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古代日本の勢力を探求することは

韓国ではよほど敏感な事案に明らかです.

 

古代日本の勢力と規模を認めるということは

最後の韓国人の自負心と自負心を折ることと同じだからです.

 

<私たちはそれでも昔に日本よりはましだったか >

 

このような種類の精神勝利と自尊感は

前近代的ナショナリズムの考え方を行っている韓国人には

とても必須な自慰手段だからです.

 

あ, もちろん私は偉い韓民族の偉い歴史を捐下しようとする意図はないです.

ただ正直で客観された歴史をタムゴすることが韓日両国の友好を増進してはかることに

役に立つだろうと言うところに疑心の余地がないからです.

 

それじゃ, 一緒に探求して見ましょう.

 

 

 

 

 4世紀新羅はほとんど 22回のなぜの侵略を受けて

甚だしくは 4世紀後期には都城が陷落されるおびただしい被害を受けるようになります.

下の記録を一緒に参考しましょう.

 

三国有史奇異の方

進酒三行 衆楽初作


さかずきが三度回って音楽が響こう

王垂涕而謂群臣曰
王は泣きながら臣下たちに言った.

 

昔我聖考 誠心民事 故使愛子東聘於倭 不見而崩
先日に王は民たちのために愛する息子を東倭国に人質に送ったが 会ってみることができずに死んだ.

又朕即位已来 隣兵甚熾 戦争不息
また私が王になった後隣国の軍事が非常に強くて戦争が絶えない.
 

 

私たちはここで 倭の勢力がいくら剛性したことか見当をつけることができます.

よって 新羅は高句麗に援兵を要請するようになります.

 

それならどうして高句麗が新羅に派兵したことでしょうか?

それはちょうど剛性された半島の百済と 倭の勢力を牽制するためにでありました.

 

 

上の事例で見るように日本は最小限新羅と対等あるいは新羅その以上の力強い勢力を構築していたし, 伽揶地域を占有することで, 鉄器文化と半島の文化を流入しようとする意図と目的を持っていました.

 

伽揶の辺猿と言う(のは)所は実際首ほど(mokmanchi)という倭人によって掌握されたという記録があるほどに日本の勢力が剛性した所だったし後で高句麗が新羅を求めに侵攻した時 日本はすぐこちらに逃げるようになります.

 

日本はそういう政治的意図と目的に百済と密接な関係を結んで半島で勢力をかけて来ました.

 

 

 

上 半島の墓 (3 世紀)

下 倭の墓 (4 世紀) 

 

 

しかし 5世紀が到着して百済と日本の関係は少しの変化にあいます.

 

百済は剛性された高句麗を牽制するために日本との屈辱的な外交をするしかなかったし

甚だしくは四人の太子を日本に人質に送って日本に援兵と派兵を要請します.

 

日本は半島の影響力そして勢力を維持するために百済を助けて高句麗と争ったのです.

下の記録を一緒に参照しましょう.

 

 

水棲 水書

 

新羅百済皆以倭為大国多珍物敬仰之 恒通使往来
新羅・百済は皆なぜが大国で珍しい品物が多くて敬って仰いで見る. いつも使臣を通じて往き来する

 

 

カンゲト大王陵碑 広開土大王陵碑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帯方界

 

シブサニョン甲辰になぜが法を破って, 大房(黄海道)の境界に侵入した. 

 

 

日本は甚だしくは黄海道を含めた半島の広大な領域に影響を及ぼしたという直接的な記録が出ています.

 

も 4‾5 世紀を前後で金冠伽揶が後退し始めるのに,日本が半島に影響力をますますもっと強く及んだ時期と一致します.

 

しかし 6‾7 世紀を締め切りで 日本は半島で勢力を完全に失うようになります.

すぐバックガングゾント(白江戦闘)を基点で唐と新羅によってなぜは完全に逐出されるようになるのです.

 


일본의 반도 점령 개략 (공동)

고대 일본의 세력을 탐구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임에 분명합니다.

 

고대 일본의 세력과 규모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지막 한국인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꺽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옛날에 일본보다는 나았지 >

 

이러한 종류의 정신승리와 자존감은

전근대적 내셔널리즘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아주 필수적인 자위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저는 위대한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폄하하고자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정직하고 객관된 역사를 탐고하는 것이 한일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고 도모하는 것에

도움이 되리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함께 탐구 해봅시다.

 

 

 

 4세기 신라는 거의 22차례의 왜의 침략을 받으며

심지어 4세기 후기에는 도성이 함락되는 엄청난 피해를 받게 됩니다.

아래의 기록을 함께 참고합시다.

 

삼국유사 기이편

進酒三行 衆樂初作


술잔이 세번 돌고 음악이 울려퍼지자

王垂涕而謂群臣曰
왕은 울면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昔我聖考 誠心民事 故使愛子東聘於倭 不見而崩
일전에 왕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동쪽 일본에 인질로 보냈지만 만나보지 못하고 죽었다.

又朕卽位已來 隣兵甚熾 戰爭不息
또 내가 왕이 된 후 이웃나라의 군사가 매우 강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倭의 세력이 얼마나 강성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고구려가 신라에 파병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강성해진 반도의 백제와 倭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최소한 신라와 대등 혹은 신라 그 이상의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가야 지역을 점유함으로써, 철기 문화와 반도의 문화를 유입하려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야의 변진이란 곳은 실상 목만치(mokmanchi)라는 왜인에 의해서 장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일본의 세력이 강성한 곳이였으며 나중에 고구려가 신라를 구하러 침공했을때 일본은 바로 이곳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일본은 그러한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반도에서 세력을 끼쳐왔습니다.

 

 

 

上 반도의 무덤 (3 세기)

下 倭의 무덤 (4 세기) 

 

그러나 5세기가 당도하며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약간의 변화를 맞습니다.

 

백제는 강성해진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과의 굴욕적인 외교를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네명의 태자를 일본에 볼모로 보내며 일본에 원병과 파병을 요청합니다.

 

일본은 반도의 영향력 그리고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제를 도우며 고구려와 다투었던 것입니다.

아래의 기록을 함께 참조합시다.

 

 

수서 水書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敬仰之恒通使往來
신라·백제는 모두 왜가 대국이고 진귀한 물건이 많아서 공경하고 우러러본다. 항상 사신을 통하여 왕래한다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

십사년 갑진에 왜가 법을 어기고, 대방(황해도)의 경계에 침입하였다. 

 

 

일본은 심지어 황해도를 비롯한 반도의 광대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또한 4~5 세기를 전후로 금관가야가 후퇴하기 시작하는데,일본이 반도에 영향력을 점점 더 강하게 미쳤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6~7 세기를 마감으로 일본은 반도에서 세력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바로 백강전투(白江戰鬪)를 기점으로 당과 신라에 의해서 왜는 완전히 축출당하게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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