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ゾヨングレコラム]
‘正しい’歴史認識に埋没した韓日関係
“抽象的である話よりち密で具体的な内容要求してこそ…外交は道徳でない”
入力2015-03-02 02:2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977512&code=11171373&cp=nv
韓国・日本国交正常化50周年に合った3.1節記念演説でパク・クネ大統領は日本に“韓国と手を握って未来50年のパートナーとして新しい歴史を一緒に使っていこう”と公式提案した。凍りついた両国関係を勘案すればかなり意欲的な提案だ。
ところが日本政府がさっさと応じ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ようだ。 “日本が勇気あって率直に歴史的真実を認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前提がかかっているからだ。 いわゆる‘正しい歴史認識’の問題だ。 これは韓国政府がずっと提起してきたわけだがそのような前提の上で‘韓国・日本新協力時代’を取り上げ論じるのがかえって苦しく見える。
3.1節記念演説を見守って去る正月連休のうち読んだサワダ カスミ毎日新聞ソウル支局長の‘韓国反日の真相’(文芸春秋、2015)を大いに思い出させた。 この本でサワダさんはしばしば議論される‘正しい’という言葉に注目して韓国社会が行き過ぎるほど道徳主義を前面に出すと指摘する。 この言葉は歴史認識からだけでなく人事聴聞会でもしばしば出ると見た。
今月末で二番目韓国再任(在任)を終えるという彼は語学研修を含んで10年やソウルに留まった。 それだけ彼の韓国社会分析は鋭利だ。 ‘正しい…’もその一つだ。 彼は“日本に正しい歴史認識を要求するのは韓国に有利に作用すること”に写るようになるが“そのような考えは日本社会では理解されない”と断言する。 さらに大きな問題は“日本社会が理解できずにいるという事実さえも(韓国社会は)知らずにいるという点”と指摘する。
事実‘正しい’という話は非常に抽象的だ。 その時その時評価を別にする日和見主義的な歴史相対主義はもちろん警戒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の問題に対するサワダさんの見解は明らかでないが明らかなのは‘正しい歴史’に対する共通理解がない状況では韓国がいくら‘正しい’を強調しても両国関係は空回りするほかはないだろうという点だ。
韓国は1987年6月抗争以後権威主義時代の政策から司法府の決定に至るまで歴史正すことの経験を積み重ねた。 チョン・ドゥファン・ノ・テウ前大統領が断罪を受けて独裁政権に抵抗して獄中生活をしたこれらに対する身元回復と補償がなされることもした。 明らかに韓国の誇らしい現代史だ。 だが、日本との関係は違う。 ある国内の論議の的ならば法を新しく作っても可能だが国家間の問題はそうではないためだ。
例えばアベ日本総理が前後70年をむかえる今年独自の‘アベ談話’を出すという。 アベ談話は慰安婦強制動員を反省する‘コウノ談話’(1993)とアジア侵略の歴史を謝罪する‘村山談話’(1995)の継承の有無がカギなので韓国でも少なくない関心事だ。 だが、この問題は一次的に日本市民社会の持分(役割)だ。 韓国の関心、正しさという次元での論評は2次的だけのことだ。
過去の恥部を受け入れて反省・謝罪するのも、事実を隠すのも日本社会が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だ。 彼らが過去をどのように理解するのかは彼ら自らが責任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 私たちが主張できるのはコウノ談話や村山談話に対する明確な歴史的意味、明らかな支持を明らかにする程度だ。
日本に対する私たちの主張は‘正しい’という抽象的な形容詞よりもう少しち密で具体的な内容で表わさなければならない。 慰安婦問題に対してもその間韓国政府は“被害者が納得できる措置でこそする”とだけするだけ具体的にこれという案を出しておいたことがない。
互いに理解可能な主張を入れてこそはじめて両国の交渉テーブルは活気が回るだろう。 ‘正しい’だけ叫んでは足踏みを免れ難い。 外交は道徳でないのではないか。
http://books.bunshun.jp/ud/book/num/9784166610075
パンツ船長やナッツ副社長、塩田奴隷
そんな国の「正しい」や価値観を日本は共有できないんですよw
[조용레코람]
‘올바른’역사 인식에 매몰 한 한일 관계
“추상적인 이야기보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내용 요구해야만…외교는 도덕이 아닌 ”
입력2015-03-02 02:2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977512&code=11171373&cp=nv
한국・일본교정상화 50주년에 맞은 3.1마디 기념 연설로 박・쿠네 대통령은 일본에“한국과 손을 잡아 미래 50년의 파트너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사용해 가자”와 공식 제안했다.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감안 스쳐 바보든지 의욕적인 제안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빨리 응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이 용기 있어 솔직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라고 하는 전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올바른 역사 인식’의 문제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쭉 제기해 온 것이지만 그러한 전제 위에서‘한국・일본신 협력 시대’를 채택해 논하는 것이 오히려 괴롭게 보인다.
3.1마디 기념 연설을 지켜봐 떠나는 정월 연휴의 쳐 읽은사와다카스미 마이니치 신문 서울 지국장의‘한국 반일의 진상 ’(문예춘추, 2015)를 많이 생각나게 했다. 이 책으로 사와다씨는 자주 논의되는‘올바른’라는 말에 주목해 한국 사회가 지나치는 만큼 도덕 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역사 인식으로부터 뿐만이 아니고 인사 청문회에서도 자주 나온다고 보았다.
이달 말에 두번째 한국 재임(재임)을 끝낸다고 하는 그는 어학 연수를 포함해 10년이나 서울에 머물었다. 그 만큼 그의 한국 사회 분석은 예리하다. ‘올바른…’도 그 하나다. 그는“일본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에 비치게 되지만“그러한 생각은 일본 사회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라고 단언한다. 한층 더 큰 문제는“일본 사회가 이해 못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마저도(한국 사회는)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점”라고 지적한다.
사실‘올바른’라고 하는 이야기는 매우 추상적이다.그 때 그 때 평가를 따로 하는 기회주의적인 역사 상대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사와다씨의 견해는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올바른 역사’에 대한 공통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는 한국이 아무리 ‘올바른’를 강조해도 양국 관계는 표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점이다.
한국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으로부터 사법부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역사 바로잡는 것의 경험을 반복했다. 정・두판・노・태우 전대통령이 단죄를 받아 독재 정권에 저항해 옥중 생활을 한 이것들에 대한 신원 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지는 일도 했다. 분명하게 한국의 자랑스러운 현대사다. 하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다르다. 어느A 국내의 논의의적이면 법을 새롭게 만들어도 가능하지만 국가간의 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베 일총리가 전후 70년을 맞이하는 금년 독자적인‘아베 담화’를 낸다고 한다.아베 담화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반성하는‘코우노 담화 ’(1993)와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사죄하는‘무라야마 담화 ’(1995)의 계승의 유무가 열쇠이므로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사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지분(역할)이다. 한국의 관심, 올바름이라고 하는 차원에서의 논평은 2차적만의 일이다.
과거의 치부를 받아 들여 반성・사죄하는 것도, 사실을 숨기는 것도 일본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그들이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그들 스스로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코우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의미, 분명한 지지를 분명히 하는 정도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올바른’라고 하는 추상적인 형용사보다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그 사이 한국 정부는“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조치는 하는”와 만 할 뿐(만큼) 구체적으로 이렇다 할 안을 내 두었던 적이 없다.
서로 이해 가능한 주장을 넣어야 비로소 양국의 교섭 테이블은 활기가 돌 것이다.‘올바른’만 외치고는 제자리 걸음을 면하기 어렵다. 외교는 도덕이 아닌 것이 아닌가.
http://books.bunshun.jp/ud/book/num/9784166610075
팬츠 선장이나 너트 부사장, 시오다 노예
그런 나라의「올바른」나 가치관을 일본은 공유할 수 없어요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