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は韓国を全力で守り、韓国は恩をあだで返してきた歴史】
■1997年、アジア危機で崩壊寸前の韓国を日本が救済 → アジア通貨危機当時、韓国は世界から多額の資金を借りていました。
日本は自国にも危機が波及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韓国の資金返済を楽にしてあげるよう日本の金融機関のみならず
欧米をも説得して妥協させました。日本が奔走していなければ、韓国は当時もっと悲惨な破綻状態に陥っ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
■2005年、日韓通貨スワップ協定締結 → 「通貨スワップ」とは、通貨危機に陥った際に互いに通貨を融通しあう制度で、
日本と韓国とは2005年に初めて通貨スワップ協定を結びました。戦後、日本は通貨危機に陥ったことは一度もありませんが、
韓国はアジア危機などで過去に何度か通貨危機を経験しており、事実上、韓国が危機に陥った場合を想定して、日本が救済してあげるための協定です。
■2008年、リーマン危機で限度額引き上げ → リーマン危機で韓国も危機に陥ったため、
当初限度額30億ドル(当時約3千億円相当)だったスワップ協定を、一時的に200億ドル(当時約2兆円相当)に引き上げてあげました。
この日本の協力がなければ韓国が破綻していたかどうかはわかりませんが、リーマン危機当時は、
アジア危機当時に迫るほど韓国ウォンが急落していましたから、日韓スワップ協定は市場を牽制し、
ウォン急落に歯止めをかけて韓国経済を安定化させることに貢献したと考えられます。
■2009年~2010年 韓国ウォン安政策で日本つぶしに成功 → 急速な円高で日本経済がダメージを受けている時、
韓国もウォン高圧力を受けていました。しかし、韓国政府は執拗にウォン売り為替介入を実施し、ウォン安政策をとりました。
結果的に、海外では円高に負けた日本製品が商品棚からほとんど消えてしまい、
代わって、ウォン安に後押しされた韓国製品が所狭しと並べられました。
つまり、ウォン安政策により、日本の大手製造業および多数の下請け中小企業の雇用と利益が失われ、
それが韓国の雇用と利益に姿を変えたということです。
■2011年夏、ウォン急落で韓国ピンチ → ウォン安政策により飛ぶ鳥落とす勢いだった韓国ですが、
欧州危機により信用収縮が起き、ウォンが急落しました。
慌てた韓国は、「米国や日本がウォン急落を防いで通貨を安定させる責任がある」と言い始めました。
■2011年10月 民主党政府、韓国を全力で支援 → 韓国ウォンが急落の気配を見せ始めたことを受けて、
将来の急落に備えた安全網という意味で、日本政府は善意で通貨スワップ協定を700億ドル
(約5兆4千億円相当)に拡大することで合意しました。
■2011年10月 韓国メディア「ケチな日本が5兆円も」と大喜び → 韓国メディアは
「ケチな日本が、予想を超える日韓通貨スワップを締結」と報道しました。
韓国に対する有効な報復措置】
以上の経緯を知れば、韓国への有効な措置はすぐにわかります。日本が軍事的に米国の傘下にあることで
守られているように、韓国は経済的に日本に守られてきた歴史があります。日韓通貨スワップ協定を破棄するだけでも効果があります。
協定を破棄したからといって韓国経済が直ちに悪化す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
日本の安全網を失った韓国経済は非常に脆く、ちょっとした経済ショックで破綻しやすくなることだけは間違いないでしょう。
한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숨기는 일본의 지원
한국에 대한 유효한 보복 조치 】
【일본은 한국을 전력으로 지켜, 한국은 은혜를 원수로 돌려주어 온 역사 】
■1997년, 아시아 위기로 붕괴 직전의 한국을 일본이 구제 → 아시아 통화 위기 당시 , 한국은 세계로부터 고액의 자금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자국에도 위기가 파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금 반제를 편하게 해 주도록(듯이) 일본의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구미도 설득해 타협시켰습니다.일본이 분주 하고 있지 않으면, 한국은 당시 더 비참한 파탄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2005년, 일한 통화스왑(currency swaps) 협정 체결 → 「통화스왑(currency swaps)」란, 통화 위기에 빠졌을 때에 서로 통화를 서로 융통하는 제도로,
일본과 한국과는 2005년에 처음으로 통화스왑(currency swaps) 협정을 체결했습니다.전후, 일본은 통화 위기에 빠진 것은 한번도 없습니다만,
한국은 아시아 위기등에서 과거에 몇 번이나 통화 위기를 경험하고 있어, 사실상, 한국이 위기에 빠졌을 경우를 상정하고, 일본이 구제 해 주기 위한 협정입니다.
■2008년, 리만 위기로 한도액 인상 → 리만 위기로 한국도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당초 한도액 30억 달러(당시 약 3 천억엔상당)였던 스왑(swap)협정을, 일시적으로 200억 달러(당시 약 2조엔 상당)로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이 일본의 협력이 없으면 한국이 파탄하고 있었는지 어떠했는지는 모릅니다만, 리만 위기 당시는,
아시아 위기 당시에 다가오는 만큼 한국원이 급락하고 있었으니까, 일한 스왑(swap)협정은 시장을 견제해,
원 급락에 브레이크를 걸어 한국 경제를 안정화 시키는 것에 공헌했다고 생각됩니다.
■2009년~2010년 한국 원 약세 정책으로 일본 부수기에 성공 → 급속한 엔고로 일본 경제가 데미지를 받고 있을 때,
한국도원 고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집요하게원 매도환 개입을 실시해, 원 약세 정책을 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외에서는 엔고에 진 일본 제품이 상품선반으로부터 거의 사라져 버려,
대신하고, 원 약세에 지지된 한국 제품이 소협 해와 늘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즉, 원 약세 정책에 의해, 일본의 대기업 제조업 및 다수의 하청 중소기업의 고용과 이익이 없어져
그것이 한국의 고용과 이익에 모습을 바꾸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2011년 여름, 원 급락으로 한국 핀치 → 원 약세 정책에 의해 하늘을 나는 새 떨어뜨릴 기세였던 한국입니다만,
유럽 위기에 의해 신용수축이 일어나원이 급락했습니다.
당황한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이원 급락을 막아 통화를 안정시킬 책임이 있는」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10월 민주당 정부, 한국을 전력으로 지원 → 한국원이 급락의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 것을 받고,
장래의 급락에 대비한 안전망이라고 하는 의미로, 일본 정부는 선의로 통화스왑(currency swaps) 협정을 700억 달러
( 약 5조 4 천억엔상당히)로 확대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2011년 10월 한국 미디어「구두쇠인 일본이 5조엔이나」와 큰 기쁨 → 한국 미디어는
「구두쇠인 일본이, 예상을 넘는 일한 통화스왑(currency swaps)를 체결」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상의 경위를 알면, 한국에의 유효한 조치는 곧바로 압니다.일본이 군사적으로 미국의 산하에 있는 것으로
지켜지고 있도록(듯이), 한국은 경제적으로 일본에 지켜져 온 역사가 있습니다.일한 통화스왑(currency swaps) 협정을 파기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협정을 파기했다고 해 한국 경제가 즉시 악화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본의 안전망을 잃은 한국 경제는 매우 무르고, 약간의 경제 쇼크로 파탄하기 쉬워지는 것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