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3月中旬と5月14日、1年半ぶりに当麻寺に行きました。

 

 

「当麻寺」は奈良県葛城市にある、7世紀後半建立の寺院である。

 

この地方に勢力を持った当麻一族は、天武朝の有力豪族の1つだが、

天武朝の仏教推進政策を受け、当麻一族も氏寺を建立することになったのが創建の由来。

 

ただし、ここは河内と大和を結ぶ竹内街道が近くに通り、交通の要所であったため、

創建当初から単に1地方の豪族の氏寺の性格を超えていたと思われる。

事実、当麻一族が衰退してからも当麻寺は衰えることがなく、中世からは当麻曼荼羅を

中心とした浄土信仰の寺へと変貌を遂げた。

 

 

 

 

当麻寺へ続く参道。普段は静かだが、5月14日に行なわれる「練供養会式」の日は多くの人で賑わう。

 

 

 

当麻寺の正門「仁王門」は東側にある。

駐車場はこの近くにあり、500円を支払う。

 

 

 

日本で最も古い梵鐘の1つが、ここにある。

7世紀後半の梵鐘で、国宝。

 

 

 

少し進むと、当麻寺のお馴染みの伽藍風景に出くわす。

奥に「本堂」、右に「講堂」、左に「金堂」がある。

 

 

 

「金堂」は鎌倉時代の再建で、重要文化財。

 

写真の金堂の入口は、後ろ側である。

本堂が伽藍の中心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何も知らなければこちらが正面に思えてしまう。

 

 

 

「講堂」、1303年の再建で重要文化財。

 

講堂は金堂の北側に建つ。

この点が、創建当時の当麻寺の伽藍配置の名残を残している。

即ち、金堂の南の左右に三重塔が建ち、北側には講堂が建つ。

講堂が金堂より少し大きいのも、7世紀以前の日本の寺院の特徴を示している。

 

 

 

当麻寺東塔、8世紀後半の建造で国宝

 

 

当麻寺西塔、8世紀末の建造で国宝

 

金堂の南の左右に三重塔が建つが、シンメトリーな位置には建たない。

おまけに、普通、伽藍の南側に門があるが、何もないし、門があった形跡すらない。

その位置には山が迫っているので、門があったとも考えにくい。

 

この不可思議な伽藍配置は何を意味するのか。

一説には、ここには昔、当麻一族の墓地があり、その上に伽藍が形成されているのだという。

実際、本堂(曼荼羅堂)の下には墓らしきものが存在するという。

 

 

 

「本堂」

 

本堂は1161年の改築で国宝である。

創建当初は金堂が伽藍の中心だったが、浄土信仰の高まりとともに、

当麻曼荼羅を安置するこの本堂が、伽藍の中心的存在となった。

 

曼荼羅が作られた8世紀頃に建立され、当初は5間4面の規模だったが、

多くの参拝客を入れる必要から2度に渡って改築され、現在は桁7間・梁6間、

naijinとgejinを備える。

 

 

当麻寺平面図

 

1番手前の1間がgegejin、その奥の2間がgejin、仕切りの奥の3間がnaijinである。

 

 

 

本堂のgegejin

 

gegejinは板の間。お金を支払わない場合は、ここから曼荼羅を拝む。

写真は練供養会式の時のもの。

 

 

 

本堂のgejin

 

gejinは参拝者の空間で、畳敷き。拝観料を支払えば、gejinとnaijinに入ることができる。

 

 

 

gejinからnaijinへの入口。gejinとnaijinの間は厳格に仕切られる。

 

拝観料は600円。ここと、金堂、講堂のセット料金である。

写真はやはり練供養会式の時のもの。

普段は参拝客が少ない。

 

 

naijinには、巨大な厨子と、室町時代製作の当麻曼荼羅を安置する。

 

厨子は8世紀のもので国宝。高さ約5mの巨大な厨子である。

厨子の扉は、鎌倉時代の修理の時に新調したもので、現在は奈良国立博物館にある。

 

 

naijinの厨子に掲げられているのは、室町時代製作の当麻曼荼羅(文亀本曼荼羅図)で重要文化財。

約4m四方の大きな仏画で、本堂の本尊である。

 

 

8世紀に中将姫が織り上げたとされる「根本曼荼羅」(国宝)は傷みが激しく、

現在は非公開。

ただ、中将姫が織り上げたと言われるのはあくまで伝説で、実際は唐時代に

中国で製作されたとする説が有力だ。

 

根本曼荼羅は鎌倉時代既に傷みが激しかったらしく、転写本が作られる。

現在naijinに掲げられている文亀本曼荼羅は、2回目の転写本である。

 

 

「中将姫」

 

本堂の前に中将姫の像が立っている。

曼荼羅を一夜にして織り上げたという伝説を残し、

以降、当麻曼荼羅は多くの人々の信仰の対象となり、中将姫も伝説的人物として

崇められてきた。

 

 

 

毎年5月14日、中将姫を主人公にした法会「聖衆来迎練供養会式」が行なわれる。

今年は土曜日なので行く事ができた。

 

 

つづく

 

 


다시 당마사에 갔습니다.

3월 중순과 5월 14일, 1년반만에 당마사에 갔습니다.

 

 

「당마사」는 나라현 카츠라기시에 있는, 7 세기 후반 건립의 사원이다.

 

이 지방에 세력을 가진 당마일족은, 천무조의 유력 호족의 하나이지만,

천무조의 불교 추진 정책을 받아 당마일족도 일족의 명복을 위한 절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이 창건의 유래.

 

다만, 여기는 카와치와 다이와를 연결하는 타케우치 가도가 근처에 대로, 교통의 요소에서 만났기 때문에,

창건 당초부터 단지 1 지방의 호족의 일족의 명복을 위한 절의 성격을 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당마일족이 쇠퇴하고 나서도 당마사는 쇠약해지는 것이 없고, 중세부터는 당마만다라를

중심으로 한 정토 신앙의 절로 변모를 이루었다.

 

 

 

 

당마사에 계속 되는 참배길.평상시는 조용하지만, 5월 14일에 행해지는 「련공양 법회의 의식」일은 많은 사람으로 활기찬다.

 

 

 

당마사의 정문 「인왕문」은 동쪽에 있다.

주차장은 이 근처에 있어, 500엔을 지불한다.

 

 

 

일본에서 가장 낡은 범종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7 세기 후반의 범종으로, 국보.

 

 

 

조금 진행되면, 당마사의 친숙한 가람 풍경을 당한다.

안쪽에 「본당」, 오른쪽으로 「강당」, 왼쪽으로 「금당」이 있다.

 

 

 

「금당」은 가마쿠라 시대의 재건으로, 중요문화재.

 

사진의 금당의 입구는, 뒤측이다.

본당이 가람의 중심이 되어 버렸으므로, 아무것도 모르면 이쪽이 정면으로 생각되어 버린다.

 

 

 

「강당」, 1303년의 재건으로 중요문화재.

 

강당은 금당의 북측으로 세워진다.

이 점이, 창건 당시의 당마사의 가람 배치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

즉, 금당의 남쪽의 좌우에 삼중탑이 세워져, 북측에는 강당이 세워진다.

강당이 금당보다 조금 큰 것도, 7 세기 이전의 일본의 사원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당마사동탑, 8 세기 후반의 건조로 국보

 

 

당마사서탑, 8 세기말의 건조로 국보

 

금당의 남쪽의 좌우에 삼중탑이 세워지지만, 시머트리인 위치에는 세워지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 가람의 남쪽으로 문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고, 문이 있던 형적조차 없다.

그 위치에는 산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문이 있었다고도 생각하기 어렵다.

 

이 불가사의한 가람 배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일설에는, 여기에는 옛날, 당마일족의 묘지가 있어, 그 위에 가람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 본당(만도라당)아래에는 무덤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본당」

 

본당은 1161년의 개축으로 국보이다.

창건 당초는 금당이 가람의 중심이었지만, 정토 신앙의 고조와 함께,

당마만다라를 안치하는 이 본당이, 가람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만도라가 만들어진 8 세기무렵에 건립되어 당초는 5간 4면의 규모였지만,

많은 참배객을 넣을 필요로부터 2도에 걸쳐 개축되어 현재는 자리수 7간·대들보 6간,

naijin와 gejin를 갖춘다.

 

 

당마사 평면도

 

1번째전의 1간이 gegejin, 그 안쪽의 2간이 gejin, 구분의 안쪽의 3간이 naijin이다.

 

 

 

본당의 gegejin

 

gegejin는 마루방.돈을 지불하지 않은 경우는, 여기로부터 만도라를 빈다.

사진은 련공양 법회의 의식때의 것.

 

 

 

본당의 gejin

 

gejin는 참배자의 공간에서, 다다미 깔개.배관료를 지불하면, gejin와 naijin에 들어갈 수 있다.

 

 

 

gejin로부터 naijin에의 입구.gejin와 naijin의 사이는 엄격하게 나누어진다.

 

배관료는 600엔.여기와 금당, 강당세트 요금이다.

사진은 역시 련공양 법회의 의식때의 것.

평상시는 참배객이 적다.

 

 

naijin에는, 거대한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와 무로마치 시대 제작의 당마만다라를 안치한다.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는 8 세기의 것으로 국보.높이 약 5 m의 거대한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이다.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의 문은, 가마쿠라 시대의 수리때에 신조 한 것으로, 현재는 나라 국립 박물관에 있다.

 

 

naijin의 두개의 문짝이 달린 궤로 내걸 수 있고 있는 것은, 무로마치 시대 제작의 당마만다라(문귀본만도라도)로 중요문화재.

약 4 m사방의 큰 불화로, 본당의 본존이다.

 

 

8 세기에 중장희가 짰다고 여겨지는 「근본만도라」(국보)은 아픔이 격렬하고,

현재는 비공개.

단지, 중장희가 짰다고 말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설로, 실제는 당시대에

중국에서 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근본만도라는 가마쿠라 시대 이미 아픔이 격렬했던 것 같고, 전사책이 만들어진다.

현재 naijin로 내걸 수 있고 있는 문귀본만도라는, 2번째의 전사책이다.

 

 

「중장희」

 

본당의 전에 중장희의 상이 서있다.

만도라를 하룻밤으로 해 짰다고 하는 전설을 남겨,

이후, 당마만다라는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중장희도 전설적 인물로서

우러러볼 수 있어 왔다.

 

 

 

매년 5월 14일, 중장희를 주인공으로 한 법회 「성자들 와 영련공양 법회의 의식」이 행해진다.

금년은 토요일이므로 갈 수가 있었다.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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