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が映画は 1940年高麗映画社でこのウィンドウ用が製作したし

チェ・インキュ訪韓中が共同監督した作品だ


原作は朝鮮総督府機関紙京城日報社の児童対象新聞 (慶日小学校学生新聞)の作文公募で

朝鮮総督府作文上を受けた光州北征小学校 4年生右水営子供の作文だ

背景を京畿道水原に変えてシナリオを脚色して映画で製作した脚色は日本人作家 (八保太郎)以下だった



が映画のフィルムが発掘された頃とは次のようだ

韓国映画資料院は 2013年 11月中国映画資料官から手に入れた韓国映画リストで (学費)という題目を見つけたし

直ちに中国全英資料官に (授業料)プリントが保存していることを確認した


出演した俳優

主人公 -栄逹 (鄭〓朝)

栄逹のお婆さん-(卜恵淑 )

日本人再びで(Tashiro)先生 - (薄田研二)


貧しい家の少年ヤングダルイが授業料のため困難を経験する話をグリーン映画だ




” お婆さんはそうでなくても心配も多いのに私の授業料のため心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お婆さんが可哀想なの “と言いながら

栄逹はこんこんと泣いている

米心配お金心配から自由な日がない地境だ



映画は韓国語が出れば日本語字幕が出て

日本語が出れば字幕がない .

下のヤングダルイが日本軍歌を歌う映像のハングルは 2013年以後に付けたことだ


学校で授業は日本語で進行する

子供達は学校では日本語を使って家( または村)では朝鮮語を使うのが日常だ

ところでたまに家で朝鮮語と日本語を交ぜて使う場面もある




映画は 1940年代日帝強制占領期間当時時代をよく反映している

日帝強制占領期間当時学校では朝鮮語使用が禁止されていたという証言が証明されたことだ


上に映画 8; 46部分


ヤングダルイが家から本を読む場面が出る

我が国はアジアの中心朝鮮半島を経って満洲国から関東まで一緒にする日本列島 ...


35;47部分本を読む場面

リョシハカだ海岸の見える所はいちめん敵方のお腹でドイドブヒョッダ

ミョッシブだけの大軍だった四国九州の無事が博多で集結した元国兵士らは一人も上陸させないように

海人に石で垣根を積んだ私たち無事は少なく攻撃する前に先制攻撃に出た時の巨大なお腹に見窄らしい漁夫

お腹で対立した時の首を枕にして勇ましく攻撃に出た夜の闇にまぎれて時のお腹に火をつけた

少ない私たちの勢いに怖がって鎖でお腹を囲んだ ........


教科書は日本語だ


学校で子供達は自分の祖国は日本で国語は日本語と学ぶ


授業に入って行く前に教師は “授業料を持って来ない人は立ち上がって ” と言う


(これは学生人権を細心に気配りしない行動で見えるのに当時 日帝の教育政策だったのか)




この時授業料を持って来ないヤングダルイが立ち上がりながら教科書を底に落とす


1937年に発行された国語教科書だ


国語は日本語だ

42;19部分



ヤングダルイが授業料を出すことができなくて学校に出ることができない日が続こう

学校教師は栄逹の家を訪問する栄逹の家には痛いお婆さん一人で横になっている


日本人教師は日本語ができないお婆さんと言語疎通にならなくて困り果てる


この時ちょうど痛い栄逹のお婆さんのために薬を出して来た弟子のお姉さんが来て

教師とお婆さんの言葉を通訳する場面が出る


教師はお婆さんにお金を渡してこのお金はいくばくもないが栄逹の授業料で出して明日ヤングダルイを学校に行かせなさいと頼む


教師は朝鮮で住みながら朝鮮語の対話は不可能な状況だ


教師が栄逹の家から出た後ヤングダルイが家に帰って来る

お婆さんは栄逹に先生が用意してくれた授業料話をする

栄逹は先生の大韓ありがたさに感動しながら喜ぶ


ところで翌日朝家の前で栄逹は家主に会う

栄逹の親はお金を儲けるために他地に行商を出た後消息がなくてお婆さんは病気を得て横になっている状況だから

数ヶ月目家賃をないしできなかった


栄逹は家主が痛いお婆さんに家賃を督促することが心配になって自分の授業料を家主に与えながら

お婆さんには秘密にすることを頼む


しかしこのすべての状況を聞いていたお婆さんは栄逹の受け持ち先生が与えた授業料を家賃で出したことに対して申し訳ない心が大きい

それで今度は必ず授業料を納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決心する


お婆さんは栄逹に平沢にいるおばさんお宅へ行けばお前の授業料を取り持ってくれると言う




栄逹は喜んでお婆さんが食べる飯を炊いておいて自分のお弁当を準備して平沢まで 60里旅に出る



授業料を求めるために平沢に発つ道に栄逹は学校で体操している友達を見ている

授業料を納めることができなくて学校へ行くことができなくて学校近くでぶらついた日もあった



歩いて平沢に行く中に牛焼くのを得て焦げたり水を得て飲んだりお弁当も食べる




一人で歩いて行ったヤングダルイが日が暗くなると恐ろしさを感じて歌を歌う日本語の日本軍歌だ


1;05部分

祖国を去ってからどの位だったかこの言葉と死ぬ覚悟で進撃しながら進んだあの山と川固く取った言葉手網に血が通じる

昨日陷落させた時の陣地で今日は大きく力強くいびきをかきながら寝るね.....





平沢おばさんお宅に到着したヤングダルイがご飯を食べている

ご飯器ふたには 福 字が使われていて食器が大きい




明日水原家に行く時は自動車に付いて行きなさいと言うおばさんの言葉を聞いてご飯を食べる栄逹



映像にはおばさんと呼んでいるのに画面には 伯母 ( お父さんの兄さんの妻)里で書いている

平沢おばさんから米と授業料を受けて家で到着したヤングダルイは

すぐすぐ授業料を持って学校に駆け付ける学校はもう授業が終わった状態だ栄逹は先生に行く


教師は栄逹に友情の箱を見せてくれてこんなに言う


“が箱中にはお金が入っているの学校職員たちが月給の 1%を出してクラス友達が 1戦ずつ出してこの友情の箱に入れた

授業料が出す事ができない友達にこの友情の箱に溜めたお金をくれる事にしたそれで今度月はお前に与える事にしたの

お前は平沢おばさんにお金をもらって来てもうこのお金は必要なくなったがこれから授業料を心配せずに

熱心に勉強しなさい “


栄逹は先生と友達の暖かい激励に涙を流す


秋夕を迎え村では農楽遊びをして

栄逹の親は贈り物を飲んで家に帰って来る

映画はこんなに終わった


前で言及したが学校で教師は日本語で授業を進行します

子供達は日本語を国語で学んで日本史を祖国の歴史に学びます

結局ヒックギョでこんな教育を受けて育った人々が社会に出れば社会の知識人になって社会の指導層になるでしょう


このようになれば韓国語とハングルは存在の危機が来ますね


ヤングダルイが恐ろしさを忘れるために日本軍歌を歌う場面ではやや苦さを感じますどこで学んだんでしょうか


子供達が学校では日本語を使って家(または村)では朝鮮語を使うのが日常だがたまに朝鮮語と日本語を

交ぜて使う場面も出ます


例えば栄逹とゾングフィが村で体操をする時一つ二つ三つを日本語でするのや

李佐藤(Isato)という日本人名前が出ています


植民地の現実がよく現われていますね

が映画では特別に悪役はないです


唯一の日本人役目は善良なイメージの学校教師です

善良な教師というのには同意するがなんとなく心が不便です


日本人教師は朝鮮内 学校での日本語使用 ,日本語の国語教科書 ,内鮮一体, 皇国臣民化など 日帝の朝鮮の教育政策に

真面によっているし子供達もそんな教育によく順応しています


が映画の与えるメッセージは何でしょうか ?


見る観点によって貧しくて可哀相な朝鮮人少年が授業料のため困難を経験する話みたいでもあって

親切な日本人教師が貧しくて可哀相な朝鮮人少年を助けてあげるという話みたいでもあります


が映画が上映されて 2年後 1942年に ( 朝鮮語学会事件)が起こります

映画の中再びで(Tashiro)先生が朝鮮語学会事件が分かったら何の考えをしたのか知りたいです






1940년 영화 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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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40년 고려 영화사에서 이창용이 제작하였고 

최인규 방한중이 공동 감독한 작품이다 


원작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사의 아동 대상 신문 (경일 소학교 학생 신문)의 작문 공모에서 

조선총독부 작문상을 받은 광주 북정 소학교  4학년 우수영 어린이의 작문이다 

배경을 경기도 수원으로 바꾸어 시나리오를 각색하여 영화로 제작하였다  각색은 일본인 작가  (八保太郞)이  하였다



이 영화의 필름이 발굴된 경과는 다음과 같다

한국 영화 자료원은 2013년 11월 중국 영화 자료관으로 부터 입수한 한국 영화 목록에서 (학비)라는 제목을 발견하였고 

즉시 중국 전영 자료관에 (수업료)프린트가 보존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출연한 배우 

주인공 -영달 (鄭澯朝) 

영달의 할머니-(卜惠淑 )

일본인 다시로(Tashiro)선생님 - (薄田硏二 )


가난한 집안의 소년 영달이가 수업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도 많은데  나의 수업료 때문에 걱정해야 하니 할머니가  불쌍해 "라고  하면서 

영달은 펑펑 울고 있다 

쌀 걱정 돈 걱정으로 부터 자유로운 날이 없을 지경이다 



영화는 한국어가 나오면 일본어  자막이 나오고 

일본어가 나오면 자막이 없다 .

아래 영달이가  일본군가를 부르는  영상의 한글은 2013년 이후에 붙인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은 일본어로 진행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집( 또는 마을)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가끔 집에서 조선어와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는 장면도 있다 




영화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학교에서는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있었다는 증언이 증명된 것이다 


위에 영화 8; 46부분 


영달이가 집에서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중심 조선반도를 지나 만주국에서 관동까지 아우르는 일본 열도 ...


35;47부분 책을 읽는 장면 

료씨 하카다 해안이 보이는 곳은 온통 적들의 배로 뒤덮혔다

몇십만의 대군이었다 시코쿠 규슈의 무사가 하카타로 집결했다 원나라 병사들은 한명도 상륙시키지 않으려고 

해인에 돌로 울타리를 쌓았다 우리 무사는 적이 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에 나섰다 적의 거대한 배에 초라한 고기잡이 

배로 맞섰다 적의 목을 베어 용감하게 공격에 나섰다 밤의 어둠을 틈타 적의 배에 불을 질렀다 

적은 우리의 기세에 겁을 먹고 쇠사슬로 배를 에워쌌다 ........


교과서는 일본어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조국은 일본이며 국어는 일본어 라고 배운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교사는 "수업료를 가져 오지 않은 사람은  일어서 " 라고 말한다 


(이것은 학생 인권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은 행태로 보이는데 당시  日帝의 교육 정책이었는지)




이때 수업료를 가져 오지 않은 영달이가 일어서면서 교과서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1937년에 발행된  국어 교과서이다 


국어는 일본어이다

42;19부분 



영달이가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자 

학교 교사는 영달의 집을 방문한다 영달의 집에는 아픈 할머니 혼자 누워 있다 


일본인 교사는  일본어를  못하는 할머니와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아 난감해 한다 


이때 마침 아픈 영달의 할머니를 위해 약을 지어 온 제자의  누나가 와서 

교사와 할머니의 말을 통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사는 할머니에게 돈을 건네며  이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영달의 수업료로 내고 내일 영달이를 학교에 보내라고  부탁한다 


교사는 조선에서 살면서 조선어의 대화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사가 영달의  집에서  나간 후 영달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는 영달에게 선생님이 마련해 준 수업료 이야기를 한다 

영달은 선생님의 대한 고마움에 감동하며 기뻐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집 앞에서 영달은 집주인을 만난다 

영달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타지에 행상을 나간 후 소식이 없고 할머니는 병을 얻어 누워 있는 상황이라 

몇달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영달은  집주인이 아픈 할머니에게 집세를  독촉할 것이 걱정되어 자신의 수업료를 집주인에게 주면서 

할머니에게는 비밀로 할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듣고 있던 할머니는  영달의 담임 선생님이  준 수업료를  집세로 낸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수업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할머니는 영달에게 평택에 있는 아주머니 댁에 가면 너의 수업료를 주선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영달은 기뻐하며 할머니가 먹을 밥을 지어 놓고 자신의 도시락을 준비하여  평택까지  60리 길을 떠난다 



수업료를 구하기 위해 평택으로 떠나는 길에  영달은 학교에서 체조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다 

 수업료를  납부하지  못하여   학교에 갈수 없어  학교  근처에서 서성거렸던  날도  있었다 



걸어서  평택으로 가는 중에 소 달구지를 얻어 타기도 하고 물을 얻어 마시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는다 


<iframe frameborder="0" src="//www.youtube.com/embed/jMSn_qpRfTI" width="640" height="360" class="note-video-clip"></iframe>


혼자 걸어가던   영달이가 날이 어두워지자 두려움을 느끼고  노래를 부른다  일본어의  일본군가이다 


1;05부분 

조국을 떠난지 얼마나 됐나 이 말과 죽을 각오로 진격하며 전진했던 저 산과 강 굳게 잡은 말 고삐에 피가 통하는구나

어제 함락시킨 적의 진지에서 오늘은 우렁차게 코 골며 자는구나.....





평택 아주머니 댁에 도착한 영달이가   밥을 먹고 있다 

밥 그릇 뚜껑에는 福 字가 쓰여져 있다 밥그릇이 크다 




내일 수원 집으로 갈 때는 자동차를 타고 가거라 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밥을 먹는 영달 



영상에는 아주머니 라고 부르고 있는데 화면에는 伯母 ( 아버지의 형의 아내)리고 쓰고 있다 

평택 아주머니에게서 쌀과 수업료를   받아 집으로 도착한 영달이는 

곧 바로  수업료를 들고 학교로 달려간다 학교는 이미 수업이 끝난 상태다 영달은 선생님에게 간다 


교사는 영달에게 우정의 상자를 보여 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 상자 안에는 돈이 들어있지 학교 직원들이 월급의 1%를 내고 학급 친구들이 1전씩 내어 이 우정의 상자에 넣었다

수업료를 못내는 친구들에게 이 우정의 상자에 모은 돈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달은 너에게 주기로 했단다

너는 평택 아주머니에게 돈을 받아 와서 이제 이 돈은 필요없게 됐지만  앞으로 수업료를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


영달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따뜻한 격려에 눈물을 흘린다 


추석을 맞아 마을에서는 농악 놀이를 하고 

영달의 부모는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이렇게 끝났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학교에서 교사는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아이들은 일본어를 국어로 배우고 일본역사를 조국의 역사로 배웁니다 

결국 힉교에서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면 사회의 지식인이 되고 사회의 지도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어와 한글은  존재의 위기가 오겠지요 


영달이가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일본군가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씁쓸함을 느낍니다 어디서 배웠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집(또는 마을)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지만  가끔 조선어와 일본어를 

섞어 사용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예를들어 영달이와 정희가  마을에서 체조를 할 때  하나 둘 셋을 일본어로 하는것이나 

이사토(Isato)라는 일본인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식민지의 현실이 잘 나타나고 있지요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악역은 없습니다  


유일한 일본인 역할은 선량한 이미지의 학교 교사입니다 

선량한 교사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합니다 


일본인 교사는 조선內 학교에서의 일본어 사용 ,일본어의  국어 교과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 日帝의 조선의  교육 정책에  

착실하게 따르고 있고 아이들도 그런 교육에 잘 순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


보는 관점에 따라 가난하고 불쌍한 한국인 소년이 수업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친절한 일본인 교사가 가난하고 불쌍한 한국인 소년을 도와 준다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상영되고  2년후 1942년에  ( 조선어 학회 사건)이 일어납니다 

영화 속 다시로(Tashiro)선생님이  조선어 학회 사건을 알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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