정한 한국사를 소생하게 한 싶었다. 한가람 역사 문화 연구소 연구 위원이 된 그는, 『한국사가 죽어야만 나라가 사는 』(2013년)라고 하는 도발적인 타이틀의 책을 냈다. 친일 역사학자의 사관을 비판했던 것이다.그러나, 기존 사학계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들의 치부를 지적했습니다.그러니까 열심히 알지 않는 체를 합니다 」.

 식민 사학 해체 국민운동 본부 대변인과 여성 독립 운동 기념 사업회 이사도 맡고 있는 그는, 「자라 가는 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는,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는」, 「없어진 고조선 2000년의 역사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되는」라고 말했다.

이・키르우 선임 기자 (문의 japan@hani.co.kr )


최종 갱신:10월 17일 (토) 16시 34분

한겨레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1017-00022233-hankyoreh-kr





사료나 증거는 없지만

증언만은 파는 만큼 있을 것이다(치)

혹은 나의 책이 증거라든지?(폭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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