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モダム (毛)は毛織りで組んだ敷物すなわちカーペットの総称だ

日本では 朝鮮から来たチォルジック (綴直)という意味で 朝鮮綴だと呼んだと言う


朝鮮綴は 16世紀から 朝鮮通信社によって日本に伝わったと言う


毛は使ってから毀損されれば捨てたから遺物で伝わることは極少数だ

国内に伝わるモダムの遺物は

窓の望むことを阻むために帳幕で使ったモダム 2枚が韓国 刺繍博物館に所長されていて

敷物(カーペット)で使ったことは

国立大邱博物館..淑明女子大学校博物館. 温陽民俗博物館 .個人所長遺物に皆 6個がある




ところで日本京都の 祇園 財団は去る 2016年に 朝鮮綴 80点ぐらいを韓国の耕暦博物館に展示したと言う

朝鮮のカーペットかなり多い数は日本にあることだ

朝鮮綴は日本京都ギオンマツリ 祇園祭に使われる車ヤマボコを飾るのに使われている


日本京都 祇園 財団の 朝鮮綴は現在韓国 刺繍博物館に所長されているモダム(毛)と製作技法や

材料(羊または塩素の毛)が一致すると言う


毛纎維に製作される敷物(カーペット)は製作技法によって大きく

綴直(他フィスト里)とチォムモジック (カットパである)で区分する


朝鮮のカーペットに指称される 朝鮮綴は

兔試を(綿糸)を縦糸にしてけだものの毛をシシルにして平織りで組む他フィスト里技法で製織したことだ

柄がある部分には色を変えて製織してまたその上に顔料で絵を描いたりした


綴直(他フィスト里 )技法はシシルが表面に現われて縦糸はシシルに覆われたように見えない技法でファイルがないことが特徴で

チォムモジック(カットパである)技法はシシルで結び目を作った後特定位置を切り捨てる技法で織物底に実力のないファイル纎維が現われる


朝鮮後期にはチォムモジック(添毛織)を指称する用語でチェ談(彩)を使った





両班家門の生活を描いた 朝鮮のモダム (毛)

朝鮮後期






朝鮮のモダム 五鶴瓶花図 19世紀


がモダムは前後柄が同じで厚さが薄らことで見て壁や窓にかける .ゴルゲで使われたはずだと見当がつく


五つ匹鶴を中心に周辺に花瓶植木鉢桃などを配置したし

植木鉢は 虎足が走った派手なテーブルの上に乗せた

植木鉢は木を縮小して植えた盆栽に似ていて植木鉢の花は実際の花と言うより非現実的花のイメージを描いた







五鶴図

19世紀 朝鮮のモダム (カーペット)

竝び柄と鳥(鳥) 多くの植物と花文様は糸(糸)で組んだしその上に鶴は筆で描いた

国立大邱博物館




朝鮮時代カーペット

オックツィサザも (玉取獅子図)

玉玉を持って遊ぶ獅子を描いたカーペット






コウモリ蝶柄モダム (カーペット)

朝鮮後期


がモダムは中部分を置いて上のの下で蝶が見合わせている

土台は縦糸とシシル皆綿糸で組んだし柄を入れるためにシシルに毛糸を入れて塩辛かった

シシルに結び目を作って中部分を切り捨てるカットパである技法を使った

19世紀朝鮮時代モダムカーペット

獅子と花柄



三国時代から 朝鮮時代にまで多様な毛織物を作った三国史記と三国有史に

塔等() まぐさ桶() .ギェダム() 毛廛(毛氈) など記録がある


高麗時代催者(崔滋)が使った三道部によると

身分が高い役人たちの家にチェ談(彩)を敷いたという記録がある


チェ談はさまざまな色の毛で組んだ絨緞を言うのに

高麗時代に引き続き 朝鮮時代にも言及されている


1713年肅宗の時に御真を製作するのに魚座の席を描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あるいは以前のようにチェ談で描かなければならないか

論議があったという記録がある

チェ談は 朝鮮時代に  .氈. 画彩 など名前で敷物や帳幕で使われた




申用漑(1463年‾1519年)

底にモダムが敷かれている




底に敷かれたカーベットは 点描法に表現されていて竝び柄跡がある

の与える柄は 添毛織に現われる特徴の中に一つだ .

カットパイルの 添毛織によって諸職されたモダム (カーペット)と言える




朝鮮後期西洋文物の導入で (毛氈)という名称が登場した


1900年 12月 26日黄城新聞の広告欄に

外国人と見えるカルリッスキが毛氈を含めた多様な物品を販売するという内容が載せられている


1800年代後半以後当時には西洋から入って来る物品に (洋)字を付ける場合が多かったが

毛氈はその例だ

毛氈は西洋で取り入れた敷物を意味する用語で使われた


朝鮮時代 朝鮮綴は奢侈品で分類されて王族や両班家門外に使用が制限されていたが

朝鮮後期まで倦まず弛まず製作されていたが

オンドル文化の大衆化生活文化の変化など理由で国内で需要が減ってますます影をひそめたことで見当がつく




조선시대 모담 (毛毯)

모담 (毛毯)은  모섬유로 짠   깔개  즉 카펫의  총칭이다 

일본에서는  朝鮮에서 온  철직 (綴直)이라는 뜻에서 朝鮮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朝鮮綴은 16세기 부터 朝鮮통신사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고 한다 


毛毯은 사용하다가 훼손되면 버렸기 때문에 유물로 전해지는 것은    극소수다 

국내에  전해지는   모담의 유물은 

창문의 바람을 막기 위해 장막으로 사용했던 모담  2장이 한국 刺繡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깔개(카펫)로 사용한 것은 

국립 대구 박물관..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온양 민속박물관 .개인소장 유물로  모두 6개가 있다 




그런데 일본 교토의  祇園 재단은 지난 2016년에 朝鮮綴 80여점을 한국의 경운 박물관에 전시하였다고 한다 

朝鮮의 카펫  상당수는 일본에 있는 것이다 

朝鮮綴은  일본 교토 기온마츠리 祇園祭에 사용되는 수레 야마보코를 장식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일본  교토  祇園 재단의 朝鮮綴은 현재 한국 刺繡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모담(毛毯)과 제작기법이나 

재료(양 또는 염소의 털)가 일치한다고 한다 


毛섬유로 제작되는 깔개(카펫)은 제작기법에 따라 크게 

綴直(타피스트리)와 첨모직 (컷파일)으로 구분한다 


朝鮮의  카펫으로  지칭되는 朝鮮綴은 

면실(綿絲)을 날실로 하고 짐승의 털을 씨실로 하여 평직으로 짜는 타피스트리 기법으로 직조한 것이다 

무늬가 있는 부분에는 색을 바꾸어 직조하고 또 그 위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綴直(타피스트리 )기법은 씨실이 표면에 드러나고 날실은 씨실에 덮여 보이지 않는 기법으로 파일이 없는 것이 특징이고 

첨모직(컷파일)기법은 씨실로 매듭을 만든 후  특정 위치를 잘라내는 기법으로 직물 바닥에 짧은 파일 섬유가 나타난다 


朝鮮후기에는 첨모직(添毛織)을 지칭하는 용어로 채담(彩毯)을 사용하였다





양반 가문의 생활을 그린 朝鮮의 모담 (毛毯)

朝鮮후기 






 조선의 모담   五鶴甁花圖 19세기


이 모담은  앞 뒤 무늬가 같고  두께가 얇은 것으로 봐서  벽이나 창문에  거는 .걸개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다섯마리 학을 중심으로 주변에   꽃병  화분 복숭아  등을 배치하였고

 화분은  虎足이 달린  화려한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화분은  나무를 축소하여  심은 분재와 비슷하고  화분의 꽃은 실제의 꽃이라기 보다 비현실적 꽃의 이미지를 그렸다







 五鶴圖

19세기  朝鮮의 모담 (카펫)

 줄 무늬와  새(鳥)  여러 식물과  꽃 문양은     실(絲)로  짰고    그 위에 학은  붓으로 그렸다

국립 대구 박물관 




조선시대 카펫 

옥취사자도  (玉取獅子圖)

옥 구슬을 가지고 노는 사자를 그린 카펫






박쥐 나비 무늬  모담 (카펫) 

  조선후기


이 모담은 가운데 부분을 두고 위 아래로  나비가  마주 보고 있다 

바탕은 날실과 씨실 모두 면사로 짰고 무늬를  넣기 위해 씨실에 털실을 넣어 짰다 

씨실에 매듭을 짓고 가운데 부분을 잘라내는 컷파일  기법을 사용하였다 

19세기 조선시대  모담 카펫

사자와 꽃 무늬 


  


삼국시대 부터 朝鮮시대에 까지 다양한 모직물을 만들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탑등(毾㲪)  구유(氍毹)  .계담(罽毯) 모전(毛氈) 등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최자(崔滋)가 쓴 삼도부에 의하면 

신분이 높은 관리들의 집에 채담(彩毯)을  깔았다는 기록이 있다 


채담은 여러가지 색깔의 털로 짠 융단을  말하는데 

고려시대에 이어 朝鮮시대에도 언급되고 있다 


1713년 숙종 때에  어진을 제작하는데  어좌의 자리를 그려야 하는지 혹은 이전처럼 채담으로 그려야 하는지 

논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채담은  朝鮮시대에  罽 .氈. 畵彩毯 등 이름으로 깔개나 장막으로 사용되었다 




申用漑(1463년~1519년)

바닥에 모담이 깔려 있다 




바닥에 깔린 카페트는 點描法으로 표현되어 있고 줄 무늬 흔적이 있다 

이 줄 무늬는 添毛織에 나타나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

컷파일의 添毛織에 의해 제직된  모담 (카펫)이라고 할 수 있다 




朝鮮후기 서양 문물의 도입으로 (양탄자)라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1900년 12월 26일 황성신문의 광고란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칼릿스키가 양탄자를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판매한다 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1800년대 후반 이후 당시에는 서양에서 들어오는 물품에 (洋)字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양탄자는 그 예이다 

양탄자는 서양에서 도입한 깔개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朝鮮시대 朝鮮綴은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왕족이나 양반 가문 외에 사용이 제한되고 있었으나

朝鮮후기 까지 꾸준히 제작되고 있었는데 

온돌 문화의 대중화  생활문화의 변화 등 이유로 국내에서 수요가 줄어 점점 자취를 감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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