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偏狭で,民族主義に陷沒された

歴史の歪曲された視覚を排除して,


韓,日 両国が壬辰の乱に対して簡単に調べる時間を持つようにします.





1 壬辰の乱, 戦争の過程

壬辰の乱初期日本軍は破竹の勢いで朝鮮の平壌まで血一粒こぼさないで易しく占領してしまいます.

それに日本軍のさむらい精神に基盤した軍隊の節度と秩序, 民衆に避けてくれない穏健な政策で無理なく全羅道を除いた朝鮮の大部分を掌握するのに至ります.


禁制(禁制)  (秀吉が 朝鮮の人に対する荒っぽい行為, 放火, 賦役を禁止しなさいという命令書)

                        1. 荒っぽい行為
                        2. 放火, 人を捕らえる行為
                        3. 常民, 農民たちに対する賦役その他不当な行為

                       万が一に違反した者がいる時は厳罰に処する.

                                         1592年正月仕事

 

                                           豊臣秀吉


のため朝鮮民衆は朝鮮の王子二名が日本側で渡してやって
日本軍に必要な軍需物資と食糧までまかなったし,

景福宮と朝鮮の多くの書籍たちを燃やしたことです.

しかし平壌の小西ユキナが(gonishi yukinaga)はこれ以上進軍ができなくなります.

南海岸一帯を掌握した李舜臣によって普及経路が遮られて(陸路 普及をすることは危なかったから, 水路 普及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です.) いっしょに慶尚道一帯を収復したクァクゼウと彼を含めて起きた多くの義兵たちのため郡微量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も全羅道を掌握しようとしていた日本軍の試みも, 全羅道義兵と官軍によって水泡に帰するようになって平壌への普及は もっと大変になるようになりました.

結局普及を待った小西ユキナがは 5万の 明軍が誤字仕方なく強化を結んで南海わい星に帰ります.

 

 


————————————————————————
2 丁酉災乱, 大明がなかったら朝鮮はなかった.

日本軍は南海わい星に帰って湖南一帯を焦土化させてしまいました.

とにかく彼らは 明と強化を結ぶようになって, 明軍は中国に帰ったし, 壬辰倭乱はすなわち終決されるようでした.

しかし丁酉災乱, 怒った豊臣秀吉が再侵入を言い付けるのに,

丁酉災乱は壬辰の乱と性格が違う, 残忍な様相をたたえるようになって, その有名な鼻切ったりここで始めるようになります.

 

丁酉災乱開戦命令で(丁酉再乱 開戦 命令書)

 

“全羅道に進撃して  全羅道人々を一遍に残らず全部殺す  の, 忠清道京畿道とその外の  度では  分かって平定しなさい” (赤国不残悉一篇成敗申付, 青国其外之儀, 可成程可相動事)


この時, 朝鮮と朝鮮の国王とデシンドルウンは義兵運動をする長寿たちを斬首させてしまって
李舜臣を監獄に閉じこめました.

その後で朝鮮の義兵はこれ以上現われなかったし, 朝鮮は南海岸の災害圏を日本に渡してやるようになります.

そして遂に日本は全羅道と慶尚道一帯を完全に掌握するようになります.

以後 明はまた 10万の軍隊を派遣するようになって, 連合をして戦闘をするのに,


実は連合軍だと言えない, 明と日本の戦うことと違いなかったです.
当時朝鮮軍は 明の 1/6度ならない数字だったからです.


明の圧迫に滞った日本軍は仕方なく慶尚道と全羅道一帯をあきらめて帰るようになります.

 

 

———————————————————————————————————
3 李舜臣は不世出の天才英雄か? 朝鮮の 水軍は世界最強の 水軍?

一般的な壬辰の乱に対する朝鮮人の錯覚は次の通りです.

1 李舜臣はスーパー天才
2 朝鮮 水軍は世界最強

それなら本当に朝鮮の 水軍は圧倒的で, 世界ツェガングイヨッウルカです?
これはその頃配意基礎的な理解度なしに作り出した一般的妄想の間違いに過ぎないです.

壬辰の乱当時造船のお腹と日本の配意決定的冷たくは大砲の 有無にあります.

 

造船のお腹には大砲を装着することができたが

日本の梨には砲を 装着しなかったです.
いや, 装着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


 


17世紀朝鮮の大砲

 

16世紀日本の大砲

 

 

もちろん日本に大砲がなかったというのではないです.
むしろ日本の大砲,総統(銃筒)の技術力は朝鮮をしのぎました.


もその頃の大砲は, このごろ戦争の大砲のようにパング! して裂ける大砲ではないです. 

ただ弔銃(鳥銃)の原理とまったく同じく重いチォルスェッを飛ばしてお腹を沈沒させることだからであり, 朝鮮の大砲が何がもっと特別だという妄想をすることは明白な捏造に過ぎないです.


それならどうして日本戦闘船に大砲をつ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でしょうか?
彼 理由は造船のお腹と日本のお腹構造の根本的差にあります.

簡単に言って, 日本の滲む 大砲を装着することができない狭くて安全性より速度を追い求める構造を持っているし朝鮮はその反対に,

 

広い安全性を追い求める板屋船の構造だから偶然的に大砲をつけることができたことであって, 善意 水軍が優越とか, 強いという側面で見るのではないです.

のためいくら無識な馬鹿でも, 大砲を装着可能な朝鮮の倍加, 日本のお腹に敗れるというのがもっと難しい事というのを易しく思うことができます.

もちろん元均はそういうお腹を持ってからも日本に敗れたが,
元均は海戦(海戦)をしてから敗れたのではなく, あほうに日本性近くにお腹を停泊してから
襲撃を受けたのです.

 

 


—————————————————————
4 日本軍は残虐武道した悪魔の集団?

朝鮮人たちが根拠で主張することには,

1 日本人は朝鮮人の鼻を次から次へ切った.
2 豊臣秀吉は凶悪な野心を持った元凶
3 朝鮮人を虜に捕えて連れ行った.

代表的に朝鮮の将軍元均と彼を含めた 明の多くの将軍たち,
そして甚だしくは李舜臣まで時の首を枕にして集めた事実が 分かっていますか?

 

私は 鼻を枕にして集めること, 頭を刀で 取ること, ふたつの中に何がもっと残酷なことか分からないが


最小限朝鮮人が日本人のコベギを残忍だと言う根拠はないようです.

も高句麗の侵略を遠大な気象, 男らしい意気だと 表現する朝鮮人が中国を支配しようとする豊臣秀吉の 大変 男らしい発想をけなすことも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事です.


も虜拉致は戦争のあまりにも普遍的な現象ですね...


왜곡의 역사 - 임진왜란과 朝鮮


편협하고,민족주의에 함몰된

역사의 왜곡된 시각을 배제하고,


韓,日 양국이 임진왜란에 대해 간단히 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임진왜란, 전쟁의 과정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의 평양까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쉽게 점령해 버립니다.

게다가 일본군의 사무라이 정신에 기반한 군대의 절도와 질서, 민중에게 피해 주지 않는 온건한 정책으로 무리 없이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대부분을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금제(禁制)  (히데요시가 조선사람에 대한 난폭한 행위, 방화, 부역을 금지하라는 명령서)

                        1. 난폭한 행위
                        2. 방화, 사람을 사로잡는 행위
                        3. 상놈, 농민들에 대한 부역 기타 부당한 행위

                       만일에 위반한 자가 있을 때는 엄벌에 처하겠다.

                                         1592년 정월 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문에 조선 민중은 조선의 왕자 두명이 일본측으로 넘겨주고
일본군에 필요한 군수물자와 식량까지 대주었으며,

경복궁과 조선의 여러 서적들을 불태웠던 것 입니다.

그러나 평양의 고니시 유키나가(gonishi yukinaga)는 더 이상 진군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남해안 일대를 장악한 이순신에 의해 보급 경로가 차단 되고(陸路 보급을 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水路 보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불어 경상도 일대를 수복한 곽재우와 그를 비롯해 일어난 여러 의병들 때문에 군미량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 입니다.

또한 전라도를 장악하려던 일본군의 시도도, 전라도 의병과 관군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게 되며 평양으로의 보급은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보급을 기다리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5만의 明軍이 오자 어쩔 수 없이 강화를 맺고 남해 왜성으로 돌아 갑니다.

 

 


------------------------------------------------
2 정유재란, 大明이 없었다면 조선은 없었다.

일본군은 남해 왜성으로 돌아가며 호남 일대를 초토화 시켜 버렸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明과 강화를 맺게 되어서, 明軍은 중국으로 돌아갔고, 임진 왜란은 곧 종결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유재란, 분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침을 명령하는데,

정유재란은 임진왜란과 성격이 다른, 잔인한 양상을 띄게 되며, 그 유명한 코 베기도 여기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정유재란 개전명령서(丁酉再亂 開戰 命令書)

“전라도에 진격하여  전라도 사람들을 일시에 남김없이 모조리 죽일  것, 충청도 경기도와 그외의  도에서는  알아서 평정하라” (赤國不殘悉一篇成敗申付, 靑國其外之儀, 可成程可相動事)


이 때, 조선과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은은 의병운동을 하는 장수들을 참수 시켜 버리고
이순신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선의 의병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조선은 남해안의 재해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明은 다시 10만의 군대를 파견하게 되고, 연합을 해서 전투를 벌이는데,


사실 연합군이라고 할 수 없는, 明과 일본의 싸움과 다름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군은 明의 1/6도 되지 않는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明의 압박에 밀린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
3 이순신은 불세출의 천재 영웅인가? 조선의 水軍은 세계최강의 水軍?

일반적인 임진왜란에 대한 한국인의 착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순신은 슈퍼 천재
2 조선 水軍은 세계 최강

그렇다면 정말로 조선의 水軍은 압도적이며, 세계 최강이였을까요?
이는 그 당시 배의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만들어낸 일반적 망상의 오류에 불과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배와 일본의 배의 결정적 차이는 대포의 有無에 있습니다.

 

조선의 배에는 대포를 장착할 수 있었지만

일본의 배에는 포를 장착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장착하지 못했습니다.


 


17세기 조선의 대포

 

16세기 일본의 대포

 

물론 일본에 대포가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본의 대포,총통(銃筒)의 기술력은 조선을 능가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의 대포는, 요즘 전쟁의 대포처럼 팡! 하고 터지는 대포가 아닙니다. 

단지 조총(鳥銃)의 원리와 똑같이 무거운 철쇠를 날려 배를 침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며, 조선의 대포가 무엇이 더 특별하다는 망상을 하는 것은 명백한 날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 전투선에 대포를 달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조선의 배와 일본의 배 구조의 근본적 차이에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배는 대포를 장착할 수 없는 좁고 안정성보다 속도를 추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조선은 그 반대로,

 

넓은 안전성을 추구하는 판옥선의 구조였기 때문에 우연적으로 대포를 달 수 있었던 것이지, 선의 水軍이 우월하거나, 강하다는 측면에서 볼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아무리 무식한 바보라도, 대포를 장착 가능한 조선의 배가, 일본의 배에 패배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원균은 그러한 배를 가지고도 일본에 패배하였지만,
원균은 해전(海戰)을 하다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멍청하게 일본성 근처에 배를 정박했다가
습격을 받은 것 입니다.

 

 


------------------------------------------
4 일본군은 잔학무도한 악마의 집단?

한국인들이 근거로 주장하는 것에는,

1 일본인은 한국인의 코를 닥치는대로 베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흉악한 야심을 가진 원흉
3 한국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장군 원균과 그를 비롯한 明의 여러 장군들,
그리고 심지어 이순신까지 적의 목을 베어서 모았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코를 베어서 모으는 것, 머리를 칼로 따는 것, 둘 중에 무엇이 더 잔혹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국인이 일본인의 코베기를 잔인하다고 할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침략을 원대한 기상, 남자다운 기개라고 표현하는 한국인이 중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몹시 남자다운 발상을 깎아 내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포로 납치는 전쟁의 너무나 보편적인 현상이지요...



TOTAL: 9022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2522
No Image
見なさい, 文化大国朝鮮の力を! divine123 2010-08-03 2655 0
2521
No Image
世界遺産河回村と楊東村 shakalaka 2010-08-02 2100 0
2520
No Image
大韓民国の固有領土独島 ^ ^ WOLFk 2010-08-02 2130 0
2519
No Image
合衆国政府はその提案に同意する事....... kemukemu1 2010-08-02 1197 0
2518
No Image
独島は大韓民国の歴史 ^ ^ WOLFk 2010-08-01 1573 0
2517
No Image
SF条約の竹島=独島の解釈2 kemukemu1 2010-08-01 1518 0
2516
No Image
【祝】 光化門の復元 eva_pachi 2010-08-01 2673 0
2515
No Image
迷惑防止についての私見 depok 2010-09-24 1281 0
2514
No Image
実效支配大韓民国領土独島 ^ ^ WOLFk 2010-08-01 1644 0
2513
No Image
SF条約の竹島=独島の解釈1 kemukemu1 2010-08-01 1836 0
2512
No Image
発狂してもだめな事 ^ ^ WOLFk 2010-08-01 1372 0
2511
No Image
独島除外で韓国の領土を決定した条....... kemukemu1 2010-08-01 1273 0
2510
No Image
美しい大韓民国の領土独島 WOLFk 2010-08-01 1544 0
2509
No Image
竹島=独島は日本の領土です、特別版 kemukemu1 2010-07-31 1459 0
2508
No Image
汚くて乞食みたいな日本の惨状. Joseon 2010-07-31 2170 0
2507
No Image
歪曲の歴史 - 壬辰の乱と 朝鮮 divine123 2010-07-31 2416 0
2506
No Image
朝鮮王室 儀軌 2010-07-31 3032 0
2505
No Image
七支刀の謎。果たして百済製なのか....... capricon1 2010-07-30 2323 0
2504
No Image
韓日古代史 (11) 七支刀 解釈 Marich様あ....... ibmsama 2010-07-30 2634 0
2503
No Image
朝鮮時代の火事対備策 Marich 2010-07-30 2555 0