ナチスの歴史を巡るドイツとギリシャの確執
The Economist
2015年3月26日(木)
ドイツとギリシャの指導者たちは建設的と言うにはほど遠い非難の応酬に明け暮れ、ユーロ圏を存続の危険にさらしている。その1例が、ギリシャのヤニス・バルファキス 財務相に関する2013年に撮影されたユーチューブの動画を巡る騒動だ。当時、左寄りの経済学者として知られたバルファキス氏が「ギリシャはデフォルト(債務不履行)すべきだ。あとはドイツが自分で解決しろ」と述べ、中指を突き上げる侮辱的なジェスチャーをする姿が動画に映っている。
独テレビのトーク番組中で3月15日に放映されたこの映像を、バルファキス氏は改ざんされたものだと主張した。前後の関係が無視されているとはいえ、問題の映像は本物であることをドイツのメディアが証明したことで、騒動が長引く結果となった。ドイツの批評家は怒りに任せ、ギリシャは嘘つきで無礼だと言い放った。
ここにきてギリシャとその最大の債権国、ドイツの関係は最悪の状況に陥っている。ギリシャの極左政党、急進左派連合(Syriza)党首のアレクシス・チプラス氏が同国の首相に就任した1月以降、両国の関係は悪化の一途をたどっている。ギリシャ救済策の延長交渉に当たるドイツのウォルフガング・ショイブレ財務相 とギリシャのバルファキス財務相が、互いに信頼を失っていることは明らかだ。ショイブレ氏がバルファキス氏を「愚かなほど単純」とこき下ろすと、駐ベルリンのギリシャ大使はドイツ外務省に抗議した。
ギリシャの国防相は、シリア難民をギリシャからドイツに送り込むと脅しをかけている。その中にテロリストが紛れ込んでいても責任は欧州にあると発言した。さらにギリシャの司法相は、ナチスがギリシャを占領した時に与えた損害の補償の一環として、アテネにあるドイツ語学校、ゲーテ・インスティチュートを差し押さえることもあり得ると示唆している。
第2次世界大戦の過去を反省したドイツ
中指を立てるジェスチャーをしたかどうかなどは、子供じみた喧嘩として済ませることができるかもしれない。だが、ドイツの資産を差し押さえるという、過去の歴史に基づく威嚇は大きな影響をもたらす。両国に付きまとう暗い記憶を蘇らせるからだ。
1941年から1944年までナチスはギリシャを占領した。その時の残虐さは、ナチスがスラブ諸国において見せた残虐さ次いで悲惨なものだった。その時以降、ギリシャはドイツに対する損害賠償請求を公式に取り下げたことはない。そしてこの数年、ギリシャが抱えるに至った膨大な債務を巡って激しい論議が戦わされるなか、ギリシャ政府は突如、ドイツに財政上、モラル上の歴史的責務の精算を求め出した。
ドイツは、その過去について他の国から触れられることを嫌がる。独自の極めて正式な歴史認識方法があるからだ。過去の記憶を思い起こし、そこから学習することは、ドイツの政治的、心理的、物理的アプローチの根幹をなしている。ドイツの議員たちが国政を論じるため連邦議会議事堂に向かう時、目にするのは壁に書かれたキリル文字の落書きだ。1945年にベルリンが陥落した時、同議事堂を占領したロシア赤軍が書いた落書きである。無謀な統治を二度と行わないための静かな警鐘として、ドイツはこの落書きを敢えて残した。ナチスが侵略もしくは占領した国に対して、ドイツの政治家は通常は意識して気を配る。
仮にロシアによるウクライナ侵攻がなければ、アンゲラ・メルケル独首相は今頃、旧ソ連が対ドイツ戦に勝利した70周年を祝う式典に出席する準備をしていたことだろう。だが実際には、その翌日の5月10日にモスクワにある無名戦士の墓を訪れることになりそうだ 。メルケル首相がドイツを欧州におけるイスラエルの最強の同盟国と呼ぶのは、ドイツがホロコーストに対して紛れもない悔恨の意を表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最大の理由である。
戦時補償のあいまいな解決
しかしながら、ドイツが深い贖罪の意を表し、気配りを見せても限界がある。ギリシャが持ち出した一連の歴史問題と、それらがどのよう扱われているかを詳細に見れば明らかだ。
ギリシャの要求は次の3つに分けられる。
第1は、ナチス侵攻の犠牲となった国の政府に当然支払うべきと考えられる一般的な賠償金の問題。
第2が、犠牲者1人ひとりに対してドイツが負うべき精神的なもしくは法的な責務。
そして第3は、占領時代にギリシャがドイツに強要された融資である。この融資はアフリカでの戦争の戦費として使われた。
1953年のロンドン会議において、ギリシャを含む対独債権国は、西ドイツが抱えていた海外債務のほとんどについて支払いを免除した。この結果、ドイツの「経済の奇跡」が成し遂げられたのだ。その際、賠償問題は将来の平和条約に委ねられた。平和条約は1990年に調印され、東西両ドイツと戦勝国4カ国(米国、英国、フランス、ソ連)がドイツ統一を受け入れた。当時のヘルムート・コール首相 とハンス・デートリッヒ・ゲンシャー外相は、この「2+4カ国合意」を平和条約と呼ぶことを敢えて避けた。このことは、賠償問題は条約締結と同時に明白な形で対処されるべきだったとの提案をそらすのに役立った。一方で、賠償問題は解決済みと見なす動きが広がっていった。
この時、ギリシャが抗議することはなかった。だが、やがて同国が調印していない条約はギリシャの賠償請求権を消滅させるものではないと主張するようになった。ギリシャ人がしばしば指摘するように、1990年以前は賠償問題を議論するのは時期尚早だと言われていた。なのに、今では、いま議論しても遅すぎると言われてしまう。今月、チプラス首相は議会で、ドイツは賠償金の支払いを回避するために「トリック」を使ったと非難した。ドイツはこれを強く否定した。つい最近、メルケル首相の報道官が繰り返したように、ドイツは賠償問題を「法的にも、政治的にも解決済み」と見なしている。
ドイツは710億ユーロの賠償を支払ってきた
ドイツは犠牲者個人及びその家族に対する責務についても同様の見解をとっている。西独は戦後、多額の賠償を行ってきた。政府データによれば、賠償額は合計710億ユーロ(約9兆3000億円)に上る。欧州諸国と1960年に交わした合意の一環としてドイツは、ギリシャにおいてナチスの犠牲となった人々に1億1500万ドイツマルク(5750万ユーロ、約74億4000万円)を支払った。
歴史学者のエーベルハート・ロンドルツ氏によれば、これはアウシュビッツに収容されていた日1日当たり2.50ユーロ(約330円)に相当する。犠牲者とその子孫にとって、これは笑止千万な額だろう。ナチスが1944年にディストモ村で繰り広げた大量殺戮の犠牲となった人々は、ドイツを1997年に個人として初めて訴えた。
しかしながら2012年に、ハーグの国際司法裁判所はドイツ側に立ち、政府は、海外の裁判所において個人から起こされた訴訟に関しては免責されるとの概念を導入した。この決定にほっとしたのはドイツだけではない。過去においては、外国人にひどい振る舞いをした政府はいくらもある。
戦時融資は賠償とは異なる
だが1942年にギリシャがドイツに強要された戦時融資については事情が異なる。融資額は4億7600万ライヒマルクで、ギリシャによれば、今日の価値にして推定110億ユーロ(1兆4000億円)に達する。これは、救済策の一部としてギリシャがドイツに負っている支援額650億ユーロ(約8兆5000億円)の約17%に相当する。1960年代、首相を務めたルートヴィヒ・エアハルト 氏は、ドイツは再統一後にこれを返済すると述べた。エアハルト氏は、ドイツ再統一は決して実現しないと考え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
第2次世界大戦中にギリシャに強要した戦時融資の返済について検討すべきだと考えるドイツ人も多い。「今やらなければ、いつやるのか」とロンドルツ氏は言う。前例を作ることを避けたいのなら、ドイツは信託や基金に資金を拠出すればよいと同氏は示唆する。中道左派の社会民主党や緑の党に所属する政治家の中には、責任を負い、誠意を示すというドイツの戦後の伝統を貫くべく、返済を主張する者もいる。
一方、ギリシャが戦争のことを持ち出し、改めて苛立ちを募らせているタイミングを疑いの目で見るドイツ人もいる。2000年ころからドイツ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変わってきたと「ザ・パラドックス・オブ・ジャーマン・パワー」の著者、ハンス・クンナニ 氏は指摘する。ドイツはもはや自らを戦争の加害者とだけ見てはいない、犠牲者としても受け止めている。アウシュビッツの子孫であるだけでなく、英国軍による爆撃で戦火に包まれたドレスデンの子孫でもあるからだ。
ドイツで進むギリシャ不信
今日の文脈で語れば、それが合理的かどうかはともかく、ドイツ人は自らをユーロ危機の犠牲者だと見ている。クンナニ氏によればドイツ人は、「奴らはドイツからカネを奪う口実として過去を持ち出し、自分たちの過ちの尻拭いをドイツにさせようとしている」と考えている。事実、ドイツ最大のタブロイド紙のビルド紙は、賠償の要求を「脅迫」と呼んでいる。
こうした環境の悪化は、当然ながら、ユーロ圏の将来を巡る論議のトーンにも影響を及ぼしている。直近の世論調査によると、ドイツ人の82%がギリシャが約束した改革を遂行できるかを疑問視しており、52%がギリシャにユーロから離脱してほしいと望んでいる。関係悪化を懸念して、メルケル首相は3月23日、チプラス首相をベルリンに招いた*。欧州を意図せぬ災難から守るために、メルケル首相は自慢の交渉力を駆使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報道によると、メルケル首相とチプラス首相はこの会談で、信頼関係を築くことでは同意したものの、政策面での進展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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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the euro zone on the brink again, neither childish squabbles nor historical arguments are helpful to Germany or Greece
Mar 21st 2015 |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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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いまいな解決
賠償問題は明白な形で対処されるべきとの提案をそらすのに役立った協定
一旦は返済すると公言したのに実行されない戦時融資の補償
各国と賠償協定や請求権協定で完全に解決した日本とは大きく異なるようだ
나치스의 역사를 둘러싼 독일과 그리스의 확집
The Economist
2015년 3월 26일(목)
독일과 그리스의 지도자들은 건설적이라고 말하는에는 거리가 먼 비난의 응수에 항상, 유로권을 존속의 위험에 처하고 있다.그 1예가, 그리스의 야니스・바르파키스 재무상에 관한 2013년에 촬영된 유츄브의 동영상을 둘러싼 소동이다.당시 , 왼쪽 가까이의 경제학자로서 알려진 바르파키스씨가「그리스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해야 한다.그리고는 독일이 스스로 해결해라」라고 말하고 중지를 밀어 올리는 모욕적인 제스추어를 하는 모습이 동영상에 비쳐 있다.
독일 TV의 토크 프로그램중에서 3월 15일에 방영된 이 영상을, 바르파키스씨는 개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전후의 관계가 무시되고 있다고는 해도, 문제의 영상은 진짜인 것을 독일의 미디어가 증명한 것으로, 소동이 길어지는 결과가 되었다.독일의 비평가는 분노에 맡겨 그리스는 거짓말쟁이로 무례하다고 단언했다.
지금에 와서 그리스와 그 최대의 채권국, 독일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그리스의 극좌 정당, 급진 좌파 연합(Syriza) 당수 알렉시스・치프라스씨가 동국의 수상으로 취임한 1월 이후, 양국의 관계는 악화의 일로를 더듬고 있다.그리스 구제책의 연장 교섭에 임하는 독일의 볼프강・쇼이블레 재무상(와)과 그리스의 바르파키스 재무상이, 서로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쇼이블레씨가 바르파키스씨를「어리석을 만큼(정도) 단순」곳 나무 내리면, 주베를린의 그리스 대사는 독일 외무성에 항의했다.
그리스의 국방장관은, 시리아 난민을 그리스에서 독일로 보내면 위협을 걸치고 있다.그 중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오고 있어도 책임은 유럽에 있다고 발언했다.한층 더 그리스의 사법상은, 나치스가 그리스를 점령했을 때에게 준 손해의 보상의 일환으로서 아테네에 있는 독일어 학교, 괴테・협회를 압류하기도 할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과거를 반성한 독일
중지를 세우는 제스추어를 했는지 등은, 아이 같아 보인 싸움으로서 끝마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독일의 자산을 압류한다고 하는, 과거의 역사에 근거하는 위협은 큰 영향을 가져온다.양국에 항상 따라다니는 어두운 기억을 소생하게 하기 때문이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나치스는 그리스를 점령했다.그 때의 잔학함은, 나치스가 슬라브 제국에 있어 보인 잔학함 그 다음에 비참한 것이었다.그 때 이후, 그리스는 독일에 대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공식으로 철회했던 적은 없다.그리고 이 수년, 그리스가 안기에 이른 방대한 채무를 둘러싸 격렬한 논의가 싸움원 되는 가운데, 그리스 정부는 갑자기, 독일에 재정상, 모랄상의 역사적 책무의 정산을 요구해 냈다.
독일은, 그 과거에 대해 다른 나라로부터 접할 수 있는 것을 싫어한다.독자적인 지극히 정식적 역사 인식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과거의 기억을 생각이 미쳐, 거기로부터 학습하는 것은, 독일의 정치적, 심리적, 물리적 어프로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독일의 의원들이 국정을 논하기 위해 연방 의회 의사당으로 향할 때, 보는 것은 벽에 쓰여진 키릴 문자의 낙서다.1945년에 베를린이 함락 했을 때, 동의사당을 점령한 러시아 적군이 쓴 낙서이다.무모한 통치를 두 번 다시 실시하지 않기 위한 조용한 경종으로서 독일은 이 낙서를 감히 남겼다.나치스가 침략 혹은 점령한 나라에 대해서, 독일의 정치가는 통상은 의식해 배려한다.
만일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없으면, 안 게라・메르켈독일 수상은 지금 쯤, 구소련이 대독일전에 승리한 70주년을 축하하는 식전에 출석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일 것이다.하지만 실제로는, 그 다음날의 5월 10일에 모스크바에 있는 모`우명전사의 무덤을 방문하게 될 것 같다 .메르켈 수상이 독일을 유럽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최강의 동맹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독일이 대량학살에 대해서 요행도 없는 회한의 뜻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 최대의 이유이다.
전시 보상의애매한 해결
그렇지만,독일이 깊은 속죄의 뜻을 나타내, 배려를 보여도 한계가 있다.그리스가 꺼낸 일련의 역사 문제와 그것들이 어느나름 다루어지고 있을까를
그리스의 요구는 다음의 3개로 나눌 수 있다.
제1은, 나치스 침공의 희생이 된 나라의 정부에 당연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배상금의 문제.
제2가, 희생자 1명 혼자에 대해서 독일이 져야 할 정신적인 혹은 법적인 책무.
그리고 제3은, 점령 시대에 그리스가 독일에 강요 당한 융자이다.이 융자는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의 전비로 해서 사용되었다.
1953년의 런던 회의에 대하고, 그리스를 포함한 대 독일 채권국은, 서독이 안고 있던해외 채무의 대부분에 임해서 지불을 면제했다.이 결과, 독일의「경제의 기적」가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 때,배상 문제는 장래의 평화 조약에 맡길 수 있었다.평화 조약은 1990년에 조인되어 동서 양독일과 전승국 4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 통일을 받아 들였다.당시의 헬무트・콜 수상 (와)과 한스・데이트릿히・겐샤 외상은,이 「2+4개국 합의」를 평화 조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감히 피했다.이것은, 배상 문제는 조약 체결과 동시에 명백한 형태로 대처되어야 했다고의 제안을 딴 데로 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한편, 배상 문제는 해결완료라고 보는 움직임이 확대되었다.
이 때, 그리스가 항의할 것은 없었다.하지만, 이윽고 동국이 조인하고 있지 않는 조약은 그리스의 배상 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었다.그리스인이 자주 지적하도록(듯이), 1990년 이전에는 배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고 말해지고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지금 논의해도 너무 늦다고 말해져 버린다.이번 달, 치프라스 수상은 의회에서,
독일은 710억 유로의 배상을 지불해 왔다
독일은 희생자 개인 및 그 가족에 대한 책무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서독은 전후, 고액의 배상을 실시해 왔다.정부 데이터에 의하면, 배상액은 합계 710억 유로( 약 9조 3000억엔)에 오른다.유럽 제국과 1960년에 주고 받은 합의의 일환으로서 독일은, 그리스에 있어 나치스의 희생이 된 사람들에게 1억 1500만 독일 마르크(5750만 유로, 약 74억 4000만엔)를 지불했다.
역사학자의 에이 벨 하트・론드르트씨에 의하면, 이것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고 있던 날 1 일조 2.50유로( 약 330엔)에 상당한다.희생자와 그 자손에게 있어서, 이것은 가소로움 천만인 액일 것이다.나치스가 1944년에 디스트모마을에서 펼친 대량 살륙의 희생이 된 사람들은, 독일을 1997년에 개인으로서 처음으로 호소했다.
그렇지만2012년에,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는 독일 측에 서, 정부는, 해외의 재판소에 대하고 개인으로부터 일으켜진 소송에 관해서는 면책된다라는 개념을 도입했다.이 결정에 안심한 것은 독일 만이 아니다.과거에 있어서는, 외국인에게 심한 행동을 한 정부는 얼마 있다.
전시 융자는 배상과는 다르다
하지만 1942년에그리스가 독일에 강요 당한 전시 융자에 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융자액은 4억 7600만 라이히 마르크로, 그리스에 의하면, 오늘의 가치로 해 추정 110억 유로(1조 4000억엔)에 이른다.이것은, 구제책의 일부로서 그리스가 독일에 지고 있는 지원액수 650억 유로( 약 8조 5000억엔)의 약 17%에 상당한다.1960년대, 수상을 맡은 르트비히・에아하르트 씨는, 독일은 재통일 후에 이것을 반제한다고 말했다.에아하르트씨는, 독일재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그리스에 강요한 전시 융자의 반제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도 많다.「지금들 없으면, 언제 하는지」와 론드르트씨는 말한다.전례를 만드는 것을 피하고 싶다면, 독일은 신탁이나 기금에 자금을 거출하면 좋으면 동씨는 시사한다.나카미치 좌파의 사회민주당이나 녹색당에 소속하는 정치가중에는, 책임을 져, 성의를 나타낸다고 하는 독일의 전후의 전통을 관철할 수 있도록, 반제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그리스가 전쟁을 꺼내, 재차 가립를 더해가고 있는 타이밍을 혐의의 눈으로 보는 독일인도 있다.2000년무렵부터 독일의 아이덴티티는 바뀌어 왔다고「더・파라독스・오브・German・파워」의 저자, 한스・쿠나니 씨는 지적한다.독일은 이미 스스로를 전쟁의 가해자와만 보지는 않은, 희생자로서도 받아 들이고 있다.아우슈비츠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영국군에 의한 폭격으로 전화에 싸인 드레스덴의 자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일로 나아가는 그리스 불신
오늘의 문맥으로 말하면, 그것이 합리적인지 어떤지는 차치하고, 독일인은 스스로를 유로 위기의 희생자라고 보고 있다.쿠나니씨에 의하면 독일인은, 「놈등은 독일로부터 돈을 빼앗을 구실로서 과거를 꺼내, 스스로의 잘못의 고식 있어를 독일에 시키려고 하고 있는」라고 생각하고 있다.사실, 독일 최대의 타블로이드지의 빌드지는,
이러한 환경의 악화는, 당연히, 유로권의 장래를 둘러싼 논의의 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바로 옆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독일인의 82%가 그리스가 약속한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의문시하고 있어, 52%가 그리스에 유로로부터 이탈해 주었으면 하면 바라고 있다.관계 악화를 염려하고, 메르켈 수상은 3월 23일, 치프라스 수상을 베를린에 불렀다*.유럽을 의도하지 않는 재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메르켈 수상은 자랑의 교섭력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메르켈 수상과 치프라스 수상은 이 회담에서、신뢰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은 동의 했지만, 정책면에서의 진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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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해결
배상 문제는 명백한 형태로 대처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제안을 딴 데로 돌리는데 도움이 된 협정
일단은 반제한다고 공언했는데 실행되지 않는 전시 융자의 보상
각국과 배상 협정이나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게 해결한 일본과는 크게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