黄錦周お婆さんの証言集♪
発言日 | 種別 | 発言媒体 | 年齢 | 内容 |
1992. 4 | 出版物 | 元兵士たちの証言 従軍慰安婦 西野留美子著 | 17歳 | 17歳の時、工場で働けるといわれ満州の吉林へ。 其処が慰安所だった。淋病、梅毒にかかっても慰安所で働かされた。 |
1992. 7 | 出版物 | 従軍慰安婦と戦後補償 高木健一著 | 17歳 | 12歳の時売られ17歳の時工場供出の員数割り当てがきてソウルの金持ちの家で女中をしていた家の娘の身代わりで。 吉林省、樺太、また吉林省と移動してそこで終戦。 |
1993. 7 | 出版物 | 写真記録 破られた沈黙 アジアの「従軍慰安婦」たち 伊藤孝司著 | (計算)21歳 | 1922年生まれ。12歳の時売られ1942年工場供出の員数割り当てがきてソウルの金持ちの家で女中をしていた家の娘の身代わり。 行った先が慰安所だった。 |
1993.10 | 出版物 | 証言 強制連行された朝鮮人軍慰安婦たち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挺身隊研究会編集 | 20歳 | 1922年8月15日生まれ。1941年村の班長(日本人)が 「日本の軍需工場に三年の契約で仕事をしに行けばお金が儲かる、一家で少なくとも一人は行かなくてはならない」 と、暗に脅迫しました。行った先が吉林駅。 |
1995. 7.24 | 新聞報道 | 元従軍慰安婦 黄錦周の世界1 朝日新聞 | 17歳 | 日本人の班長が「三年契約で軍需工場で働く」件で会う度に「どうするの?」と聞くので「私が行きます」 |
1995. 7.25 | 新聞報道 | 元従軍慰安婦 黄錦周の世界2 朝日新聞 | | 「多い日で15人ぐらい、クリスマスには20人近かった」 |
1997.夏 | 本人発言 | 日韓社会科教育交流団韓国を訪問 | 18歳 | 満18歳になった時のある日、男がやって来て村から娘を出すように伝達をしました。 |
1997.12. 5 | 本人発言 | 元日本軍「慰安婦」の証言を聞く集会 福岡 | 20歳 | 村の班長(日本人)に「日本の軍需工場に行けば、お金がもうかる。 一家に一人は行かなくては」と脅かされ、奉公先の娘たちにかわって、1941年、二十歳で国を離れました |
2001. 5.17 | 本人発言 | ここが変だよ日本人 TBS | 19歳 | 私は19歳で学校を卒業する25日前に日本軍に引っ張りだされ仕方なく慰安所に行ったんだ! |
2001. 7.17 | 本人発言 | 黄錦周さんの証言を聞く会 東京大学にて | 14歳 | 14歳のとき、いわゆる「少女供出」で満州に連行され |
2006. 6 | 出版物 | 証言 未来への記憶 アジア「慰安婦」証言集 西野瑠美子・金富子編集 | | 「証言 強制連行された朝鮮人軍慰安婦たち」転載 |
2006.11.28 | 新聞報道 | 元慰安婦ファンさん、4000万ウォンを奨学金に寄託 中央日報 | 17歳 | 1924年生まれ 17歳の時日本軍に連行され興南のガラス工場で働き、20歳の時に間島に連れて行かれて慰安婦になった。 |
で、朝鮮人は、どの証言を信じているんだ?
자칭 위안부의 매춘 노파
그리고, 한국인은, 어느 증언을 믿고 있다?
황금주할머니의 증언집♪
발언일 | 종별 | 발언 매체 | 연령 | 내용 |
1992. 4 | 출판물 | 전 병사들의 증언 종군위안부 니시노 루미꼬저 | 17세 | 17세 때, 공장에서 일할 수 있으면 까닭 만주의 요시바야시에. 기처가 위안소였다.임질, 매독에 걸려도 위안소에서 일하게되었다. |
1992. 7 | 출판물 | 종군위안부와 전후 보상 타카기 켄이치저 | 17세 | 12세 때 팔려 17세 때 공장 공출의 원수 할당이 와 서울의 부자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던 집의 딸(아가씨)의 대역으로. 지린성, 가라후토, 또 지린성 이동해 거기서 종전. |
1993. 7 | 출판물 | 사진 기록 찢어진 침묵 아시아의「종군위안부」들 이토 타카시저 | (계산) 21세 | 1922 년생.12세 때 팔려 1942년 공장 공출의 원수 할당이 와 서울의 부자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던 집의 딸(아가씨)의 대역. 간 앞이 위안소였다. |
1993.10 | 출판물 | 증언 강제 연행된 한국인군위안부들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정신대 연구회 편집 | 20세 | 1922년 8월 15일 태생.1941년촌의 반장(일본인)이 「일본의 군수 공장에 3년의 계약으로 일을 하러 가면 돈이 득을 보는, 일가에서 적어도 한 명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 라고 은근히 협박했습니다.간 앞이 요시바야시역. |
1995. 7.24 | 신문보도 | 전 종군 위안부 황금주의세계 1 아사히 신문 | 17세 | 일본인의 반장이「3년 계약으로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건으로 만날 때마다「어떻게 해?」라고 (들)물으므로「내가 가는 」 |
1995. 7.25 | 신문보도 | 전 종군 위안부 황금주의세계 2 아사히 신문 | | 「많은 날로 15명 정도로, 크리스마스에는 20명 가까웠던 」 |
1997.여름 | 본인 발언 | 일한 사회과 교육 교류단 한국을 방문 | 18세 | 만 18세가 되었을 때인 어느 날, 남자가 와 마을로부터 딸(아가씨)를 꺼내도록(듯이) 전달을 했습니다. |
1997.12. 5 | 본인 발언 | 전 일본군「위안부」의 증언을 (듣)묻는 집회 후쿠오카 | 20세 | 촌의 반장(일본인)에게「일본의 군수 공장에 가면, 돈이 돈을 번다. 일가에 한 명은 가지 않으면」와 위협해져 봉사할 곳의 딸(아가씨)들에게 변하고, 1941년, 스무살에 나라를 떠났습니다 |
2001. 5.17 | 본인 발언 | 여기가 이상해 일본인 TBS | 19세 | 사는 19세에 학교를 졸업하는 25일전에 일본군에 끌기 시작해져서 어쩔 수 없이 위안소에 갔다! |
2001. 7.17 | 본인 발언 | 황금슈씨의 증언을 (듣)묻는 회 도쿄대학에서 | 14세 | 14세 때, 이른바 「소녀 공출」로 만주에 연행되어 |
2006. 6 | 출판물 | 증언 미래에의 기억 아시아「위안부」증언집 니시노류요시코・카나토미자 편집 | | 「증언 강제 연행된 한국인군위안부들」전재 |
2006.11.28 | 신문보도 | 원위안부 환씨, 4000만원을 장학금에 기탁 중앙 일보 | 17세 | 1924 년생 17세 때 일본군에 연행되어 흥남의 유리 공장에서 일해, 20세 때에 마지마에 데리고 가져 위안부가 되었다. |
그리고, 한국인은, 어느 증언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