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年12月4日、警視庁外事課は新潟県新発田市内のバーで密談を行っていた工作員2名に任意同行を求め、新発田警察署で取り調べを行った。
工作員の鞄の中からは雷管を装てんした4本組のダイナマイト3束の計12本が発見され、爆発物取締罰則現行犯で逮捕された。さらに、新潟駅では工作員が駅に預けたガソリン1ℓ缶4本を隠したウィスキー箱が発見され、工作員たちは新潟日赤センターを爆破しようとしていたことが判明した[25][26][27][28]。
また、この工作事件は韓国代表部(領事館)の金永煥三等書記官と来日中の韓国特務機関の幹部が指揮をとっていたことも明らかにされた[22]。
この時逮捕された工作員は、日本国籍を取得した在日韓国人と在日義勇兵として朝鮮戦争に参加した韓国治安局所属の在日朝鮮人である[22][4]。
日本国籍を取得している在日韓国人は事件前には、新聞記者と称して日本赤十字社本部の周辺に入り浸っており、日本赤十字社からは出入り禁止とされていた[4]。
事件発覚後、警察は次々と韓国の工作員を摘発した。この爆破未遂事件は日本社会に衝撃を与え、韓国政府や在日大韓民国居留民団に対しての日本世論が硬化した。[29]
Wiki日本版より
http://ja.wikipedia.org/wiki/%E6%96%B0%E6%BD%9F%E6%97%A5%E8%B5%A4%E3%82%BB%E3%83%B3%E3%82%BF%E3%83%BC%E7%88%86%E7%A0%B4%E6%9C%AA%E9%81%82%E4%BA%8B%E4%BB%B6
なおこの工作員らは国立ソウル顕忠院に祀られている。
テロリストを祀っているのか~
1959년12월 4일,경시청외사과는 니가타현시바타시내의 바로 밀담을 실시하고 있던 공작원2명에 임의 동행을 요구해시바타 경찰서에서 조사를 실시했다.
공작원의 가방중에서는 뇌관을 장전한 4 홍구미의다이너마이트 3다발의 합계12개가 발견되어 폭발물 단속벌칙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게다가 니가타역에서는 공작원이 역에 맡긴 가솔린 1ℓ캔 4개를 숨긴 위스키상자가 발견되어 공작원들은 니가타 일본 적십자사 센터를 폭파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 판명된[25][26][27][28].
또, 이 공작 사건은 한국 대표부(영사관)의 금영환삼등 서기관과 일본 방문중의 한국 특무 기관의 간부가 지휘를 하고 있던 것도 밝혀진[22].
이 때 체포된 공작원은, 일본국적을 취득한 재일 한국인과 재일 의용병으로서 한국 전쟁에 참가한 한국 치안국 소속의 재일 한국인이다[22][4].
일본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은 사건전에는,신문기자라고 칭해일본 적십자사 본부의 주변에 틀어박혀 있고 있어 일본 적십자사에서는 출입 금지로 되어 있었다[4].
사건 발각 후, 경찰은 차례차례로 한국의 공작원을 적발했다.이 폭파 미수 사건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어 한국 정부나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에 대해서의 일본 여론이 경화했다.[29]
Wiki 일본판보다
http://ja.wikipedia.org/wiki/%E6%96%B0%E6%BD%9F%E6%97%A5%E8%B5%A4%E3%82%BB%E3%83%B3%E3%82%BF%E3%83%BC%E7%88%86%E7%A0%B4%E6%9C%AA%E9%81%82%E4%BA%8B%E4%BB%B6
또한 이 공작원등은국립 서울현충원에 모셔지고 있다.
테러리스트를 모시고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