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大韓帝国の悲劇 1908年


が本はプレドリック分かってメケンジ (Frederick Aethur Mckenzie)が書いた本だ





彼はカナダクェベックズで生まれて 1900年代イギリスの日刊紙 <デイリーメール>に入社して記者になった

1904年露日戦争取材のために大韓帝国を訪問した当時日本帝国陸軍従軍記者に活動した


1906年大韓帝国をまた訪問したし 1907年義兵活躍を取材して写真を残した彼は著書 <ベールを脱いだ東洋>の

付録で韓国人は日本の統治を反対するという文を書いたし 1908年 <大韓帝国の悲劇>という本を執筆発行した


大韓帝国の悲劇>の内容を見ましょう



日本の力強い手



189ページ

韓国は国民の愛情と支持を得るために努力しました少なくとも一地方では

住宅焼却政策で繁栄する共同体が廃墟になって

叛軍勢力が増加して激しい憎悪の種子を振り撤いたがこれを根付くことは多くの世代がかかるでしょう


私たちは村と村を一つずつ歩き回って村が燃えて ,村が完全に燃えてしまいました

人々の態度は日本の手がその所に強く触れたということを言ってくれました


私たちは一少年が木一荷物を持っていることを見つけたりしました

その少年を私たちを見れば何が分からないと思って素早く道端に駆け付けました


私たちは家何軒が残っている村を通り過ぎました私が身近に近付くと女達はシェルターに飛びました

後で聞いた痛い期の中に一部はどうして彼らが逃げなければならないか判断するのに役に立ちましたもちろん彼らは私を日本人で思いました


道を歩く始終日本人たちが破壊しない所では奪われたという話を聞きました


ここに村年寄りたちも盗みに抵抗している途中日本軍にひどく殴ぐられた年寄りを連れて来たりしました
すると暗い話が聞こえましたソウルでは彼らをあざ笑いましたこれから被害者たちと向い合ったら
これ以上笑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192ページ



下端から翻訳

夕方になって私が原住民旅館庭先に腰を据えた後教会の長老たちが私を見に来た

2人の静かで厳肅な中年男性だった


彼らはちょっと浮かながって村がよほど苦しんでいると言った

過ぎ去る軍人たちが願うことを奪って一部騷乱をやらかしていた



植木屋の妻は小銃と固定銃剣を持って家を守っていたまた他の日本軍に暴行された

一少年が女の悲鳴に導かれて駆けて来て連れようと来た



193ページ

翻訳

ご主人彼が刀を持って近付いたと言うが彼が何ができましょうか? 長老たちが問った

門の前に小銃と銃剣を持った軍人があった

後で私はこのような非常に似ている他の話を聞くようになった


が話は確認ができるだけその席で確認された私の判断によればこのような怒りは多くなかったし

例外的な軍隊に限ったことだった

しかし彼らの 数に比べて全然不均衡した效果を生んだ

韓国人は女性のシンソングハムエデした高い以上を持っているし比較的少ない 数の犯罪によって恐ろしさが多数の人々が

山で逃げた原因だった

村を燃やす過程で疑うまでもなく多い韓国女性と幼い子供達が命を失った

日本軍は多くの場合村を襲って周辺に叛軍がいる可能性に備えて雑多な聡気難事に沒頭したことと見える


ある村に 2軒の家が相変らず残っていることを見つけた時

人々は日本人がその家の中に一家は家主の娘 10歳少女をうったから残ったことだと言った


彼らが彼女をうった時村人々は軍人たちに近付いて :申し訳ないがこの男の娘を殺したから

彼の家を燃やしてはいけないと言ったと言う

そして軍人たちは私たちの言葉を聞いた


清州と原州みたいな都市ではほとんどすべての女性と子供上流層家庭が消えた
店は発つ前に主人が門を閉めてバリケードを打ったが多くの店が強制で門を開いて奪われた


日本軍によって廃墟になった韓国のある村




韓国人叛軍の外郭駐屯地

(当時帝国主義視線で韓国人義兵を叛軍で表現していました)


174ページ

鉄道私たちはすべての港に火をつけてチンコカイ(chinkokai: 翻訳だめだ)を破壊してIto(伊藤博文)と彼のすべての日本人
李完用と彼の部下たちを殺してうちの皇帝に対する叛軍はただ一人も生け捕らないだろう

それでは日本は私たちと戦うためにすべての軍隊を動員するでしょう
我が手には武器がないが私たちは私たちの愛国心を守るでしょう

日本の鋭い武器に対立して戦うことができないが外国領事たちに軍隊を手伝ってくれと要請するはずで ,彼らは正しい人々を助けて
悪人たちを破壊するでしょうそうではなければ死ぬようにほったらかします

日本に対立して戦って必要だったら我が国と皇帝と一緒に死ぬでしょう私たちには他の道が開かれていないからです

皇帝と私たちの兄弟たちはIto伊藤博文)と 李完用 及び彼ら仲間たちの憎らしい計画に必ず死ぬはずだから

今惨めに長く生きるより命を失った方が良いです
祖国を捨てて暮すより愛国者として死んだ方が良いです


李儁先生は祖国のために哀願しようと外国地へ行ったしその計画が移行されなくてお腹を割って外国に血をこぼして

自分の愛国心を世界に宣布しました
団結しない利川万名の私たちの国民は 李儁先生に対する記憶に不快感を感じます

私たちは祖国の滅亡と祖国のYujiの中に一つを選択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たちが住んでも死んでも偉いことは私たちが祖国のために仕事をするとか反対するとか一度に決心するのです
南部地方の一韓国人グループは率直な方式でIto(伊藤博文)に請願しました


206ページ



206ページ


彼らの頭に向けて駆けて来ました私たちが立ってお待ちになる間彼らは私たちに駆けて来ました
マチァムネ彼らは私が誰なのか見たし身近に近付いた時彼らの間違いに対して非常に優雅に謝りました

”君が大声を出したことは幸いだったの”と言った不細工な顔の若い叛軍がカートリッジをまた懐に入れながら言いました
”私はお前をよく選り分けて鉄砲をうとうと思ったの “
がバンドのいくつかの兵士らは 14歳から 16歳を過ぎなかったです

私は彼らを立って写真を撮るようにしたし反対側ページの写真は彼らの外貌を描写よりもっとちゃんと見えてくれるでしょう

正午になると私は前日韓国軍人たちが追われた所に到着しましたその所の人々は叛軍たちから
非常に非友好的な態度で思われたし叛軍は自分たちを日本に裏切ったと思いました

村人々は何がけんかの真実なのか確かに言ってくれました一人の日本軍は腕に肉をそう負傷を負ったし
5人の叛軍が負傷を負いました人々の中で 3人は朝早く治療を受けた人々でした

他の 2人は競技場に残されたが 1人は左側頬にひどく銃傷を負ったし他の 1人は右側肩に銃傷を負いました

村人々の話を引用すれば日本軍たちが負傷された男たちに近付くと彼らはとても痛くてものを言えなかったし
動物のようにフラフラと叫びました彼らは手に武器を持っていなかったし彼らの咲く咲きました







207ページ

地を走り回りました日本軍は彼らの泣き声を聞いて近付いて銃剣で彼らを何度や突いて殺して
死ぬ時までずっと突きました銃剣に突かれた男たちは非常に傷心したし
私たちは彼らを起こして埋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

村人々の表情は単純な描写以上に銃剣がいくら無惨だったのかをもっと雄弁的に言ってくれました

これが孤立した事例なら敢えて言及する必要がないだろうしかし四方で聞くことによれば
日本は国内で開いた幾多の戦闘で組織的にすべての負傷者と自首したすべての人を殺しました

すべての場合にそうだったのではないが確かに多い場合にそうしました

が事実は韓国人死傷者 数 負傷者や虜に対する言及なしに非常に多い人が死亡したことは日本の戦闘記録で確認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また 一つ言及するに如く点があります日本軍は家を燃やすこと以外にも
叛軍 (韓国人義兵)を支援したことに疑心されるすべての男性たちを射殺しました

このような処刑を説明する時韓国人たちはいつもバルリスッが打ち上げされた後銃撃を指揮した日本将校が
死体に上がって刀を入れるとかハッキングした方法を言及しながら仕上げました

私が確信することができる正確性を持ったイギリス人も同じな話を聞きました彼は反乱外郭の日本軍基地近くに住んだし
その所で処刑の中で 1人を参加させてこれが事実なのか確認しました
罪囚は手を後に縛られたまま外でひかれて行ったし日本人 1人がいました

208ページ

兵士らが彼の首周りをホールターに連れて行きました.
彼らが射撃場に行く道に日本兵士は見守っていた外国人を見つけました

その後彼はわざわざホールターをびゅうびゅう投げて罪囚を拗るようにした後小銃の尻端でお腹を強く突きました
しかし今度は死後に死体を切る事がなかったです


대한제국의 비극


대한제국의 비극 1908년 


이 책은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 (Frederick Aethur Mckenzie)가 쓴 책이다 





그는 캐나다 퀘벡주에서 태어나서 1900년대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입사하여 기자가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대한제국을 방문했다  당시 일본제국 육군 종군 기자로 활동하였다 


1906년 대한제국을 다시 방문했고  1907년 의병 활약을 취재하여 사진을 남겼다 그는 저서 <베일을 벗은 동양>의 

부록에서 한국인은 일본의 통치를 반대한다는 글을 썼고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을 집필 발행하였다 


대한제국의 비극>의 내용을 봅시다 



일본의 강력한 손 



189페이지

한국은 국민들의 애정과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적어도 한 지방에서는 

주택 소각 정책으로  번영하는 공동체가 폐허가 되고 

반군 세력이 증가하여 격렬한 증오의 씨앗을 뿌렸는데 이를 뿌리내리는 것은  여러 세대가 걸릴것입니다 


우리는 마을과 마을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마을이 불타고 ,마을이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사람들의  태도는 일본의 손이 그 곳에 강하게 닿았다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소년이 나무 한 짐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 소년을 우리를 보면 무엇을 모를 줄 알고 재빨리 길가로 달려 갔습니다


우리는 집 몇 채가 남아있는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들은 피난처로 날아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아야기 중에 일부는 왜 그들이 도망쳐야 하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나를 일본인으로 여겼습니다


길을 걷는 내내 일본인들이  파괴하지  않은 곳에서는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마을 어르신들도 도둑질에 저항하다가 일본군에 심하게 구타당한 노인을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어두운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서울에서는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이제 피해자들과 마주하니 
더 이상 웃을 수 없었습니다




 192페이지



하단부터 번역 

저녁이 되어 내가 원주민 여관 마당에 자리를 잡은 후 교회의 장로들이 나를 보러 왔다

2명의 조용하고 엄숙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들은 다소 우울해 하며 마을이 상당히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군인들이 원하는 것을 빼앗고 일부 소란을 저지르고 있었다 



정원사의 아내는 소총과 고정  총검을 들고 집을 지키고 있던 또 다른 일본군에게 폭행당했다 

한 소년이 여자의 비명에 이끌려 달려와 데리려 왔다 



 193페이지 

번역 

남편 그가 칼을 들고 다가왔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장로들이 물었다 

문 앞에 소총과 총검을 든 군인이 있었다

나중에 나는 이와 같은 매우 비슷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확인이 가능한 한 그 자리에서 확인되었다 나의 판단에 따르면 이러한 분노는  많지 않았고 

예외적인 군대에 국한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數에 비해 전혀 불균형한 효과를 낳았다 

한국인은 여성의 신성함에대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비교적 적은 數의 범죄에 의해 두려움이 다수의 사람들이

산으로 도망친 원인이었다 

마을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의심할 것 없이 많은 한국여성과  어린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은 많은 경우  마을을 습격하고 주변에 반란군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잡다한 총기 난사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한 마을에  2채의 집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일본인이 그 집  중에 한 집은 집주인의 딸 10세 소녀를 쏘았기 때문에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녀를 쏘았을때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다가가서 :죄송하지만 이 남자의 딸을 죽였으니

그의 집을 불태워서는 안 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군인들은 우리의 말을 들었다 


청주와 원주같은 도시에서는 거의 모든 여성과 어린이 상류층 가정이 사라졌다 
가게는 떠나기 전에 주인이 문을 닫고 바리게이트를 쳤지만 많은 가게가 강제로 문을 열고 약탈당했다 


일본군에 의해 폐허가 된 한국의 한 마을 




한국인  반란군의 외곽 주둔지 

(당시 제국주의 시선으로 한국인 의병을 반란군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174페이지

철도 우리는 모든 항구에 불을 지르고  친코카이(chinkokai: 번역 안 된다)를 파괴하고 이토(伊藤博文)와 그의 모든 일본인 
李完用과 그의 부하들을 죽이며   우리 황제에 대한 반란군은 단 한명도 생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일본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 모든 군대를 동원할 것입니다 
우리 손에는 무기가  없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애국심을 지킬 것입니다

일본의 날카로운 무기에 맞서 싸울 수 없겠지만 외국 영사들에게 군대를 도와 달라고 요청할 것이고 ,그들은 올바른 사람들을 돕고 
악인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도록  내버려 두겠습니다

일본에 맞서 싸우고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와  황제와  함께  죽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열려 있지 않으니까요 

황제와  우리의 형제들은 이토伊藤博文)와 李完用  및 그들 동료들의 가증스러운 계획에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비참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목숨을  잃는 것이 낫습니다 
조국을  버리고 사는 것보다   애국자로서  죽는  것이  낫습니다 


李儁선생은 조국을 위해 애원하려고 외국 땅에 갔고 그 계획이 이행되지 않아 배를 가르고 외국에 피를 쏟아 

자신의 애국심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단결하지 않는 이천만명의 우리 국민들은 李儁선생에 대한  기억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조국의 멸망과 조국의 유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든 죽든 위대한 것은 우리가 조국을 위해 일을 하거나 반대하거나 한번에 결심하는 것입니다
남부 지방의 한 한국인 그룹은 솔직한 방식으로 이토(伊藤博文)에게 청원했습니다


206페이지 



206페이지 


그들의 머리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우리가 서서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우리에게 달려 왔습니다 
마참내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보았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들의 실수에 대해 매우 우아하게 사과했습니다 

"네가 소리를 지른 것은 다행이었어"라고 한 못생긴 얼굴의 젊은 반란군이 카트리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잘 가리고 총을 쏘려고 했어 "
이 밴드의 몇몇 병사들은 14세에서 16세를 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을 서서 사진을 찍게 했고 반대편 페이지의 사진은 그들의 외모를 묘사보다 더 잘 보여 줄 것입니다

정오가 되자 저는 전날 한국 군인들이 몰렸던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의 사람들은 반란군들로 부터
매우 비우호적인 태도로 여겨졌고 반란군은 자신들을 일본에 배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엇이 싸움의 진실인지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한명의 일본군은 팔에 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5명의 반란군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들 중 3명은 아침 일찍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2명은 경기장에 남겨졌는데 1명은 왼쪽 뺨에 심하게 총상을 입었고 다른 1명은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일본군들이 부상당한 남자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너무 아파 말을 할 수 없었고 
동물처럼 훌라훌라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그들의 피는 피였습니다







207페이지

땅을 뛰어 다녔어요 일본군은 그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다가가서  총검으로  그들을  몇번이나  찔러 죽이고 
죽을 때 까지 계속 찔렀습니다  총검에 찔린 남자들은  매우  상심했고 
우리는 그들을 일으키고 묻어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단순한 묘사 이상으로 총검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더 웅변적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고립된 사례라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듣는 것에 따르면 
일본은 국내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조직적으로 모든 부상자와 자수했던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모든 경우에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많은 경우에 그렇게 했습니다

 이 사실은 한국인 사상자 數  부상자나  포로에 대한 언급없이 매우 많은 사람이 사망한 것은  일본의 전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언급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집을 불태우는 것 외에도 
반란군  (한국인 의병)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남성들을 사살했습니다

이러한 처형을 설명할 때 한국인들은 항상 발리숯이 발사된 후 총격을 지휘하던 일본장교가 
시신에 올라가 칼을 집어 넣거나 해킹한 방법을 언급하며 마무리 했습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정확성을 가진 영국인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반란 외곽의 일본군 기지 근처에 살았고 
그곳에서 처형 중 1명을 참석시켜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했습니다
 
죄수는 손을 뒤로 묶인 채 밖으로 끌려 나갔고 일본인 1명이 있었습니다 

208페이지 

병사들이 그의 목 주위를 홀터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사격장으로 가는 길에 일본 병사는 지켜보고 있던 외국인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그는 일부러 홀터를 휙휙 던져 죄수를 비틀게 한 다음 소총의 엉덩이 끝으로 배를 강하게 찔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후에 시신을 베는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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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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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帝国の悲劇 (1) namgaya33 03-01 15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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